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구원의 도끼질
여섯이 달려드는 순간 부루가 몸을 일으키며 선두의 강림자에게 대부를 날렸다.
거의 동시에 강림자가 방패를 들어 막았다. 하지만 날아간 대부는 강림자의 방패를 쪼개고도 모자라 상체를 반쯤 갈랐다.
이어 달려나간 부루가 자신을 향해 찔러 오는 창대를 잡아당기며 주먹으로 머리통을 부수었다. 그리고 그제야 허물어져 내리는 강림자의 상체에서 대부를 뽑아 풍차마냥 휘둘렀다.
불꽃이 튀는가 싶더니 부루의 방어에 막혀 무기를 회수하는 두 강림자에게 다가가 대부를 휘둘렀다.
여지없이 갈라지는 둘, 그리고 남은 건 둘이었다.
그 역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찔러오는 환도를 옆구리와 팔뚝 사이로 흘리며 나아간 부루가 머리통을 움켜잡은 뒤 등 뒤로 찔러오던 검에다가 들이대었다.
우둑하고 몸통이 뚫리는 순간 강림자를 방패삼은 부루가 대부를 휘둘러 머리통을 날리고는 방패로 삼았던 강림자의 머리통을 잡았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머리통이 수박마냥 박살이 나버렸다.
그렇게 여섯을 해치우고 처음 있던 자리로 되돌아 갈 때 즈음, 처음 해치웠던 강림자의 몸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아 다시 구경을 이어갔다.
자신들의 강림자가 순식간에 지워지는 광경에 얼이 빠져 반사적으로 감탄사를 흘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대원길드원들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씨파!”
동료에게서도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쪽에서도 욕이 나올 만했다.
“저게 말이 된다고?”
창 한 자루를 들고 종횡무진하는 이가 있었다.
카카캉! 카캉!
창 한 자루를 들고 종횡무진 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천유화였다.
나름 묵갑귀마대 내에서 몽류화와 함께 창술로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둘을 한데 모아 쌍화라 부르기도 했다.
물론 여인네들이 붙인 이름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몽류화는 화려했다.
하나의 창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기술의 다양함과 화려함이 있었다.
반면에 천유화는 속도와 파괴력에 좀 더 특화된 부분이 있었다.
터덕!
유화의 창대가 앞을 내질렀다가 뒤로 도는 순간 창대가 빙그르 돌며 옆으로 달려들던 이의 발목을 걸어 넘겼다.
이어 앞을 향해 창대를 내지른 유화가 다시 창대를 역으로 쥐더니 옆구리 사이로 잡아당겼다.
퍼억!
옆구리를 스쳐 지난 유화의 창날은 조금 전에 발이 걸려 벌러덩 나자빠지던 강림자의 면상을 찍어 버렸다.
그 상태에서 유화는 앞으로 날아드는 공격을 피해 역수로 쥔 창대에 몸을 실으며 뒤로 몸을 맴돌렸다.
콰드득!
강림자의 머리통을 관통한 창대에 유화의 몸무게까지 더해지자 비틀린 소리와 함께 목이 확 꺾여 나갔다.
그렇게 뒤로 몸을 맴돌리며 유화가 발로 하늘에서 아래로 내리 찍었다.
와직!
“큭!”
그 뒤쪽에 있던 강림자의 어깨가 무너져 내렸다. 땅바닥에 발을 디디며 유화가 어깨가 박살이 난 강림자의 손에 쥐여진 검을 후려 차냈다.
퍼억!
옆으로 달려들던 또 다른 강림자의 명치께에 검이 박혀 들어 갔다.
그 사이 강림자들의 공격이 유화의 몸을 스쳤지만, 유화는 그때마다 작은 건 내주고 큰 걸 취했다.
큰 건 주로 목숨줄이었다.
찔러오는 창대를 붙잡아 방향을 틀어 다른 쪽의 강림자에게 되돌려 주면서 다시 자신의 창을 잡아챈 유화의 신형이 낮아졌다.
