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들립니까?
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만해도 떠들썩했던 장웨이의 행방이 어느 순간엔가 사라졌다.
그럴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전설급이라 분류되는 강림자는 나라 입장에서 따지면 전략무기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이 세상의 주적이 같은 인간이 아니라 침식지대와 마물이 된 상황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다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선순위를 봤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장웨이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에 기원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정보차단이 컸어…….’
미군에 이어 장웨이까지 확인된 지금 기원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도 사실 반신반의 한 상황에서 일개 팀을 선발대로 보낸 것이다.
소환자가 마물을 직접 처리하는 방송 콘텐츠.
믿기에는 너무 황당한 일이기도 했었다. 나름 정보망이 갖추어져 있다고 판단했기에 오히려 더 못 믿었던 것이다.
만약 이게 진짜라면 대원그룹에게로 정보가 왔어야 했다.
물론 구은태 박사가 꼴통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국가권력에도 들이대는 인간이 바로 구은태 박사다.
하물며 재벌 권력이라고 두려워하겠는가.
그렇다 해도 이번 정보차단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그 수준이 높았기에 오히려 큰 의미 없는 것이라는 판단까지 나왔을 정도다.
정보가 잘 없는 이유는 딱히 얻은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계산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안쪽의 구성원만 봐도 얻은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귀한 것이기에 철저히 차단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소환자가…….’
점점 그 개인 방송 콘탠츠가 현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갔다.
그때였다.
“우어어억!”
비명과 함께 누군가가 한쪽으로 날아갔다.
퍼어억!
기원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한쪽에는 마치 모래주머니를 쌓아 만든 진지 같은 벽이 있었고 그 위에 누군가가 날아와 처박힌 것이다.
“방금 모가지 잘릴 뻔했잖아요!”
“안 잘렸으면 된 거 아이간?”
반쯤 무너진 모래주머니들을 해치고 나타난 이가 소릴 내지르자, 퉁명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기원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강림……자?”
기원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대원길드의 길드장인 기원을 인도해 가던 강 대위의 발걸음이 저절로 멈추게 되었다.
따라와야 할 기원이 얼어붙은 듯 멈추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껏 굳은 얼굴로 을지부루와 고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기원을 보며 강 대위가 쓴 웃음을 머금었다.
“적당히 하십시오! 오늘 개인정비 시간입니다!”
“일없어야. 일이나 하라우.”
강 대위의 외침에 부루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대꾸했다.
“저거 강림자가 맞습니까?”
기원에게서 흘러나온 질문에 강 대위가 그를 바라보았다.
기원은 여전히 못 박힌 것마냥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맞습니다만.”
강대위의 대답을 들은 기원은 자신의 팔목에 달린 패드를 바라보았다.
“미친…….”
그의 팔목에 있는 패드의 액정에는 0.00001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진짜라고?”
그때 시끌시끌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군인들이나 입는 운동복을 단체로 입고 있는 사내들이 보였다.
그런데 하나같이 옛 사람 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전신……아닌데?”
전신길드인가 싶었지만 이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전신길드는 아니었다. 전신길드원이 숫자가 어마어마한 것도 아닌데 그들의 얼굴을 모를 리 없었다.
일단 숫자부터가 전신길드보다도 월등히 많았다.
띠리리리리리.
방금 전 관측했던 팔뚝의 패드가 연산을 해 나가고 있었다.
숫자들이 자꾸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눈앞에 측정 대상이 여럿 있다는 의미였다.
“…….”
액정을 다시 한번 내려다 본 기원이 떠들썩하게 외치고 있는 사내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오, 버텼어!”
“막내 잘한다!”
“방금 전은 아슬아슬했다고!”
응원을 보내고 있는 사내들.
기원이 패드 액정의 옆을 툭하고 누르자 투명한 안경이 툭하고 튀어 나왔다.
이어 안경을 썼다.
기원의 시야에 다시 사내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투명한 안경위로 사내들과 겹쳐서 숫자들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0.000009
0.000003
0.0000012.
이건 강림자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치들이 사내들과 겹쳐서 떠오르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옛스런 머리모양만 빼면 누가 봐도 사람이다.
그 행동 하나하나들이 자연스럽다 못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스쳐 지날 정도였다.
그걸 본 기원이 피식 웃었다.
“이거였나?”
기원의 비릿한 웃음을 강 대위가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강 대위는 다시 이동했다.
뒤를 따르는 기원의 발걸음은 여유가 있었다.
아까와는 느낌이 달랐다.
무언가 중압감과 날카로움이 동시에 느껴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시점이 공교롭게도 가우리 병사들을 보고 난 뒤였다.
강 대위는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오해라도 했나 보군.”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까 표정을 봤을 때 혹시나 했지만, 지금의 변화를 보았을 때 분명 오해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이유는 당연했다.
