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대원길드(2)
서 경위는 최 경감의 목에 드리워진 칼날을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이게 무슨 웹소설도 아니고…….”
대침식이 있기 전 유행했던 헌터물이라 불리던 소설들을 보면 하나같이 세상의 중심이 바뀐다.
헌터들이 세상의 핵심이 되고 그들이 갑중의 갑이 된다.
물론 현실과 소설은 다른 법이다. 하지만, 대침식이 발생하고 끝난 지 이제 사 년이 넘어갔다.
점점 소환자들의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모두가 힘을 합쳐 위기를 넘기던 때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아직은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꼴을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하긴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라고도 하니.”
“……그래서 소설 속 캐릭터 마냥 후배 모가지에 칼날이 드리워져 있는데 언제까지 떠들고 계실 겁니까.”
“응? 아, 미안.”
최 경감의 말에 서 경위는 그제야 다시 정신을 현실로 복귀시켰다.
“그런 걸 보통 설명충이라고 합디다.”
그때 사내가 입에 물려있던 삼단봉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최 경감은 다시 밀어 넣으며 말했다.
“다치십니다.”
“야, 니 목에 피난다.”
“…….”
최 경감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대원길드의 박광석은 속에서 열불이 끓어올랐다.
선발대로 그의 팀이 선택되어져 온 것만 했을 때도 나쁘지 않았다.
출세의 지름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원길드는 철저히 능력제였다.
그 능력의 대상은 단순한 전투에 한하지 않았다.
물론 강림자가 강하면 그만큼 유리한 것은 맞았다.
그러나 대원길드는 대원그룹산하 길드. 그에 맞는 실적은 단순한 사냥과는 달랐다.
희한하게도 이곳의 정보는 대원 그룹에서도 제대로 캐내지 못했다.
물론 고빈이라는 소환자와 강림자로 인해 실험이 진행되고 있고, 그와 연관되어 전신길드와 신컨길드가 함께 연계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알 수 있었다.
다만 그게 한계였다.
정보의 차단이 의외로 심했기 때문이었다.
수박 겉핥기 정도의 정보가 전부였다. 삼대길드라 하지만 대원길드고 밀린 이유는 명확했다.
그들의 모기업이 노골적인 자본 친화적이라는 부분 때문이었다.
실제 정부와도 종종 각을 세우는 일이 있었던 곳이 바로 대원그룹이었다.
그런 덕에 일반 소집이 시작될 때까지도 대원길드에는 아무런 협조 공문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일반 소집 역시 별다른 공문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영상을 보고 온 것처럼 소환자가 침식지의 영상을 담기 위해서는 일정한 라이센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
물론 그게 얄팍한 부분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그럼에도 대원길드는 끝까지 기다리다 못해, 정식으로 공문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겨우 따낸 지위가 바로 이런 특별소집이었다.
말이 좋아 특별소집이지 그들만 별도로 라이센스 과정을 밟겠다는 것뿐이었다.
결국 나름 자존심이 상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그 첫 번째 선택을 자신의 팀이 맡았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뭔가 딱딱하기 짝이 없고, 한쪽에 몰아 놓더니 대기하라고만 했다.
실내도 아니었다.
마치 운동장 같은 곳 한쪽에 세워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십분이 지나도 별다른 안내가 없으니 슬슬 기분이 상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때에 광석이 썸 타던 여자를 만났다.
작전 때 만난 이정미 경위였다.
나름 사이도 좋았다.
그리고 그녀의 성격도 마음에 들고 더 마음에 든 것은 얼굴도 몸매도 미인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긴급 균열 협조를 거절하면서 둘 사이가 삐끗거리기 시작했다.
협조를 거절한 것은 회사방침 때문인 것도 맞지만, 귀찮아서이기도 했다.
사실 그 부분은 어느 정도는 팀장의 재량껏 할 수도 있었다.
다만, 상황에 따라 대원길드는 순번을 정해 긴급 요청에 응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아예 그런 것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대원그룹이라 해도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순번을 정하는 것 외에는 팀장의 재량에 따라 출동하는 상황을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거절한 것에는 전투수당이 별도로 붙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그렇게 전투를 하게 된 후에는 일정한 정비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 사이 그룹차원의 출동이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비번으로 빠지게 된다.
전투수당뿐 아니라 인사고과에서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날리는 것이다.
그래서 광석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을 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후였다.
다른 핑계를 대고 출동이 어렵다고 했었는데, 당시 그는 팀원과 클럽에서 회식중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사람이 하필이면 이 경위의 지인이었던 것이다.
그 덕에 썸이 썸으로 끝났던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게 전부였다.
나름 변명을 해보았지만, 나중에는 번호를 차단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와중에 그녀를 여기서 만났으니 아는 체를 안 할 수 없었다.
당시에 그 일로 팀원은 물론이고 다른 팀장들에게까지 놀림 받은 게 저절로 떠오른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
굳이 그녀와 다시 잘 해보겠다는 감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썸에서 끝난 것이 자존심이 상했었기에 어떻게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던 와중에 지금 입에 전기 삼단봉을 물고 개망신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열 받는 것은 이 와중에 그의 화를 돋운 인간들이 태연하게 노닥거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목에 상처가 났음에도 말이다.
그의 시선이 이 경위의 얼굴을 향했다.
‘이런 씨…….’
그녀가 같이 웃고 있었다.
순간 이성을 붙잡고 있는 끈이 뚝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강림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손목을 잘라!’
