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76화 (76/305)

제76화 기업형 길드

* * *

재벌 3세.

부러워 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때론 승계순위에서 밀린 이들에게는 가혹한 자리이기도 했다.

오기원이 그랬다.

태생이 왕좌를 향하게끔 가르침을 받은 덕에 태어나서 기고 걷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경쟁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삼남이라는 위치는 시작부터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순서였다.

거기에 능력이 위의 형제들과 비등해서도 의미가 없었다.

장남이라는 위치는 이 나라에서 태생적으로 절대적인 유리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대원그룹의 오기원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삼남이라는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애를 느끼기도 전에 견제를 먼저 느꼈다.

자라면서 경영의 기초와 제왕학을 배우면서 노력을 한 적도 있었다.

두각을 나타내고 칭찬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이미 두 형이 이미 한번 지나간 길이었다는 것은 사춘기를 지날 때 즈음이었다.

더 불행한 점은 그의 두 형의 자질이 그에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좋은 유전자와 좋은 음식 좋은 선생들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순서가 달랐던 탓에 삼남인 기원은 이 경쟁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그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은 그나마 케스팅 보드를 쥘 수 있다는 희망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장자가 독주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먼저 태어난 자의 특권인 것이다.

사회에 먼저 발을 들인 덕에 빠르게 자리를 잡아 갔다. 둘째 역시 분전했으나 먼저 자리를 잡은 이의 견제에 번번이 막혔다.

셋째인 그는 더 암울했다.

하나가 아닌 둘의 견제를 받아야만 했으니까.

첫째는 아는 것이다.

케스팅 보드를 쥐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최선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둘째 역시 노선을 바꾼 것이다.

차라리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되겠노라고.

먼저 올라간 이들이 사다리를 걷어찬 것이다.

그때부터 기원은 흔한 재벌 3세가 되었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그게 그가 유일하게 가야 할 길임을 알았던 것이다.

왜 세상의 재벌 3세들이 그토록 입에 오르내리는지 그때 알 수 있었다.

다 같은 재벌 3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같이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살기 위해서 스스로 타락했음을 증명해야 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그조차 믿지 못한 경쟁자들의 함정에 빠진 이들이 결국 방송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그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패자 인증.

그 과정을 밟고 나서야 선두 주자들의 시선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기원 역시 그 절차를 밟아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대침식.

후계 경쟁 따위는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대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의 대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그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소환자.

그리고 강림자.

그건 세상을 멸망에서 구할 구원의 빛이었다.

그리고 패자의 이름을 새기고 있던 기원에게도 새로운 구원의 빛이었다.

대원그룹의 삼남 오기원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그룹의 전면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가 소환자가 되고 강림자를 불러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강림자 역시 그에게 제대로 된 구원이 되었다.

고려 무신시대를 연 이.

정중부.

바로 그의 강림자였다.

정중부는 영웅급을 넘어 전설급이라는 평을 듣는 강림자였다.

실제 무력도 무력이지만, 그 특수한 능력 때문에 더 유명했다.

무인지대.

그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 일정 지역의 강림자들의 전투력이 상승하는 특수능력이었다.

영웅급과 전설급의 차이가 바로 그 특수능력 차이였다.

영웅급이 단지 무력에 한해 평가가 갈린다 치면, 전설급은 거기에 특수한 능력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특수능력이 개인적인 능력에 한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전투력이 올라간다던지 혹은 재생능력이 있다던지 말이다. 여포의 경우는 기마를 탔을 때 적진을 돌파하는 능력이 있다. 포위시에 그 능력이 빛을 발하는 경우다.

그런데 정중부는 집단의 전투력을 상승시켜 주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것이다.

다만 그 능력이 모호한 경우도 있었다.

바로 김경징의 위기감지였다.

이건 딱히 효과가 드러난 능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귀신같은 눈치가 워낙 잘 맞아떨어졌기에 능력이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김경징은 준영웅급에 달한다는 평을 받는 경우였다.

그런 것과 달리 정중부의 특수 능력은 눈으로도 확인이 가능했다.

기원은 자신의 강림자를 이용해 대침식의 시기에 두각을 드러내었다.

처음부터 기업을 등에 업고 시작한 것이다.

난세에는 난세에 어울리는 이가 필요한 법이었다.

대원그룹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가던 삼남이 소환자로서 다시 그룹의 일선으로 나선 것이다.

그 덕에 대원그룹이 대침식의 시기를 지나며 독보적인 마물관련 산업을 일궈 낼 수 있었다.

그 덕에 지금은 후계의 자리에 기원이 일순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아직은 대침식이 끝난 지 오 년도 채 안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환자의 지위는 올라갈 것이 뻔했다.

벌써부터 그 기미가 보였다.

반쯤은 일부 기업형 길드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 선두에 바로 대원길드가 있고 말이다.

특히 다른 기업과는 달리 대원길드의 수장이 바로 대원길드의 후계자라 불리는 기원이었기에 다른 기업형 길드와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그 덕에 기업형 길드의 선두라는 말에 대원길드를 놓는 것이다.

