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82화 (82/305)

제82화 엎어 쓰다.

“다른 사람이 말한다!”

그때 화면에 있던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

“에이씨.”

뒤통수가 보였다.

뭔가 훔쳐보기는 하는데 뭔 말을 하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다들 답답한 마음으로 소리 없는 화면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때 다시 또 다른 이가 입을 여는 것이 보였다.

“우찌짜우…… 니더…….”

“…….”

어설피 따라 말하던 병사가 서 경위를 보며 히죽 웃었다.

“그래. 중국어도 못하지?”

“네.”

“하아.”

딱 봐도 중국어 같았다.

그렇게 침묵하며 지켜보던 중 최후배 경감이 고개를 까딱 하더니 말했다.

“저거 대원길드장 옆에.”

“응?”

“통역 아닙니까?”

순간 모두 얼어붙었다.

지금까지 누군가가 말을 하던 장면을 주목만 했을 뿐이다. 서 경감이 재빨리 말했다.

“야! 확대! 확대!”

통역이 앉은 자리가 멀었지만, 충분히 확대할 수 있었다.

화질도 다행히 떨어지지 않았고 말이다.

“일본에서는 대원길드 진출시에 무관세 입장을 기본적으로…… 그뿐 아니라 대원그룹의 수출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관세를…….”

병사가 읊어 주는 내용을 듣던 서 경위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저거 아무리 봐도 기술 파는 거 아니냐?”

“그런 거 같네요.”

“미친! 이 와중에 저 짓들을 한단 말이야!”

서 경위가 버럭 소릴 내질렀다.

최 경감 역시 한숨을 내뱉었다.

“아 진짜, 뭐하는 짓거리들이야…….”

화가 났다. 그런데 문제는 저 자리에 우리나라 정부 측 인사도 앉아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 진짜 그리운 사람 하나가 떠오른다.”

“그러지 마십쇼. 피바다 됩니다.”

순간 두 사람이 떠오른 이는 바로 고진천이었다. 응징의 화신이자 무법의 상징.

왠지 그라면 통쾌한 한 방을 날려 줄 것 같은 아쉬움이 두 사람 사이에서 감돌았다.

그때 뒤에서 강문호 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하시는…….”

말을 하던 강 대위가 입을 다물었다.

강 대위를 보고 잠시 긴장했던 병사들은 그가 계속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영상을 보며 말을 해 나갔다.

“이거 어딥니까.”

한 귀로는 병사가 영상을 보고 읊는 이야기를 들으며 질문을 했다.

강 대위의 질문에 서 경위가 대답했다.

“대원그룹 안에 회의실 같은데요. 우리 풀어 준 다음에 보니까 각국에서 몰려왔더군요.”

서 경장의 말에 강 대위가 인상을 굳혔다.

그때 강 대위를 따라 들어왔던 고빈이 물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찾았어요? 아니 언제 몰카를 설치한 거에요?”

“CCTV다. 몰카가 아니라.”

“엥? 해킹한 거예요?”

빈이 놀란 눈을 하며 묻자 서 경위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비슷한 건데, 저거 중국산이란다.”

“아…….”

순간 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뉴스에서 떠들던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중국산 감시카메라의 보안상 이슈.

멍하니 화면을 보던 빈이 중얼거렸다.

“왠지 바보같다.”

영상을 바라보던 이들이 빈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뭔가가 떠오른 듯 서 경위가 전화를 걸었다.

* * *

“응?”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물고 대원그룹 사옥 방향을 바라만 보고 있던 김창진이 전화를 받았다.

[창진아아아!]

“무슨 일입니까?”

서준모 경위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창진이 지친 음성을 내뱉었다.

[애들 지금 서로 기술 팔라고 경매하고 있드라?]

“…….”

서 경위의 말에 잠시 무슨 말인가 싶었던 창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어디십니까?”

[어디긴. 연구단지지.]

“예? 그런데 그건…….”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기는 했다. 그러나 문제는 창진은 그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으니 예상을 할 수 있는 거다.

[아주 그냥, 면세는 기본이고 관세 철폐에 무슨 FTA하는 거 같다야.]

이어지는 서 경위의 말에 창진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거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그거? 지금 보고 있는데?]

“미친 거 아닙니까? 거기가 어디라고 들어갑니까! 선배가 무슨 요원이라도 됩니까!”

창진이 얼굴이 창백해져 가지고는 버럭 소릴 내질렀다.

[야이씨! 귀청 떨어질 뻔했잖아! 내가 어딜 들어가! 여기 연구단지라고!]

“아…….”

분명 아직 연구단지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건 무언가 알고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내용이었다.

[재미난 거 보여 줄게. 영상통화로 돌려봐.]

창진이 서둘러 영상통화로 전환하자 화면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가운데에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쪽에 대원길드장이 있었고 그 맞은편에 방금 들어간 이들이 주루룩 앉아 있었다.

“……이거.”

[마! 담배 좀 작작 피워!]

“미치겠네.”

창진이 한숨을 내뱉더니 주변을 살피다가 고개를 멈추었다.

[어쭈 꼬라보냐?]

서 경위의 말에 창진이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차에 기대에 서서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똥 씹은 표정을 하는 자신의 영상이 보여지고 있었다.

드르륵!

“빨리!”

“예?”

“여기 좀 연결해 봐!”

담배 피러 나갔던 창진이 서둘러 들어오는 모습에 감청요원이 얼결에 그가 주는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이거?”

순간 감청 요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웹상에 주소를 입력했다.

그리고 엔터를 치자 영상이 나왔다.

“이거 CCTV 아닙니까?”

“맞아. 저거 백도어 뚫린 거라더라.”

“헐? 여기 대원그룹이잖아요!”

딱 봐도 회의실.

