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몹도 몰고, 목숨도 몰리고
* * *
“니보라우. 슬슬 몸이 간질거리 디 않네?”
을지부루의 질문에 미군 소환자들이 일제히 멧 할러데이 중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하나였다.
간절함.
그리고 두려움.
멧 중장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자신도 모르게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는 대단하다 느낀 이들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존경할 만한 역전의 용사들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이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웩!”
빈이 몸을 일으키며 헛구역질을…… 아니 구역질을 했다. 토사물이 쏟아졌으니까.
문제는 빈이 가장 멀쩡하다는 것이다.
나머지 인원들은 빈의 주변에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가슴이 오르내리며 기복이 일정한 것으로 보아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럽게 뭐하는 거이간?”
“웨에엑! 너, 너무 움직여서…….”
빈이 창백한 얼굴로 토하다가 말고 외쳤다. 그때 빈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 무슨 일인가!”
순간 뒤쪽에 있던 구은태 박사가 깜짝 놀라 외쳤다.
연구원들의 얼굴도 창백해져 있었다. 그들 역시 멧 중장과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구 박사의 걱정 어린 외침에 빈이 쭈뼛거리더니 아래를 슬쩍 보곤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건 좀…….”
“냠. 냠…….”
“아, 먹는 거 아닌데.”
빈의 토사물이 윤치원의 얼굴에 일부 쏟아져 있었다.
심지어 그는 마치 잠꼬대를 하듯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걸 쩝쩝거리며 먹고 있었다.
“우웁!”
그 장면을 본 구 박사와 일부 연구원들이 헛구역질을 했다.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치원의 얼굴을 닦던 빈이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비밀 좀…….”
빈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부족한 듯 중얼거렸다.
“냠, 한 입만…….”
그렇게 아쉬운 꿈을 꾸는 치원을 본 빈은 옆에 쓰러져 있는 병화를 토사물 인근으로 끌어다 놓고는 조용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누, 누명까지!’
그 자연스러운 모습을 본 이들이 경악했으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뭘 쳐다보네? 걱정 말라우.”
“제너럴. 아직 우리는 준비가 모자란 듯합니다. 좀 더 훈련을 통해…….”
“실전이 좋긴 하죠.”
“…….”
한쪽에서 힘없이 들려온 음성에 멧 중장이 충혈된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빈이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냥. 그렇다고요.”
“쉣!”
“갓뎀!”
동시에 사방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잠깐이었지만 누가 봐도 혼자 당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닥치라우. 힘 넘치는 것 보니 할 만하구만 기래.”
부루의 말에 다들 울상을 지었다. 멧 중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몸은 정직한지 다들 미적거렸다
“싫음 말라우.”
순간 다들 희망에 찬 눈으로 부루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희망찬 시선을 맞이하며 부루가 대부를 들어올렸다.
“나랑 하면 되디.”
“아닙니다! 우린 싸우고 싶습니다!”
버럭 소리를 지르듯 외친 멧 중장이 절도 있게 뒤돌아서더니 외쳤다.
“제군들!”
“옛썰!”
“준비 되었는가!”
“옛썰!”
전의에 불타는 미군 소환자들을 보며 멧 중장이 무기를 쥐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고!”
“무브! 무브!”
“허리 업!”
갑자기 빠릿 해진 그들이 앞으로 몰려나왔다. 마침 그 즈음에 새로이 몰려오는 마물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가우리 기병들이 몰아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던 구도원이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쯧.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
마물과 싸우면 대충 무기라도 섞을 수는 있을 거 같았다.
저기 쓰러져 있는 이들이 부루와 대련하는 것을 보았다. 대련이 아닌 지옥의 한 광경 같았다.
그걸 그만이 봤겠는가.
여기 모두가 보았다. 인간이 아니…… 강림자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장웨이가 그를 툭툭 쳤다.
“응?”
