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 * *
검은색 대형세단들이 줄을 이어 멈추어 섰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았지만, 보는 이 입장에서는 상당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어우. 이건 뭐 영화네 영화야.”
“농담이 나옵니까?”
정문 근처에 있던 서준모 경위의 말에 최후배 경감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말은 그렇게 편히 나누었지만, 둘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그 앞에는 강문호 대위가 서 있었다.
그리고 문 옆으로는 기동대원들이 날이 선 시선으로 멈추어선 차량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차량들은 대원길드의 것들이었다. 대원길드는 기동대원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침식지를 지키기도 하지만, 균열발생시 가장 먼저 현장으로 도착하는 것도 그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대원길드는 악명이 높았다.
기동대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은 존중 그 자체였다.
위기의 상황에 가장 먼저 나서서 목숨을 담보로 싸우는 기동대원들의 노고를 직접 본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처리는 주로 강림자들이 나타나서 하지만, 최초 사건발생시 위험에 빠진 이들을 대피시키는 건 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쑤시고 들어가 사람들을 구하는 그들의 모습에 그 어떤 구도 손가락질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기동대원들이었지만, 대원길드는 그들을 마치 인부들마냥 대했다.
심지어 인근에 대원길드가 있음에도 출동하지 않아, 기동대원들의 인명피해가 일어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대원그룹에서는 외형적으로는 사과를 하고 또 남은 가족들에게 지원을 했지만, 사람의 목숨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법이었다.
자연스럽게 대원길드에 대해서는 고까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국민청원도 있었지만, 대원 그룹의 힘은 국회까지도 흔들 정도였다.
조수석에서 문을 열고 내린 정장차림의 남자가 뒷문을 열자 대원길드의 수장이자 대원그룹의 후계자인 오기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가 발걸음을 옮기자 먼저 차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던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일제히 대열을 갖추어 따라 붙었다.
그뿐 아니라 뒤쪽에서는 대원길드의 최정예인 특수팀이 강림자들과 함께 도열해 섰다.
마치 무력시위를 하듯 말이다.
말없이 특수 연구지역 정문 앞에 선 기원의 앞으로 한 중년 남성이 나섰다.
“대원길드 법무팀 김우헌 고문입니다.”
김우현 변호사는 대원길드 법무팀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가느다란 눈가에서 비치는 눈빛은 상대방을 주눅 들게끔 만들 정도였다.
“그렇군요.”
그의 소개에 답변을 한 이는 바로 강 대위였다.
“안에 구금된 대원길드원을 만나야겠습니다.”
“안 됩니다.”
강 대위의 단호한 음성에 김 고문의 얼굴이 굳어졌다.
“법무팀 고문 눈빛이 살벌한데요?”
“빌어먹을.”
최 경감의 나직한 말에 서 경위가 얼굴을 구겼다.
“왜요? 아는 사람이에요?”
“바보냐? 중앙지검장이었잖아.”
“제가 무슨 수로 지검장 얼굴까지 기억합니까?”
최 경감의 억울하다는 음성에 서 경위가 답했다.
“너랑 나랑 십 년 전에 신나게 갈아먹던 양반이다.”
“응?”
십년 전이면 서울 테러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전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물론 행동은 다른 놈들이 했지. 저 사람이 오더 준 거고.”
서 경위의 대답에 최 경감이 얼굴을 구겼다.
그때 특검에 끌려가 꽤나 고생을 한 기억이 있었다.
결국 풀려났지만, 별로 좋은 기억은 없었다.
당시 기억이 더 안 좋았던 것은 정치적 논리를 그들에게 뒤집어씌웠기 때문이었다.
“기억도 좋습니다.”
“씨팔 내가 저 새끼 때문에 처음으로 강등 당했거든.”
서 경위의 말에 최 경감이 뭔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검찰수사관이었죠?”
“응. 다 잡은 새끼 풀어 주라고 해서 다른 검사한테 넘겨 줬거든.”
“…….”
“알고 보니 그 새끼는 저 새끼 후배였어. 라인이 같았지.”
서 경위의 대답에 최 경감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서 경위의 흑역사다.
최 경감도 들어만 보았지만 말이다.
그 일 이후로 서 경위가 거침없이 삐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총장 낙마하더니 저기 가 있었네.”
서 경위가 살벌한 시선을 보내며 중얼거렸다.
“강문호 대위님. 지금 민간인을 구금하고 계시는 겁니다. 군이 지켜야 할 민간인을 말입니다.”
“이 안에 들어선 이상 민간인의 신분은 없습니다.”
“분명, 입소서류에는…….”
“안쪽에서 추가 서류를 작성했습니다.”
그때 들려온 음성에 김 고문이 미간을 찌푸렸다.
강 대위도 고개를 돌렸다.
서 경위가 천천히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물론 서명은 개인의지로 했습니다. 영상자료와 함께 제출 가능하며 추가 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설명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맞은 새끼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서 경위가 한쪽으로 고개를 꺾으며 중얼거렸다. 작았지만, 못 들을 소리는 아니었는지 김 고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
“거기 아저씨 말 놓지 맙시다. 나 서준모 경윕니다.”
그 말과 함께 목에 뒤집혀 걸려 있던 신분증을 들이밀었다.
“이곳은 특수 연구 시설이며 훈련소 역시 그 안에 포함이 되어 있어 아무나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아무나?”
순간 김 고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그의 일그러졌던 눈가가 꿈틀거렸다.
“너?”
“참내. 아저씨, 말 놓지 말자니까요.”
서 경위가 삐딱하게 서서 대꾸하자 그를 그제야 알아본 김 고문이 이를 갈며 말했다.
“네놈 내 앞길에 똥물을 튀겨 놓은 놈…….”
