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인생의 주인공
* * *
윤동빈은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반사적으로 손을 가져갔다.
“응?”
진동음은 문자가 아니었다.
“누구더라?”
파프리카 티비 생방알림이었다. 문제는 그가 즐겨 보던 방송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누르고 들어간 화면에 나온 얼굴을 본 동빈은 그제야 누구인지 기억했다.
“비니네?”
-빈하! 여러분들의 비니가 돌아왔습니다아아!
“에이.”
여자 BJ라면 모를까 굳이 이 얼굴을 다시 볼 필요가 있나 싶었다.
물론 재미있기는 했다.
강림자 먹방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가지고 나름 시트콤처럼 표현한 게 나름 재미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다.
화면을 끄려는 순간 그의 손길이 멈칫했다.
-이 칙칙한 흙! 여기가 어디인지 아시는 형님들 계십니까?
말 그대로 칙칙한 색깔을 띠는 흙. 동빈은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침식지?”
-네! 침식지 맞습니다!
“이젠 하다하다 침식지냐?”
동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침식 이후 저런 색의 흙을 본다면 백이면 백 다 침식지를 떠올릴 것이다.
뉴스나 다른 매체를 통해 지겹게 봤기 때문이었다.
대침식시대 이후 침식지는 인류에 현존하는 위협이었기 때문이었다.
뇌리에 각인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동빈이 어이없어 하는 이유는 침식지에서 방송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막말로 일이 잘못되어 소환자가 사망사고라도 나면 그건 스너프 필름 보는 것 이상으로 끔찍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초기에는 이런 방송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소환자가 죽어 나가는 장면을 목격한 시청자들이 패닉에 빠지는 사건이 연이었다.
결국 침식지에서는 허가된 방송을 제외하면 개인적인 촬영은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형님들이! 이래도 못 믿나?
끄려던 동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빈이 화면을 돌려 보여 준 장면은 그가 알고 있는 장벽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배경을 입히는 크로마키촬영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보는 순간 구분이 된다.
“세트장 같은 거 아냐?”
그럼에도 동빈은 믿지 않았다.
그때 빈이 말을 이었다.
-짜잔 기동대 아저씨들!
이번에는 한쪽에 바이크와 함께 완전무장한 기동대원들이 몇몇은 얼굴을 피하고 몇몇은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날리고 있었다.
“어?”
이건 좀 과했다.
조작방송이라고 하기에는 배경도 그렇고 기동대원들의 모습도 이질감이 없었다.
그때 동빈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사람 뉴스에서 자주 나왔던 군인인데?”
-강문호 대위님 인사해야죠.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어떻게 여기에 왔을까요?
-그, 이런 건 니가 하면 안 되냐?
-여기 챗창 봐요! 확 달라졌구만! 여기가 침식지라 해도, 내말 안 믿는다니까?
동빈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레알?”
듣는 사람도 없는데 홀로 중얼거린 동빈은 점점 방송에 빠져들어 가기 시작했다.
침식지는 보아 왔지만, 이런 생방은 처음이었다. 예전 참사가 벌어지던 시기의 방송은 그도 겪어 본 적이 없으니까.
시답잖은 말이 지나가더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다!
-엇! 여러분 마물이 옵니다! 아이씨, 타이밍 하고는. 오늘 방송 주제는 사냥!
화면을 보며 빠르게 외친 빈이 그대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다른 이들이 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사이 카메라가 빈의 등을 비추는가 싶더니 달려오는 무언가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쿠라우탄?”
동빈의 눈이 커졌다.
폐급일지라도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마물이 바로 쿠라우탄이었다.
능력을 따지면 게임의 오크나 고블린 같은 취급을 받는 존재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쿠라우탄은 공포의 존재였다.
가장 먼저 튀어나온 개체들 중에 그 수가 제일 많았던 마물이었다.
그만큼 많은 공포를 각인시킨 개체였다.
많은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죽음을 당한 게 쿠라우탄에 의해서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어? 어어어!”
동빈은 자신의 일도 아닌데 창백한 얼굴로 ‘어어.’라는 말만 반복했다.
