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역시 걸리지만 않으면 기술?
첫 기사가 터지고 나서 단 이틀.
그 짧은 기간이지만, 무수히 많은 연관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침식을 성공적으로 이겨 낸 덕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정부에 반해 그동안 지리멸렬하던 야당 쪽이 힘을 얻은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야당이 힘을 잃은 기간만큼 인터넷 언론의 힘도 그만큼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대원길드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원길드의 행태에 이미 이전부터 이야기가 오가기는 했다.
실제로 대원길드에 대해서는 선호도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다.
대원길드가 이득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조금 달랐다.
바로 사기업의 사유재산을 침탈하려 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대원그룹이 대침식 이후 마물과 관련해서 내놓은 여러 가지 제품들이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덕에 대원길드도 그럭저럭 욕을 덜 먹는 것이기도 했다.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사건이 벌어진 곳에 관한 관심이 쏠렸다. 거기에 여러 가지 의혹들이 검증 되지 않은 채 쏟아져 나온 것이다.
심지어 사고를 치고 잡힌 대원길드의 팀원들이, 마치 죄 없이 억류되고 있다는 낭설도 번져나갔다.
강문호 대위와 구은태 박사가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자 한쪽에 있던 서준모 경위가 커피를 양손에 들고 다가갔다.
“드시죠?”
“고맙네.”
“감사합니다.”
구 박사와 강 대위가 서 경위가 넘겨준 커피를 받아들었다.
물론 서 경위가 커피 때문에 기다린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뭐랍니까?”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는 둥, 뭐 검찰 수사가 있어야 한다는 둥 뭐 그렇네.”
“이 연구소는 특수군사시설에 준하는 영역인데요?”
법을 따져도 군법을 따져야 하는 게 맞다.
물론 군인도 잘못하면 검찰 수사를 받을 수는 있지만, 특수군사 시설은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아직 일차 소집 훈련병들의 훈련도 끝나지 않은 시기인데…….”
일차 소집된 훈련병들이 졸업을 하고 나가면 이곳의 중요도가 솟구칠 것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죽는다고 앓고 탈영을 시도하던 소환자들이었지만, 실전을 겪고 또 마물을 직접 처치를 하고 나서부터는 눈빛이 달라진 것이다.
강림자에 의존해서 위험지역을 넘나드는 소환자들이다.
특히 인지도가 바닥에 가까울수록 강림자를 다루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다.
무언가 꽉 막힌 벽창호와 대화하는 느낌.
딱 그것과 비교할 만했다.
그러니 소통을 하려면 위험지역에 좀 더 가까이 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보통 하위급 강림자를 운용하는 소환자들은 안전을 위해 침식지역 이외의 곳에서 균열 상황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였다.
그나마 위험도가 덜하니 말이다.
심지어 이번 침식균열 사태 같은 경우는 더 심했다.
길드 소속이 아닌 일반 소환자, 혹은 소규모 팀 단위 소환자들은 아예 진입을 꿈꾸지도 못했다.
당연한 것이 길드 소속 소환자들도 진입을 안 하는데, 그들이라고 무슨 배짱으로 그런 곳에 몸을 들이밀겠는가.
그런데 직접 몸으로 뛸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최소한 폐급이라 불리는 마물사냥 정도는 더욱 활성화 될 수 있었다.
아니 그 한두 단계까지는 팀단위 소환자들이 자신 있게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일부 소환자들은 고빈이라는 이미 검증된 결과물을 보고 열광하고 있었다.
특히 그의 강림자가 인지도 0.00001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난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일단 인지도는 둘째 치고 빈 자체가 보는 이로 하여금 만만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이 세상으로 풀리면 좀 더 여론이 이곳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할 것이다.
물론 지금이면 해명을 해도 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치 외압에 의한 거짓 증언 비슷하게 몰릴 가능성이 크다.
밖에서 이곳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과 안에서 말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므로.