“똥물?”
최 경감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뒤로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선배 몰랐어?”
“아씨 깜짝이야.”
“히히히!”
“너 뭐 좀 아냐?”
그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내민 건 바로 이정미 경위였다.
“저 아저씨 총장 낙마 시킨 거 서 선배잖아.”
“응?”
이건 처음 듣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삼촌이 서 선배 동기였잖아.”
“그야, 들어서 알지.”
“그때 총장 임명 청문회 때 치명적인 비위사실을 파서 가져다 준 게 바로 서 선배야.”
“헐?”
그것까지는 몰랐던 최 경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눈에는 불똥이 튀는 듯했다.
“뭐, 그 덕에 쭈욱 이리저리 치였던 거지만.”
“끄응.”
최 경감은 그제야 뭔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구겼다.
같은 사고를 쳐도 유독 서 경위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세운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오죽하면 강등당하기 위해 진급한다는 소릴 들을 정도겠는가.
강등당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보다 진급은 몇 배나 더 힘든 법이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버틴 이가 바로 서 경위였다.
“에이 씨.”
한숨을 내쉰 최 경감이 걸음을 옮겼다.
“선배? 선배!”
순간 이 경위가 놀란 눈으로 최 경감을 바라보았다.
“특수 연구동 관할 책임자 최후배 경감입니다.”
그때 나선 최 경감을 향해 김 고문의 시선이 옮겨갔다.
그에게 최 경감이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똥물을 튀겼으면 법 공부 하신 분답게 세탁비를 청구하시면 될 일이고, 일단 변호사 접견은 절차를 따로 받으셔야 합니다.”
그의 말에 김 고문이 이를 악물었지만, 차분히 가라앉히며 항변의 말을 뱉었다.
“불법 구금입니다.”
“대 마물 특별법이 적용되는 상황입니다. 소환자가 강림자를 이용하여 사람에게 의도한 상해를 유도했을 경우 일단 일신을 구속한 뒤 별도의 선행조사를 한다. 혹시 공부 하실 때에는 이게 안 나와서 모르시는 겁니까?”
최 경감의 질문에 김 고문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건 대침식 시기 초기에 만들어진 법안으로 이미 그 의미가 없어진…….”
“그런데 법 자체는 아직 안 없어졌습니다.”
김 고문의 말을 최 경감이 끊었다. 그리고는 히죽 웃어 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님들께서 워낙 바쁘셔서 만들어 놓고 없애지는 않으셨나 봅니다.”
“저런, 고마울 때가…….”
최 경감의 뒤에 서 있는 서 경위의 입에서 추임세가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김 고문의 뒤쪽에서 누군가가 한걸음 내딛으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을 뱉었다.
“길드 특별법에 의하면 소환자의 사고 발생 시 소속 길드의 책임자는 그와 관련해 사안을 공유해야 한다.”
대원길드장인 오기원이었다.
“자세히 말하면 사안을 공유하여 책임소재를 묻는다지요.”
마치 끼어들기라도 하듯 또 최 경감의 뒤쪽에서 들려온 음성.
최 경감이 고개를 돌려보니 이 경위가 손을 흔들며 방긋 웃고 있었다.
“혹시나 모르실까 봐.”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 준 최 경감이 다시 앞을 바라보며 대답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법무팀은 별도 절차를 밟아 주신 뒤에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길드장님은…….”
최 경감이 기원을 보다가 머릴 긁적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들어오시면 될 듯합니다.”
최 경감의 말에 기원이 김 고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절차. 최대한 빨리 밟아서 들어오십시오.”
“죄송합니다.”
기원의 말에 김 고문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가지.”
기원이 발걸음을 옮기자 서 경위가 팔을 내밀어 막았다.
“신분증요.”
“…….”
“절차라서요.”
순간 기원이 서 경위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서 경위는 사람좋은 미소로 굽실거렸다.
하지만 그 모습마저 사람 속을 살살 긁는 느낌이었다.
기원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굳어졌다.
“…….”
다들 그를 바라보았다.
“신분증…….”
한껏 굳어진 얼굴의 기원이 정말 하기 싫은 말을 뱉었다.
“놓고 왔소.”
“라이센스도 가능합니다.”
“…….”
신분증도 들고 다니지 않는데 라이센스라고 들고 다닐 리가 없었다.
아니 그쯤 되는 사람이라면 얼굴이 곧 신분증이다.
“절차라서…….”
서 경위가 여전히 미소를 띤 얼굴로 절차라는 말을 반복했다.
순간 기원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천천히 품에서 손을 뺀 그거 서 경위에게 손을 뻗었다.
순간 서 경위가 반사적으로 몸을 뺐다.
“지문.”
손을 뻗은 기원이 보인 것은 그의 손가락이었다. 그가 앙다문 입을 힘겹게 열었다.
“지문 안 됩니까?”
얼굴이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지문으로 합의를 본 기원이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의 뒤로 특수팀과 각 팀장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나머지는 진입하지 못했다.
강림자 역시 일정 장소에서 별도 대기를 했다.
탈출에 대한 동조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말에 다시금 열이 받았지만, 일단 그 말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원의 시선은 주변을 살폈다.
꽤나 신경을 쓴 흔적이 많았다.
감시카메라는 과할 정도로 많이 달려 있었고, 기동대원이 아니라 특수부대원으로 보이는 이들도 무장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중에 그의 눈길을 끄는 건 따로 있었다.
‘미군?’
한쪽에서 쉬고 있는 미군의 모습이었다.
소문은 들었지만, 미군과 합동연구를 할 정도라면 입구의 보안 사안이 과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던 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누군가와 투닥 거리는 소환자의 모습 때문이었다.
“장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