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크게 벌어지는 판
“아니 왜 같은 회사원에게까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요원들이었다. 그사이 창진은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방금 본 이쪽 직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전화를 끊으며 창진이 인상을 구겼다.
“뭐랍니까?”
“우린 안 본 거로 하란다.”
창진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알아서 침묵하란 거지. 우리도 믿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어떤 것이든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직원을 믿지 못하는 상황을 누구인들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창진의 뒤엣 말에 다들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말.
“혹시 대원길드와 모종의?”
“그쪽 라인이 있을 수도 있겠고. 뭐 어찌 되었든 전부 체크해.”
창진의 말에 요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웃기고 있네. 아무리 퇴색되었다 해도 천조국이 어디 간 게 아닌데.”
“그러게. 우리처럼 이렇게 처박혀 있지 않아도 다들 내려다보고 있을 게 뻔한데 말이지.”
그들의 중얼거림에 창진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들의 말마따나 그들의 머리꼭대기를 넘어 하늘을 지나 우주라 불리는 곳에서는 이곳을 주시하는 눈이 있었다.
위성이라는 위대한 과학이 만들어낸 눈이 말이다.
그때 요원이 혀를 찼다.
“내 참.”
“왜?”
창진이 묻자 요원이 턱짓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응?”
“이럴거면 왜 순서대로 들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 같이 들어가서 경매 입찰이라도 하지.”
“요원은 아닌데, 어디더라?”
동양인이었지만, 느낌은 한국인과 달랐다. 중국쪽은 이미 들어갔다.
그러면 남는 건 하나다.
“일보온?”
“요원이 있긴 한데 대사관 인원입니다.”
“내 참.”
창진이 혀를 차다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일본이 눈치를 늦게 챈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 혹은 미국의 눈치를 보던 중이었을 수도 있었다.
사실 지금의 일본은 이전과 달리 대침식 초기 꽤나 많은 타격을 입었다.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섬으로 구성된 국토이기 때문에 도쿄가 있는 섬을 제외하면 전부 일괄적으로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대침식 초기 대응에서 병력이동이 수월치 못했던 것이 큰 데미지를 가져왔었던 것이다.
어쩌면 한국이 일반적이지 않기에 피해가 덜한 것일 수도 있었다.
사실 국가의 전력이 외부의 적을 향해 투사되도록 되어 있는 상황은 어디나 같다.
그런데 대침식은 갑자기 내부에서 적이 쏟아져 나온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나라라 할지라도 빠르게 정신을 수습하기 힘든 게 당연하다.
거기에서 한국이 다른 국가들과의 차이점이 생겨난 것이다.
한국 이스라엘 스위스가 대표적으로 피해를 덜 입은 국가다.
그건 바로 예비군.
일주일 내에 수백만 이상을 전력으로 바꿀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아니 수백만을 떠나 인구의 절반, 즉 남자라면 나이와 무관하게 최소한의 전투능력 이상을 부여할 수 있는 나라다.
예비군이란 그런 의미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고, 스위스도 유사했다.
다만 그들과 또 다른 것은 대한민국의 전력이 비대칭인 것이다.
인구도 오천만이 좀 넘는 국가의 전력이 세계7위라는 것도 놀랄 일이지만, 그중 육군 전력만 따지면 세계 4위라는 게 더 경악할 일이다.
주변 국가들을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전차 전력도 그렇지만, 국방부를 포방부라 부를 정도의 수많은 포들은 평소에 변태스럽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대침식 때에는 오히려 그 덕을 보았다.
초기 마물의 등급이 낮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그런 전력이 제대로 가동되기 전에 예비군 전력이 효율적으로 시간을 끌어 주는 역할을 했으니 그 피해가 세계적으로도 낮은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반면 일본은 육상 전력이 빈약했다. 예비군 제도도 없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관료사회.
재해가 일어났을 때에도 구호품을 쌓아 놓고 나누어 주기 전까지 관의 움직임을 기다린 일은 유명한 일화다.
그러니 임기응변식 대응이 벌어질 리가 없었다.
반면 대한민국은 정부의 소집 명령이 떨어지자 이미 모여 있던 병력들이 덩어리로 합류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마치 그 옛날 전설처럼 되어 버린 LA흑인 폭동 시기의 한인 타운처럼 말이다.
어찌 되었든 여력이 대침식 이전과 다른 일본이 여기까지 대놓고 찾아온 것을 보면 정말 급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때 보고를 하던 창진이 통화를 끊으며 혀를 찼다.
“뭔 내로남불이야 이거.”
“뭐랍니까?”
요원의 말에 창진이 대답했다.
“쟤들 차단하란다. 동맹도 아닌데 주요 전략정보가 넘어가는 걸 볼 수는 없다고.”
창진의 말에 정보부 소속 기동대에 명령을 전달한 요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중국은요?”
“아…….”
“중국이 동맹이었습니까?”
사실 이래서 창진이 내로남불이라고 한 것이긴 했다.
창진이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뭘 알겠냐만…… 거긴 동맹은 아니어도 우리에게 큰 손님이긴 하니까.”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은 이전 제제로 시작되었던 무역전쟁 이후로 딱히 서로 사지 않고 팔지 않는 서먹한 이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기동타격대에 의해 제지 당하는 일본쪽 인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요원들이 인상을 팍 썼다.
“이거 냄새를 맡은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요원이 바라보는 화면을 같이 응시하던 창진이 욕설을 낮게 내뱉었다.
“이런 씨부럴 놈들.”
딱 봐도 각국의 대사관 차량들이 줄을 이어 도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 *
비서실장의 보고를 들으며 오광석 회장은 자신의 아들인 오기원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서려있었다.
