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대원그룹의 대응
대원그룹 오광석 회장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꽉쥔 주먹 밑에는 박살난 장식품의 조각이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피와 범벅이 되어 뒹굴고 있었다.
“어찌된 게야.”
“…….”
대원길드장 오기원은 대답도 안 한 채 그저 굳은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그러자 오 회장의 호통소리가 다시 터져나왔다.
“어찌된 것이냐 물었지 않느냐!”
일흔이 다 되가는 노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기원이 입을 열었다.
“모르겠습니다.”
시선을 맞춘 기원의 답변에 오 회장은 더욱 화가 치솟았는지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지금…… 그걸 변명이라 지껄이고 있는 게냐?”
오 회장의 질문에 기원이 여전히 그와 시선을 마주하면서 대답했다.
“변명을 할 이유 없습니다.”
여전히 굳은 얼굴을 한 채 오 회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대원이 바보가 되어 버린 상황인데 그따위 말이 나오느냐!”
오 회장의 호통이 다시금 이어졌다. 하지만 기원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있었다.
“모르는 것이니 모른다고 답해 드렸을 뿐입니다.”
“허?”
“연구를 공개 한다는 의견은 제가 한 것이 맞지만, 회장님께서 재가하신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놈이…….”
오 회장이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바르르 떨었다. 노기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이다.
“지금은 서로 탓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닌 듯합니다.”
침착하면서도 냉정을 지키며 뱉는 답변 같았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한 껏 굳어져 있는 얼굴 안쪽의 두 눈동자에는 살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때 부르르 떨던 오 회장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물을 벌컥 들이켰다.
“후우.”
몇 번의 심호흡이 이어졌다. 그러자 붉었던 얼굴이 점차 원래의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토록 화가 났으면 쉽게 가라앉지 않았을 것인데, 꽤나 빠르게 화를 가라앉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오 회장이 한결 낮아진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미 기사가 실시간으로 나고 있다. 그 앞뒤 꽉 막힌 놈의 말이 사실이더냐?”
오 회장의 질문에 기원이 여전히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조금은 차분해진 분위기였다.
“자세한 파악은 어렵지만, 있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안 믿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것만으로 안 된다. 확신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틈이 있어야 언론전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던진 질문이었다.
아버지인 오 회장의 질문에 기원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도 충격이 적지 않았다.
오 회장의 말마따나 바보가 되어 버렸다.
구렁텅이에 몰아넣기 위해 정보를 흘려 각국을 끌어 모았다.
그런데 이런 빌어먹을 반전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을 정면에서부터 부수는 반전 말이다.
‘분명 진짜다.’
방송자체는 녹화방송이었다.
일부 장면에서 유혈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을 가지고 조작 운운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풀 영상도 나왔다.
물론 별도 성인 인증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말이다.
그걸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쪽에서 사료 줘 가며 키운 기자들도 하나하나 따로 만나서 확인했다.
조작은 없었다.
“분위기도 안 좋고. 국회는 일단 막아놨다.”
오 회장의 말에 기원은 잠시 생각에서 벗어났다.
아까 화를 낼 때와 달리 지금은 한 오 년은 늙어 보였다.
십위권 밖의 그룹사에서 첫손에 꼽히는 자리에 왔다.
그 과정에서 생명과 연결된 마물과 연관된 사업이다 보니 빠르게 치고 올라온 건 사실이었다.
이후 다른 그룹들도 뒤늦게 참여를 했지만, 선점효과를 누린 대원그룹에 항상 뒤쳐졌다.
그렇기에 사소한 문제쯤은 면죄부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단히 걸렸다.
게다가 이쪽에서 대단한 기술이라고 한 것이 저쪽에서는 이미 개발이 끝나고 발전시켜 새로운 형태로 적용 중이었던 것이다.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아직 이야기 안 끝났다.”
“이곳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의미 없을 듯합니다.”
“너…….”
“제가 알아서 합니다.”
“이놈이!”
겨우 눌러놨던 화를 다시 키운 오 회장이 벌떡 일어서며 손가락질을 하다가 갑자기 뒷목을 잡았다.
“응?”
“어억!”
뒷목을 잡은 오 회장이 간절한 시선을 보내왔다. 순간 기원은 오 회장에게 다가가다가 멈칫했다.
그 찰나의 판단.
오 회장이 결국 뒤로 넘어갔다.
콰앙!
그러나 운이 나쁘게도 넘어가며 뒷머리를 장식용으로 가져다 놓은 수석위에 부딪혔다.
바닥을 뒹구는 오 회장을 멀거니 바라보던 기원의 입이 열렸다.
“이런 큰일 났군.”
기원은 그대로 문을 열어 밖에다 소리쳤다.
“회장님이 쓰러지셨다! 병원! 빨리!”
방금전까지의 느긋함과는 다르게 밖에 외치는 음성만큼은 다급해 보였다.
와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비서들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기원은 쓰러진 오 회장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릴 올렸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인데…… 그래도 이건 좀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의 주변으로 비서들이 스쳐들어갔다.
* * *
-대원그룹 오광석 회장 중태.
-뇌출혈에 이은 후두부 타박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어.
-대원그룹의 후계는?
-혼돈의 대원그룹. 앞으로의 향방은…….
포털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던 구은태 박사가 혀를 찼다.
“이 미친놈들 아직도 철지난 수법을 써?”
이쪽이 고빈을 희생시키면서 짜낸 일격은 오광석 회장이 쓰러짐으로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물론 끝난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좀 곤란했다.
