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승부감별사 김경징
“왓?”
순간 맷 중장도 놀라 소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와이리 시끄럽게 구는 거이간? 내래 좀 먹었다고 기러는 거이간? 쌉쌀하기만 하구만.”
입맛을 다시는 부루를 보며 맷 중장은 옆의 구 박사를 바라보았다.
구 박사는 맷 중장의 멍한 표정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가 부루가 음식 섭취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뭔가 증명할 수 없었다. 섭취로 인한 변화가 없기도 했고, 또 이게 어떤 의미인 지도 확인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장웨이도 놀란 목소리를 터트렸다.
“사, 사기꾼들!”
장웨이가 버럭 소릴 내질렀다.
“가, 강림자가 아니었어!”
순간 장웨이가 뒷걸음질 치며 손가락질을 했다.
“너, 마물들과 같은 존재였구나!”
구 박사는 장웨이의 반응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먼.”
하지만 맷 중장은 이미 그와 관련된 많은 사전자료를 알고 있기에 놀라기는 했지만, 장웨이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웨이는 달랐다.
“어쩐지 여포가…….”
강함을 물었을 때 여포의 대답이 석연히 못했던 구석이 있었다.
그것이 겹치니 장웨이의 판단은 일견 타당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손가락질을 당한 이였다.
“…….”
부루의 눈썹 중앙이 내려앉고 양 끝은 치솟아 올랐다.
미간에 주름은 밭고랑처럼 패여 있었다.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은 툭 하니 튀어나올 것같이 부릅떠져 있었다.
“대체 뭘 숨기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잘못 짚었어.”
장웨이가 구 박사를 노려보며 말을 이을 때 부루가 그를 향해 벌을 내딛었다.
그와 동시에 부루의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여포였다.
“나오라.”
“그대는 위험하다.”
여포가 스스로 나섰다. 명령도 없이 말이다.
이는 소환자의 신상에 위험이 느껴질 때나 보이는 방어기재였다.
“역시! 대체 지금 무슨 짓들을 하는 거야! 쮠펑(미쳤어)!”
나중에는 열이 받았는지 중국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당연한 것이 강림자는 소환자에게 함부로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장웨이의 반응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부루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머리 하나는 차이나는 신장 때문이었다.
단단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부루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새끼래. 쳐 맞기 싫으면 나오라우.”
“그럴 순 없다.”
“깡다우 좋구만 기래.”
부루의 치솟았던 눈썹은 가라앉고 대신 입 꼬리가 끌어올려졌다.
따지고 보면 오해이기도 하고 딱히 화낼 일도 아니었다.
다만 며칠간 있었던 역사 강의(?) 덕에 작은 자극이었지만 꽤나 열이 쉽게 오른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겟이 바뀌었다.
“한번 어울려 보자우.”
부루의 제의에 여포는 멈추어 있었다.
“니 보라. 내말…….”
말을 하던 부루는 다시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그 뒤를 보았다.
“니 보라우. 마물 앞에 두고 뭐 하는 거이간? 없애야디 않간?”
“…….”
장웨이의 얼굴은 확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부루를 향해 손목의 패드를 이용해 수치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옆에서 구 박사가 말을 걸고 있었다.
“흠흠. 어떤가? 강림자 맞지?”
“0.00001이라니…….”
그 모습을 본 부루가 구 박사를 보며 인상을 썼다.
“오케 쓸 때 없는 짓거릴 한 거이네?”
“그, 그게 오해는 좀…….”
“니보라. 궁금하디 않네? 인중……뭔포랑 나랑 누가 쎈디 말이야.”
순간 구 박사의 눈이 반짝였다. 마치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 맷 중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구 박사가 말했다.
“감정싸움은 참아 주시고…….”
“까오리 빵즈.”
순간 구 박사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맷 중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구 박사가 천천히 부루를 바라보았다.
“그, 이 말은 말이오…….”
“욕이디.”
“…….”
“우리 때 간혹 전쟁하다 보면 몇몇 놈들이 저래 떠들고 도망가고 기랬디.”
까오리빵즈.
즉 고려봉자. 그 속설에 대해서는 분분했으나, 정확한 건 욕이라는 점이다.
나라 이름에 비하하는 의미의 빵즈를 붙인 거다.
구 박사가 긴장했던 건 그가 역사학자가 아니라서 이 욕설의 유래를 확실히 몰랐던 것이다.
만약 부루가 몰랐다면 넘어가려 했던 것이고 말이다.
청나라 시절 문헌에도 있었기에 오래 되었다는 사실만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부루가 인지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때 부루가 맞받아쳤다.
“자라새끼. 주둥이로 덤빌거이간?”
“너!”
결국 중국인들에게 최고의 욕까지 부루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걸 본 구 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왕빠단의 유례 또한 오래 되었다는 걸 확인하긴 한 건데…….”
구 박사는 한숨을 쉬며 뒤로 물러섰다.
맷 중장 역시 천천히 물러섰다.
어차피 강림자들의 전투다.
물론 여포쯤 되는 강림자라면 한번 역소환 되면 다시 되돌아오는데 거의 보름이상 걸린다.
만약 대침식 시기였으면 치명적인 피해였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니 오히려 이들의 승부를 통해 정보를 쌓는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장웨이는 뒤로 물러서며 차분하게 부루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놀라서였지만, 마지막에 던진 욕은 도발이었다.
구 박사가 말리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정도 해야 나중에 이쪽도 변명거리가 있다.
분명 부루가 도발을 했으니까.
당국에서도 그에게 한번은 꺾으라는 밀명을 내렸기에 이번 기회를 자연스럽게 이용했던 것이다.
“여포. 놈을 바닥에 기게 만들어라.”