“좀 일이 커진 듯하지만, 나쁘지 않구나.”
오 회장의 말에 기원이 서늘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이쯤 해 두어야 정신을 차리지 않겠습니까?”
기원의 말에 오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구나.”
PK모드에 대해 흘린 것은 바로 대원그룹이었다.
물론 대원길드의 주도였지만, 어차피 사람들은 둘을 따로 떼서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국가측이 우리 연구에 손을 뻗으면 지금 대기 중인 모든 나라들이 한 입으로 떠들어 줄 거니까요.”
기원의 말에 오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반대로 저들이 우리와의 거래가 아닌, 우리 정부와 직접 거래를 하려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게 가능할까요. 이미 쥐고 있는 건 우리인데 말입니다.”
기원의 말에 오 회장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 회장은 이내 웃음을 거두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오 회장의 말에 기원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신제품은 버그가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기원의 말에 오 회장은 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지. 신제품은 원래 그런 게지.”
그때 기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제 손님을 좀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그래야겠구나. 연구실장은 이미 가 있으라 했다.”
“안 가십니까?”
기원이 걸음을 멈추더니 오 회장을 바라보았다.
“이럴 때에는 협상 대상을 하나로 줄여 버리는 게 나을 수 있지. 게다가 사업이라는 게 이리저리 얽히고 엮인 것이 많은 법 아니겠느냐?”
오 회장은 만에 하나 있을 연줄 등을 무시하겠다는 의미였다. 물론 대놓고 그럴 수는 없으니, 이 참에 뒤로 빠지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대관식이라 생각하거라.”
오 회장의 말에 기원이 입꼬리를 올리고는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밖을 나섰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오 회장이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 거렸다.
“고연 놈…… 그동안 고개 한 번 까딱이지를 않더니 그룹을 쥐여 주니 처음으로 한번 머릴 숙이는구나.”
말의 내용과는 달리 오 회장의 미소는 만족 그 자체였다.
마치 뿌듯하다는 듯 말이다.
* * *
“저거 전부 다른 나라 사람들 같지 않습니까?”
“그래 보인다.”
모니터에는 흐릿하지만 대원그룹으로 들어서는 이들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것도 여러 각도다.
“미친 거 아닙니까?”
“그래 보인다.”
“확 실검 올립니까?”
“참아라. 그러다 연구소 게이트 터진다.”
연신 분노를 쏟아내는 이는 바로 서준모 경위의 자랑스러운 사이버 전사들이었다.
그 옆에 있던 최후배 경감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의 질문에 대답은 화면을 보여 주고 있는 군인이 대신 해 주었다.
“간단합니다. 백도어가 있어서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쉽게?”
여기 모인 이들은 국방부 해커도 아니었다.
그냥 컴퓨터 좀 잘 다르고 손이 빠르다고 알려진 일반 군인들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군인은 대원그룹의 정면 상황을 다각도로 비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인근에 설치된 CCTV덕분이었다.
최 경감의 반문에 군인이 짧게 답했다.
“중국산입니다.”
“…….”
병사의 말에 최 경감은 입을 닫았다.
그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중국산 CCTV가 보안이 약해 너무 쉽게 접근이 된다던 예전 기사 말이다.
그 덕에 그쪽 제품에 관해 기피 현상이 있었다.
그런데 저 앞에 설치된 것들은 그 이전에 설치된 것들이 분명했다.
그리고 군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이게 재미있게도 우리나라에 중국산이 꽤나 있기는 해섭니다.”
“이걸 웃어야 하나…….”
최 경감이 쓴 웃음을 머금었다.
“안에 상황도 살피면 좋은데.”
서 경위가 슬며시 자신의 바람을 비추었다.
그때 군인이 뒷머리를 긁었다.
“사실 이것도 예전에 논문 작성하면서 알아 놓은 거라……. 아마 안쪽은 장난 아닐 겁니다. 보안요 원들로 철벽을 치고 있을 겁니다.”
주변이야 대원그룹이 손댈 것이 아니라 해도 본사는 달랐다.
세계적인 차원의 그룹이 대원그룹이었다.
군인의 보고에 서 경위가 입맛을 다셨다.
“하긴 그렇겠다.”
그때 옆에 있던 또 다른 군인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뜨는데요?”
“응?”
그 말에 고개를 돌렸던 군인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뭐어?”
그의 손이 다시 키보드 위를 노닐었다.
그 순간 회의실처럼 보이는 공간이 모니터에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그 중앙에 잘 보이는 곳에 대원 길드장인 오기원이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대박…….”
“미쳤네.”
“대원그룹 안에도 중국산이라니…….”
그룹의 보안 수준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이들은 몰랐던 것이다.
이전 대원그룹의 후계자였던 이의 아랫사람이 비용을 절감하고자 가성비가 좋다던 중국제들을 대량으로 들여왔었다는 걸 말이다.
물론 구매금액의 일부는 비자금 조성을 위해 바이백 해 와 적립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다들 숨죽이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 * *
고빈의 설명을 들은 을지부루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까 그쪽 강림자가 뿌린 거이 살기는 맞디. 하디만 어케 우리와 비교를 하는 거이네?”
“감정을 담는 연구가 성공했다고 지금 다들 시끌거리는데요?”
“니보라. 화를 낼 수 있고 없고가 중요한 거 아니디.”
부루의 말에 빈이 되물었다.
“그럼요?”
“내래 내 맘대로 패는 거이고, 저치들은 명령이 있어야 팬다는 거이디.”
부루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 말하자 주로 타깃이 되었던 빈이 썩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