만약 저들이 진짜 강림자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가 맞다면, 저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은 있을 수 없는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안 했다면 아마 기원의 반응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강림자에게 감정을 담는 기술쯤으로 생각하는 걸까.’
아마 그게 가장 근접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태연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기술이 이렇게 폄하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림자의 단점은 수동적이라는 부분이었다.
감정의 유무보다는 말이다.
다만 강림자들 간 등급차이에 소수의견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인지도라고 하는 건 지금의 판단에 가깝기는 하다.
만 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몇 명이 그 위인을 아는가.
정말로 인지도인 것이다.
왜냐면 많은 이들이 알수록 시대를 풍미한 무인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말이다.
그래서 인지도라 명명했다.
물론 액정의 수치와 그 인지도라는 부분이 사실 놀랄 만큼 일치하기도 했다.
즉 다른 의미로 이 세상에 영향을 많이 끼친 이일수록 강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소수의 경우 인지도와 상관없이 강한 이들이 있었다.
그 같은 경우 공통점이 비슷한 무력을 가진 강림자와 감정표현 수준이 같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감정이 풍부하기에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그걸 기준으로 한다면 인지도가 낮으면서도 강한 무위를 보여 주는 강림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설명이 되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부분은 가정일 뿐이었다.
그때 강 대위가 멈췄다.
“면회는 십 분입니다.”
면회가 십 분이라는 말에 모처럼 여유 있어 보이던 기원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하지만, 별다른 말 없이 안내에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갔다.
“대, 대표님!”
한쪽에 축 늘어져 있던 박광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그뿐 아니라 함께 안에서 넋을 놓고 대기하던 그의 팀원들 역시 바짝 얼어붙은 모습으로 일어섰다.
안으로 들어선 기원이 그런 광석과 팀원들을 스쳐보더니 안을 둘러보았다.
“나쁘지 않군.”
“아직은 조사단계니까요.”
강 대위의 말에 기원이 물었다.
“대체 무슨 조사기에 우리 전력을 이렇게 박살 내 놓았는지 궁금하군요.”
기원의 말에 바짝 얼어서 서 있던 광석의 얼굴이 구겨졌다.
“PK모드란 게 있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은 기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임입니까?”
마치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기원에게 강 대위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아쉽게도 현실입니다.”
“그게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 것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지요?”
여전히 모른다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기원을 보며 광석은 점점 등줄기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광석을 강 대위가 살짝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
“실제 내부 감시카메라 영상의 음성 증폭에도 저기 귀 길드의 팀장이 팀원과 통화하던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광석과 함께 통신을 나눈 팀원의 얼굴이 참담하게 변했다.
그 순간 기원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게 뭡니까?”
기원의 질문에 광석과 팀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침묵할 때 광석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독단적으로…… 외부에서 적용해 온 프로그램입니다.”
광석이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기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들썩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짧았기 때문이었다.
‘나가 죽어.’
광석이 일그러진 표정을 하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강 대위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지금 구은태 박사와 이곳의 연구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서 이들의 손목패드를 뜯어보고 있었다.
강림자에게 살상이 가능한 명령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쇼킹한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은 이미 부루와 함께 무너졌지만, 이 강제적 살상모드는 다른 이야기였다.
범죄에 악용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강림자의 특성 때문에 소환자가 제어가능하다는 기준도 기초부터 작살이 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연구가 이전에 없었을 리 없다.
대침식이 끝난 순간부터 다들 이 부분에 대해서 연구를 했을 것이다.
각 국마다 말이다.
되살아나는 인간형 병기를 만들 수 있는 기회 아닌가.
공동의 적이 있다뿐이지 기존의 얽히고 섞힌 국제사회의 문제는 아직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직 그것을 성공했다고 하는 곳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리 대한민국 삼대길드의 수위권에 드는 곳이라 해도 일개 팀장이 구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일단 그런 일이라면 철저히 조사를 해야겠군요.”
기원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명백한 꼬리자르기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대원길드원들은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했다.
마치 이게 맞는 거라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저, 가시면 안 될 거 같은데요.”
동시에 기원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신분증은 가지러 보냈으니…….”
“그게 조사를 좀.”
“나머지 일은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겁니다. 난 이곳에 들어오면서 서명 따위 한 기억이 없으니까.”
“뭐, 변호사는 특별히 들어와도 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서 경위의 말에 기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아까도 가능한 것을 들여보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단 이들의 혐의는 제가 아는 바가 없기에…….”
순간 기원의 팔뚝에 채여 있는 패드가 작게 울렸다.
띠리릭.
기원이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팔뚝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 위에 액정에 문자가 떠올랐다.
-PK해제.
“사실 그거 때문입니다만.”
기원은 못 박힌 듯 자신의 팔뚝에 있는 패드를 바라보았다.
그때 패드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거 맞지? 아아! 들립니까? 이거 역추적해서 최종 명령권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패드로 접속했는데.]
“하!”
들려오는 음성소리에 기원이 짧게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