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대결 이후의 변화
* * *
여포와의 대결 이후 하루가 지났다.
설마 아무리 그래도 이길 정도겠느냐는 예상이 철저하게 무너졌다.
영상자료를 검토한 결과 이 처참한 결과마저 부루가 봐준 거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여포의 경우 뛰어난 반응속도와 적절한 대응이 빛을 발하기는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대결의 끝까지 밀리다가 패배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잘 포장한다면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나 이 말도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누가 봐도 여포가 이기리라고 생각했던 대결에서 이기리라 생각한 이가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평가를 받은 건 우스운 일이니까.
그렇지만, 이러한 의외의 결과에도 놀라움과 감탄 대신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대결의 끝자락.
부루가 던진 말 한마디.
답하라.
그 말은 잔잔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어떤 강림자도 던지지 않았던 말.
일부 소환자 혹은 역사학자들이 떠들어 대던 말에 불과했던 질문.
그것을 강림자인 부루가 던진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하위 강림자들을 이용해 이종격투기 대회를 운영하기도 한다.
체급을 나눈 것처럼 인지도를 기준으로 나누어서 말이다.
인기도 많았다.
끝까지 가니까.
그래서 실감 나니까.
하지만 결국 실제로 죽는 건 아니다. 그러니 면죄부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런 지역치고 국가라는 기관이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국가만을 탓할 건 아니었다.
결국 그 콘텐츠를 즐기는 이들은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었으니까.
그뿐이 아니었다.
강림자가 유명하면 소환자도 덩달아 유명해진다.
그러다 보면 셀럽 놀이를 하는 소환자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강림자는 돈벌이의 도구로 전락해 간다.
그나마 대침식을 겪은 소환자는 덜했다.
처참한 시기를 버텨 오며 강림자와 동지의식이 생겨난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러나 이후의 소환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마치 노예처럼 부리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강림자에 대한 배려를 하는 쪽도 완전하지는 못했다.
배려를 하면서도 결국 강림자를 다루는 형태 자체는 명령을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물론 효율성이 그 편이 나을 수 있었다. 대다수 강림자는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수동적이었으니까.
그런 강림자들 사이에서 부루가 나타나 돌을 던진 것이다.
어쩌면 강림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줄 안다면 부루처럼 말했을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이 대결을 통해 연구진들은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여포의 변화가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장웨이는 여포를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아직도 떠오르는 그 시선.
그리고 뱉은 말.
‘나도 궁금하군.’
부루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는 여포의 말.
장웨이는 충격이었다.
질문을 하기는 한다.
새로운 문물을 보았을 때, 혹은 본능을 자극하는 소유욕이 발동했을 때 말이다.
그러나 의문을 표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 충격에 하루가 지났음에도 장웨이의 표정이 밝아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패배의 아쉬움을 토로하던 그 모습 역시 장웨이의 마음에 동요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이곳의 연구진들이 달라붙어 그 변화를 일일이 체크했다.
겨우 하루가 지났지만 여포의 겉모습은 거의 회복이 된 상황이었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사람이었지만, 본질은 강림자였으니까.
그리고 여포는 그 강림자들 중에서도 절대적인 강자 중 하나였다.
당연히 회복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여포는 마치 정원을 바라보는 황혼기의 노인처럼 앉아 멀거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패배를 곱씹고 있는 것 마냥 말이다.
말없이 다가간 장웨이가 하루 만에 여포에게 입을 열었다.
“지금 상태는?”
“신체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면…… 최상은 아니지만 중상 이상은 회복되었다.”
여포의 담담한 답변에 장웨이는 입술을 한번 씹더니 망설였던 질문을 던졌다.
“그 강림자와 싸운 걸 후회…… 하나?”
그 질문에 여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쪽에 두어 걸음 밖에 서 있는 장웨이의 모습이 여포의 시선에 들어왔다.
“명령에 따랐을 뿐.”
여포의 대답에 장웨이가 다시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꺼내려던 말이 다시 들어가 버렸다.
“후회라면 패배 그 자체가 후회지. 분하고.”
여포의 얼굴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러나 장웨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패배와 후회를 곱씹는 모습.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그때의 대답.”
“아…….”
여포가 느닷없이 꺼낸 말에 장웨이는 입을 다물었다.
무얼 어찌 대답하는가.
그저 돈벌이 혹은 전투병기 취급하는 걸 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걸 궁금해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는 게 함정이더군.”
자신이 그 말을 뱉었으면서 정작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에 대해서는 여포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변화는 비단 여포에게서만 발생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까이는 전신길드의 강림자들 사이에서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강림자와의 대답은 질문해야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음에도 의견 혹은 지도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창을 그렇게 잡으면 안 되지.”
전신길드원에게 다가간 그들의 강림자가 던진 말이었다.
“어?”
그 후에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다가와 자세를 잡아 주었다.
이 작은 것 하나 사소한 것 하나가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 변화는 소환자들 사이에서도 시작되었다.
그날 부루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반쯤은 답을 알고 있었다.
전우가 아닌 장기판의 말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으니까.
혹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이용해 먹어도 되는 호구 정도가 대다수 소환자들의 인식일 것이다.
