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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79화 (79/305)

제79화 눈앞의 이득이 먼저다.

“어 창진아. 잘 들린다. 고생했다!”

정보부 김창진의 말에 답변을 한 것은 바로 서 경위였다.

[아, 예. 어쨌든 나머지는 좀 살펴봐야 하긴 할 겁니다. 그래도 일단 프로그램이 생각보다는 보안이 약해서 어렵진 않아 다행이네요.]

연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기원의 얼굴 위로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무언가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걸려 버린 셈이 되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잘나가는 연구진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과 미국의 최정예 정보팀이 몰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해킹에 능한 이들 역시 몰려 있었다.

해킹에 능한 만큼 프로그래밍에도 능했다.

한마디로 운이 나쁜 것이다.

물론 저 매커니즘이 전부 파악당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임에도 최소한 연계 정도는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사 받으셔야죠?”

서 경위의 말에 기원이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제 변호사와 이야기를 하시지요.”

기원이 서늘한 시선으로 답했다. 그러자 서 경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 아까도 말씀 드렸으니까. 다만 저분들은 의도적으로 상해를 가하려 했으니 구속은 피하지 못할 겁니다.”

기원의 시선이 다시 그들을 향했다. 아무도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좋을 대로 하십시오. 허나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원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평판은 삼대길드지만 실질적인 파워는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니까.

“까칠하네.”

서늘한 시선으로 내리깔아보는 듯한 느낌.

서 경위가 재벌을 많이 겪은 것은 아니지만, 저런 시선은 가끔 보았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다.

사람을 내리깐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군림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이들이 주로 보여 주는 눈빛이었다.

약간의 실랑이가 다시 벌어졌다. 이런 명확한 증거에도 뻗대는 모습에 서 경위는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김창진이 들어왔다.

“응? 왜 왔어?”

서 경위의 질문에 창진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보안 책임자들이 다 여기 있으니까 왔죠.”

창진의 얼굴은 별로 좋지 않았다. 조금 전 사이다 원샷을 한 것 같이 속 시원한 통화를 한 당사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서 경위는 자연스럽게 축 늘어진 그의 손으로 향했다.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뭐야?”

서 경위는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물었다.

그러자 창진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때 뒤쪽에서 굳어진 인상을 하고 있던 최 경감과 강 대위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서 경위가 나직하게 욕설을 뱉었다.

“이런 씨부럴.”

떠나가는 차량행렬을 보며 서 경위가 피식피식 웃었다.

“참으십쇼.”

“저거 그냥 보내 준 거 보면 모르겠냐?”

“알죠. 많이 참고 있다는 거.”

최 경감이 쓰디쓴 미소를 입가에 매달고 답했다. 그러자 서 경위가 담배를 하나 물며 말했다.

“빌어먹을 권력. 참 재미있네.”

서 경위의 중얼거림에 최 경감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는 전부 위에서 내려온 것들이었다.

정보부 군부 그리고 경찰청 할 거 없이 동시에 떨어진 내용.

절차 갖춰서 대원길드에 소환장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쪽은 목숨이 위협 당했는데 말이다.

‘잊었어? 대원길드가 문제가 아니라는 거.’

윗 전에서 뱉은 말이었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열 받았다.

“그래도 현행범들은 잡아 놨잖습니까.”

“그래서 저것들 먹고 떨어지자는 거냐?”

“미끼도 못 먹고 낚이는 것보다는 미끼라도 배불리 먹는 게 낫지 않습니까?”

최 경감의 말에 서 경위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는데 그냥 열 받은 거지 뭐.”

그의 대답에 최 경감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간혹 사람의 표정을 얼음과 비교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이 그랬다.

그룹 사옥으로 걸음을 옮기는 오기원의 표정은 마치 얼음덩이 마냥 냉기가 풀풀 나고 있었다.

그를 선두로 모두가 걸음을 옮기면서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혹시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끈을 이용해서 사방에 연락을 돌린 김우헌 고문변호사도 입을 다문 채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기원이 회장실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서자 노인이라기에는 피부가 꽤나 좋은 이가 있었다.

“낭패를 당할 뻔했다는 소릴 들었다.”

“불필요한 신경을 쓰시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오광석.

대원그룹 회장이면서도 오기원의 아버지다.

“그래. 무어라 할게냐.”

“이 연구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고 할 예정입니다.”

“그것으로 되겠느냐?”

“일단 그것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자신감이다.

대원그룹이 그의 뒷배이며, 자신이 후계로 있을 곳에 대한 자신감이다.

“이야기는 이쪽에서도 만들어 보마.”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안쪽은 살펴보았을 것인데…….”

대원그룹 오 회장이 기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기원이 천천히 대답을 했다.

“우리와 유사한 연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림자에게 감정을 불어넣고 있는 듯합니다.”

기원의 대답에 오광철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내 쪽으로 새로 들어온 소식이 있다.”

오 회장의 말에 기원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그 영상 말이다.”

“예.”

“그곳에 훈련받는 소환자들도 그와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그곳의 목적이라더구나.”

