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73화 (73/305)

제73화 강림자는 인간을 해치지 못한다…….

“팀장 나부랭이가 무슨 감투랍시고…….”

도원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어기적거리며 걸어왔다.

그 뒤에는 김경징이 늠름하게 걸음을 옮겨왔다.

“구도원…….”

도원을 보며 광석은 굳은 얼굴을 했다.

“구도원? 니네 길드장이 그리 가르키디? 내가 니 친구냐?”

도원이 사나운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그러자 순간 광석이 움찔했다.

‘무슨…….’

도원을 한 두번 본 게 아니다.

삼대길드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만큼 큰 행사나 일이 있으면 종종 마주치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느낌이 달랐다.

당시에는 그냥 승부조작하다 쫓겨난 프로게이머 놈이 운이 좋아 껄렁거리고 다닌다고 생각했다.

실제 행동도 길드장이라고 하기에는 가벼웠고 말이다.

그렇다고 무시할 이는 아니었다.

전신길드처럼 무모할 정도로 전투에 맹렬하게 뛰어드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마물과의 전투에 있어서는 길드들 중에서 가장 임기응변이 빠르고 전술적인 대응을 가장 잘하는 길드가 바로 신컨길드였다.

물론 전술적인 면에서는 대원길드 역시 모자람이 없다고 자부했다.

대원길드의 전략지원팀은 실제 군 장교출신들로 구성된 이들이 피드백을 해 주면서 지휘체계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따지면 민간군사업체인 PMC의 대 마물 버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신컨길드장의 직접적인 전투 능력에는 손색이 있었다.

전략지원팀이 아무리 좋은 전술체계를 만든다 해도 일선 지휘관이 그것을 제때 적용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런 신컨길드의 길드장인 도원의 분위기가 이전과 딴판이었다.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대원그룹의 용병출신 교관의 모습처럼 날카로운 기도가 언 듯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보니…….’

광석의 눈이 이번에는 그의 옷을 스쳤다.

그가 처음 나타났을 때에는 놀라서 못 보았는데 꽤나 더러웠다. 흙먼지는 물론이고 여기저기 찢어지고 그걸 다시 보수한 흔적이 있었다.

소환자의 마물전투복은 질기고 강도 또한 높아 잘 헤지거나 찢어지지 않는데 말이다.

“대답도 않아고 눈깔부터 훑는 거 봐라. 씨팔 내가 이래서 대원길드 새끼들이랑 상종도 하기 싫은 거야.”

“말 함부로 하지 맙시다. 그쪽이 내 상관도 아니잖소.”

“미친 새끼들. 니네는 5기야.”

“5기?”

갑자기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5기라는 말에 광석은 물론이고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2기고.”

도원의 말에 이제야 뭔가 눈치를 챘다. 마치 해병대마냥 기수를 붙이는 모양이었다.

“풉!”

그때 누군가가 웃음을 흘렸다.

도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돌아 갔다.

“웃기지? 이제 안 웃기게 해 줄 거야.”

그렇게 말한 도원이 뒤에 있는 김경징에게 말했다.

“뭐해. 교관님에게 엉기는 놈들인데 구경할 거야?”

도원의 말에 김경징이 과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할 것이오.”

“응?”

“그는 홀로도 능히 이겨낼 수…….”

“왜 이래. 쪽팔리게. 제발 우리 그러지 좀 말자. 응?”

“…….”

도원의 말에 김경징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 김경징에게 도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순순히 따라온 건 이기는 편이라서잖아. 우리 선수끼리 그러지 말자. 수틀리면 다시 보낸다.”

주어도 없이 다시 보낸다는 말만 뱉었지만, 김경징은 평소와 다르게 전광석화 같이 그의 허리에 매여 있던 칼을 뽑아 들었다.

“사내로써 전장에 임해 물러섬이 없어야 하는 법 아니겠소!”

김경징의 돌변한 모습에 놀란 것은 도원이 아니었다.

“뭐야? 사시장군이 왠일이야?”