돌아보니 장웨이가 헤쓱해진 얼굴로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순간 도원은 얼굴을 굳힌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결코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장웨이의 시선을 따라 돌렸던 것이다.
그 끝에 그들을 응시하고 있는 부루를 볼 수 있었다.
“뭐하는 거간?”
“예?”
“구경나온 거이네?”
“그, 오늘은 겨, 견학만 하는 거 아닙니까?”
순간 부루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보다 보면 칼질도 하고 몽둥이질도 하고 그러는 거디! 사람이 머이리 융통성이 없는 거이네!”
“여, 여기에 융통성이라니…….”
“기럼 실전은 때려치고 나랑 노는 거디. 무기 들라우.”
“짜요우!”
순간 도원은 그의 뒤로 장웨이가 튀어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에이씨!”
얼굴을 구긴 도원은 배신자의 뒤를 따라 내달렸다.
선두에서 내달리던 미군 중 하나가 입술을 깨물더니 뭔가를 즉 꺼내었다.
“왓?”
그걸 본 동료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쪽에서 달리던 멧 중장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그런 멧 중장에게 달리던 군인이 비장한 표정으로 외쳤다.
“써! 총대는 제가 메겠습니다. 충분히 일부는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세열수류 탄이었다.
“제군의 무운을 빈다.”
멧 중장은 몰려오는 마물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그 군인이 더욱 빠르게 내달리더니 외치며 수류탄을 던졌다.
“Fire in the hole!”
“What?”
“Yes!”
수류탄을 던지며 외친소리에 뒤쪽에서 달려오던 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밝은 표정으로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수류탄은 그대로 다가오는 마물들의 머리 위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투콱!
허공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마물들을 한참 지나가서야 울려 오는 폭발음.
콰아앙!
소리가 몸을 날렸던 이들은 동시다발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소리가 멀다는 것은 느낀 것이다.
마물들은 피해 하나 없이 내달려오고 있었다. 엎어져 있는 미군 소환자들을 향해서 말이다.
그걸 본 미군들이 서둘러 일어 서며 외쳤다.
“쒸에에에엣! 떠어어!”
콰콰콰콱!
욕설이 다 뱉어지기도 전에 마물들과 충돌이 시작되었다.
“와…….”
빈은 순수한 감탄사를 흘렸다.
“쯧. 얄팍하기는.”
부루가 활을 내리며 혀를 내찼다.
“저게 보여요?”
“보이디.”
“와아…….”
“이 정돈 기본이디.”
부루는 놀라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빈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들이 갑자기 뭔가를 던지면서 사방으로 엎어지는 순간 부루는 거의 동시에 화살을 재어 날렸던 것이다.
그렇게 날아간 화살은 수류탄을 꿰어 멀리 날려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몸을 일으키는 소환자들은 지금 몰려온 마물들에게 열심히 쳐맞기 시작했다.
물론 숫자는 이쪽이 많았다.
이쪽은 미군 스물하나. 더하기 견습생 둘.
저쪽은 쿠라우탄 다섯 마리.
사실 그냥 붙었으면 이렇게까지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숫자가 네 배다.
그러나 엎어져 있다가 몸을 일으킨 상황에다가 대열을 갖추기 도전이었다.
그래서인지 다섯 마리라고는 해도 위용이 대단했다. 빈이 홀로 동시에 둘을 무력화 시켰던 것과는 달랐던 것이다.
“와아…….”
얼빠진 듯한 감탄사가 연이었다. 싸움장면 때문에 나온 감탄사가 아니었다.
쿠라우탄 한 마리가 미군 둘의 머리카락을 쥐고 빙빙 돌자 커다란 풍차마냥 팽팽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미군 하나는 환두대도를 휘두르다가 쿠라우탄이 휘두른 몽둥이에 카운터가 걸려 휘청였다.
팔 길이 차이가 좀 있었다.
