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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90화 (90/305)

제90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응? 형들은 왜 타요?”

마지막 헬기에는 고빈과 을지부루가 있었다.

둘을 보는 순간 이승배와 광호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낮빛이 어케 뒈진 놈 마냥 시커멓게 변해 있는 거이간? 응?”

말을 하던 부루의 시선이 그들의 뒤를 향했다.

“니보라. 이름이 뭐이간?”

“거불한이라 합니다.”

“기래? 오대 있었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시기는 기억하는 거이간?”

부루의 질문에 거불한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나 기억이 완전치는 않았다.

“늙어 죽은 거간?”

“싸우다 죽었습니다.”

“기래? 나도 그랬어야. 나만 따라 다니라우. 이번에 같이 달리며 손좀 맞춰 보디.”

“예, 장군.”

“뭐야? 이 자연스러움은?”

둘의 대화를 보던 빈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건 구은태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은 또 처음이었다.

부루 일행들이 강림자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것은 연구 결과를 봐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소환자를 배제할 정도인 것은 처음이었다.

“형 소환자였어요?”

“아니…….”

“그럼 소환자 딱상이네요?”

“넌 지금 그런 소리가 나오냐?”

승배가 울상을 지으며 대꾸하자 빈이 히죽히죽 웃었다.

“에이. 그런 말 있잖아요.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죽지는 않을 거에요.”

“비니 말이 틀린 건 아니디. 내래 신경 많이 써줄 거이니 걱정 말라우.”

“……굳이 신경까지야.”

“안 그래도 세인 마마 곁에 헛껍닥 같은 아새끼들만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야.”

부루의 시선이 이번에는 광호를 향했다.

광호가 시선을 슬슬 피하는데 그 뒤의 인물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푸후우우.

그의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뭔가 잔뜩 불량스러운 모습.

“원래 비행기 아니 헬기는 금연 아니에요?”

빈의 말에 구 박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다. 그런데 너도 알겠지만, 저게 진짜 연초는 아니라서.”

강림자가 등장하면서 함께 딸려 온 물건이라는 의미였다.

“이 아저씨는 조선 사람인가 봐요? 백정인가?”

빈이 중얼거리자, 굳이 의자를 두고도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던 거한이 입을 열었다.

“백정은 맞는데, 꺽정이라 불러라.”

“……오 이 아저씨 신박하다.”

“걱정이라고 했네?”

부루가 신기한 표정으로 다시 묻자 한쪽 눈을 치켜뜨며 다시 말했다.

“꺽정이라 불러라.”

“반말 한 거이간?”

부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니면 두령님이라 불러라.”

“와! 실화? 이 아저씨 설마 진짜야?”

빈이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뜰 때 부루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름.”

“임꺽정이라 불……러 주십쇼.”

“산적이간?”

“산적임다.”

“방귀 깨나 뀌었나 보구나야.”

“기억은 안 나지만 종종 뀌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임꺽정은 지금 공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부루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그 둘의 대화를 듣던 빈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광호에게 말을 했다.

“형, 짭 같지 않아요? 머리도 나빠 보이고.”

“짧?”

“짝퉁요. 임꺽정이라고 행세하는 산적들 종종 있었다던데요?”

“……머리는 좀 그래 보이긴 한데. 진짠지 가짠지는 나도 모르지. 이대로 끌려온 터라.”

광호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는 가운데 부루의 질문이 이어졌다.

“어디서 산적질 한 거간?”

“구월산.”

“대박!”

빈이 놀란 눈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인지도가! 영웅급이네?”

그제야 손목에 달린 패드로 확인한 빈이 외치자 구 박사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진짜? 그게 진짜인가?”

“예! 와! 진짜 임꺽정인가 봐요!”

“허!”

그렇게 놀라는 사이 헬기는 침식지로 향했다.

“하아. 역시 여긴 마가 낀 곳인가 봐.”

기동대원들이 한숨을 쉬며 침식지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여의도의 침식지대였다.

정확히는 예전에 국회가 있던 곳이다.

딱 그곳을 중심으로 침식지가 생성되어 있었는데, 지금 균열이 생기고 있는 곳도 바로 예전 국회가 있던 곳이었다.

“막말로 저기에 침식지가 형성된 덕에 우리나라가 일치단결할 수 있었다는 우스개도 있었잖아.”

“그건 팩트고.”

웃을 일은 아니었다.

당시 국회의사당에서 본회의 중이었기에 적지 않은 수의 국회의원들이 침식에 휘말려 마물들에게 희생이 되었었다.

누군가의 희생이 희화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정치적 상황이 그다지 환영받던 때가 아니었었다.

그래서인지 칠년이 지나도 이런 농담이 오가고 있었다.

“온다!”

그때 기동대원들이 반색을 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헬기들이 떼 지어 날아오고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바로 연이어 침식균열을 막아 준 장본인이었다.

“오시는가?”

원래 제3장벽을 담당했던 이원철 소장은 이곳 제1장벽으로 와 있었다.

아무래도 실전을 경험할수록 중용되는 것이 군인이다 보니 그가 이곳으로 급파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다행이군.”

저번처럼 기동대원들을 미끼로 던져가며 시간을 벌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위안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데 좋아만 할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때 기동대원 하나가 이 소장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거야…….”

침식균열의 징후가 생기고도 열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이곳 침식지가 영향력이 작아서 열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아니면 어마어마한 놈이 나오거나.

