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승자의 포효 소리
“응?”
순간 도원이 빈이 구해 줬다는 말을 다시 상기시키다가 바닥에 떨어진 손도끼를 보았다.
“…….”
그리고 천천히 쥐어 보았다.
현대식 공정을 거친 손도끼다.
즉 강림자의 기억에 의해 생성된 손도끼가 아니었다.
“이, 이거 네가 던진 거냐?”
“우라차차차차!”
쩌엉!
환도를 열심히 막아 낸 빈이 외쳤다.
“네!”
“…….”
빈의 대답은 곧 도원을 구하기 위해 손도끼를 그가 직접 던졌다는 말이었다.
잠시 부르르 떤 도원이 입을 열었다.
“야이! 개%$#야!”
“왜 또 욕설이야!”
이번에는 빈도 공손하게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원의 열폭에는 이유가 있었다.
“열 번에 아홉 번은 빗나가는 놈이 이걸 던져!”
심지어 빗나가는 경우 거의 좌측으로 쏠린 경우가 많았다.
아홉 번에 한 여서일곱 번 정도?
한마디로 자칫 잘못했으면 빈이 던진 도끼가 강림자의 환도가 아니라 도원의 옆머리에 꽂힐 뻔했다는 의미였다.
그게 도원이 욕설을 뱉는 이유였다.
“난! 실전에 강하니까!”
“끄응!”
신음성을 흘린 도원이 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를 구한 건 빈이 맞았다.
따당! 땅!
도끼는 중병기다.
그런데 빈의 도끼는 부루의 것처럼 사람 몸통만 한 무지막지한 크기는 아니지만 최소한 대갈통은 가릴 정도의 크기를 자랑했다.
빈은 그런 중병기를 가지고 원심력을 이용해서 빠르게 공격해 오는 갑사급 강림자의 환도를 막아 내고 있었다.
“하아…… 빌어먹을 자괴감 쩌네.”
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좀 자신감이 붙었다 싶었는데 빈은 그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그때 빈이 악다구니를 썼다.
“쫌!”
“왜!”
“도와야죠!”
빈의 외침에 도원이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강림자가 소환자를 공격하지 않는다고 철석같이 믿고 대담한 짓을 했지만, 막상 저승길을 구경하고 오니 덤벼들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뭐 하냐니까요! 이래서 검은머리 짐승은…….”
빈의 외침에 도원이 벌떡 일어섰다.
“알았다고!”
그렇게 외치더니 몸을 날렸다.
와직!
“커억!”
도원이 몸을 띄우며 니킥을 날렸다. 그 니킥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응?”
순간 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원의 일격은 강림자가 아닌 옆에 있던 광석의 면상을 짓이긴 것이다.
코가 뭉개진 채로 짧은 비명을 내지른 광석이 비틀거리는 순간 빈을 상대하던 강림자가 움찔했다.
그 강림자는 지금 도원을 지키는 것이 일순위였던 것이다.
“어라차아아!”
그 짧은 틈을 빈은 놓치지 않았다.
빈의 대부가 시선을 잠시 빼앗긴 강림자의 목을 향해 내리꽂혔다.
카아앙!
순간 환도를 다시 들어 빈의 공격을 막았지만, 빈의 일격이 더 강했다.
빈의 대부가 환도를 그대로 밀어내고는 강림자의 목을 갈랐다.
퍼석!
둔탁한 소음과 함께 목을 가른 대부의 날이 쇄골을 부수고 가슴팍까지 파고들었다.
상체를 쪼갠 것이다.
순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으힉!”
그 피에 빈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찔했다.
그러자 강림자가 그르륵거리며 환도를 들어 빈에게 다시 휘둘러 갔다.
하지만, 빈이 대부를 놓고 뒤로 몸을 튕겨내며 허리춤에서 손도끼를 뽑아 날렸다.
패래랙!
근거리였지만 빠르게 날아간 손도끼가 강림자의 미간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몸을 튕겼던 빈이 바닥을 뒹굴었다.
쿠당탕!
“어구구!”
