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어디선가 본 것 같아
그때 빈이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좀 느낌이 희한하지 않았어요?”
“뭔 소리네?”
“그 강림자들요.”
빈의 말에 부루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어서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뭔가 생각을 해 보는 모양인데 별다른 게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머이가 희안하다 그러는 거이간?”
부루는 영 못알아 먹겠다는 듯 빈을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또렷하던데요? 생기 있어 보여요.”
“우리처럼?”
그때 천유화가 끼어들며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좀 달라요. 어디서 느낀 건데…….”
빈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쪽에 있던 다른 강림자를 바라보았다.
전신길드의 강림자 중 하나였다.
“응?”
그때 빈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마치 뭔가 떠올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빈의 반응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 생각난 거리도 있는 거이간?”
부루의 질문에 빈이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아! 마물!”
“마물? 마물이 여기서 왜 나오는 거이네?”
빈이 그대로 몸을 돌려 달려갔다.
“…….”
부루는 달려가는 빈의 뒷모습을 보며 인상을 팍 구기고 있었다.
자신의 질문은 보기 좋게 무시당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부루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방금 부루가 외면당하는 장면을 보던 유화와 가우리의 병사들이 입을 막고 있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웃음이 나오디?”
부루가 그들을 올려다보며 스산한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 그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생소한 장면이라…….”
그렇게 말을 하곤 유화가 다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다시금 비어져 나오려 하는 웃음을 억지로 막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부루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람은 익숙한 거이 더 편한 법 아니갔네?”
부루의 질문에 유화가 입을 막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막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미소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걸 본 부루가 도끼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이쯤 되면 처 맞아야 익숙하디 않갔어?”
“쿨룩!”
“갑자기 오한이…….”
그들은 다가오는 부루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무기를 빼들었다.
일단 몸부림은 쳐 봐야 하니까.
콰앙!
“어헉!”
문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에 구은태 박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헐떡였다.
“박사님!”
“너…….”
들어온 이가 고빈임을 확인한 구 박사가 버럭 소릴 내질렀다.
“야 이놈아!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 그러다 문 부서……졌구나.”
구 박사의 말에 빈이 고개를 돌렸다.
경첩 하나가 휴지조각처럼 휜 것이 보였다. 문짝이 떨어져 나가기 일보직전이었다.
빈은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아, 이건 죄송함다.”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구만. 그래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이상한 게 있어요!”
빈의 말에 구 박사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자네가 이상하네. 정확히는 정신세계가…….”
“농담 아닙니다.”
“마찬가질세.”
빈의 말에 구 박사는 또렷한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궁서체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진지함을 의미하는 요즘 사람들의 말투를 못 알아듣는 구 박사에게 빈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PK모드요.”
“응? 그래 뭔가 알아낸 게 있나? 장군께서 뭐라 하시던가?”
빈의 말에 구 박사는 물론이고, 그가 문짝을 부수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이쪽으로 옮겼던 연구원들도 모두 눈을 반짝였다.
“아니 부루 아저씨 말고 제가 알아낸 거에요.”
빈의 대답과 동시에 연구원들의 시선이 다시 자신들의 앞에 있는 모니터로 돌아갔다.
물론 구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고맙네.”
“아직 이야기도 안 했는데요.”
“아, 말하게나.”
여전히 모니터로 가 있는 구 박사의 시선. 빈이 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진짜 내가 직접 상대하면서 확인한 건데.”
빈의 중얼거림에 그래도 호기심이 생겼는지 구 박사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게 뭔지 말해 보게.”
구 박사의 말에 빈이 그답지 않은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랑 싸울 때 눈동자가 달라요.”
“정확히 무엇과 다른 겐가?”
“마물과 싸울 때의 눈동자에요.”
빈의 말에 구 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강문호 대위가 뒤쪽에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분명 마물과 싸울 때의 시선과 같다고?”
살짝 놀란 음성이었다. 강 대위의 반응에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표정을 지은 빈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예! 보통 강림자들은 약간 뭐랄까, 감정이 없는 인형 같은 시선을 보내잖아요.”
“음. 그렇지. 물론 각 강림자의 등급별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네, 준영웅급 정도 되면 확실히 시선 차이는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런데 준영웅급이나 갑사급, 혹은 병사급등의 강림자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둘의 대화에 다른 연구원들의 이목이 모두 쏠렸다.
이 부분은 연구소에서 화면만 들이파고 실험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보통 강림자가 마물을 잡을 때에는 살기? 아니다, 마치 사생결단 같은 표정이 보여요.”
“으음.”
강 대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기동대원들이나 필드에서 직접 전투를 수행하며 강림자를 보조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빈의 설명을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 감정이 거세된 것 같은 표정을 하다가도 마물과 싸울 때만큼은 감정이 폭발하듯 보인다.
함성을 지르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확실히 그렇지.”
그때 구 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같은 게 이상한 겐가?”
“아까 막아서고 할 때와 표정이 다를 거 같아서요. 강림자들끼리 붙을 때도 표정이 바뀌긴 하는데 사생결단이라기보다는 보호의지? 그런 게 보여요. 꼭 보디가드 아저씨들 같은 느낌.”
