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빈이라는 희망을 키우는 법!
멀거니 구경을 하던 빈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 예능을 보는데요.”
“응?”
“그때 나만 아니면 돼, 라는 말이 있었거든요.”
“아, 아아.”
빈의 말에 병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금 상황에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들도 겪은 상황이니까.
다만 지금은 아니다.
“이게 구경하는 재미는 또 쏠쏠하네요.”
“인정.”
빈의 말에 병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상황은 난장판이다. 아우성이다.
그럼에도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재미가 쏠쏠했다.
“확실히 우리가 늘긴 했네요.”
“뭐…… 그렇지.”
병화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삼자 입장에서 전투를 보다 보니 허점이 상당히 많았다.
그들은 마지막러쉬를 경험할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숫자와 싸웠다.
그들의 숫자가 스물이 좀 넘는데 몰려오던 쿠라우탄은 마흔 마리가 조금 넘었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우두머리 격인 킹쿠라우탄이라는 개체도 섞여 있었다.
다른 것들은 F급에 해당되지만, 킹쿠라우탄이라 불리는 우두머리 개체는 D급에 해당했다.
병화는 옆에 앉아 있는 빈을 힐끔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걸 혼자 막다니.’
마지막 러쉬에서 몰려드는 쿠라우탄 무리를 방진을 형성해서 막았다.
매도 맞다 보면 익숙해진다고 당장 몇 대 맞는다고 죽지는 않았다.
내구성 자체도 처음과 달리 상당히 올랐던 것이다.
문제는 킹쿠라우탄의 존재였다.
다른 개체와 달리 그 개체의 체고는 170cm에 달했다.
심지어 공격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에는 200cm. 즉 이 미터가 훌쩍 넘어갔던 것이다. 단순히 높이만 위압적인 게 아니었다.
그 근육 자체도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개체를 빈이 홀로 막은 것이다.
물론 빈이 나선 건 아니었다.
킹쿠라우탄이 달려든 곳에 빈이 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그걸 상대하면서 빈은 안달복달했지만, 그 공격을 홀로 막아 내었던 것이다.
심지어 막판에는 치명적인 상처까지 입혔던 것이다.
그렇게 빈이 킹쿠라우탄을 잡아 둔 덕에 전신길드원들은 마지막 러쉬를 막아 낼 수 있었다.
물론 그 뒤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전부 쓰러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빈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던 것이다.
“후우.”
그때 치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지은 죄가 있는 빈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씨팍!”
치원이 욕설과 함께 입을 닦으며 누군가를 걷어차고 있었다.
“…….”
빈은 그곳을 바라보다가 병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병화가 여기 있지만, 분명 자신이 방금 치원이 걷어차는 이가 있던 곳에 눕혀 놓았었기 때문이었다.
빈의 시선을 느낀 병화가 조심스럽게 손가락 하나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빈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완전 범죄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에이씨 더럽게! 병원에 누워 어떤 여자가 죽 떠먹여 주는 꿈을 꿨다 싶었더니만…… 오욱!”
“뭐 정신을 잃었으니 그럴 수도 있지.”
병화가 침착하게 대응했다.
“어우 저것 좀 보십쇼!”
빈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허? 저건 또 뭐야?”
치원이 바라보는 쪽으로 빈과 병화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세 명의 소환자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한 명이 뒤에서 한 방 후려치는 순간 쿠라우탄이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 뒤를 다른 둘이 쫓아가 무기를 꽂아 넣었다. 물론 한 방에 안 죽고 고개를 돌려 둘 중 하나를 쫓는다.
그러자 쫓기던 한 명과 남은 한 명이 다시 뒤를 쫓아가 공격을 했다.
쿠라우탄이 죽을 때까지 무한반복. 병화가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어쨌든 싸우고는 있네.”
“뭐…… 사이 안 좋을 거 같은 사람들이 꽤나 협동심이 강한걸요?”
빈이 신기하다는 듯 말을 받았다.
그 셋은 바로 신컨길드의 도원과 멧 중장 그리고 장웨이였다.
도원은 매사에 건들거리며 불만 가득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장웨이는 나머지 둘을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거기에 멧 중장은 장웨이를 경계했다.
자신도 부루에게 관심이 있는데 도발을 했던 장웨이측의 인사가 자꾸 찝쩍거렸던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셋이 그야말로 톱니바퀴 돌 듯 얍삽하게 쿠라우탄을 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라우탄이 전부 쓰러질 때 즈음, 저들도 절반 이상이 쓰러졌다.
“열셋? 그 정도네요?”
“그러게. 꽤 늘긴 했네.”
총 열세 마리까지 상대를 하는 모습이었다.
첫 실전치고는 꽤나 선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또다시 쿠라우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본 소환자들이 근처에 있는 가우리 기병들의 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나마 절반은 누워 있는 상황.
결국 이들의 실전은 여기까지였다.
상태가 더는 훈련을 진행하기 힘들다 판단했는지, 마물들을 몰아오던 기병들이 활을 쏴서 몰살시켰기 때문이었다.
훈련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 * *
“오! 헌터물 소설 같아!”
고빈이 외치자 다들 그를 바라보며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한때 유행하던 소설 중에 마물들이 쏟아지고 그걸 인간들이 막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유행이다.
지금은 헌터물이라기 보단 소환자물이라고 해서 지금의 현실을 대입해서 쓴 글들이 많았다.
현실은 강림자가 싸우니까.
“뭐 그렇긴 하네.”
임병화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물이 등장하고 나서야 사람이 그것들을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알게 되었다.
그나마 강림자들이 있었기에 지킬 수 있었던 세상이다.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하던 그들의 일상이 바뀌었다.