빈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벌떡 일어나 다시 손도끼 하나를 손에 쥐었다.
“후아! 오늘따라 잘 맞네?”
빈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애써 웃음을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빈의 얼굴에 쏟아졌던 핏물들이 기화되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후우. 후…….”
동시에 미간에 손도끼를 맞아 비틀거리던 강림자가 다시 환도를 들어 올리다가 그대로 먼지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후우우.”
그 모습에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던 빈의 입에서 길고 긴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승자의 포효 소리다.
“음허허헛! 내가 바로 김경징이니라!”
“응?”
“……에이씨.”
빈은 살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도원은 이미 그쪽을 보고 있었는지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저쪽에서 광석의 강림자인 이고의 가슴이 쩍 벌어진 채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만신창이의 김경징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아 진짜, 부루 저 양반에게 특수훈련이라도 부탁해야지.”
도원의 중얼거림에 걸레짝이 다 된 모습으로 호탕하게 웃던 김경징이 움찔했다.
빈이 상대하던 강림자의 가슴팍에 도끼를 꽂아 넣는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경징을 바라본 것이다.
기본적으로 강림자는 소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지금 이 강림자가 광석의 강림자가 아니지만, 지휘를 받는 상황에서는 마찬가지가 된다.
그 예상대로 도원이 광석을 공격하는 순간 갑사급 강림자는 빈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 광석의 강림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에 보았던 것이다.
그때 김경징이 틈을 노려 일격을 가하는 것을 보았다. 문제는 그의 상태가 걸레짝이었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상대방 강림자인 이고는 갑주에 생채기가 전부였던 것이다.
김경징은 준영웅급으로 인정받는 강림자고, 상대는 준영웅급에 난 약간 모자라는 평가를 받는 강림자임에도 말이다.
“덤빈 게 용하지…….”
도원이 고개를 내저었다.
김경징은 지는 싸움은 안 한다. 그게 특징이다. 그런데 저런 꼴이라니…….
“내 일격을 날릴 틈을 찾고 있었소이다아아!”
“자랑이다.”
“진짜외다아아!”
“어우.”
김경징의 뻔뻔한 대응에 도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경징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납도 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쓸데없는 것만 늘었어…….”
희한하게 실력은 늘지 않고 감정적인 부분만 달라진 김경징의 모습에 도원이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쿨럭! 야이 씨! 뭐해!”
그때 피가 흐르는 코를 움켜쥐고 뒤로 물러서며 몸을 일으킨 광석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이, 뭐, 병…….”
하도 놀랐는지 말이 툭툭 끊어져 나왔다.
그걸 본 빈이 중얼거렸다.
“저거 ‘이거 이런 뭐 병신 같은.’그 말인가?”
빈의 중얼거림에 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 저걸 육성으로 듣는 순간이 있을 줄이야.”
그들이 고개를 끄덕일 때 광석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강림자들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자신들의 팀원을 바라보았다.
팀원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고, 그 주변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고구려 양식의 갑주를 입은 강림자들이 껄렁거리며 포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광석이 이를 악물더니 외쳤다.
“무시해! 어차피 강림자야!”
광석의 외침과 동시에 부루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싹 다 잡아 조지라우.”
둘의 말이 동시에 끝을 맺는 순간 대원길드원이 둘러싸인 강림자들에게 매타작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광석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네, 네놈들이 어떻게 PK모드를…….”
그때 그의 손목에 차가운 금속의 고리가 걸렸다.
찰칵.
“지금 그 말 좀 자세히 듣고 싶은데.”
언제 다가왔는지 서 경위가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있었다.
“에, 그러니까. 억울하면 변호사 선임하던가, 씨부리는 말은 불리할 수 있으니 닥치고 묵비권 하던지. 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살인교사? 여하간 그런 걸로 너 지금 체포한다.”
서 경위가 대충 씨부리자 옆으로 다가온 최 경감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아, 진짜, 그렇게 대충했다가 저번에 도로 놓아준 거 기억 안 나요? 그걸로 한번 강등했잖아요.”