그래도 오래 지나지 않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물러설 곳은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좀 맞고 나서 정신을 차렸는지 몰라도 대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어서 초반에 쿠라우탄의 풍차 돌리기에 머리카락을 잡혔던 미군 둘이 활약을 시작했다.
머리카락과 이별하며 날아갔던 미군 둘이 소갈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날뛰기 시작했다.
아마 머리카락에 대한 복수 같았다.
그렇게 난투를 벌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때 옆에서 임병화가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끄응. 시작했냐.”
“예.”
그도 탈진에서 깨어난 것이다.
어쩌면 남이 당하는 것을 위안 삼기 위해 몸을 일으킨 것일 수 있었다.
우워어어어!
미군들이 환호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들의 발밑에는 다섯 마리의 쿠라우탄이 작살이 나서 쓰러져 있었다.
특히 맨 뒤에 있던 견습생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서로 얼싸안고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구경만 하다 끝이 나서일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병화가 중얼거렸다.
“시작이겠지?”
“그렇겠죠.”
빈이 대답하며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부루가 팔짱을 끼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 끝에 먼지구름이 일고 있었다.
“후우. 스무 마리까진 어떻게 하겠는데…….”
“그러니까요.”
환호가 잦아들며 당황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쯧, 우리 하는 걸 봤으면 알 건데.”
“그럴 정신이나 있겠냐. 초보대우라도 할 줄 알았나 보지.”
병화의 말에 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편한 자세로 앉아 구경하면서 중얼거렸다.
“꼭 디펜스 게임 보는 거 같네.”
“그러게.”
여덟 마리의 쿠라우탄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웨이브의 시작이었다.
콰득! 콱!
“꾸웩!”
“헤, 헬프미!”
“쬬밍아!”
“살려 줘!”
삼개국어로 외쳐지는 비명 속에 미군들은 분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섯.
두 번째는 여덟.
그리고 세 번째 지금은 열셋이었다.
여전히 이쪽의 숫자가 많았지만, 상황은 달랐다.
둘이 하나를 붙잡고 늘어지느라 많은 수의 쿠라우탄들이 상대를 쫓아 달렸다.
그중, 가장 만만한 이들 셋이 싸우면서도 연신 도와 달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멧 중장과, 도원. 그리고 장웨이었다.
아무래도 셋의 훈련도가 가장 떨어지는 덕에 이런 광경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헉!”
순간 멧 중장이 바닥으로 걸려 엎어지며 굴렀다.
나이는 못 속이는 모양이었다.
그 앞에 선 쿠라우탄이 그의 머리통을 향해 투박한 쇠몽둥이를 내리쳐갔다.
아무리 신체 방어력이 올랐다 해도 저건 무리였다.
머리를 맞는 순간 박살이 나거나 쪼개지거나. 최후는 불 보듯 훤했다.
“God…….”
멧 중장이 최후를 예감하며 하얗게 질린 채 중얼거렸다.
그때 멧 중장의 귀 옆을 뭔가가 스쳐 날아갔다.
퍼억!
“캐애앵!”
쇠몽둥이를 휘두르던 쿠라우탄이 뒤로 물러서며 비명을 내질렀다.
쿠라우탄의 몸뚱이에 화살 하나가 깊게 박혀 있었다.
그걸 구경하던 장웨이와 도원의 귀 옆으로도 화살 두 대가 스쳐 지나갔다.
마찬가지로 그들을 노리던 쿠라우탄의 몸뚱이에 화살들이 박혔다.
주르륵.
순간 세 명의 귀에서 동시에 피가 흘렀다.
그리고 섬짓한 느낌.
“으아아아!”
국적도 달랐던 셋은 함성만큼은 비슷하게 외치며 쿠라우탄을 향해 내달렸다.
방금 날아온 화살이 의미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살려는 준다.
제대로 싸우면. 아니면…….
셋은 동시에 뒤통수에 화살이 꽂히는 상상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