그 복잡한 가운데에도 그의 눈에 길이 보인 것이다.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칼과 창.
그것을 오히려 마중 나가며, 유화의 몸이 푹 가라앉았다.
숙여서 피한 것은 아니었다. 길게 한 걸음 내딛으며 유화의 체중이 뒤에서 앞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앞발이 강하게 디뎌지며 구부러졌다.
그렇게 체중이 실리는 순간 뒤따라온 창날이 나선을 그리며 앞으로 쏘아졌다.
투툭, 퍼억!
유화가 찔러 넣은 창날은 세 명의 몸통을 하나로 꿰어 버렸다.
그런 과감한 짓을 벌인 유화의 등짝을 향해 칼날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유화의 몸이 자신이 하나로 꿰어 버린 강림자들의 몸통을 타고 구르듯이 빙그르르 돌았다.
한 명, 두 명, 세 명을 지나며 맴돌다가 멈춘 유화의 손에 세 명을 뚫고나온 자신의 창끝이 잡혔다.
그것을 힘껏 잡아당겼다.
후두둑!
창대가 몸통을 관통하며 거북한 마찰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붉은 피가 안개처럼 사라지는 창을 다시 잡은 유화가 한 바퀴 돌아섰다.
강림자들의 대열을 정면으로 뚫고 나온 유화가 창대를 잡지 않은 손으로 남아 있는 적들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마저 와라. 오늘 꽤 재미있네.”
입꼬리를 길게 끌어올리는 유화의 눈동자에는 전장에 굶주렸던 살귀의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으헉!”
구도원이 헛바람을 집어먹으며 나뒹굴었다.
처음 의기양양했던 모습과는 달리 지금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었고, 입고 있던 전투복은 이리저리 갈라져 있었다.
“에이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왜 이리 놀라실까.”
박광석이 히죽 웃으며 도원을 놀렸다.
무기도 가지고 오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공격을 당했기 때문에 더욱 상황이 나빴다.
그때였다.
“받아!”
서준모 경위의 외침에 도원은 몸을 날리며 환도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동시에 갑사급 강림자가 내리긋는 칼을 막아 내었다.
쩌엉!
“으극!”
캉! 카캉! 캉!
도원은 연신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어찌어찌 막아 갔다.
하지만, 힘과 속도에서 밀리는지 위태위태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그럼에도 막아 낼 수 있던 것은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을지부루나 다른 강림자들의 거친 손길을 거의 매일 경험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끝낸 그 경험이 지금 빛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자 광석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예상과 상황이 달리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실수를 가장해서 죽여 버릴까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PK모드라 불리는 살상모드에 대해서는 도원만이 들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가 버티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생각은 옅어졌다.
덜컥 걱정이 드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반병신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자존심에 상처가 컸다.
그런데 밀리는 것은 분명하지만, 막아내고 있는 도원의 모습에 광석은 놀란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환자가 강림자와 싸울 일이 없어 모르긴 하지만, 갑사급이면 C급 마물도 무리 없이 상대해내는 존재다.
그런데 소환자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시간을 끈다는 것이 이해가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는 분명 도원은 강림자의 공격을 제대로 받아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균형은 오래가지 않았다.
도원이 비틀거리는 순간 강림자가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도원이 아까 광석과 같이 뒤로 날아가 뒹굴었다.
그 모습에 광석은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헛!”
놀란 최후배 경감이 재빠르게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어 강림자를 겨누었다.
지금 도원이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것 봐요! 위험하다니까!”
최 경감은 인상을 구기며 서준모 경위를 원망하듯 외쳤다.
처음 도원이 나타난 뒤에 인원을 불러 오려는 최 경감을 말린 것은 바로 서 경위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벌서 적을 정리하고 이쪽을 바라보며 구경중인 을지부루 때문이었다.
정말 위험하면 그가 나설 것이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부루는 태연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승산이 있거나 아직은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 도원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이다.
그때 그들의 곁을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바람이 일었다.
