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답하라우
화살촉이 부루의 손등을 뚫고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부루가 화살촉과 활의 중간을 그대로 쥐자 와그작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났다.
그와 동시에 부루의 손에 들려 있던 대부가 여포의 허리를 가르듯 날아들었다.
그러나 여포도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는다는 듯 손바닥으로 날아드는 대부의 넓은 면을 후려쳤다.
쩌엉!
“?”
순간 여포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가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순간 허리를 가르며 날아들던 대부가 맥없이 튕겨나갔기 때문이었다.
방향 정도만 틀어져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맥없이 날아갔다는 것은 놓았다는 말이 된다.
부와아악!
대부는 바닥을 뒹굴고 있었지만, 여전히 바람을 가르며 허리춤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부루의 주먹이었다.
으적!
복근과 옆구리의 중간 즈음에 틀어박히는 부루의 주먹.
마치 살에 파묻히듯 깊이 틀어박혔다. 그리고 여포의 두 발이 허공으로 살짝 떠올랐다.
부루의 주먹질이 만든 결과다. 여포의 두 눈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고통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익숙한 감정을 표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콰콱!
주먹을 내지른 방향의 발이 대각선으로 여포의 뒤쪽으로 길게 뻗어져 땅바닥을 내리찍는 순간이었다.
터업!
화살에 구멍 난 부루의 손바닥이 여포의 안면을 뒤덮었다.
여전히 여포의 몸뚱이는 공중에 살짝 들려 있다.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는 탓에 딱히 버틸 수 없는 상황.
후우우웅!
“으롸촤아!”
부루가 괴상한 기합성을 내는 동시에 안면을 덮은 팔이 땅바닥을 향해 크게 휘둘러졌다.
동시에 여포의 위아래가 뒤집혔다.
머리는 부루의 손아귀를 따라 땅을 향하고, 두 다리는 허리를 중심으로 빙그르르 돌며 하늘로 들렸다.
콰아앙!
부루는 여포의 안면을 잡고 그대로 땅바닥에 그의 뒤통수를 내리찍어 버렸다.
그제야 솟구쳤던 여포의 두 다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단. 힘없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콰콱!
허리힘을 이용해 빠르게 두 다리를 끌어내려 땅바닥을 찍는 순간 여포가 양손으로 부루가 찍어 내리고 있는 팔의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활처럼 휘어진 몸이 천천히 땅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단순하게 다리와 허리힘으로 머리통을 누르는 힘을 이기며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안면을 감싸고 있던 부루의 손바닥이 미끄러지며 이마를 지나 머리꼭지를 향했다.
덥썩.
머리카락을 움켜쥐는 동시에 부루가 발 하나를 뒤로 빼었다.
그리고 잡아당겼다.
몸을 일으키던 여포의 힘에 잡아당기는 부루의 힘이 더해져 더 빠르게 몸이 일으켜졌다.
그 순간 뒤로 길게 빼었던 부루의 다리가 굽혀지며 대각선 위로 찍어 올려졌다.
콰앙!
부루의 무릎이 여포의 명치께를 찍었다.
“컥!”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끌려가다가 명치를 무릎으로 찍혀 버린 상황이 되어 버렸다.
동시에 여포의 몸뚱이가 기역자로 꺾이며 허공으로 뜨는 순간 부루가 다시 무릎으로 찍어 올렸다.
터억!
이번에는 막았다.
여포의 양손이 부루의 무릎을 막은 것이다.
그러나 부루는 무릎이 막히는 순간 몸을 맴돌렸다.
맴돌고 있는 부루의 손아귀에는 여전히 여포의 머리끄덩이가 잡혀 있었다.
그렇게 몸을 맴돌린 부루가 머리끄덩이를 앞으로 잡아당겼다.
터억!
여포의 손이 몸을 돌리고 있는 부루의 어깨를 짚었지만 이미 늦었다.
머리끄덩이를 잡은 손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동시에 엉덩이를 이쁘게 치켜 올렸다.
터엉!
여포의 몸뚱이가 부루의 어깨와 맞닿은 머리를 기준으로 해서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꽈아아앙!