그렇게 해도 강림자는 불평불만이 없었으니까.
또 자신이 살기 위해 사지로 던져놓고 막으라는 명령을 해도 그저 묵묵히 나아갈 뿐이었다.
사실은 고마워야 할 대상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이미 무너졌었을 것이니까.
그중 하나인 전신길드장 임병화는 복잡한 내심을 감주치 못하고 있었다.
“동료인 건가.”
전신길드원 중 이곳 연구섹터에서 머무는 이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느새 강림자와 자신들의 관계를 동료로 놓기 시작한 것이다.
생사를 건 싸움을 함께한 전우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함께 싸우기 위한 동료.”
병화는 그렇게 정의했다.
그 역시 전날 부루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그게 바로 이것이었다.
그때 병화의 눈에 빈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웬일인지 더 왜소하게까지 느껴졌다.
“빈. 괜찮냐?”
병화의 질문에 빈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병화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래도 우리보다는 니가 나을 거다.”
“낫긴요.”
빈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조금씩 바꿔 나가는 거다.”
병화의 말에 빈이 약간은 격정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씩? 그래서 어느 세월에요?”
화가 섞인 목소리.
그 모습에 병화는 빈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빈은 가장 이상적인 소환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림자와 함께 호흡하고 수평적인…… 물론 이 경우는 역전된 관계였지만 그래도 확실히 달랐다.
“조급해 하지 마라. 아무런 문제 없을 거다.”
“문제는 이미 생겼다니까요.”
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말이 되요? 저작권도 칠십 년이라고요. 여포 그 양반 죽은 지가 천년도 훨씬 넘었는데 초상권이라니요!”
“…….”
빈의 격정적인 외침은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국가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공개하기는 더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한 일이 년 묵다가 올리려 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병화가 질문을 던졌다.
“뭘 올려?”
“어제 동영상 찍은 거요. 박제 영상. 이거 대박 확정인데. 방송 올리면 빼박 억대 조회순데! 그럼 돈이…….”
병화는 위로하기 위해 그의 어깨에 올렸던 손을 천천히 떼 내었다.
그리고 그 손으로 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빠악!
“악! 왜 때려요!”
빈이 눈물을 찔끔 흘리며 외쳤다. 그러자 병화가 이를 악문 채로 대답했다.
“억울해서.”
“길짱이 뭐가 억울해요!”
“네놈을 동정한 내 마음이 불쌍하고 억울해서!”
병화는 그렇게 버럭 소릴 내지르고는 그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빈이 투덜거렸다.
“아, 진짜. 자기들은 이미 벌 돈 다 벌어서 상관없겠지만, 난 이런 거라도 해서 벌어야 하는구만.”
가난한 소환자는 오늘도 돈벌이에 궁리를 쏟을 수밖에 없었다.
* * *
“니보라우.”
“예!”
을지부루의 부름에 빠릿한 목소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갔다.
“이거이 최선인 거간?”
“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치 지금 자대에 배치된 신병마냥 군기가 들어선 외침이었다.
그 외침에 부루가 미간을 좁혔다가 말을 이었다.
“내래 지켜보갔어.”
“예!”
쩌렁한 대답.
부루가 멀어지자 구도하는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후우우.”
물론 그의 한숨은, 뒤에서 더 크게 들려오는 한숨에 그대로 뒤덮여 버렸다.
“…….”
얼굴을 일그러트린 도하가 돌아보자 김경징이 한숨을 내쉬고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안 될까?”
“알았소.”
시치미를 뚝 떼고 딴청을 피우는 김경징을 뒤로 하고 도하는 다시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의 앞에는 두께가 뒤죽박죽인 땔감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젠장. 내가 왜 덤볐을까.”
여포를 작살내던 그 모습은 도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충격도 그냥 충격이 아니었다.
부루를 자극하는 건 자살행위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야성과 파괴적인 모습.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그 덕에 훈련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지켜본 바로는 소환자고 나발이고 싸대기를 날리고도 남을 강림자가 바로 부루였다.
물론 싸대기는 사망각이다.
옛날 누군가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스쳐도 사망이라는 말.
왠지 그건 농담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속담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도끼질을 시작하던 도하는 그래도 자신은 좀 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먹은 것을 모조리 바닥에 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아.”
다시 한숨이 나왔다.
최소한 저보단 낫다고 스스로 세뇌시키며 도끼질을 다시 이어 나갔다.
“웨에에에에!”
“아깝게 왜 뱉는 거이네? 먹는 거이 남아나는 거이간?”
“웨에에엑! 쏘, 쏘리 써!”
먹은 것을 다 게워내며 다시 몸을 세운 이는 바로 멧 할러데이 중장이었다.
그 역시 본격적인 훈련을 참여하기 시작했다.
강림자가 없는 소환자도 단련할 수 있는가라는 핑계로 합류한 연구였다.
그러나 이론과 실전은 달랐다.
“아직 멀었어야. 띠라우.”
“옛 써!”
멧 중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자빠질 것처럼 위태롭게 말이다.
그는 오늘 축구장 넓이의 공간을 지금 백 바퀴째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오늘 할당의 절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