“어?”
“이야! 빠른데?”
멍한 모습으로 자신을 스쳐 지나간 존재를 바라본 최 경감이 멍한 소리를 흘렸고, 서 경위는 환호를 내질렀다.
“저 사람!”
그리고 이정미 경위는 방금 스쳐지나간 이를 알아보고 놀란 음성을 뱉었다.
그렇게 전광석화처럼 그들을 스쳐지나 달려가던 이가 작은 손도끼를 집어던졌다.
“우악!”
도원이 그를 향해 찔러 오는 환도를 피해 몸을 돌리는 순간 어디선가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패래랙!
공기를 가르며 날아온 것은 바로 손도끼였다.
따아아앙!
커다란 쇳소리와 함께 그를 향해 위협적으로 찔러 들어오던 환도가 손도끼에 맞아 튕겨져 날았다.
“역시 우리 장군님!”
도원이 반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피했으면 날래 기어 나와야디! 와 자빠져 있는 거이야!”
도원은 반가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지만, 들려온 것은 욕설이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도원은 빠르게 몸을 일으켜 이탈을 했다.
그때 뭔가가 이탈하는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더니 뒤쪽에서 강렬한 쇳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까앙! 가가각!
물러서던 도원이 몸을 피하면서도 반사적으로 소리가 울려 퍼진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이 씨…….”
도원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다시금 그어지던 갑사급 강림자의 환도는 그대로 허공에 멈추어 섰다.
커다란 도끼가 환도를 막아선 것이다.
그리고 마치 힘을 겨루듯 중간에서 비비적거리며 불똥을 튀겼다.
“어우 씨 이건 뭔 일이야? 이 양반 아저씨네 인원 아니에요?”
커다란 도끼를 들고 난입한 이는 바로 고빈이었다.
아무리 봐도 강림자건만 사람을 공격하는 모습이 위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빈이 아는 한, 사람 알기를 개똥처럼 알고 패기까지 하는 과단성을 가진 이들은 부루와 그 일행들이 전부였다.
그때 그에게서 구함을 받은 구도원이 경고성을 터트렸다.
“조심해!”
그의 경고에 빈이 재빨리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단검 한 자루가 그의 복부를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어구!”
빈이 아래에서 찔러 오는 단검을 엉덩이를 빼며 피해 내었다.
이어 내리누르던 환도의 힘이 빠지자 자유를 얻은 대부를 휘돌리며 이어진 공격을 퉁겨 내었다.
“웃!”
기존에 쓰던 도끼보다는 이편이 더 무거웠지만, 처음 익숙해지면서 쓰게 되었다.
또 그를 주로 가르치는 이가 부루이다 보니 자신도 자연스럽게 대부를 다루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중병기이다 보니 속도면에선 아직 익숙하지 못한 모습이 조금 나타난 것이다.
그제야 부루의 답변이 들려왔다.
“내래 저런 아새끼 데리고 다닌 적 없어야. 날래 처리하라우.”
“그런데 왜이래!”
빈은 연달아 오는 공격을 뒷걸음질 치며 퉁겨 내었다.
그런 빈의 모습을 본 광석이 놀란 눈을 했다.
“아저씨 이거 아저씨네 꺼에요?”
그의 질문에 광석이 살짝 얼굴을 굳히며 외쳤다.
“문제가 좀 있는 듯한데…….”
도원에게 하던 것과는 다른 행동이었다.
“저거 구라야!”
“에이 사람 좋게 생긴 사람인데요?”
“너, 내 말 안 믿냐!”
“주작러 말을 누가 믿냐고요!”
빈의 외침에 도원이 쌍욕을 퍼부었다.
“야 이 개#$%[email protected]%$&^$야!”
그 쌍욕을 듣고 난 빈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니면 말지 왜 욕을 하고 지랄이야.”
“들린다고!”
“괜히 구해 줬나?”
“……젠장.”
빈의 말에 도원은 인상을 구겼다. 도와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