여포의 몸뚱이가 그대로 대자로 크게 매쳐져 버렸다.
그리고 그제야 여포의 머리카락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뜯겨져 나갔다.
그러나 부루는 아직 공격을 끝내지 않았다.
한걸음 크게 나아가며 여포의 머리 근처를 밟았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발로 그대로 후려 찼다.
마치 축구경기에서 프리킥을 차 날리는 선수마냥.
빠아악!
몸을 일으키던 여포의 목이 구십 도로 꺾어지며 몸뚱이가 따라갔다.
콰르르륵!
꺾인 머리를 따라 몸뚱이가 빙그르 반 바퀴 돌다가 멈추었다.
그 순간 여포의 손이 바닥을 쳤다.
콰앙!
동시에 여포의 몸이 그대로 솟구쳐 오르며 겨우 두 발로 땅바닥을 지지하며 설 수 있었다.
그러나 부루의 공격은 아직도 끊어지지 않았다.
콰직!
이번 목표는 지지하고 선 여포의 다리였다.
부루가 여포의 무릎 부근을 그대로 낮게 후려친 것이다.
여포의 한쪽 무릎이 꺾이며 몸뚱이가 휘청거렸다.
그 꺾인 무릎을 부루가 양손으로 잡아당기며 그대로 어깨로 여포의 상체를 들이받았다.
쾅!
부루와 여포가 그대로 뒤엉키며 나자빠졌다.
위쪽에는 부루.
그대로 부루가 여포의 가슴팍에 올라타며 두 주먹을 그러쥐었다.
콰앙!
부루의 주먹이 땅을 찍었다.
여포가 가까스로 고개를 틀어 피한 것이다.
하지만 요행은 한 번뿐이었다.
쾅!
두 번째 주먹이 여포의 면상을 찍는 순간 세 번째 네 번째 주먹이 연달아 여포의 면상을 후렸다.
그 와중에도 여포는 부루의 머리통이라도 잡아당겨 보겠다고 두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때 부루가 허리를 크게 돌리며, 팔꿈치로 들어 올려지는 여포의 허벅지를 찍었다.
와작!
여포의 허벅지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왔다. 동시에 허벅지 중간부터가 힘없이 아래로 쳐졌다.
부러진 것이다.
그렇게 몸을 틀어 허벅지 하나를 부러트린 부루의 몸이 다시 정면으로 돌아가며 주먹이 크게 호선을 그렸다.
그 즈음 부루의 다리 밑에 깔려 있던 여포의 두 손이 얼굴을 가렸지만, 의미 없었다.
콰왕!
두 팔의 틈새로 꽂혀 들어간 부루의 주먹에 여포의 얼굴이 다시 한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부루의 두 주먹이 쉴 새 없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쾅쾅쾅! 쾅쾅쾅쾅!
“…….”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쾅쾅쾅!
연신 울려오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창백한 얼굴로 미친 듯이 양손을 번갈아가며 후려치는 부루를 바라볼 뿐이었다.
야성 그 자체.
격투기 선수마냥 파운딩 하듯 후려치고 있었지만, 차원이 달랐다.
쾅쾅! 쾅쾅쾅!
적어도 격투기 선수가 상대선수의 안면을 후려칠 때 이처럼 귀청이 울리는 타격음이 들려오지는 않으니까.
부루의 밑에 깔린 여포의 다리 하나가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허벅지 중간부터 부러진 다리도 몇 번이나 부루의 등허리를 툭툭 건드렸다.
허나 의미 없었다.
마치 대장장이가 쇠를 두드리듯. 부루의 양손은 여포의 머리통을 연신 두드릴 뿐이었다.
그 즈음 여포의 두 다리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제야 안면을 후려치기 위해 치켜 올랐던 부루의 팔이 허공에 걸린 듯 우뚝하니 멈추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그때 부루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부루의 양손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의 손에서 핏물이 뚝하니 떨어져 내리다가 중간에서 붉은 먼지가 되어 흐트러졌다.
부루의 허리가 살짝 굽혀졌다.
그의 손에 여포의 성한 다리 쪽의 발목이 쥐여졌다.
