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증명의 시간
최 경감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서 경위가 나섰다.
“이번 일 아시죠?”
“네.”
“그 대응 문제 때문에…….”
서 경위가 줄줄 이야기를 하려 하자 최 경감이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형님!”
“야! 판도라가 남이냐? 막말로 같은 걸 공유하고 있잖아!”
“그…… 끙.”
순간 구 박사와 강 대위가 눈을 반짝였지만, 서 경위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 일의 내용과 이쪽에서 생각한 대응방법.
그 이야기를 듣던 제이가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부루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부루가 경계하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그거 아시나?”
“뭘 말이네?”
“그 대원길드장 새끼 우리 세인이에게 계속 찝쩍거렸던 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루의 손에 대부가 생성되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안내하라우.”
“응? 오라버니 어디?”
“내래 그 아새끼 대가릴 쪼개 뭐가 들어찬 거인지 좀 봐야갔어.”
부루의 말이 끝나자마자 제이가 히죽 웃었다.
“오라버니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도 다 고생할걸? 그걸 원하는 거야?”
“…….”
“오라버니 머리 잘 쓰잖아.”
순간 제이 주변의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냐는 표정들이다. 하지만 부루는 대부를 내려놓으며 답했다.
“길티.”
심지어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건 부루의 표정 어디에도 가식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진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는 그런 표정일 뿐이었다.
“그럼, 쉽게 머리통 쪼개는 것보다 괴롭게 만들어 주는 게 낫지. 안 그래?”
제이의 말에 부루가 입을 닫았다. 그 모습을 다른 이들이 바라보며 조마조마 했다.
‘저걸 말이라고?’
서 경위는 제이가 하는 걸 모며 한숨을 내쉬었다.
설득의 기본이 하나도 안 되어 있지 않은가.
그때 부루가 입을 열었다.
“내래 너무 너그럽게만 생각했는가 보구만 기래.”
“그러니까. 오라버니는 너무 착한 거 같아.”
“후우. 내래 독하게 한다고 하디만 타고난 심성이 이런 거이 어쩔 수가 없디.”
“크흑!”
순간 빈이 눈에서 왈칵 눈물을 쏟더니 뒤돌아 달려가며 울음을 터트렸다.
답답함과 억울함이 동시에 북 받힌 것이다.
“어허어어엉!”
그런 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행들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라버니. 이번은 좀 마음 독하게 먹고 제대로 해 보자고.”
“으음.”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생각하던 부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 오카면 되갔네?”
“그냥 농락하는 거지. 오라버니도 알지만 거짓말인 걸 아는데 증명 못 할 때 누가 뭐라면 어떤 기분이야?”
“뭐라는 아새끼 꼴통을 부수면 되디.”
순간 제이가 발끈하다가 화를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부수기 전에 기분.”
“더럽디.”
“진천 오래비가 골통 못 부수게 하면?”
순간 부루의 얼굴이 부르르 떨었다.
“그…… 환장하갔디.”
“맞아! 그 상황을 만들어 주자고. 골통은 언제라도 부술 수 있는 거잖아. 그치? 오라버니도 그리 생각하지?”
“기, 길티! 내래 당연히 그리 생각하고 있었디않네!”
“맞아! 우리 오라버니는 그럴 줄 알았어.”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던 대화를 들은 서 경장이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에이씨.”
여태 설득한 말을 자기도 생각 하고 있었다고, 하는 부루의 답변에 울화통이 터진 것이다.
“낙담하지 맙시다. 알고 대답하는 거 같지도 않은데 뭘.”
“그냥, 조금 전까지 설득하던 내가 바보 같단 생각이 들어서.”
서 경위의 어깨를 최 경감이 토닥여 주었다.
* * *
“길드장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응?”
오기원은 비서가 가지고 온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
그 안에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지금 라이브로 나오는 중입니다.”
“구은태 박사?”
기원은 화면에 잡힌 구 박사를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기자회견을 잡아?”
기자들의 셔터소리가 화면에서 울려나오고 있었다.
긴급 기자회견이라는 자막이 아래로 나가고 있었다.
특수 마물 대항 연구동 소장 구은태라는 자막이 뜨고 난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특마대 연구소장 구은태 박삽니다.
이번 논란에 대하여 해명을 해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구 박사의 인사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청산일보의 구수한 기잡니다. 이번에 사기업의 연구결과를 국가가 강압을 통해 입수하려던 정황이 있다던데 이건 특마대의 독단적인 행동인 것입니까?
펀 미디어의 유중오 기잡니다.
이 자리에 직접 나오셨다는 것은 특마대에서 비위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입니까?]
그 외에 쏟아진 질문은 다 대동소이했다.
그러는 가운데 구 박사가 인상을 팍 구기며 외쳤다.
[이 양반들아! 내가 대답하러 나왔다잖아!
질문을 했으면 들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그렇게 질문을 쏟아 내면 내가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내 나이가 몇인데!]
순간 기자회견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걸 보던 기원이 혀를 찼다.
“쯧, 저 양반을 몰라서 저러는 건가?”
기자들을 향해 혀를 찬 거다.