“김경징 맞아?”

그건 바로 대원길드원들이었다.

광석 또한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강림자도 미치나…….”

그의 중얼거림에 도원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미치진 않는데 개미 눈물만큼씩은 변하더라.”

“그보단 좀 더…….”

뒤에서 끼어드는 김경징의 모습에 도원이 눈알을 부라렸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광석은 또다시 놀랐다.

‘김경징이?’

솔직히 김경징이라는 강림자가 자신의 강림자인 이고보다도 윗줄로 평가를 받는 편이었다.

실제 붙어 본 적은 없지만, 인지도 점수도 더 높았고, 그의 위기 감지 능력 특성은 꽤나 알아주는 귀한 능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 전투력은 그리 많이 보인 적이 없기에 자신의 강림자가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광석이었다.

그러나 저 행동은 이전과 달랐다.

인지도와 급수가 높을수록 행동에서 더 어색함이 사라지고 자연스럽다.

그런데 지금 김경징의 행동은 이전에 봤을 때보다도 더 자연스러웠다.

심지어 준영웅급에 달한다는 자신의 강림자와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김경징은 준 영웅급이고, 이고는 준 영웅급에 달한다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그 말은 준영웅급이라고 확정하기에는 약간 모자라는 수준이지만, 그 정도면 어디 가서 준 영웅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신컨길드까지 끼면 일이 더 커진다는 건 알건데.”

김경징이 천유화의 옆으로 와서 서자 광석이 이를 갈며 경고를 한 것이다.

하지만 경고를 하면서도 김경징을 살폈다.

김경징이 처음과 달리 빼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승율 100%.

그게 김경징의 대결 성과다.

강해서라기보다는 이길 싸움만 하기 때문이었다.

이기지 못할 싸움이라면 아예 나서지 않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사시장군이라 불리겠는가.

다른 건 몰라도 김경징의 눈깔은 정직하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런 김경징의 눈알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전설급은 절대 아닐거다. 그랬으면 동네방네 소문났을 것이니까.’

천유화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뒤의 인물을 보았다.

‘십여년 전 테러리스트와 비슷한 외모의 존재. 강림자의 조짐이 이미 그때 있었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

일부에서는 십년전 서울한복판에서 전투를 벌인 그들을 보고 강림자들이 세상에 일찍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진 것이라는 말이 대침식 시기 초에 돈 적이 있었다.

물론 금방 현실 앞에서 묻혔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봐야 셋. 일단 조지고 생각한다. 이대로 기 싸움에 밀리면 병신 된다.’

광석은 이곳의 분위기가 기묘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도 당당한 경찰과 강림자 셋. 그리고 신컨길드의 도원이었다.

도원 역시 손해 볼 짓은 잘 안 하는 편이기에 여기서 눌리면 앞으로 고달플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잘난 강림자들 싹다 토막내 주지.’

“울프 팀. 지금부터 적대하는 이들에 대한 응징에 들어간다.”

“예!”

광석의 외침에 여기저기서 답변이 들려왔다.

광석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는 선제적 상황이 아니며 방어적 차원에서 손을 쓰는 것임을 미리 밝힌다!”

마치 사방에서 다 들으라는 듯 외쳤다.

그러면서 속으로 명령을 전달했다.

‘강림자들만 싹다 토막쳐버려!’

동시에 이고가 움직였고, 대원길드의 울프팀 소속 강림자들은 이미 평소에 익숙한 듯 이고의 좌우로 펼쳐지며 나아갔다.

이고는 유화를 향해 내달리다가 가로막혔다.

바로 김경징에게 말이다.

쩌엉!

막아선 김경징의 칼에서 시작된 강렬한 울림에 다들 이목을 집중했다.

물론 그러는 사이 김경징을 스치듯 지나 강림자들이 유화를 향해 일부가 공격을 시작했다.

나머지 일부는 그마저 스치고 지나서 부루를 향해 내달렸다.

광석은 피식 웃으며 강림자 하나를 호위 삼아 최 경감 일행을 향해 다가갔다.