달려 나간 빈이 빠르게 맴돌며 쿠라우탄의 허리를 도끼로 베는 장면이었다.
제법 가까운 거리였다.
쿠라우탄의 비명소리가 영상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렇게 허리를 베며 맴돈 빈이 도끼를 그대로 하늘위로 올리더니 내리찍었다.
퍼억!
이번엔 비명도 없었다.
-이거 모자이크 해야 하는 거 아냐?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뭐. 요즘은 뉴스도 이런 건 그냥 내보내잖아.
카메라를 든 이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나름 목소리를 줄인다고 했지만, 카메라에 내장된 마이크 성능이 좋은지 그대로 들려오고 있었다.
챗창은 불이 붙었다.
국뽕아재 : 우리 비니 오지고요! 이번엔 영화냐?
대갈장군 : 미친 실화냐?
꼬미꼬북 : 설마. 비니를 믿나? 왜? 저번에 강림자가 밥 먹는거도 믿지?
소환킹 : 저, 저거 진짠데?
댓글 반응은 반반이었다.
자신처럼 진짜로 느끼는 이와 잘 연출한 것으로 보는 이들.
그때 빈이 후다다닥 달려왔다.
-아놔! 안 믿네 이 양반들! 아저씨! 그러니까 가까이 와서 찍었어야죠!
-전체만 나오면 된다며?
-하아. 다큐 아저씨들 지원해달라고 해야지. 쯧, 자 저거 진짜고요, 오늘 방송은 소환자 마물 사냥입니다.
국뽕아재 : 역시 빈이야! 참신하다!
쁘니쁘니 : 저거 진짜 같옹
소환킹 : 진짜 맞아 이 멍충이들아! 나 소환자잖아!
꼬미꼬북 : 네. 다음 알바.
“소환자 마물사냥?”
동빈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역시 소환자다.
다만 강림자가 없어 예비로 분류된 이였다.
그래도 침식지 견학도 간 적이 있었고, 교육 때 마물관련 영상을 지겹게 본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저게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건 생방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그만이 아니었나 보다.
〈BJ꼭정이 님이 파프리카 100개 선물하셨습니다.〉
저거 진짜다. 내가 인증한다.
국뽕아재 : 어? 꼭형이네?
꼬미꼬북 : 레알? 저거 레알이라고?
“거봐 맞네!”
동빈은 탄성을 터트렸다.
산적두령 꼭정이는 강림자를 이용한 BJ 중 하나였다.
강림자에 관한 팩트를 방송으로 만들어 내던 이였다.
구독자 수도 적지 않아 공신력도 있었다.
그리고 중소길드 소속이지만 침식지도 꾸준히 들어가는 소환자로 알려져 있었다.
꼭정이 : 나사 빠진 인간 같지만 저거 괴물이다.
국뽕아재 : 비니가 소환자가 아니고 강림자였음?
꼬미꼬북 : 그런 거 치고 너무 똥꼬발랄한데?
꼭정이 : 말했잖아. 인간이라고. 소환자 맞아.
“……소환자?”
동빈은 할 말을 잃었다.
이걸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소환킹 : 가능하지 않음? 폐급은 총알 맞아도 죽고 차에 치여도 죽는 애들인데.
쁘니쁘니 : 그래도 진짜면 대바악!
그때였다.
누군가가 카메라를 어지럽게 돌리며 외쳤다.
-젤리베어다!
-헐? 저게 몇 마리야?
“혼합형 침식지대로 간 거였어?”
동빈은 놀란 눈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일반형이라면 종류가 하나 혹은 두세 가지가 주로 나온다. 그러나 공통점은 거의 비슷한 급수가 나온다는 점이다. F급이면 F급 혹은 그보다 조금 강한 개체가 나온다.
그러나 젤리베어는 그보다 상위다. 상위 개체가 나오는 곳이라면 혼합형이라 불리는 침식지대였다.
심지어 저 개체 역시 이름 때문이라도 유명한 것 중 하나다.
말 그대로 젤리 같은 형태였지만, 총알이 박히지 않는 대표적인 개체 중 하나였다.
심지어 저지력도 안 먹혀서 날아간 유탄도 제자리에서 튕겨 내는 괴물이었다.
