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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92화 (92/305)

제92화 발버둥도 좋다.

마수가 바닥에 떨어져 뒹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환호를 터트렸던 이들의 얼굴에 한숨이 서렸다.

“씨파, 그럼 그렇지. 마물새끼…….”

“그래도 물리 충격력이라도 먹히는 게 어디냐.”

이미 이런 상황은 익숙한 듯 몇몇 군인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일제히 튀어나가는 차량들이 있었다.

“미끼팀?”

“미끼팀이 지금 왜 나가? 강림자들도 대기 중인데!”

군인들이 미끼팀이 출동하는 모습에 놀라 외쳤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위급상황에서 강림자들이 자리를 잡기 전까지 마물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전장을 누비는 이들이 바로 미끼 팀이었다.

그런 미끼팀이 강림자들도 다 도착해서 대열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 튀어나가니 이상한 게 당연했다.

“어? 어어어! 위험해!”

그중 한 대가 이제 막 몸을 일으킨 공중형 마물을 향해 달려갔다.

뀌에에에!

그 모습에 몸을 일으킨 공중형 마수가 성이 난 듯 포효를 터트렸다.

투칵!

퀴헥!

순간 포효를 터트리던 공중형 마수의 입안으로 뭔가가 날아들 더니 뒤통수로 뭔가가 빠져 나갔다. 살짝 뿜어진 보랏빛 피.

이내 공중형 마수가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마냥 휘청이더니 옆으로 나자빠졌다.

쿠우웅!

“뭐야? 뭐가 어떻게 된거야?”

그때 단안경으로 그 마수의 시체를 스쳐지나가는 지프를 보던 군인이 탄성을 터트렸다.

“강림자! 강림자가 타고 있어!”

“뭐어?”

지프에는 강림자와 소환자가 타고 있었다.

그때 지축을 뒤흔드는 발굽소리가 울려퍼졌다.

두두두두두!

“와, 쩐다…….”

사십여대의 지프를 따르며 내달리는 기마들을 보며 군인들은 저마다 입을 떡 벌렸다.

비록 나타난 마물의 숫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것들을 향해 내달리는 기백은 절대 모자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였다.

“아! 고구려 기병이다!”

일부 기동대원들이 알아본 듯 외쳤다.

“전신? 그쪽은 다른 균열지로 가지 않았어?”

“아니 그거 말고! 저번 침식균열 깰 때!”

“아!”

그제야 저 병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알아챘다.

“우와아아아!”

기동대원들은 물론이고 군인들이 환호성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오! 나이샷!”

“다, 다행이다.”

환호를 터트리는 고빈과 달리 함께 탄 소환자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의 강림자는 궁수였다.

그것도 꽤 명사수로 알려졌었던 강림자인지 활솜씨가 제법이었다.

“이 아저씨 이름이 뭐에요?”

그제야 자신의 강림자 이름을 묻는 빈에게 소환자 사내는 말을 더듬었다.

“그, 이름이…….”

“쉰네는 막쉽니다요!”

“끙.”

“오, 이름 구수하면서 잘 어울려!”

촌스러운 이름이라 밝히려 하지 않았던 소환자였지만, 강림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아저씨 마물 잡아봤어요?”

“아, 폐급 사냥훈련까지는 받았어요. 그런데…….”

“왜요?”

소환자 사내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 님 팬이에요. 구독도 하고 있어요.”

“아이구 형님이시구나!”

“아 진짜 이렇게 같이 작전 줄은 몰랐네요. 심지어 오늘은 라이브로 보겠네요?”

소환자는 전장으로 나와 있음에도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걱정 마십쇼! 다음에 영상 올라오면 좋아요 눌러주시고, 라방이면 좀 쏘세요. 흐흐.”

“아! 그러고 보니 이거 영상으로 담으면 대박일건데.”

“이미 담고 있어요.”

“예? 이 안에 전자기기는…….”

침식균열이 벌어지면 전자기기가 먹통이 된다.

오죽하면 차량도 옛날처럼 크랭크 축을 돌려서 시동을 거는 것을 쓰겠는가.