“형씨. 이거 다 당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걸 알아야 해.”

“누가 그러는데?”

그때 그의 앞을 가로 막은 건 도원이었다.

“에이씨 진짜…….”

도원이 가로막는 순간 광석은 그대로 그에게 손을 썼다.

나름 몸집도 좋고 길드에서 격투관련 훈련도 받았기에 나름 할 만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다.

뻐억!

강렬한 타격음과 동시에 광석의 몸뚱이가 뒤로 튕겨졌다.

한 바퀴 구른 그가 배를 움켜잡고는 헛구역질을 했다.

그런 광석을 보호하듯 강림자가 뒤로 달려와 그의 앞에 멈추어 섰다.

“이런 병신! 저 새끼를 쳐야지 맞은 다음에 뭐하는 짓이야!”

광석이 버럭 소릴 질렀지만 강림자는 몇 걸음 나가다가도 멈칫거렸다.

“이게 정상이긴 한데 말이지.”

강림자는 소환자를 공격하지 못한다.

마치 옛날 미국의 작가 아시모프의 로봇의 삼원칙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원칙을 발톱의 떼만큼도 신경 안 쓰는 강림자도 있기는 하다.

도원이 뒤를 슬쩍 바라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쌈중에 어딜 보는 거이간?”

“끄응.”

도원이 신음성을 흘리다가 순간 뒤를 다시 돌아보았다.

분명 부루에게도 강림자 몇이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주변에 흔적이 없었다.

부루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자리에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도원은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겨우 몸을 일으킨 광석이 그를 향해 핏발선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너 후회 해도 소용없어.”

광석이 이를 빠득 갈았다.

하지만 도원은 전혀 걱정 혹은 후회 따위는 되지 않았다.

이제 그도 폐급 이상을 넘어 E급 마물을 상대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소환자 정도는 아무엇도 아니었다.

물론 눈앞의 강림자는 딱 봐도 갑사급은 되어 보였지만, 어차피 자신에게 공격을 못 한다.

그때였다.

“조심해.”

최 경감의 목소리다.

“아재 장난해요? 조심은 개뿔.”

이어서 서 경위가 경고를 다시 날렸다.

“아까 이곤지 뭔지 하는 강림자가 최 경감 손목 날리려 했다.”

늦게 이곳에 온 도원을 위한 배려였다.

해를 아예 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인지도가 상승할수록 차이가 있었다.

하다못해 조직폭력에 활용된 장수급 강림자도 있을 정도다.

“걱정 마쇼.”

도원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딱히 별로 친한 건 아니지만, 껄끄러운 인간들이었다.

솔직히 부루와 친분이 있으면 다 껄끄럽다. 그때 그의 눈앞에 선 광석이 입술을 달싹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걱정을 말긴. 지금부터 걱정해야지.”

그렇게 말한 광석이 자신의 팔뚝에 대고 입을 열었다.

“부팀장. 니 강림자 PK모드 오픈해. 이 새끼 지워 버릴란다.”

-책임은 팀장이 지는 겁니다.

“알아.”

-오픈합니다.

손목의 소환자용 패드를 가지고 통화를 나눈 광석을 보며 도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작은 목소리지만,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이게 단련을 하다 보니 귀까지 밝아져 버린 탓이었다.

“PK? 그거 설마 내가 아는 그거냐? 플레이어 킬?”

도원의 질문에 광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도원의 입이 찢어지듯 올라가며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씨파 귀도 좋네.”

동시에 머뭇거리던 강림자가 천천히 도원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아까와 다른 눈빛이었다.

마치 망설임이라는게 없는 듯한 눈빛. 마치 마물을 눈앞에 둔 것마냥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도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에이. 농담이지?”

도원을 향해 갑사의 환도가 날아들었다.

“저, 저게 말이 돼?”

부루에게 달려갔던 강림자는 총 여섯이었다.

그러나 그 여섯은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씨파 순삭이네.”

모두가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그 여섯이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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