장웨이는 나직하게 명을 내렸다.
그러자 여포가 그를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원하는 대로.”
그와 동시에 여포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을 중신으로 기다란 봉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날이 한쪽 끝에 생성되었다.
“어?”
한쪽 끝에 있던 고빈은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보았다.
“아, 그냥 창이네.”
“저건 창이라기보단 모라고 해야지.”
그때 그의 뒤쪽에서 누군가가 대답을 해 주었다. 뒤에서 말을 걸어온 건 바로 천유화였다.
“단창 아니에요?”
유화를 본 빈이 묻자, 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 겉으론 대충 비슷한데 저건 좀 무겁다고 봐야지. 장병기라기보단 중병기에 속한다고 해야 하나?”
“그게 뭔 차인데요?”
빈의 질문에 유화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저런 거가 창.”
묵갑귀마대원 하나가 창 하나를 흔들자 탄력 있게 능청이는 모습이 보였다.
“반대로 그냥 딱딱한 봉에다가 날 달린 건 모라고 보면 돼.”
“아.”
고개를 끄덕이던 빈이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나왔는지 가우리 인들이 추리닝을 입고 와서 어기적거리며 이리저리 엉덩이를 붙이며 구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
빈이 걱정이 되는지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왜?”
유화가 묻자 빈이 질문을 했다.
“괜찮을까요?”
“글쎄.”
빈의 질문에 천유화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안 말려요?”
빈이 창백한 얼굴로 묻자 유화가 한숨을 팍 내쉬며 대답했다.
“말릴 수 있는 사람 이 세상에 없다.”
“그, 그럼 어떻게 해요!”
“죽이지만 말아달라고 부탁해 보렴. 원래 강림자는 소환자 명령 듣는다며?”
“예?”
순간 유화의 말에 빈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양반 니 강림자라며?”
“그럼 죽는다는 게…….”
빈의 반응에 유화를 비롯한 가우리 병사들이 순간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크크크!”
유화가 웃다가 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저 양반을 걱정한 거였어?”
“아, 아하하하!”
순간 긴장이 풀린 듯 빈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을 보던 유화가 빈을 툭 치며 말했다.
“야, 근데 진짜 안 말려? 너 싸인인지 뭔지도 받고 했잖아.”
“그건 중고나라에 이미 올렸고요.”
“응?”
“으흐흐. 이기는데 왜 말려요? 자…….”
빈은 캠코더를 켰다.
연구용으로 허락된 것이지만, 언제부턴가 빈이 열심히 들고 다녔다.
언젠가는 이걸 편집해서 올릴 수 있는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말이다.
“뭐냐?”
“박제요.”
빈의 알수 없는 답변에 유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를 들고 선 여포를 보며 부루가 뒤를 향해 외쳤다.
“떤지라우.”
그의 외침에 뒤에서 거대한 대부가 날아왔다.
훙훙훙훙!
묵직한 바람소리와 함께 맴돌며 날아온 대부를 부루가 그대로 받아들었다.
터억!
손에 쥐는 순간 묵직한 소리가 울려왔다. 동시에 부루는 손목을 한 바퀴 돌렸다.
부와악!
손에 쥔 대부가 원을 그렸다.
그 짧은 시간에 이미 둘의 대결이 소문이 났는지 사방에는 구경꾼으로 넘쳐났다.
연구원들은 빈과 마찬가지로 부랴부랴 영상을 촬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신길드뿐 아니라 미국 쪽 소환자들도 긴장된 표정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 중에는 신컨길드장인 구도하와 김경징도 있었다.
구도하가 물었다.
“누가 이길거 같아.”
“모르오.”
김경징의 대답에 도하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질문을 바꾸었다.
“여포랑 싸울래, 저 부루라는 양반이랑 싸울래.”
도하의 질문에 김경징이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보기 싫소?”
“……하아.”
한숨을 내쉰 도하가 다시 물었다.
“그게 아니라 그 감이란 거 좀 보자고. 만약에 꼭 싸우라면 누구랑 싸우겠냐고.”
“음.”
신중하게 생각을 한 김경징이 도하에게 대답했다.
“부루.”
그 대답에 도하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부루?
좋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하 역시 한국 사람이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던지 간에 국가 대항전에서 자신의 나라를 응원 안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지금 위험감별사인 김경징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여포가 더 위험하다는 거야?”
도하의 질문에 김경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소.”
“젠장.”
김경징의 대답에 도하는 작게 욕설을 뱉고는 시선을 돌렸다.
왠지 자신의 자존심까지 상처를 입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때 김경징의 말이 이어졌다.
“확실히 여포란 자는 보폭이 큰 만큼 도주할 때 따라잡힐 가능성이 크오. 허나 부루 대장군님은 보폭이 짧아 잘 하면 도주에 성공할 수…….”
김경징의 말을 듣고 있던 도하가 그를 돌아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 쪽팔려 뒤질 거 같으니 그만 말하자.”
“……큼. 살아야 하오.”
도하가 시뻘게진 얼굴을 부비며 나직하게 욕설을 뱉었다.
“하우씨!”
도하의 질문에 김경징은 처음부터 도주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었다.
쪽팔린 건 쪽팔린 거였고,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하는 긴장감이 흐르는 부루와 여포 둘을 보다가 다시 질문을 덧붙였다.
“도주도 안 돼. 진짜로 싸우라고 안 시켜. 만약에 그냥 만약 싸운다는 생각을 했을 때 누구랑 싸울까? 딱 둘만의 선택지가 있다고 했을 때 말이야.”
도하의 길고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경징이 대답했다.
“부루 대장군님.”
“……왜?”
이번에도 대답은 부루였다. 하지만, 이번엔 먼저 이유를 물었다.
그의 질문에 김경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