대원그룹이 많은 마물 관련 상품을 개발해 냈다면, 구 박사는 마물관련 연구를 통해 대침식 시기를 벗어나는 데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 영향력이 워낙 강하고 대쪽 같아서 정부에서도 존중하는 이였다.
물론 그 성질머리 때문에 안정을 찾은 이후에는 한직에 본의 아니게 나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위기에는 그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를 탐내는 나라는 줄을 서고도 남았으니, 그러니 지금 그에게 무어라 할 수 있는 권력은 없었다.
그런데 기자들이 닦달을 해대었으니 그의 억눌렸던 성질이 튀어 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다.
그렇게 한참을 대거리한 구 박사에게 몇이 달려가 진정을 시켰다.
[먼저 이번 일에 대한 개요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대원길드에서 선발대로 입소한 이들에 관한 오류를 정정하겠습니다.
현재 그들은 억류상황이 아니며 긴급구속 된 상황입니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미디어 아침의 이소현 기잡니다. 그 부분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설명을 하던 중에 자르며 들어온 질문이었지만, 구 박사는 화를 내는 대신 퉁명스럽게 대꾸를 했다.
[뭐, 그럼 먼저 영상을 보시고 이야기를 하지요.]
영상이라는 말에 기원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결국 영상공개인가?”
그 정도 시설에 CCTV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기원은 영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구도원?”
신컨길드장의 난입 장면이었다.
“음.”
기존에 그가 알던 신컨길드장이 아니었다. 그때 강림자들이 나서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전투들.
기원은 침묵을 지킨 채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의 눈이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후배 경감의 손목을 향해 강림자가 무기를 휘두른 순간 고빈이 난입했다.
“BJ 비니?”
최근 핫한 영상들의 주인공이었다. 기원은 더욱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진짜군.”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으음.”
연신 감탄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
그가 들고 있던 탭의 영상에서 강림자가 먼지가 되어 휘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서 역시도 놀란 눈치였다.
마물을 상대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나 마찬가지였다.
강림자를 소환자가 꺾은 것이다.
기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왜 그렇게 정보를 얻기 힘들었나 했더니…….”
그럴 만했다.
“팀장이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일만 키우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저런 능력을 습득할 수 있었을 것인데…….”
비서의 말에 기원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렇긴 한데, 미국 측의 행동을 보면 저곳에서 훈련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군. 이번에 방문했던 미국 쪽 협상자가 꽤 우리나라 눈치를 보던 걸 보면 말이야.”
기원의 말에 비서는 입을 다물었다.
틀린 추측이 아니었다.
“맛만 보여 준 다음에 크게 엮기 위해 제의를 해 왔을 수도 있어.”
기원의 말에 비서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쨌든 이게 다라면 뭐…….”
기원이 다시 자리에 앉아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특마대에서 공개한 영상은 음성이 소거된 것이라 제대로 된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분명 놀라운 장면이지만, 강림자는 기본적으로 소환자나 일반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지 않습니까.]
보기에 따라 강림자가 칼을 휘두른 장면이 해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위협만 하려 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기자의 질문에 구 박사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문제입니다. 이 영상을 미리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는 증거 자료가 있음에도 이런 의문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 이 영상을 보여드린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원길드가 말하는 연구물은 이미 특마대에서도 예전에 획득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구 박사의 말에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자들뿐이 아니었다.
“뭐?”
기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실 따지면 엄청난 메커니즘은 아니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상대방을 인간형 마물로 착각하게끔 하는 신호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보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다면 왜 대원길드의 팀원들을 구속하고 있는 것입니까? 확인되지 않는 사실로 진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증명을 하실 수 있으신지요?]
기자의 질문에 구 박사가 입가를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연구는 결과로 말하는 겁니다. 이건 기본이오. 쯧.]
마치 훈계하듯 말하고 혀를 차는 모습에 기자들이 불쾌함을 보이면서도 연신 질문을 이어 갔다.
마치 이번에는 특마대 측이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는 말부터, 그 연구 결과가 대원길드의 팀원으로부터 정보를 빼내어 급조한 것 일지도 모르는 의혹이 있을 수 있다는 말까지.
설명에 믿지 않으며 질문만 이어가고 있었다.
[크흠. 증명 가능합니다.]
다시 이어진 구 박사의 대답에 기자들은 다시 웅성거렸다. 그때 구 박사가 그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증명해 드릴 터이니 따라들 오시지요.]
그렇게 말을 남기고 구 박사가 한쪽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기자들이 따라간 곳은 연구소 내의 연병장이었다.
기자들은 연병장으로 이동하면서 건물 이곳 저곳이 무너진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인지 일부 기자들은 그 흔적들을 사진으로 혹은 캠코더로 남기고 있었다.
그때 연병장에 미리 도착해 있는 인물을 보고 기자들이 빠르게 터를 눌러갔다.
고빈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약간 어색한 웃음을 입가에 매단 채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연병장 한쪽에 멈추어 선 구 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영상의 증명과 동시에 왜 당시 상황이 문제가 되었는지 지금부터 검증의 시간을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