“영상을 까발려도 일단 여론을 뒤집기는 좀 약하고…….”
서 경위가 한숨을 내쉴 때 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또 시작이네.”
서 경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빈이 그들을 스쳐 내달렸다. 그리고 그 뒤를 바짝 따라붙는…….
훙훙훙훙훙!
“아 쫌! 건물 안에서 도끼는 던지지 마시라니까요!”
콰아앙!
서 경위의 울상 섞인 외침에도 날아간 대부는 빈을 스치고 지나가서 벽면을 박살내 버렸다.
와그르르르.
철근 콘크리트로 된 벽이 분명한데 마치 부실공사라도 한 것마냥 무너져 내렸다.
“빈! 안 죽을 거 같으면 안에선 그냥 몸으로 때우라고 했잖아!”
“얼마나 아픈데요!”
서 경위의 외침에 멀어져 가는 빈이 나름의 항변을 외치고 갔다. 그리고 그제야 나타나 달리던 부루가 말했다.
“내래 다음부턴 조심하갔어.”
“그 말 어제도 하셨습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부루에게 서 경위가 한숨 섞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때 구 박사와 강 대위가 한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바로 무너진 곳이다.
그제야 그쪽을 바라본 서 경위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
무너져 내린 곳을 바라본 서 경위가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다친 분?”
서 경위가 무너진 벽면 뒤에서 오줌을 지리고 있는 이들에게 걱정을 담아 질문을 던졌다.
“씨, 씨파…….”
그들은 바로 이곳에 구금되어 있던 대원길드 팀원들이었다.
그리고 오줌을 지리고 있는 건 바로 그들의 팀장인 박광석이었다.
그때 그쪽을 바라보고 있던 강 대위가 홀린 듯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거 우리가 필요 없는 거라면 어떨까요?”
강 대위의 말에 그쪽을 함께 바라보고 있던 구 박사가 답했다.
“이미 우리는 위험함을 알아챘다든지.”
“그렇죠. 어차피 그쪽도 보여 주지 않는 거 우리도 굳이 메커니즘을 공개할 필요는 없지요. 이쪽이 좀 더 우수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강 대위의 말에 구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챈 서 경위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저, 아시겠지만 그거 사깁니다.”
“누가 그러더구먼. 안 걸리면 기술이라고.”
구 박사의 말에 서 경위가 뒷머리를 긁으며 이들이 뭔가 잊은 듯한 사실을 말해 주었다.
“잊으신 것 같은데 제가 경찰입니다.”
“알고 있네. 그 경찰이 멀쩡한 사병 짤짤 흔들어서 불법으로 CCTV 감청한 것도.”
구 박사가 고개를 돌리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저기 강 대위님?”
강 대위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듯.
“하아.”
서 경위가 한숨을 팍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구 박사를 바라보자 그가 헤벌쭉 웃고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사기꾼 닮은 미소였다.
“뭐, 걸리지만 않으면야…….”
“내 이래서 자넬 좋아한다네.”
구 박사의 말에 서 경위는 허탈한 웃음을 머금었다.
“일단 그러려면 작전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갑자기 적극적이 된 서 경위였다.
일단 하기로 했다면 최대한 걸리지 않는 쪽이 좋다는 건 그동안 그가 쳐 왔던 무수한 사고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 * *
“아, 이 재수 없는 인간.”
태블릿을 뒤져 보던 제이가 툴툴거렸다.
“그러게. 징글 맞는 거 같아. 세인 언니 찝찝하지 않아?”
레이나의 질문에 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들이 보고 있는 이는 바로 대원길드장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녀들과 그는 구면이었다.
일단 대침식 이전의 오래된 일이기는 했다.
재벌가의 자손이 연예인에게 찝쩍거렸다는 흔하디흔한 막장드라마 플롯이다.
그 대상이 바로 여기 있는 세인이었고 말이다.
물론 그 찝쩍임은 대침식을 기준으로 사라졌다.