팀장이 된다는 것.
실적도 실적이지만, 기본적으로 실력이 된다는 의미였다.
그 실력의 범주에 명령을 입밖으로 내지 않아도 강림자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포함이었다.
순간 그의 강림자인 이고가 섬전처럼 칼을 휘둘렀다.
퍼억!
동시에 팔뚝이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그의 입에 물려 있던 삼단봉은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머, 머야!”
광석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거이 뭔 지랄인 거이네?”
을지부루가 활을 내리며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어르신!”
부루의 등장에 가장 반색한 것은 바로 서 경위였다.
부루가 쏘아낸 화살은 최 경감의 팔뚝을 자르려던 이고의 팔목을 관통한 것이다.
부루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모습에 당황해 하던 박광석이 잠시 이목이 집중된 틈을 타 최 경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퍼억!
“이씨!”
옆으로 밀려나며 최 경감이 욕설을 뱉었다. 그런 그를 이 경위가 부축하며 목에 자신의 옷을 당겨 가져다 대었다.
“야야야! 속옷 다 보인다!”
“그러니까 하는 거지. 속옷 안 입었으면 이랬겠어?”
옷을 잡아당겨 올린 탓에 배꼽은 물론 브레지어까지 일부 보였지만, 이 경위는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오히려 당당한 그녀의 말에 최 경감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껍데기만 벤 거 같네. 그나저나 미친거 아냐? 팔목을 자르려고 해?”
“그, 그건 강림자가 소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거란 말이다!”
광석의 항변에 이 경위가 혀를 찼다.
“지랄한다. 심상으로 명령 전달한 거, 모를 줄 알아?”
“증거 있어? 있냐고!”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 속으로 명령을 내린 거겠지.”
광석의 외침에도 이 경위는 그를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때 서 경위가 부루에게 달려가 과하게 굽실거리며 보고를 했다.
“기래?”
부루가 서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피차 이만 합시다.”
광석이 머리가 좀 차가워졌는지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
그러나 부루는 이제 시작인 듯 한 걸음 나서며 입을 열었다.
“군령도 없네?”
“군령?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뒤쪽에 있던 소환자중 하나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부루가 그를 쏘아보았다. 부루의 시선이 닿는 순간 소환자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한쪽에 서있던 강림자 하나가 부루를 향해 달려왔다.
소환자가 정신적인 타격을 입자 스스로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부루가 나설 것도 없었다.
뻐억! 뻑뻑! 뻑!
연달아 울리는 타격음에 달려던 강림자가 온몸을 비틀어 대었다.
무기를 들고 있었음에도 단 한 차례도 막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는 크게 가슴팍을 걷어차여 뒤로 날아가 뒹굴었다.
“쯧.”
혀를 차며 나타난 이는 바로 천유화였다. 그는 창 한 자루를 들고 혀를 찼다.
“이건 뭐 개판이구만.”
그의 말에 대원길드의 소환자들이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이내 다들 얼굴이 굳어졌다.
“저거 강림자야?”
“뭐야?”
“혹시 그거 아냐? 침식균열에서 합류했다던 그거?”
“그거어?”
어디서 들은 건 있는지 유화에 대해 말이 나왔다.
그때 광석의 강림자인 이고가 팔뚝에 박힌 화살을 손으로 뽑아 내었다.
화살이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살점을 뜯어내며 뽑혀나왔다.
피가 튀었지만, 이내 기화되어 사라졌다.
“물러서라.”
무미건조한 음성.
화살이 팔뚝을 관통당하는 부상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짓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이 경위가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무장급 이상이에요. 준 영웅급 혹은 그에 조금 못 미치는 인지도를 가지고 있어요.”
“알아.”
그녀의 말에 서 경위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천천히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며 걸어 나오는 이고와 그리고 다른 대원길드의 강림자들.
그 숫자가 서른이 넘었다.
반면에 이쪽은 부루와 유화 둘뿐이었다.
그럼에도 서 경위나 최 경감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알면서 이래요?”
이 경위는 부루의 강함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알고는 있겠지만, 그게 어느 정도까지인지를 모른다는 게 맞을 것이다.
초기에 노출된 것 이외에는 거의 비밀로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비밀이라 해도 침식균열에 참석했던 소환자 일부는 부루의 능력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특히 여포 봉선을 꺽은 것은 철저히 비밀로 취급되는 사안이기도 했다.
“애미나이는 모가지나 잘 싸매라우. 피를 막은 거이네 짜내는 거이네?”
“엇!”
순간 이 경위가 놀라 소리를 쳤다.
급히 끼어들다보니 상처를 막는다는 것이 상처 밑을 눌러 피를 짜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 현기증 나.”
“꺄악! 어떻게 해!”
“잘들 한다.”
최 경감과 이 경위를 보며 서 경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유화가 창대를 단단히 쥔 채로 다가오는 강림자들을 막아섰다.
“여기서 멈추면 살려는 주지.”
그의 경고에도 강림자들은 멈추지 않고 다가와 천천히 늘어섰다.
마치 반포위를 하는 듯한 모습.
하지만 아직 이고를 제외하고는 무기를 뽑은 강림자는 없었다.
일촉즉발이었다.
그때 광석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지금 당신들 공권력 남용한 거 알아? 내가 대원길드 팀장이야!”
“지랄 한다.”
그때 또 들려오는 목소리.
광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내 곤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는 신컨길드의 길드장인 구도원이 김경징과 함께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