“저기서 찍죠. 최대한 땡겨서 찍기로 했어요. 국방부 협찬이요.”

“어?”

빈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 소환자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빈이 말을 이었다.

“자 막간을 이용해서 하트!”

“하, 하트!”

빈이 머리위로 큰 하트를 만들자 그와 말을 섞던 소환자도 머리위로 큰 하트를 만들었다.

“자, 오늘은 게스트가 되신거네요. 흐흐흐. 박제 안되게 잘 하실 수 있죠?”

빈의 너스레에 사내의 표정은 조금더 편해졌다.

“아, 이거 훈련 때 더 열심히 할걸.”

빈이 호들갑을 떤 이유는 바로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인 듯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사내의 표정은 꽤나 안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훈련으로도 늘기는 하는데. 실제로는 직접 마물과 싸우는 게 훨씬 더 빨리 실력이 늘어요. 그냥 속편히 MMORPG실사 버전이라고 생각하세요.”

빈의 설명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 중 들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저씨 이름이?”

“저, 오중태요.”

“나보다 형님 같은데. 말 편히 하세요.”

사내는 서른 중반 즈음 되어 보였다.

“그, 그럴까?”

고개를 끄덕인 사내는 조심스럽게 빈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긴장 안 돼?”

“중태 형님도 긴장 안 하는데요 뭐.”

“나야 니가 풀어준 거지.”

눈치가 없는 건 아닌지 중태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빈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처음은 나가서 들어올 때마다 속옷이랑 바지 갈아입기 바빴죠.”

“아…….”

빈의 말에 중태가 왠지 공감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빈이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중태 형님도 지렸구나?”

“뭐, 좀.”

“사실 졸라 무섭죠.”

빈의 말에 중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영상에서 본 빈은 절대 두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예능인 같은 모습에 가까웠다.

그런데 두렵다는 말을 하니 약간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사실 사명감 가지고 하는 건 아니긴 해요. 그냥 피할 수 없으면 즐겨볼까도 있기는 한데…….”

빈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부루 아저씨에게 옛날얘기 듣다보니 이게 꼭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닌 것 같아서…….”

“아, 을지부루님?”

“예.”

중태가 을지부루의 이름을 언급하자 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이 끝나고 가끔 들려주던 이야기가 있었다.

처음은 그냥 아무생각 없이 던진 이야기다.

‘아저씨는 어떻게 하다가 죽었어요.’

그게 시작이었다.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긴 이야기였다.

그 와중에 새로운 세상에서의 전쟁이야기가 흥미 진진하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는 어릴적 즐겁게 보던 장르소설과도 닮았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생생했다.

소설이 아니다 보니 좀 더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하나 둘씩 이야기에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현실이 되어 갔다.

‘난 그 전투에서 죽었는데.’

‘멍청한 놈, 자랑이다.’

‘우리 마누라는 뭐라디?’

‘뭘, 뭐래. 애 얼싸안고 울지.’

‘미안하게…….’

‘우리 대장이 그래도 너 몸땡이 찾아다가 무덤은 만들게 해 줬다.’

‘그건 들어서 알지. 흐흐흐.’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병사들.

‘내가 그때 왼손만 멀쩡했어도 응! 장군께 그놈 가지도 못했소!’

‘지랄 말라. 후퇴하라고 했는데 항명하고 기들어 온 주제에 뭔 말이 많네! 거기서 안 죽었으면 내손에 뒈졌어야!’

아군의 입성을 위해 부상병들을 이끌고 적의 후위를 친 천유화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 개문산성에서 끝까지 적을 막아내던 부루의 이야기.

남이야기 하듯 말을 뱉던 그들의 모습을 보며 빈은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였음을 알 수 있었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그랬다.

그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셨냐고.’

그러자 답했다.

‘기럼 누가 싸우고 지키네? 대신 죽어 줄 놈은 있간?’

툭하니 던져준 답변.

그제야 빈은 자신이 누리는 평화가 누군가의 피를 댓가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체감한 것이다.