그렇게 다리 한 짝을 잡은 부루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왔다. 여포의 몸뚱이가 볼품없이 땅바닥에 질질 끌려왔다.
부루가 향한 곳은 얼어붙어 있는 장웨이가 서 있는 방향이었다. 그렇게 여포를 끌고 간 부루가 장웨이의 앞에 멈추어 섰다.
“니보라.”
부루가 무표정한 얼굴로 장웨이의 앞에 서서 말을 이었다.
“시비는 딴 놈이 걸고 매는 와 엄한 놈이 맞는 거이간?”
“그…….”
부루의 말에 장웨이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답해 보라. 와 이런 거지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디?”
투욱.
부루가 여포의 한쪽 다리를 한쪽에 던져 놓았다.
힘없이 떨어지는 여포의 다리.
장웨이의 시선이 여포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엉망으로 부수어진 여포의 안면이 들어왔다.
시뻘건 피로 범벅이 되어 알아볼 수도 없었다.
눈코입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한쪽 눈은 어디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까만 눈동자가 장웨이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없이 뜨여져 있는 눈동자.
장웨이는 그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돌린 곳에는 부루가 있었다.
“말해 보라. 이 아새끼가 무슨 잘못을 한 거이간?”
장웨이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고개를 돌려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빈! 강림자 거두어 가라!”
“아저씬 내 말 안 들어요!”
“개소리 말고 당장 거두어 가란 말이다!”
장웨이의 외침에 빈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틀린 말 하나 없구만. 그리고 왜 욕이세요? 미치신 거예요? 너 나랑 다이다이 할래요?”
빈이 삐딱하게 고개를 비틀며 한걸음 나섰다.
그 모습에 장웨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였다.
부루의 우왁스러운 손이 장웨이의 턱주가리를 잡아 당겼다.
부루의 앞으로 끌려간 장웨이의 두 눈에 공포가 서리기 시작했다.
“내 말이 우스운 거간? 말을 하는데 와 딴 데 소릴 지르고 자빠졌네?”
“우큭!”
“강림자는 마물과 싸우라 생겨난 거 아니네? 기런데 와 나랑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이간. 답하라우.”
“으극!”
장웨이의 시뻘게져 있던 얼굴이 점점 하얘지고 있었다.
그의 코앞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부루의 모습에 점차 공포로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답아라. 내래 몇 번째 물었는지 알고는 있네?”
“그…….”
“답하라.”
“크흑.”
창백한 장웨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와서 부루의 등을 툭툭 친 것이다.
부루가 고개를 돌려보니 빈이 서 있었다.
“알면 했겠어요? 이 짓을?”
빈의 말에 부루가 피식 웃었다.
“길쿠만. 우문현답이야.”
“그거 우문이면 아저씨가 우문인가 한 거?”
“…….”
부루는 장웨이의 턱주가릴 잡았던 손을 놓고 대신 빈의 멱살을 잡았다.
“아악! 살려 주세요!”
“닥치라우!”
“아아악!”
빈의 애처로운 비명만 이어질 뿐이었다.
그제야 풀려난 장웨이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다.
그의 시선이 다시 여포를 향했다. 부러져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던 그의 허벅지가 제자리로 가 있었다.
그리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던 여포의 얼굴이 조금이지만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뒤덮여 있던 피들이 천천히 가습기가 운무를 뿌리듯 허공으로 붉은 안개를 펼쳐내며 걷혀져 가고 있었다.
여전히 여포의 시선은 장웨이를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이 마주친 순간 여포의 입이 열렸다.
“나도 궁금하군.”
“……뭐?”
“그 대답.”
장웨이는 멍한 얼굴로 여포를 바라보았다.
여포의 검은 두 눈동자가 장웨이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검은 눈동자가 왠지 타인을 바라보는 것 같은 차가운 감정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여포의 시선이 저절로 떨어졌다.
하늘을 향했다.
하늘을 바라보고 누운 여포가 입을 열었다.
“졌군.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이 또한 감정 담긴 음성이었다. 그 음성에는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전투의 흔적을 지웠고, 누군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