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차별대우
그때 빈이 끼어들었다.
“그게 아마 고구려 때라면 다뜨읍!”
순간 강 대위가 빈의 입을 틀어막으며 말을 이었다.
“이웃나라입니다.”
“기래?”
하지만 부루의 시선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흐음.”
장웨이는 둘째 치고 여포의 행색이 눈에 익은 탓이었다.
“선비 쪽인가?”
뒤쪽에서 가우리 병사들의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부루는 강 대위를 슬쩍 보곤 몸을 돌렸다.
“내래 바보간?”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지고 말이다.
부루가 물러간 뒤 강 대위는 장웨이에게 눈인사를 하고 그대로 빈을 끌고 물러갔다.
눈치를 못 챌 리는 없었다.
장웨이는 멀어져가는 이들을 바라보다가 나직하게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까오리 빵즈…….”
불쾌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꾸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를 향해 구 박사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빈은 강 대위의 손을 떼어내며 침을 뱉어 내었다.
“에퉤퉤! 왜 그러세요!”
“조심하지?”
“뭐가요?”
“고구려 말기 때 이웃나라와 사이가 좋았냐?”
“그야…….”
빈은 강 대위의 눈치를 보며 뒷말을 줄였다.
하지만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화내실까요?”
“일단 안 내시도록 해 봐야지. 시대가 다르니…….”
“일 없어야.”
그때 부루의 음성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내래 눈깔이 보기 좋으라 달린 줄 아네?”
“아, 예.”
“여폰지 하는 아새끼래, 복장이 옛스럽긴 해도 대충 눈에 익드만.”
부루의 말에 두 사람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도 가져 오라.”
“예?”
“나라 반 토막 났다가 합쳐진 것까지는 내래 아니까네 지도 가져오란 말이디.”
부루의 말에 빈이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서 보여 주었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도였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부루가 툭하니 질문을 던졌다.
“여기가 중국이라는 곳이네?”
“예…….”
부루가 짚은 곳은 만주가 있는 쪽이었다.
“우리 땅은 죄 넘어가 있구만 기래.”
부루의 중얼거림에 빈과 강 대위는 그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죄졌네?”
“괜찮으세요?”
툭하니 던진 부루의 말에 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괜찬티. 기런데 어쩌갔어…… 나라 뺏긴 건 우린데 말이디. 죄인은 우리디.”
부루가 스마트폰을 넘겨주곤 그대로 뒤돌아섰다.
발걸음에는 힘이 없었다.
“저, 장군님?”
평소라면 아저씨라 불렀겠지만, 빈은 조심스럽게 장군님이라 불렀다.
하지만 부루는 듣고도 못 들은 척 걸음을 옮겼다.
“어쩌죠?”
“일단…….”
빈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던 강 대위가 말을 이었다.
“……경험자의 도움을 받아야지.”
“예?”
강 대위가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자 빈이 그 뒤를 바쁘게 따라 붙었다.
똑똑똑.
을지부루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들어오시라요.”
문 밖에 누가 왔는지 아는 듯 부루는 비교적 공손하게 답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세인과 송가은 작가였다.
“얘기 들었어요.”
“열제께서도 이 이야기 들으셨습네까?”
그의 질문에 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쿤요.”
부루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송가은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탓이 아니에요.”
“…….”
별로 위로가 되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때 송가은이 들어와 메모리를 부루에게 쥐어 주었다.
“그때 폐하께서 보셨던 거예요.”
“이거 말입네까?”
그때 빈이 고개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제가 틀어 드릴게요.”
“……기래.”
부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건네준 것은 고구려 멸망 관련 다큐멘터리와 이후의 역사가 담긴 영상 자료들이었다.
고진천과 일행들이 이미 보았던 것들이었다.
“넓은 곳 있네?”
“예?”
부루의 질문에 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걸 나 혼자만 볼 수는 없디 않네.”
“아, 예.”
이후 강당으로 모인 부루와 가우리의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상영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건 밤이 지나도록 이어졌다.
장웨인과 함께 합류한 연구원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조만간 정리되어 세계 각국과 공유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미리 본 것만으로도 꽤 충격이 컸던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훈련이 중단된 겁니까?”
중국인 연구원들은 하루라도 빨리 연구가 재계되어 장웨이를 상대로 데이터를 쌓고 싶어 했다.
“곧 시작될 겁니다.”
장웨이는 독촉하는 연구원들을 한번 쏘아보았다.
그의 눈길에 흥분했던 연구원들은 이내 시선을 피했다.
장웨이는 연구 영상 중 보여졌던 훈련장면을 보았다.
그걸 보는 순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훈련을 빙자한 가혹행위였다.
차라리 지금처럼 휴식기를 가진 것이 나았다.
물론 다른 이유에서 훈련이 잠시 중단된 것이지만 말이다.
“내가 대체 왜…….”
장웨이는 이를 빠득 갈았다.
아무리 필요에 의해서라지만 아까 그 장면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웨이는 고개를 돌려 보았다.
“흠!”
한쪽에 있는 여포가 입을 꾹 다물고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흠!”
그는 여전히 싸인 중이었다.
여포는 어딜 가나 인기를 독차지하는 강림자였다.
그에게는 행운이자 자랑이었다.
장웨이는 그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전에 봤던 강림자 기억해?”