‘후회는요?’

있다고 했다.

좀 더 잘 싸워서 살아서 세상을 보지 못한 후회. 하지만 그 뿐이라 했다.

살아 지키진 못해도 죽어서라도 지켰으니 그것으로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남은 이들에게 앞날을 열어 주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했다.

그 말들을 들으며 빈의 머릿속의 복잡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싸우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법이디.’

부루의 답변이었다.

고루하고 평범한 답변이지만, 직접 해낸 이의 답이다.

‘이런 때에는 차라리 전장에 나서는 거이 나은 법이야.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다가 다 무너지고 난 뒤에는 남는 게 없디. 최소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앞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란 거이야.’

부루의 말을 들으며 떠오른 역사. 왜란, 일제강점기.

그냥 막연하게 생각했던 시기.

당시를 살아보지 못했기에 그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답답해하기만 했었던 그 시절의 역사가 다시 와 닿은 것이다.

빈이 정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중태형님.”

“응?”

“만약 말입니다.”

“뭔데?”

“우리가 소환자가 아니고 그냥 일반인이라 칩시다.”

빈의 말은 아까와 달리 차분했다.

“응.”

“그런데 장벽이 무너지고 강림자랑 소환자가 다 도망쳤어요. 그리고 마물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와요. 그럼 어떨까요?”

빈의 말에 중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옥 같겠지…….”

“그렇죠? 그러다가 마물이 떡하니 앞에 나타나면 우린 죽을 거고. 만에 하나 가족이 있어도 지키지도 못하겠죠.”

빈의 말에 중태는 입을 다물었다.

“재수 없으면 가족이 눈앞에서 죽는 걸 볼 수도 있고. 그런데 아무것도 못하고 참 미칠 거 같지 않아요?”

빈의 말에 중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예. 전에 대침식 끝나고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 우리반 애들 중 일곱이 안 나왔드라고요. 그때도 참 그랬는데. 만약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정말 허망 할 거에요.”

“하긴…….”

중태 역시 대침식의 시기를 살아온 이다. 비슷한 기억이 없을리 없다.

“그래서 다행인 거죠. 이렇게 싸울 수 있다는 건. 조금이지만, 무언가 지킬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거니까요.”

“그러게.”

빈의 말에 중태가 씁쓸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제가 약간 관종 끼도 있기는 하지만, 진짜는 그거에요. 이 자리는 뭐라도 바꿀 수 있도록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거죠.”

“발버둥도 못 치면 억울하지.”

“강림자가 잘못 되면 발발 떨다가 사형수마냥 기다리거나, 발버둥도 못 치고 도망다닌다……. 생각해보니 그게 더 끔찍할 거 같더라고요.”

빈이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사명감? 사실 것보단 발버둥쳐 보려고 이짓 하는 거에요. 뭐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게 다행이기도 하고. 그리 생각하는 게 좀더 속 편하드라고요.”

빈이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중태가 입을 열었다.

“오, 멋있다. 너.”

“흐흐, 제가 생각해도 좀 그래요.”

“크크크!”

“자, 우리 발버둥 좀 쳐 봅시다!”

빈과 대화를 나눈 중태의 시선도 바뀌었다. 뭔가 생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강림자의 표정도 기묘하게 변해 있었다. 강림자 막쇠가 입을 열었다.

“좋겠소.”

“응?”

순간 중태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강림자는 인지도가 병사급이기에 딱히 먼저 입을 여는 법이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말을 걸어온 것이다.

“난, 도망치다 죽어서. 후회만 남아있소. 그래서 부럽소.”

“마, 막쇠? 기억이?”

“후회만 기억나오. 희미하게.”

막쇠의 대답에 중태가 입을 떡 벌렸다. 그런 중태에게 막쇠가 다시 말했다.

“좋은 거요. 발버둥이라 해도 말이우. 내 의지를 가지고 싸운다는 거니까.”

딱딱한 인형같던 막쇠의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졌다.

놀란 눈을 하고 있던 중태 역시 그를 보고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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