물론 기업형만 두고 보았을 때 말이다.

전설급 강림자를 가지고도 아직 대원길드는 대한민국 원톱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삼대길드에는 항상 꼽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기원은 조급해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날수록 대원길드의 힘은 커질 것이다.

쉽게 협조한다고 해서 그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대외적인 국민들의 선호도는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한다면 대원길드가 추구하는 것과는 멀어진다.

길드는 어려워야 한다.

나라가 부리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부탁해야 한다.

그게 기원이 생각하는 최종적인 길드의 형태다.

그룹을 넘어서서 권력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국가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름의 견제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신컨길드와 전신길드가 있어 국가의 노력이 먹히고는 있지만, 이미 다른 일부 국가의 경우에는 변화가 빠르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연구단지의 권한을 요구하는 게 아니었어.”

기원은 콧잔등을 찌푸렸다.

그 역시 정보를 얻기는 했다. 다만 이번에는 정부 역시 최선을 다했는지 단편적인 정보만 얻을 수 있었다.

이 배경에는 미국 등의 국가기관이 끼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 역시 기업형 길드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국가 중 하나였으니까.

그 덕에 연구단지에 관련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인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 방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늦었다 해도 상관은 없었다.

늦었지만, 이미 어느 정도 효과를 인지한 상황이기에 빠르게 따라 붙으면 되는 일이었다.

위잉.

책상 위에 놓인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무슨 일이야.”

전화를 받은 기원이 묻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게 연구단지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사고라는 말에 기원이 살짝 콧잔등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답했다.

“법무팀 보내.”

-그, 그게…….

사고를 쳤으면 수습하면 그만이다. 그 정도의 힘은 충분히 있다. 그런데 들려오는 음성은 아직 주저함이 있었다.

“자세히 말해.”

기원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게 박광석 팀장과 팀원들이 전원 구속되었습니다…….

“구속까지?”

순간 기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사고를 쳤다지만, 구속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은 구속되기 전에 본사로 연락이 온다.

강림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원칙이었다.

사고를 치면 버텨라.

그 사이에 대원그룹이 법무팀이 출동하는 것이 대원길드의 대처 방식이었던 것이다.

논란도 많았고 초기에는 경찰이나 법무부의 제압시도도 있었지만, 모두 무산이 된 후로는 그들도 협조를 택했다.

개망신이니까.

그리고 소환자 그룹에게 국가권력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퍼지기 시작하면 곤란한 것은 국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쪽이 사고를 치면 그룹의 법무팀과 논의를 하며 협상을 한다.

물론 그때는 대원길드가 어느 정도 양보를 한다. 버티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니까.

그렇게 일단의 룰을 만들어 놨다.

그런데 구속되었다는 말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박 팀장은 뭐했고?”

약간은 성난 음성.

-그게 기절을 해서…….

“경찰이 강제진압이라도 했다는 거야?”

기원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건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동안 만들어 놓은 룰을 경찰 쪽이 깬 것이었다.

“아니지. 강림자는 어쩌고?”

하지만, 이내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소환자가 기절을 할 때까지 강림자가 멍하니 있을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림자가 사람을 공격을 안 한다지만, 소환자의 신변에 위험이 다가오면 대응을 한다.

그리고 대외비지만 대원길드는 별도의 장비를 이용해, 강림자가 살상이 가능하게끔 만들었다.

그건 바로 강림자의 인지를 살짝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을 마물로 인지하게 만든다던지…….

그런데도 잡혔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강림자들은 모두 역소환 되었습니다.

그 말에 기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고가 당했다고?”

이고는 정중부와 마찬가지로 무신정변시대의 무인이었다.

무력이 준영웅급에 가까운 강림자였다.

‘가만?’

순간 일그러졌던 기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조금 전 전화기에서 들려온 말.

‘강림자들.’

이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설마 모두 역소환을 당했단 말이야?”

그제야 그들이 구속된 원인을 이해한 기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그렇습니다.

한껏 굳어진 얼굴의 기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경우의 수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가 소속 강림자의 숫자는 많은 편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수준도 낮았다.

인지도 두 자리를 넘어가는 강림자가 드물 정도.

그렇다면 정부소속 강림자는 아니다.

남은 것은 바로…….

“고덕새끼들?”

순간 그의 입에서 전신길드의 별명이 튀어나왔다.

역사 덕후. 혹은 고구려 덕후라 불리는 전신길드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특히 길드장의 검모잠은 전설급은 아니지만 충분히 무력에서 수위급을 자랑하는 강림자였으니까.

신컨길드가 있기는 하지만, 제외했다.

대원길드와 같은 그룹형은 아니지만, 비슷한 형태의 스폰서쉽 길드였기 때문이었다.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아는 구도원은 딱히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 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들려온 답변은 그를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이게 답니다.

“…….”

들려온 대답에 기원의 얼굴 위로 서늘한 기운이 드리워졌다.

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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