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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88화 (88/305)

제88화 침식지 연구의 결과

그때 유화가 부루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뭐 말이네?”

“그 뭐시냐, 대원 어쩌고 홧병 나 죽었다던데.”

이어진 말에 부루가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기래서?”

“일 돌아가는 게 심상찮으니 하는 거지요.”

유화의 말에 부루가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이 있네?”

“없겠죠?”

“기래. 우린 산 사람도 아니지 않네.”

부루의 말에 유화가 쓴 웃음을 머금었다.

지금 살아 움직이는 것 같건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뭐, 그렇죠. 그래도 좀 지랄 맞잖습니까.”

“…….”

부루는 침묵을 지켰다.

유화는 다시 바닥을 뒹구는 빈을 보며 말을 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왜 돌아가는 꼴은 비스무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죽어 나가는 건 병사들이고 백성들이니…….”

유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부루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빈이 헐떡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눈빛이 그 어느 때와 달리 형형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사방에서 줘 터져 가면서도 몸을 일으키는 이들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전신길드원도 있었고 신컨길드원들도 있었다.

하나같이 빈과 표정이 비슷했다.

“달궈진 이유도 있지만, 실상은 열도 받은 거이디.”

“그렇죠?”

“기래. 열 받은 거이야. 이곳에서 누구는 피 똥 싸며 구르는데 사방에선 말장난이나 하고 있으니까네.”

“그러게 말입니다.”

부루의 말에 유화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이럴 때 계셨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

유화의 질문.

딱히 누굴 지칭하지도 않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잠시 입을 다물었던 부루가 답했다.

“싹 다 잡아 조지셨을 거이야. 암.”

“그렇죠?”

“길티.”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주 지랄 맞구나.”

구은태 박사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썩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강문호 대위가 들어오며 질문을 했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어떻게 되긴. 합류하는 거지.”

“대원연구팀이요?”

“그래. 그리고 대원길드.”

대원길드가 합류하는 것은 막을 이유가 없긴 했다. 처음부터 소집 대상이기도 했고.

다만 이 일이 벌어진 뒤에는 좀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쪽의 통제를 따르지는 않겠단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립니까?”

“우릴 못 믿겠단다. 사기업을 대상으로 횡포를 부린다나 어쩐다나.”

“막 나가는군요.”

강 대위의 말에 구 박사가 착잡한 얼굴로 답했다.

“거긴 회장이 죽었으니까.”

“정말 사고가 맞다고 합니까?”

직접적인 사인은 두부 함몰로 인한 출혈이다.

“그래. 어차피 그 안은 CCTV도 없고. 또 법의학자들 동석한 부검에도 아무것도 안 나왔으니까.”

“대원길드장은 정말 관련 없고요? 최초신고자잖습니까.”

“나가는 와중에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는데 어떻게 하나. 심증 가지고 무어라 하기에는 무리지. 거기다가 어차피 대원그룹 후계는 대원길드장이 유력한 상황이었으니까. 굳이 살해를 유도할 의도가 없다고 봐야지.”

대원길드장 오기원은 이번 일에 적극 협조했다.

오히려 후계에서 멀어져 가던 다른 피붙이들이 열을 올리기는 했지만, 결국 전부 역풍을 맞아 버렸다.

“더는 힘들어. 그리고 미국 쪽도 대원길드의 연구에 대해 눈치를 챘고.”

“그럼 단독으로 나가는 겁니까?”

“그 정도는 아니지. 다행히 맷 중장이 적극적으로 이쪽 편을 들어 줬어.”

“같이 땀 흘린 보람이 있나 봅니다.”

“부루 장군을 존경한다니까. 그리고 미국 측에서도 계산이 있는 모양이야.”

구 박사의 말에 강 대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계산이요?”

“대한민국에 최강의 전력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거지.”

“그건 부루 장군님과 그…….”

“맞아. 묵갑귀마대와 가우리 병력들.”

구 박사의 말에 강 대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전력이 최강일 것이라는 건 그도 인지하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아직도 새로이 강림자들이 소환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들처럼 특수한 상황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계라 불리는 다른 세상에서 명을 다한 존재들.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게 원인일 거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균열의 확장에 관해서 새로운 연구가 들어왔기도 하고.”

“새로운 연구라면?”

구 박사의 말에 강 대위가 눈을 빛냈다.

“지금 미국 측에서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다더군.러시아, 그리고 영국과 중국, 프랑스 등에서 합동으로 조사를 해 왔던 것이 있지.”

“혹시 아프리카 쪽 일 말입니까?”

“그곳들과 동유럽 일부 지역. 그리고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

“아…….”

구 박사가 언급한 지역들은 공통점이 있다.

국토 대부분이 침식지화 되어 버린 곳들이라는 의미였다.

혹은 국가로써의 기능이 정지된 곳이라는 의미다.

“일본 쪽은?”

“그쪽도 미국에 자료를 넘겼지.”

“이 와중에도…….”

“우릴 믿겠나?”

강 대위가 쓴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브리핑을 보면 답 나오겠지. 사실 이번 합의도 그 때문에 더 시간을 끌지 못했네.”

“으음.”

그때 연구원이 고개를 내밀었다.