그리고 지금 들어간 인원들이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무슨 중국산도 아니고…….”

“맞단다.”

“네?”

“중국산.”

“아…….”

허탈한 표정을 지은 요원이 화면을 응시했다.

“이거 읊을 수 있지?”

도감청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었다.

소리가 없어도 말하는 입술 모양만으로도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알 수 있는 능력자들이었다.

“아씨, 이거 어디 말이야.”

순간 요원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때 창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통역만 보면 된단다.”

“아하!”

요원은 서둘러 화면을 확대했다.

* * *

구은태 박사를 중심으로 자리한 일행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이거 우리가 하는 거 괜찮은 겁니까?”

최후배 경감의 불안한 목소리에 김창진이 대답했다.

“여기 자체는 문제없을 겁니다. 사실 우리 쪽 사람이 참여한 것도 대원그룹 눈치가 반일 겁니다. 이게 법적으로 연구 중인 상황이라고 하면 덮어질 수 있는 거니까요.”

창진의 말에 고빈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 되요? 후배 아저씨 팔모가지 잘리실 뻔했다면서요?”

“야, 팔모가지가 뭐냐, 팔모가지가.”

빈의 표현에 최 경감이 툴툴거렸다. 하지만 창진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짓 한 놈은 잡혀 있잖아. 칼로 사람 찌르면 칼을 가두겠나? 칼 쓴 놈을 가두지.”

“아이씨…….”

창진의 표현에 빈은 할 말을 잃었다. 비유대로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젠장. 그래도 좀 이상하잖아요.”

빈이 버럭 소릴 내지르자, 서준모 경위가 그를 토닥였다.

“야, 참어. 틀린 말 아니야. 막말로 연구중이라는데.”

“그거 증명할 수 있다니까요?”

“응?”

빈의 말에 서 경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구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빈이의 말대로 이게 목적이 따로 있다는 걸 증명할 수도 있네. 이쪽이 연구중이니까.”

“그렇습니까?”

구 박사의 말에 서 경위가 반색했다. 그러나 구 박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 해도 저쪽 연구 자료를 확인해야 그걸 증명하는데…… 방식이 다르다고 하면 빠져나갈 구멍은 많으니.”

“아…… 빌어먹을 그래서 다 그렇게 재빨리 챙겨 갔구나.”

물론 이쪽이 알아차렸다는 것을 알리기 전에 대원그룹이 국가를 상대로 압박을 가했기에 그들이 수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대원그룹쯤 되면 윗선과 닿는 라인도 있을 것이다.

“그냥 압수수색인가 그거 하면 안 돼요?”

“안 될걸?”

“왜…….”

그때 이정미 경위가 스마트폰을 일행들에게 내비쳤다.

“에이씨.”

기사가 뜬 것이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기업의 연구도 갈취해도 된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와 연관된 기사가 실시간으로 갱신되며 올라오고 있었다.

“와…….”

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빠르네.”

그 기사를 찾아낸 이 경위도 혀를 찼다.

“이거 내용들이 우리가 국익 어쩌고 하면서 연구 결과를 강탈하려 한 것처럼 나와 있네요?”

“아니 처음부터 이건…….”

빈이 벌건 얼굴로 외쳤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뉴스들을 보던 강 대위가 입을 열었다.

“물론 이쪽도 영상을 풀겠지만, 아마도…….”

“그래. 함정 판 거라는 둥, 일반인이 상식적으로 소환자와 댓거리를 하겠냐는 둥 할걸.”

이 경위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 정도일까요?”

빈의 질문에 이 경위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상상 그이상이지. 특히 요즘은 팩트가 나와도 그걸 누가 믿겠니. 진짜 가짜 구분도 힘든데.”

고개를 설설 저은 그녀가 전화를 들었다.

“아빠. 응. 그거 구라야. 그때 말한 남자 있잖아. 지분거리던. 응. 그놈을 여기서 봤거든.”

그녀의 통화를 듣던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아. 그래서 후배 오빠가 나 도와주다가…… 그 후배 말고 최후배 경감. 맞아. 눈 삔 사람 아니라니까!”

말이 길어지면서 설명을 하다가도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이 경위를 보며 다들 고개를 비틀었다.

왜 갑자기 여기서 저런 통화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딱 한 사람.

서 경위를 빼고 말이다.

“응. 일단 나중에 이쪽에 자료 보내 줄게.”

잠시 후 전화를 끊자.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빠예요.”

“그런데 갑자기 왜 지금…….”

최 경감이 묻자 그 대답은 서 경위가 했다.

“정미네 아빠가 동방미디어 사장이야.”

“네?”

“에엥?”

“뭐라고요!”

순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이 경위는 그들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인지 서 경위가 몇 마디 덧붙였다.

“그럼 대원길드 팀장씩이나 되는 놈이 왜 지분거렸겠냐.”

“선배!”

동방미디어.

삼대일간지 같은 절대 언론권력은 아니지만, 나름 탄탄한 구독층을 가지고 상승 중인 언론사다.

다른 삼대일간지가 항상 구설수에 오르는 것과 달리 동방일보는 박쥐소릴 들을 정도로 모두 까기 인형으로 불리웠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상대가 어디가 되었든 틀린 게 있으면 개처럼 물어뜯기 때문이었다.

다만 전투적이기는 하지만, 없는 이야기를 지어 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른 신문은 재미로 보고 사실 관계는 동방에서 확인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누나 금수저구나?”

빈이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 경감 역시 얼빠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그녀가 그를 향해 웃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사주 딸이라니까 다시 보이나?”

“응.”

최 경감의 말에 이 경위가 눈을 반짝였다.

“느그 아버지가 참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드네.”

“야!”

결국 이 경위는 최 경감의 멱살을 잡아 흔드는 하극상을 벌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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