그때 문 앞에 기웃거리던 구도원이 입을 열었다.
“맞아. 분명 표정이 명확하게 변하는 순간이야. 그리고 구분될 정도로 다르기도 하고.”
“네!”
도원의 말에 빈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사실 소환자가 된 지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강림자와 함께 가장 많이 전투 경험을 쌓아온 이는 바로 빈이었다.
당연히 자세한 관찰이 가능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차를 활용해서 직접 전투지휘를 하는 도원 역시 빈과 마찬가지로 강림자들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도원의 보충설명이기에 신빙성이 높았다.
“그런데 아까 자네가 상대한 갑사 급은…….”
“확실히 달랐어요. 절 보는 시선이 마치 마물을 보는 것 같았거 든요, 거기에 도원이 형이 그 뭐냐 대원의 팀장인가 하는 사람 뒤치기 할 때에는 표정이 다시 보디가드마냥 바뀌었거든요.”
빈의 설명에 구 박사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러나 빈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먼저 말했다.
“혹시 그 패드가 감정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눈앞의 상대를 착각하게끔 하는 게 아닐까요?”
빈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 가능성 높은 가설이었다.
“혹시 감정을 바꾸기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짓는 건 아닐까?”
연구원 하나가 이의를 제기했다.
감정과 전투력의 상관관계는 꽤 오래전부터 연구되어 오던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좀 오바 같은데.”
도원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저었다.
“감정에 따라 전투력이 변하는 게 아니라 그 부분은 확실히 사람처럼 전투 목표나 의지에 따라 변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말에 연구원이 신중히 그를 응시했다.
“사실 그렇잖아. 뭐 연구원들을 평가절하 하고 싶지는 않은데, 강림자와 가장 많이 생활하는 건 우리들이란 말이지.”
도원이 저래 보여도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신컨길드의 수장이었다.
그의 말에 무게감이 없을 리가 없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급작스러운 전투의 경우에는 전투가 벌어지고 감정표현이 이어지는 것도 좀 봤지.”
연구원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의 웅성거림에도 도원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이론대로라면 급박해도 먼저 표정부터 바꾸고 괴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거거든. 그런데 실전에서는 안 그래.”
“맞아요. 상황에 따라 혹은 포착되는 순간에 따라 감정 표현이 뒤따라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확실히 표정은 같다는 거.”
빈의 말에 도원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니 말은 한마디로 눈에 콩깍지 같은 거 씌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원의 질문에 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상대방을 마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강림자는 생체물질로 구성된 건 아니지. 그렇다면 뭔가 전기적 혹은 전파적 신호가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군.”
구 박사가 가닥을 잡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더니 다른 화면을 띄웠다.
뭔가 복잡한 글자와 숫자가 가득했다. 하지만 빈과 도원등은 그가 지금 이미 정신이 한쪽으로 쏠려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빈의 설명에 무언가 해결의 실마리를 알아낸 것이라 보는 게 가능성이 컸다.
다른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나갈까?”
강 대위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조용하자는 표현을 하며 둘을 끌고 나갔다.
* * *
대회의장 비슷한 구조의 장소에 앉은 사람들은 마치 각자 거리를 두듯 두어 명씩 짝지어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주변을 경계하는 시선이었다.
당연했다. 그들은 모두 각국을 대표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는 대사와 로비스트였고, 누구는 정보부 요원들이었다.
조합이나 구성은 약간씩 다르지만 그들의 목적은 다들 비슷했다.
협상이었다.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뵙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급히 모실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 바라겠습니다.”
그의 말에 미국쪽 인사와 한국 쪽 인사가 얼굴을 굳혔다.
아무래도 그들은 자신들만이 이곳에서 논의를 할 줄 알았던 것이다.
“연구 기밀을 무단으로 캐려는 움직임이 있기에 이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유있게 설명을 이어 나가고 있는 이는 바로 대원길드장인 오기원이었다.
그가 한쪽을 바라보자 미국쪽 인사와 한국 쪽 인사가 살짝 얼굴을 굳혔다.
누가 봐도 그들을 언급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중국 쪽 인사 역시 기원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나름의 사과인 듯했다.
* * *
“뭐래는 거야?”
서준모 경위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안쪽 영상을 볼 수 있는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중요한 소리가 들리지 않아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뒤쪽에 한 병사가 오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정부의 의지와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불쾌하신 부분이 있었…… 다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그 병사의 중얼거림에 서 경위가 슬쩍 바라보며 물었다.
“진짜?”
서 경위의 말에 병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거의 비슷할 겁니다. 제 형이 귀는 들려도 말을 잘 못하거든요.”
가끔 그런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경우 독순술이라 해서 입술의 움직임을 보고 글자를 익히는 경우가 있었다.
반대로 이 병사는 발음이 부정확한 형과의 대화를 위해 가진 재주였다.
“그럼 계속 중계 좀 해 봐.”
서 경위가 재빨리 자신의 자리에 그 병사를 앉혔다.
“빨리. 지금 말하잖아.”
서 경위의 말에 병사가 울상을 지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지금은 영언데요?”
“…….”
“우리 형은 영어를 안 써서…….”
순간 서 경위는 그를 의자에서 끄집어 내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