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마수의 군주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 소장의 어두워진 표정에 담긴 의미를 모를 강 대위가 아니었다.
“다만 미끼 팀은 이전의 작전과 다른 용도로 활용합니다.”
“다른 용도?”
“소환자와 강림자 분들이 합승할 것입니다.”
“아…….”
강림자라는 말에 약간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화기가 통하지 않는 마물들을 상대할 수 있다면 충분히 생존력이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저분들이 호위를 맡을 겁니다.”
강 대위가 고개를 돌리니 부루와 그 수하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그들의 능력은 이미 이전의 침식균열에서 겪어 본 바가 있었다. 든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위를 선다는 말은 단순하게 미끼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전력을 끌고 침투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최대한 부탁하네.”
이 소장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강 대위가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도 함께할 겁니다.”
“자네도?”
“이런 작전을 입안하면서 제가 뒤에 앉아서 구경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강 대위의 말에 이 소장이 미소를 머금었다. 강문호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리 영웅이라 불렸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때 무전이 날아왔다.
[균열이 활성화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빨리 움직여야겠군!”
이 소장을 비롯해 도열을 맞춘 강림자들이 장벽 안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콰직! 콰지지직!
보랏빛 뇌전이 점점 번져 나갔다. 그 반경이 거의 침식지의 삼분지 일가량을 뒤덮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 영역에 있던 돌멩이나 바위들이 닿는 순간 바스라기고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 뇌전이 빛으로 변하는 순간 마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크우우우! 쿠워억!
사방에서 울리는 외침에 일차방어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병력들이 긴장했다.
그들의 뒤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레일건들이 장벽 한쪽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살짝 포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위압적이었다.
“장벽이 버텨날라나 모르겠네.”
레일건의 사선에서 빗겨나 있던 기동대원들이 긴장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파괴력 때문에 그 레일건의 반대편에는 특수합금으로 만든 보호벽이 세워져 있었다.
만에 하나 장벽을 뚫고 날아가기라도 하면 민간인들의 거주지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위력이 있지만 운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미 미국에서 그 위력을 증명한 바 있었다.
“대체 저것들은 뭐지? 처음 보는 개체인 것 같은데.”
기동대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생소한 모습들이었다.
“원숭이 같기도 하고.”
“새로운 개체라니…….”
“저건 꼭 새 같은…… 새?”
순간 기동대원들의 얼굴이 헤쓱해졌다. 지금까지는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마물은 등장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날개가 달린 마물들이 보였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하늘을 나는 개체인 것이 분명했다.
“제, 젠장!”
장벽 위에서 마물들을 바라보던 이원철 소장이 이를 갈며 무전기를 들어 외쳤다.
“헬기 지금 지원가능한가!”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뒤쪽에는 특수 연구단지에서 소환자와 강림자들을 공수해 오느라 도착한 헬기들이 대기 중이었다.
문제는 거의가 비무장이라는 의미였다.
[연료는 문제없지만 무장이…….]
“당장 지원 요청해! 무기는……. K-4랑 K-6올리고 외곽 강림자 중 궁수계열에 지원을 요청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유선 전화기로 명령을 내렸다.
“레일건 초탄 바로 날려!”
-흐으으음
뇌전을 빗겨 내며 모습을 드러낸 건 크기만 해도 삼십여 미터가 넘는 거대한 짐승이었다.
-이 냄새. 좋군.
마치 거대한 유인원을 연상하게 만드는 긴 팔에 짧은 다리. 그러나 그와 달리 등에서부터 이어진 기다란 꼬리는 유인원의 꼬리가 아니라 파충류의 것처럼 쭈욱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꼬리 끝은 마치 옛 공룡처럼 회색빛의 커다란 덩어리가 달려 있어 보기만 해도 그 용도를 알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머리 역시 마치 늑대를 연상하게 하는 긴 주둥이에 턱 아래로 쭉 뻗은 송곳니가 위압적이었다.
그리고 눈.
얼굴의 반을 뒤덮은 눈동자들은 괴기스럽기만 했다.
-마수들의 군주이자 마계의 대공이신 카샨 프리포 쿠리울이시어.
그의 앞에 그보다는 조금 덩치가 적지만 마찬가지로 이십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짐승형 마족들이 갑주를 입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비록 치욕스러운 정벌이지만, 반드시 성과를 얻어 우리 마수들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라.
마계 최약체로 쪼그라든 세력과 힘 덕에 직접 이곳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대공들의 군단장과 같은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엄연히 대공이었다.
-가라! 나의 마수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장벽에서 빛이 번뜩이더니 그의 몸통을 무언가가 직격해 온 것이다.
콰아아앙!
-…….
마수의 군주 쿠리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출정식이 방해 당했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쿠리울이 자신을 타격한 것을 향해 시선을 돌리다가 멈칫했다.
쿠워어억! 크륵!
마치 밭고랑이 패이듯 일직선으로 길이 나 있었다.
보랏빛으로 물든 살점들이 그 밭고랑 같은 길들 사이로 쭉 깔려 있었다.
일부 대형종들만이 온전할 뿐, 나약한 마물들은 흔적도 없이 육편으로 변해 버렸던 것이다.
성난 쿠리울이 외쳤다.
-모조리 찢어발겨라!
그의 외침에 마수들이 포효하며 내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엉!
“우와아아!”
레일건 운용병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환호는 잠깐이었다. 이내 포효를 터트리며 몰려오기 시작하는 마물들을 바라보며 긴장된 얼굴로 충전게이지를 확인했다.
“충전! 충전! 십 초 전! 구 초!”
“마물들이 달려온다!”
“빌어먹을 좀 빨리…….”