“브리핑 룸에 준비 되었습니다.”

“알겠네. 가지?”

구 박사와 강 대위는 들어오자 마자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 * *

영상이 보이고 있었다.

과연 이곳이 지구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풍광이 이질적이었다.

일부만이 침식지화 된 것만 보던 이들에게는 충격이었다.

끝없는 대지가 어두운 빛깔이었다. 가끔 보랏빛 기화요초가 보이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일부 지역에서 이곳의 침식지대를 방어하는 형태의 방벽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이곳과는 반대의 의미로 지어진 방벽이다.

이곳은 침식지에서 마물들이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그곳은 마물이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처참하군요.”

“아직도 식량을 각국에서 공수하고는 있어서 버티고는 있다고 하더군.”

“그래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구 박사의 말에 강 대위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보게나. 내가 웃기는 이야기 해 줄까?”

“무슨?”

구 박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저곳의 배급 상황이 대침식 이전보다도 적다더군.”

“예?”

“많이 죽기도 했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이전보다 넉넉한 음식과 의료품 덕에 오히려 살기가 좋아졌다는 거야.”

“아…….”

강 대위는 이내 그의 이야기를 알아듣고 쓴웃음을 머금었다.

농담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세계의 최빈국들이 몰린 곳이 바로 아프리카 대륙이었다.

셀 수 없는 아이들이 굶어죽던 대지가 바로 아프리카였다.

그 덕에 세계에서 지원을 받는 지금이 더 살기 좋아졌다는 말은 웃을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그때 영상이 끝나고 미국쪽 연구원이 입을 열었다.

“이곳의 침식지에서는 침식균열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특이점입니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확인을 해 본 결과 고위 마물의 숫자 또한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다들 예상하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침식 균열이 발생한 곳은 모두 십여 개국입니다. 그곳들의 특징은…….”

설명을 듣던 구 박사가 중얼거렸다.

“침식지대가 극히 적게 유지되는 곳이라는 거지.”

“침식지대가 낮게 유지되고 있는 지역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깔끔하게 막아 내기는 했지만, 가장 위험도가 높았던 곳이 바로 이곳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지도에는 통일 한국의 지도가 확대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국가쪽에서는 침식균열이 1회씩 발생하였습니다. 그중 중앙아시아의…….”

지도가 다시 화면에 떴다.

아프리카 쪽은 보랏빛 천지였다. 그러나 설명이 이어지며 중앙아시아 일부 아랍권 그리고 동유럽과 심지어 서유럽 일부 국가에도 보랏빛이 확대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브리핑을 하는 연구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결국 침략이라는 의미에서 봤을 때 저들은 확실히 제약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일종의 테라포밍이 어느 정도 된 지역은 더 이상 침식지가 확대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제는 이게 가설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이곳에 모인 이들의 안색이 점점 굳어져 갔다.

“문제는 그 이외의 지역에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미 침식이 된 지역의 규모에 비례하여 남은 곳에 대한 공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통계 결과를 보았을 때…….”

구 박사가 얼굴을 비비며 마른 세수를 하였다.

이후 지루하고 고단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그 누구도 지루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어쩌면 생존이 달린 이야기니 당연한 것이다.

연구자의 설명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결국 이번에 일부 침식균열을 막지 못한 곳들이 영향을 끼치면서 다음의 침식균열의 강도는 지금보다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마치 점령지가 늘어 갈수록 침략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었다.

침식지가 광범위하게 늘어난 곳에서부터 마물들이 자리를 잡고 다른 국가들을 향해 공세를 펼쳐 올지 모른다는 가설은 이것으로 힘을 잃었다.

반면에 침식지가 늘어남으로써 남은 지역에 대한 공세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가설은 점점 확실해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침식균열은 이번에 두 차례에 걸쳐 벌어졌기에 표본이 적지만, 만약 침식 균열이 다시 발생했을 때…….”

브리핑을 이어 가는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진동음이 울려 왔다.

이 안에 모인 연구원들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음소거를 하고 들어온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진동음은 각 입구에 서 있던 기동대원들에게서 울려 온 것이다.

기동대원들은 재빨리 전화를 집어 들었다.

문자들이 찍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문이 열리며 뛰어 들어온 미군이 연단의 연구원에게 다가가 귀엣말을 했다.

연구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걸 본 구 박사 역시 굳어진 표정을 하고 기동대원을 바라보았다.

빠르게 다가온 기동대원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침식균열입니다.”

“이번엔 어디인가.”

“서울, 부산…….”

“두 곳인가?”

“인천입니다.”

세 곳이었다.

한 곳도 아닌 세 곳에서 징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 연구원이 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미국 두 곳에서 동시에 침식 균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등도 발생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국가들이 열거되었다.

“세 곳은 우리뿐이군요.”

강 대위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맞네. 그리고 저 가설이 맞다면 만약 이번에 우리가 막아 낸다 해도 침식이 된 곳들이 더는다면 다음에 올 적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는 거지.”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걸 못 막으면?”

구 박사의 시선이 미국 쪽으로 향했다.

“다음은 미국이 될지도.”

그들의 시선에 절박해진 표정을 짓고 있는 미국 연구원들의 표정이 여과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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