세상이 멸망하냐 마냐의 혼란이 찾아왔던 시기니까.
물론 대침식 이후에 다시 안정이 찾아왔을 때 또다시 찝쩍거리기는 했다.
이전에는 노골적이었다면, 이번에는 방송에 대놓고 추파를 던졌다. 물론 포장은 했다.
이상형이 그녀라는 둥…….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들이 이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그도 부담이 생겼는지 추파를 멈추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 그녀도 아는 연예계 후배 하나가 그와 만나다가 상처를 크게 입고 이 바닥을 떠난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 이후로 그녀들은 그를 볼 때마다 벌레 보듯 했다.
“서 경장 아저씨 말로는 이 찝쩍이가 여기 흔들고 있다며? 가지가지 하네. 팀장이란 놈은 이 경위 찝쩍거리고…….”
제이의 말에 레이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대요.”
마침 그때 지방 침식지 위문공연을 다녀왔던 차라 그 사건을 뒤늦게 접했던 것이다.
제이가 이를 빠드득 갈며 중얼거렸다.
“우리 진천 오라버니 있었으면 이 두 놈 기냥 우중만이랑 보좌관처럼 똥꼬충 만들어서 영상 찍은 다음에 쫙 뿌릴 건데.”
제이의 말에 레이니가 헤쓱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그만…… 갑자기 그때 영상이 떠올라. 올라올 거 같아.”
그런 레이니를 보며 제이가 히죽 웃음을 머금었다.
“흐흐흐흐, 하긴 그때 그 영상 보고 충격 받은 애들이 많아서 한동안 BL소설 매출이 급감했다더라. 자꾸 걔들이 연상돼서.”
“우웁! 더, 더러워!”
“깔깔깔깔!”
레이니의 헛구역질을 보며 즐거워하는 제이를 보며 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제이가 내려놓은 태블릿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쏟아지는 뉴스가 자꾸만 걸리고 있었다.
* * *
“내래 그 광대짓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뭐이간?”
을지부루의 대답에 서준모 경장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냥 평소대로 하시면 된다니까요?”
열심히 부루를 설득하는 서 경위에게 고빈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저, 서 경위 아저씨. 제 의사는 안 물어보나요?”
“응. 고마워.”
“저 아직 한다고 말 안 했는데요.”
“그래. 니 맘 안다. 장군님 그러니까 이게 왜 이래야 하냐면요.”
“……내 말은 들려요?”
빈은 서 경위를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뻔뻔하기로는 빈도 만만치 않은데, 서 경위는 한술 더 떠서 완전 능구렁이였다.
그런 서 경위의 설득에도 부루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대상이 니가 되는 수가 있디.”
“에이 그럼 저 죽죠. 일반인이잖습니까.”
“반만 죽게 만들어 줄 수 있디.”
부루는 그 말대로 충분히 강약을 조절할 수 있다. 달리 고수가 아니다.
하지만 서 경위는 고개를 저으며 설득을 이었다.
“그게 임팩트가 없어요. 소환자를 지켜야 하는 강림자가 소환자를 까부숴 줘야 사람들이 '헉!'하니 기겁한다니까요?”
“저 서 경위 아저씨 까부숴질지도 모르는 사람 말도 좀 들어요!”
빈이 울상을 지으며 항변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후배 경감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게 설득이 될까요?”
“끄응. 이거 쉽지 않구먼.”
구은태 박사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런데 그때 제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가왔다.
“냠. 뭐하는 거래요?”
순간 최 경감이 조심스럽게 대답해나갔다.
“죄송합니다. 이게 좀 비밀인…….”
“부루 오래비에게 묻죠 뭐. 대신, 들은 거 떠들고 다녀야지.”
그렇게 말을 뱉으며 최 경감과 눈을 마주쳤다.
초승달을 엎어 놓은 것 같은 눈동자. 아주 재미있어질 것 같지 않냐 묻는 표정이었다.
“끙.”
최 경감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