위력은 지금 확인했다.
일부 마물은 어쩌지 못했지만, 상당수의 마물들이 레일건 탄에 의해 육편조각으로 변해 버렸던 것이다.
“큰놈은 맞추지 마! 의미 없다!”
가장 큰 개체를 맞춘 탄도 있었지만, 맞는 순간 보랏빛막이 생겨 나며 그대로 탄이 소멸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럴 땐 과감하게 포기하고 개체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나을 수 있었다.
“수가 뭐 저렇게 많아?”
내달려 오는 소리에 말 그대로 지축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운용병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완충! 완충!”
“준비된 사수 각도 5도 틀어서 발사하라! 흩어지기 전에 빨리!”
그의 외침에 레일건이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리고 동시에 빛을 뿜었다.
투와아앙!
퀴이이잉!
“우앗!”
사선의 주변에 있던 기동대원들이 저절로 몸을 움츠렸다.
꽤 떨어진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는 정도였지만, 몸을 제대로 세울 수 없이 흔들렸던 것이다.
몇몇은 바람에 휘말려 뱅그르 돌며 엎어지기까지 했다.
“젠장! 정신 안 차릴래!”
“온다!”
마물들이 달려오기 시작하자 전방의 고정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펑! 펑펑!
포방부라는 이름에 걸맞는 화력이 일시에 뿜어졌다.
그러자 정면으로 달려오는 마물들 사이로 날아간 포탄들이 직격하기 시작했다.
폭음과 함께 마물들의 몸이 솟구쳤다.
“먹힌다!”
“먹혀!”
숫자는 많았지만, 의외로 포격이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들이 긴장하던 이유는 바로 포격이 먹히지 않는 마물들 때문이었다.
물론 일부는 여전히 포화를 뚫고 내달려 오고 있었지만, 다른 마물들과 달리 피해를 입는 개체수가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연신 포성을 터트리던 선두 방어벽이 점차 침묵하고 기동대원들이 일제히 바이크들을 타고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장벽 위도 쉬지 않았다.
저번 작전을 펼치면서 화망을 추가로 구성한 것이었다.
장벽 위에도 이미 퇴역한 전차들의 포탑들을 끌어 올려 포대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펑! 퍼엉! 펑!
연달아 전차포가 쏘아져 나가는 사이 이차 방벽으로 기동대원들이 스쳐 지나가자 화기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
작은 구경의 포들이 마치 소총처럼 쏘아져 나갔다.
연안 경비대에서 활용하는 소구경 포들이 삼선에서 불을 뿜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K-4 고속유탄발사기가 연신 불을 뿜어내었다.
투투투투퉁! 퉁퉁! 투투투퉁!
마치 잘 짜여진 그림 같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마물들이 육편이 되어 솟구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비, 빌어먹을 대공! 대공!”
날개가 달린 것들은 그 용도를 제대로 보여 주기 시작했다.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른 마물들을 보며 기동대원들이 저마다 떠들었다.
일부 유탄들이 하늘을 향해 쏘아졌지만, 하늘을 나는 마물들의 속도는 쉽게 맞추기 어려웠다.
대공기관총인 K-6와 구형병기인 MG50이 함께 불을 뿜었다. 그러나 탄막에 들어선 공중 마물들은 몸이 뒤로 밀리다가 탄막을 벗어나기 일쑤였다.
그때 마물 하나가 허공에서 급강하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화망이 형성되었지만, 그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마치 옛날 2차대전 영화에서나 보던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했다.
과작! 아래로 날아든 마물이 그대로 급조벙커를 기둥 같은 다리에 달린 발로 움켜쥐며 다시 솟구쳐 올랐다.
“우왁!”
“허억!”
순간 솟구쳐 오르는 벙커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기동대원들이 수 미터 밖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행히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옆으로 구르며 몸을 보전 했지만, 한발 늦은 이들은 십여 미터도 넘는 높이에서 비명을 내지르며 떨어져 내렸다.
나름 낙하산 착지하는 요령으로 몸을 굴렸지만, 특수부대원이 아닌 이상 멀쩡하기 어려웠다.
우두둑! 우둑!
“아악!”
“악!”
비명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다리가 기묘하게 꺾인 것이 부러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동료들을 향해 달려온 기동대원들이 곧바로 들쳐 업고 뛰기 시작했다.
그나마 그들은 다행이었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 버린 기동대원들은 벙커에 매달려 있다가 손을 놓쳐 떨어져 내렸다.
으아아아아!
비명도 멀게 느껴질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진 기동대원의 몸뚱이가 바닥에 닿는 순간 둔탁한 소리를 내며 수 미터는 다시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그의 몸뚱이가 닿았던 대지에 붉은 핏물이 점처럼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튕겨 오르는 순간 몸뚱이에서 떨어진 뭔가가 옆으로 튀었다.
팔이나 다리 같았다.
그리고 도로 떨어진 몸뚱이는 그대로 조금 더 굴러가다가 멈추었다.
그 처참함에도 포화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 귀를 찢는 소리가 울려왔다.
위이이잉!
타라라라라락!
여러개의 총열이 뭉쳐진 형태의 화기가 무수한 탄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저걸 이렇게 쓰네…….”
그걸 바라보던 기동대원이 혀를 찼다. 그건 바로 함선에서 쓰던 근접방어 시스템 골키퍼였던 것이다.
쓸모가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가능한 모든 화기를 동원해 보자는 의미로 설치한 것이었는데 이게 제법 활약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투퍼퍽! 퍼퍼퍼퍽!
뀌에에에엑!
다시 급강하를 하던 마수가 비명을 내지르며 땅에 처박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