“허, 이런 걸 믿고 기사들을 줄줄이 써내다니.”
“쓰러진 건 진짭니다.”
그때 서준모 경위가 모습을 드러내며 구 박사의 오류를 잡아주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럼 쓰러진 김에 물 타기라도 하는 겐가?”
“그게 아니라 쓰러진 이후 혼수 상태에 빠진 것도, 그리고 중태인 것도 모두 사실입니다.”
“이게 쑈가 아니란 말인가?”
구 박사의 얼굴 위로 놀람이 살짝 스쳐지나갔다.
“예. 그리고 뒤로 넘어가면서 장식용으로 놔두었던 수석에 후두부를 찧은 것도 맞습니다. 아니 뇌출혈도 위험한 것이지만, 후두부를 강타 당한 게 지금 중태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뇌출혈이 있다 해도 빠른 조치가 있다면 괜찮다.
그러나 이 경우는 뇌출혈에다가 후두부까지 부딪힌 운이 나쁜 사고였다.
“제가 직접 확인한 겁니다. 의사도 동석해서 움직였고…… 무엇보다 일주일이 고비라고 하더군요.”
“허, 이런. 난 그것도 모르고…….”
조금 전 흉봤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구 박사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서 경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물 타기도 맞습니다. 대원그룹에 우호적인 기자들이 빠르게 새끼쳐서 여기저기 비슷하게 도배중이니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금 그룹 회장이 쓰러졌는데 대체 누가…….”
구 박사는 말을 하다 말고 서 경위를 바라보았다.
“대원길드장 맞는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 오더가 나온 거까지 확인했으니까요.”
서 경위의 대답에 구 박사가 혀를 찼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가 쓰러졌는데…….”
“상속 문제가 첨예한 상황이면 아버지가 죽어도 공표 안하고, 냉장보관하며 시간 끄는 게 그들 세상입니다. 우리 세상 상식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요.”
서 경위의 말에 구 박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대원길드에서 연구하던 것을 제출했더라고요.”
“그런가?”
순간 구 박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원하던 것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빈이 찾아낸 실마리를 통해 이쪽도 빠르게 개념설계를 마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대원그룹의 제품이 들어온 것이다.
개념설계가 끝났다 해도 프로토 타입 생산까지는 넘어야 할 난관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서 경위가 가져온 소식은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좋아하기는 힘듭니다. 아마 그들은 몰랐다고 할 것이고, 그 내용은 묻힐 것이며, 이걸 빌미로 이쪽의 연구에 묻어가려 할지도 모르니까요.”
서 경위의 길고긴 설명에 구 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따지고 보면 이쪽에서 사기 쳐서 기사의 논조대로 사기업의 연구성과물을 강탈한 건 맞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대원길드가 위험한 곳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난감하군.”
그때 조금 늦게 들어선 최후배 경감이 한숨을 내쉬며 태블릿을 내밀었다.
“후우. 어서 회장이 깨어나는 걸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새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진 듯 합니다.”
“응?”
방금 전에 기사를 확인했던 구 박사가 그가 넘겨주는 태블릿을 넘겨받았다.
그 사이에 새로 작성된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물 연구와 제품에 선도자 역할을 해 온 대원그룹에 대한 압박이 결국 참사를 불러온 것이다.
한편, 이 일과 관련되어 강압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어 파장을 일으키고…….
기사를 읽어 내려간 구 박사가 놀라 질문을 던져왔다.
“아니 강압이라니? 벌써 검찰이 압수수색이라도 들어갔단 말인가?”
“아닙니다. 움직이기 전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법리적으로 확인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서 말입니다.”
최 경감의 설명에 구 박사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제대로 물 타는 작업이란 의미였다.
“후우.”
다시 태블릿을 내려다 본 구 박사가 세상 꺼지는 듯 한 한숨을 쏟아 내었다.
“너무 걱정 마시지요? 일단 하나씩 풀어 가면…….”
구 박사를 위로하듯 말을 이어 가던 서 경위의 앞으로 태블릿이 내밀어졌다.
“이 짧은 시간에 일이 이리 되었구먼.”
구 박사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예? 그게 뭔…….”
그리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태블릿을 받아든 서 경위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성토하는 기사들이 올라온 게 방금이었는데 지금은 아예 한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아우 씨.”
-〈속보〉 대원그룹 오광석 회장 별세.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구 박사의 얼굴위로 착잡함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 * *
세상은 오광석 회장의 죽음으로 인해 시끌벅쩍했다.
하지만 고빈은 그럴 시간도 없었다. 아니 그쪽은 딱히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오로지 실전을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카콰콱!
“크으윽!”
빈이 뒤로 나뒹굴었다.
한 십여 미터는 마치 자동차에서 빠져 굴러가는 타이어마냥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다가 멈추면서 대자로 뻗은 빈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어헛! 허이고! 심장 터지겠네.”
말과는 달리 빈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방호복은 걸레짝이나 다름이 없이 변해 있었다.
“이번은 오래 버텼네?”
한쪽에서 천유화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빈의 앞에는 환두대도를 뽑아 들고 있는 가우리의 병사가 서 있었다.
“후아.”
긴 숨을 몰아쉰 빈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거참.”
그 모습을 본 유화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처음 보았을 때와 달리 지금 빈의 모습은 꽤나 진지해져 있었다. 다시 달려드는 빈을 보며 유화가 중얼거렸다.
“한 번 강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몸을 가만 두기 힘든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