다만 이곳 침식지는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후자의 경우에 많이 의견이 쏠렸다. 그것이 을지부루 일행이 이쪽으로 향한 이유이기도 했다.

헬기들이 차례로 내리면서 강림자들과 소환자들이 빠르게 빠져나왔다.

“오, 눈빛들이 생생하네?”

실전을 많이 겪어 본 기동대원들이었기에 눈빛만 봐도 그들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와, 저쪽 봐라!”

“전신 길드? 아니다! 그 뭐지?”

“고구려군단이야!”

“맞아!”

강림자 무리에 군단이라는 칭호가 붙은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물론 해외의 경우 없지 않아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처음이었다.

전신 길드가 고구려 강림자 신으로 되어 있다지만, 그들의 숫자를 보고 군단이라고까지 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곳의 가우리 병력역시 군단이라 부를 숫자는 아니었지만, 그 위력에 빗대어 그리 지칭했던 것이다.

“부루다! 부루!”

“와! 눈빛 봐.”

기동대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사가 된 을지부루가 모습을 드러내자 다들 눈을 반짝였다.

“비니도 왔네?”

“진짜야? D급까지도 바를 수 있다는 게?”

“C급도 가능하단 말도 있던데?”

빈은 여러 의미로 유명 인사였다. 최초의 의미로 싸우는 소환자가 바로 고빈이었다.

대침식 초기 살기 위해 버둥거리며 소환자가 무기를 든 경우는 있었지만, 적극적 의미로는 빈이 처음이라 해야 했다.

강문호 대위가 이원철 소장에게 달려갔다.

“충성.”

“강 대위. 자네도 온 건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강 대위의 대답에 이 소장이 웃음을 머금었다.

대위와 소장.

직위로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는 대침식 시기의 영웅이었기에 나름의 존중을 받았다.

군인이며 연구원이기까지 한 특이한 이력도 한몫을 했지만 말이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일단 배치는 끝이 났는데, 균열의 상태가 심상치 않네. 마치 대침식 마지막 시기를 보는 느낌이야.”

이 소장이 목소리를 죽이며 답하자 강 대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곳이 가장 심각하다는 건 알았다. 그렇기에 부루가 이쪽으로 배치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대침식 시기의 균열에 버금간다는 말에 얼굴이 굳어지는 건 당연했다.

당시 마지막 균열을 막아 내며 희생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 소장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어왔다.

“그런데 전신 길드는 아직 도착 안 했나?”

“코드 레드가 3곳입니다.”

순간 이 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

“혼란을 줄이기 위해 각 지역 인근에서 소개령만 내려진 상황입니다.”

“3곳이란 게 사실인가?”

“이곳 서울 그리고 인천과 부산 총 3곳입니다. 미국 쪽도 2곳이 발생했고…….”

강 대위의 설명을 듣던 이 소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왜 이 좁아터진 땅덩이에 제일 많이 터진 거야!”

“가장 잘 막아서 오히려 그런 것 같습니다.”

“후우. 그래도 나름 보도통제에 협조가 이루어지는 모양이군. 3곳이 터졌으면 시끄러워야 하는데.”

이 소장이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아마 실시간으로 체크해서 삭제중일 겁니다.”

침식균열에 있어 가장 큰 적은 바로 혼란이었다.

그나마 이게 먹힌 것은 동시에 세 개가 생겨난 것은 대침식 이후로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그렇다고 보긴 해야겠지요.”

강 대위가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소장의 얼굴 역시 어두웠다.

아니 둘뿐만이 아니었다.

진지에 자리한 군인들의 표정들 역시 어둡기만 했다.

소환자들 역시도.

최근 들어 연이어 침식균열을 조기에 차단한 세계적인 쾌거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표정이 어두운 것은 대침식의 마지막 이후 몇 년간 없던 침식 균열이 다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최근 들어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대침식은 이들에게 있어 잊혀져 가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고통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 누군가는 친구를 잃었다.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재해였다.

악몽을 마주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성공을 자축하는 이면에는 제 2의 대침식이 눈앞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커져가고 있었다.

그것이 이곳에 있는 이들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이럴 때 일수록 새로운 영웅이 필요한 법이지요.”

“혹시 저 친구인가?”

이 소장이 빈을 바라보았다.

강림자들 사이에 섞여 있는 모습이 이제는 제법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복장 역시 기존의 소환자들 것과 달랐다.

기존 소환자들의 복장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형태라면, 빈의 복장은 전투를 위한 형태였다.

마치 옛 갑옷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그것을 느낀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들 중 빈을 알아본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난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솔직히 실전투입에는 불가능 하지만 공개적인 입소절차를 받아 기초훈련 중이던 소환자들도 빈과 같은 갑주를 입고 있었다.

“특수부대 비슷한 건가?”

“저 사람들도 저기 있는 빈처럼 마물을 직접 사냥하고 그럴 수 있나 본데?”

“하아. 나도 지원해야 하나.”

누군가는 선망의 눈길을, 누군가는 자신의 늦은 선택을 후회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인지 전날까지 훈련을 받으며 자신들이 미친 선택을 했다며, 후회하던 소환자 훈련병들도 이곳에서만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를 펴고 서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 듯 말이다.

“미끼팀은 철수를 시킬까?”

이 소장의 질문에 강 대위가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하지만 오히려 필요합니다.”

강 대위의 말에 이 소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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