부루의 안전한 보살핌(?) 속에 실전을 겪으니 일반적인 단련보다도 효율이 높았던 것이다.
“상태창!”
빈이 외쳤다.
그러자 윤치원이 대답했다.
“그거 우리가 칠 년 전에 다 해 본 거다.”
“쳇. 상태창을 최초 개방 했습니다 하고, 보상 똭! 이렇게 나오면 얼마나 좋아.”
빈의 투덜거림에 다들 웃었다.
사람 생각이 다들 거기서 거기였는지 빈처럼 안 해 본 사람들이 드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그건 비슷하군.”
“성장요?”
“그렇지. 사실 강림자들이 조금씩 강해지는 걸 우리는 소환자와 강림자의 씽크가 점점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게요.”
그런데 소환자로서 직접 마물을 사냥하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환자는 확실히 강해질 수 있었다.
마물을 사냥함으로써.
“그런데 문제는 처음에 개같이 굴러야 한다는 게…….”
빈이 뒷말을 줄였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마물을 그냥 사냥한다고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저번 훈련 때 철수하면서 생포해 온 마물을 훈련을 받지 않은 소환자가 죽이도록 해 보았다.
물론 결박한 상태에서 말이다.
결과는 꽝이었다.
무기도 잘 안 박히는 데다가 어찌어찌 죽여도 능력에는 변동이 없었다.
에너지 관측 카메라로 확인한 결과다.
반면 훈련을 통해 일정 수준이상 강해진 이들은 미미하지만 확실히 에너지가 상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흐흐. 우리만 당할 순 없잖아요.”
빈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자 치원이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그렇지? 흐흐흐 우리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날로 먹으면 안 되지 당연히.”
다들 키득거렸다.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장웨이가 그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지. 당연히.”
그도 이건 동의했다.
* * *
연구는 하루하루 새로운 데이터를 수집해 나갔다.
구은태 박사는 제대로 불이 붙은 듯했다.
“확실히 잡아 놓은 것들을 사냥했을 때 에너지 상승률은 비효율적이군.”
구 박사의 말에 강문호 대위가 물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요. 같은 개체인데 말입니다. 효율이 네 배 이상이나 차이가 나니…….”
실전훈련은 좀 더 잦아졌다.
잡아 놓은 마물을 상대로도 에너지의 상승을 확인한 상황이었기에 이 부분에서 중점적으로 연구를 해 보았다.
그러나 현장에까지 에너지 측정기를 들고 가서 확인한 결과 쌓이는 에너지의 양이 네 배에서 심하면 여섯 배까지 차이가 났다.
“일단 연구원들의 의견은 두 가지라네. 침식지대위에서 사냥하는 것과 아닌 곳에서 사냥하는 것이 차이가 있다는 것.”
“그럴 수 있겠군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물의 에너지가 사로잡히면서 활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점이라네.”
“그렇군요.”
구 박사의 말에 강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미국 쪽과 중국 쪽이 참여인원을 늘리고 싶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위에서 알아서 하겠지만…….”
구 박사가 음흉하게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뜯어 낼 건 뜯어 내야 하지 않겠는가?”
구 박사의 말에 강 대위가 마주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지요. 이건 기회니까요.”
“그나저나 상황이 확실히 빠르게 변해가는구먼.”
“아…….”
구 박사의 말에 강 대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직 그대로라지?”
“예. 일본도 한 곳이 계속 확장되고 있고, 호주의 경우는 벌써 국토의 십분지 일이 침식당했다고 합니다.”
“침식지가 늘어날수록 나타나는 개체의 수가 비례해서 커지니…….”
구 박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프리카의 경우는 대침식 때 제대로 손도 못쓰고 무너졌기에 인지를 못했지만, 나머지는 달랐다.
일본이나 호주의 경우 그런 대로 잘 막아 내던 나라들이었는데 이번에 두 차례에 걸친 침식 균열로 인해 침식지대가 크게 확장되어 버렸다.
문제는 그전에도 가까스로 막고 있었는데, 늘어난 만큼 튀어나오는 개체수들이 많아지다 보니 점점 더 힘들어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예 없애지는 못할까요?”
강 대위가 답답한 마음을 토해 내었다.
구 박사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언젠가는 없앨 수 있다고 대답하고는 싶었지만, 아직 갈피도 못 잡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변화의 조짐은 있지 않습니까?”
희망적인 말을 뱉은 강대위가 시선을 돌렸다.
한쪽에 드잡이 질을 하고 있는 소환자들이 눈에 보였다.
여전히 엉뚱하지만, 가장 빠른 성장을 보여 주고 있는 고빈의 모습을 비롯해 전신길드와 새로이 도착한 신컨길드의 길드원들이 보였다.
조만간 대한민국 삼대 길드 중 남은 한 곳까지 이곳으로 합류할 것이다.
소환자가 강해진다는 것.
그것은 싸울 수 있는 인원이 늘어난다는 것보다는 작전 자체가 더 원활해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것만 해도 전투의 양상은 크게 바뀔 수 있다.
거기에 소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강림자들의 숫자를 줄이기만 해도 전장에 더 많은 무력을 투사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직 소환자들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모른다는 게 희망이었다.
“빈이에게 희망을 걸어야지 않겠나?”
그 선두주자가 재미있게도 바로 빈이었다. 구 박사의 말에 강 대위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부루장군께 부탁이라도 드려야겠군요.”
“안 그래도 이미 부탁 드려 놨다네. 꽃등심 투뿔로다가 사드리면서.”
“…….”
강 대위는 농담이었지만, 구 박사는 농담이 아니었나 보다.
갑자기 빈이 불쌍해지는 강 대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