“그거 다시 잡았잖아. 더 큰 걸로. 그건 큰 그림이었다.”
“에이 진짜.”
결국 최 경감이 다시 미란다 원칙을 제대로 고지한 뒤 광석을 이끌었다.
물론 난동을 피우려 했지만, 가우리 병사 하나가 다가와 적극적인 도움을 주어 난동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축 늘어진 광석을 어깨에 떠메고 가야 했지만 말이다.
“캬! 남자네?”
그때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이 경위가 최 경감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러자 옆에 다가온 서 경위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맞아. 내가 목욕탕에서 확인했지.”
“아재는 그만.”
“뭐라는 거야. 기껏 도와줬더니!”
“홍홍홍!”
콧노래를 부르며 최 경감을 따라가는 이 경위를 보며 서 경위가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서 둘이 결혼해라.”
서 경위가 중얼거림에 어기적거리며 다가온 빈이 입을 열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면서요?”
빈의 질문에 서 경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러니까 나만 당할 수는 없잖아.”
“……이, 아저씨 용의주도하네.”
“어쨌든, 이거 심각한걸?”
“예?”
“아까 그 강림자. 너 죽이려고 한 거 맞냐?”
서 경위의 질문에 빈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이게 뭐랄까. 좀 달라요.”
“뭐가?”
빈의 대답에 서 경위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저 아저씨들 같으면 안 죽일 걸 아는데도 오줌이 찔끔 나올 정도로 심장이 쫄리거든요?”
“살기 때문에?”
“예.”
곁에서 본 적이 있어 안다.
정말 죽이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살벌함이 주변에서도 느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것도 훈련이랬다.
살기를 이겨 내는 훈련.
“그런데요, 그게 없데요.”
“그래? 곤란한데.”
서 경위가 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빈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건 없지만, 확실히 막아 보니 사지 중 하나는 절단되겠던데요? 그 정도면 막거나 피하지 않으면 아작난다고요. 시늉이 아니라니까요? 그쵸?”
빈이 말하자, 한쪽에서 몸을 털고 있던 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보였다.
“이거 보면 답 안 나와요? 아우, 이 미친 듯한 반사 신경 아니었으면 이 마물전투복이 아니라 몸땡이가 걸레가 됐을 겁니다.”
“걸레는 입에 문…….”
기어이 한마디 하는 빈에게 도원이 버럭 소릴 내질렀다.
“닥쳐라!”
“어우 귀청이야.”
빈은 귀를 후비적거리며 뒤돌아 섰다.
“에이 씨. 살려 줘도 저 지랄이니.”
“……끙.”
빈의 투덜거림에 도원은 인상을 팍 썼다. 그때 빈의 얼굴이 아직 살짝 창백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야.”
“예?”
“괜찮냐?”
아까 분명 보았다.
강림자의 목과 몸통을 가르는 순간 피가 뿜어지며 창백해지는 빈의 모습을 말이다.
“뭐, 이 정도쯤이야.”
도원의 질문에 빈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도원은 멀어져가는 빈을 향해 나직하게, 아주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고맙다.”
그 순간 빈이 고개를 휙 돌리더니 히죽 웃었다.
들은 게 분명했다.
“소심하시긴. 흐흐흐.”
“야이…… 끙. 됐고! 나중에 내가 밥 한번 산다!”
“콜이요~!”
얼굴이 시뻘게진 도원의 외침에 빈이 히죽 웃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세 발자국이 채 지나기 전에 부루에게 귀를 잡혔다.
“내래 숨통 끊어지기 전까지 방심 말라 했네, 안 했네?”
“해, 해해했네! 아저씨 귀 떨어져요!”
“닥치라우. 기따우로 하다간 모가지가 떨어지갔어.”
“아악!”
그렇게 빈은 부루에게 귀를 잡힌 채 끌려갔다.
“에이 씨!”
그 모습을 본 도원은 빠르게 자리를 이탈하다가 유화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너도 오라신다.”
“어억!”
짧은 비명을 남기고 그 역시 끌려갔다.
두 사람에게는 나머지 지옥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