-오! 딱이네! 오늘 형님들 오늘 미션! 저거 다 죽이고 오기!
소환킹 : 니가 뒤져! 이 미친놈아! 폐급이랑 같은 건 줄 알아!
국뽕아재 : 응? 이게 그 유명했던 실시간 스너픈가?
꼬미꼬북 : 비니 튀어!
BJ꼭정이 : 저 인간 괴물이라니까. 함 봐라.
시청자들의 외침을 외면한 빈이 그대로 젤리베어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카메라도 아까와 달리 근접해서 찍기 시작했다.
* * *
“후웁!”
고빈은 그대로 도끼를 휘둘렀다.
뻐억!
그의 도끼질에 젤리베어의 몸뚱이가 터져나갔다.
이내 뒤따라오는 젤리베어를 한쪽으로 비껴 가며 도끼로 다리를 잘라 내었다.
뿌작!
역시나 젤리 같은 파편이 튀며 익숙하지 않은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장난스럽게 방송에 임하던 빈의 얼굴은 어느새 진지해져 있었다.
‘되끼는 한 방이야. 두 번은 생각 말라우.’
귀에 못이 박히듯 들었던 부루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으쌰아아!”
빈은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또 다른 젤리베어와 그 뒤의 젤리베어를 보곤 도끼를 휘돌렸다.
뻐어억!
어김없이 젤리베어의 몸뚱이가 터져나갔고, 그 회전력을 이용한 빈이 그대로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비틀며 봐 놓았던 젤리베어를 향해 도끼를 찍어 내렸다.
푸와아악!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젤리베어가 그대로 반쪽이 되어 양 옆으로 터져 나갔다.
“하아아. 미치겠네.”
빈이 입가를 끌어올리며 도끼를 털었다.
묻어 있던 젤리베어의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자꾸 중독된단 말야.”
방송이 혹하긴 했다.
하지만, 이 느낌 나쁘지 않았다. 뭔가 관종이라는 소리는 듣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마치 자신이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쾌감이 밀려왔다.
변두리 인생이었던 그였기에 더 그런지도 몰랐다.
일격에 죽지 않은 개체 둘이 꿈틀거리며 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몸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 채 다가오는 모습이 마치 공포영화의 괴물처럼 보였지만, 빈에게는 아니었다.
빈이 허리춤에서 손도끼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
동시에 몸을 날리며 손도끼를 투척했다. 그리고 허공에서 도끼를 그대로 휘둘렀다.
퍼퍽!
거의 동시에 울려 오는 타격음.
손도끼가 뒤쪽에 다가오던 젤리베어의 머리통을 관통하는 동시에 빈이 휘두른 도끼가 그대로 목을 쳐 버렸다.
그리고 잘려진 목이 포물선을 그리며 카메라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나이샷.”
바닥에 내려서며 빈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 * *
김동문은 놀라 일어서 있었다.
그가 보던 화면에는 젤리베어의 머리통이 바닥을 구르며 카메라를 든 사람의 발치에 와서 멈추고 있었다.
“……대박.”
동문은 아직도 놀람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젤리베어 네 마리.
그걸 그냥 마치 영화처럼 처리해버린 BJ비니가 달라 보였다.
“쩐다.”
이미 챗창은 난리가 났다.
〈〈BJ꼭정이 님이 파프리카 1000개 선물하셨습니다.〉〉
〈〈국뽕아재 님이 파프리카 10개 선물하셨습니다.〉〉
〈〈꿀꼬부기 님이…….〉〉
창에는 물 반 고기 반…….
아니 대화 반 파프리카 반이라 할 정도로 시청자들이 쏘아 대는 파프리카와 글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동문도 동참했다.
자리에 앉으며 파프리카를 쏘는 동시에 채팅을 날렸다.
〈〈쁘니쁘니 님이 파프리카 10개 선물하셨습니다.〉〉
쁘니쁘니 : 비니오빠 나 지료쏘!
그렇게 한마디 남긴 동문이 중얼거렸다.
“와 대박. 진심 반해서 고추 떼고 싶을 정도네.”
동문은 진심으로 BJ비니에게 감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