오 회장의 말에 기원이 입을 꾹 다물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만약 그 소식이 진짜라면, 아마도 중복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오 회장의 정보가 맞다 하더라도 그가 본 것들은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말에 오 회장이 끄덕였다.

“그렇다면 더 좋겠구나, 이쪽에서 항의를 보내 놓으마.”

“예.”

오 회장의 말에 기원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 * *

항의 내용은 단순하다.

이쪽에서 연구 중인 내용을 무단으로 확인한다면 그에 관련된 형사 및 민사 고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

“허허, 이거 참.”

구은태 박사가 혀를 찼다.

떠나갈 때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빠르게 반응이 왔다.

실제 사람을 죽거나 상하게 만들 수 있었음에도, 증거품을 더 살피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 증거품은 바로 소환자의 팔뚝에 차는 패드였다.

이미 PK모드가 있다는 것까지 파악했음에도 더 이상 증거품의 원리를 파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망조 든 거지요 뭐.”

옆에 서준모 경위가 불만인 듯 입술을 쭉 내밀고 있었다.

“망조라…….”

서 경위의 말에 구 박사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일단 저쪽에서는 연구 중인 제품을 가지고 테스트 중이던 팀원들이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라더군.”

“그런데 국내와 미국은 왜 이 일을 쉽게 놔준 건지.”

서 경위의 중얼거림에 구 박사가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거래가 있겠지. 대원그룹이니까.”

결국 박광석과 그의 팀원들만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었다.

* * *

그룹에서 버림을 받았다.

하지만 박광석과 그의 팀원들은 그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룹이 건재해야 그들의 존재가 의미가 있었다.

지금이야 외면을 당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그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판단도 했다.

“우리가 본 게 진짜인가요?”

팀원 하나가 고개를 돌리며 멍멍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가짜는 아니겠지.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걸 보면.”

광석의 말에 팀원들이 더욱 혼란스러워 했다.

“그 고빈인가 하는 BJ놈. 갑사급 강림자에게도 밀리지 않았습니다.”

“후우. 강림자와 싸우는 소환자라니.”

“방송 라이센스는 함정이고 이 안으로 스스로 서명하게 만들어서 이 안으로 들이는 것이 목적이겠지요?”

팀원의 질문에 광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틀리지 않은 말일 것이다.

밖에서 이따금씩 군 훈련소에서나 나올 만한 외침들이 들려왔다.

“그런데 소환자를 강하게 만든다는 건 불필요한 행위 아니지 않습니까?”

“생존능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겠지.”

광석의 대답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일부는 그의 말에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오히려 이 훈련 뒤에 소환자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어설픈 자만심이라도 가지게 되면 끝입니다.”

“그렇지.”

지금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을 오가며 소환자가 강림자를 운용했다.

하지만, 이 훈련을 통해 진짜로 소환자가 강해진다면 소환자는 대담하게 전투에 임할 것이다.

그리고 전투를 피하지 않다 보면 희생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그룹이 원하는 그림이 이쪽에 있을 수 있지.”

“그럴지도요. 소환자 자체가 강해진다면 이렇게 맥없이 갇히는 일도 없을 테고 말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잊어 가며 시간을 보냈다.

* * *

미 정보부는 대원길드의 패드에 욕심이 컸다.

지금 이들이 여기까지 와서 한국 눈치를 보며 훈련하는 이유가 바로 부루 때문이었다.

부루만 있다면 소환자들도 강해질 수 있으니까.

거기에 고빈이 보여 준 무력은 이전과도 또 달랐다.

강림자를 운용하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도 전력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주목한 것은 대원길드가 개발한 것이 바로 인간을 상대로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만 확보한다면 충분히 우리 스스로도 훈련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소환자의 이차 각성의 촉매가 바로 강림자이기 때문입니다.”

요원의 대답에 화면속의 중년인들은 서로 몇 마디씩 주고받더니 고개를 돌렸다.

[대원길드와 접촉을 서두르도록. 중국 역시 냄새를 맡았으니까.]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치고 일어선 요원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다른 요원이 어딘가에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 * *

차 안에서 대원길드 정문을 향해 정장을 입은 이들이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창진이 인상을 구겼다.

“젠장 우리 국적 요원이네.”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미국 정보부는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이들보다는 한국에 심어 놓은 한국 사람들을 활용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 중 하나가 이쪽에 포착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뒤통수를 치나.”

차 안에서 감시 요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뒤통수라 할 것 없어. 어차피 저들이나 우리나 국익이 우선이니까.”

창진의 말에 차 안에 있던 요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림자들이 사람을 살상할 수 있다면 정말 위험한 거 아닙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창진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누구든 당연히 품을 수 있는 의문이다.

지금도 점점 소환자들의 행동이 거침이 없어지는데 더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날 법안을 만들 때 고민했던 것처럼 범죄악용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창진이 입을 열었다.

“그러지 않기를 빌어야지.”

창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요원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우리쪽입니다.”

이번에는 한국 측 협상단이 빌딩 앞에 멈추어 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탐나기는 이쪽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들을 본 창진이 나직하게 욕설을 뱉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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