장웨이의 질문에 여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강림자를 말하는 거지?”
“을지부루라던 자.”
“흠.”
여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가?”
장웨이의 질문에 여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는 강하지.”
“아니 그 강림자.”
“어떤 강림자를 말하는 거지?”
“부루라는 강림자.”
“아아.”
장웨이는 화를 억눌렀다.
알려지지 않은 비밀 하나.
여포는 전투를 빼면 딱히 머리가 왜 달렸는지 모를 정도였다. 무식하다기보다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쪽이었다.
소설 같은 곳에서는 무식하기 짝이 없게 그려지긴 했어도, 역사서에는 그렇게까지 쓰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소환자인 장웨이는 소설이 더 실제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어떻지?”
“무엇 말인가.”
“……부루라고 하던 강림자가 강한가 물어보는 거다.”
“아아.”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여포는 미간을 찌푸린 채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한가?”
“응?”
순간 장웨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대답이 뭐 이런가 싶었다.
“무슨 대답이…….”
“알 수 없군.”
“……알 수 없다?”
장웨이는 여포의 대답에 화를 내다 말고 얼굴을 찌푸렸다.
처음 듣는 답변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자신이 더 강하다고 표현한다. 실제 대결도 그랬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답을 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알 수 없다는 게 강하다는 의미냐?”
장웨이의 질문에 여포가 대답했다.
“알 수 없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을 의미하지. 강하다는 건 나처럼 쎈…….”
“왕빠단!”
“음? 누굴 말하는 거지?”
이럴 땐 마치 자신이 아니라는 듯 두리번거리는 여포의 모습에 장웨이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을지부루와 여포 둘 중 누가 강하냐 물었는데 알 수 없다고 대답했잖아. 이 알 수 없다는 게 상대가 강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거야?”
뭔가 설명이 잔뜩 붙은 질문에 여포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장웨이는 답을 기다렸다.
이런 긴 침묵 역시 여포답지 않았다.
이 역시 처음이었다.
“정말 모르겠기 때문에 모른다고 한 거다. 말 그대로 붙어 봐야 알 듯하다. 마치 장막에 가려진 느낌이랄까.”
“…….”
장웨이는 여포의 답변에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러니 연구 대상이겠지만, 여포까지도 이렇게 느낄 정도라면 정말 모를 일이다.
그래도 설마하니 여포보다 강한 건 아닐 것이다.
그건 장웨이가 가장 잘 안다.
여포가 얼마나 강력한지 말이다.
그때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렸다. 아까 보았던 훈련장면이 떠올랐다.
“나와 대련할 수 있냐?”
“매 맞는 취미가 있었는가?”
“에이씨!”
장웨이는 다시 쌍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 * *
멧 할러데이 중장은 절도 있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한동안 멈추어 있던 훈련이 시작되면서 그의 합류가 결정되었다.
물론 일부 연구원들의 시선은 걱정투성이었다.
그때였다.
“맷 중장.”
구 박사가 그에게 말을 걸어 왔다.
“쿠 박사님.”
그와는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이였다.
맷 중장은 주한미군 출신이었다. 대침식 초기 한국군과의 연합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때는 본국으로의 복귀고 뭐고 간에 당장 생존하는 게 중요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당시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다.
그와의 인연 덕에 마물 관련 연구에 빠져든 것도 이유로 들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가 적임자로 한국에 온 것은 당연했다.
“자.”
“뭡니까?”
“홍삼이네.”
“오!”
홍삼이란 말에 맷 중장이 반색을 했다. 한국에서 근무한 덕에 홍삼이 몸에 좋은 건 그도 잘 알았다.
홍삼을 마시자, 구 박사는 환약을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공진단일세.”
“아하하! 땡큐, 뭐 이런 걸…….”
구 박사의 호의에 고맙다는 말을 하던 맷 중장의 눈이 구 박사가 바닥에 놓아 둔 종이봉투로 향했다.
“쿠? 이거 혹시…….”
맷 중장의 말에 구 박사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 몸에 좋은 거네. 훈련 받으려면 건강해야지. 자네 나이도 있는데. 하나씩 먹고 힘내게.”
“…….”
맷 중장은 순간 구 박사의 미소가 악마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쉽게 죽지 말고 연구 데이터로 승화하라는 메드 사이언스 같은 느낌이었다.
“난 맷 자네를 믿네.”
“자, 잠깐.”
순간 맷 중장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먹게.”
“왁!”
무언가 말을 하려던 맷 중장의 입에 시커먼 환약과 액체가 연달아 들어왔다.
그리고 그중에는 눈에 익숙한 마름모꼴의 파란 알약까지도 있었다.
‘비……비X그라는 왜!’
맷 중장은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또 한 명이 있었다.
장웨이는 맷 중장이 보양식을 대접받는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식으로 차별하는 건가?”
미국이 먼저 손을 뻗은 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설급 강림자의 소환자인 자신이 왔다.
그럼에도 이렇게 대놓고 차별대우를 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런 장웨이에게 강림자인 여포가 입을 열었다.
“뺏어 올까?”
“……참아.”
장웨이는 여포의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보며 대답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여포는 탐욕의 화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저것을 먹을 수는 없어도 빼앗는 그 자체로 만족하는 종자가 바로 그의 강림자 여포였다.
“아깝군.”
여포가 입맛을 다시며 맷 중장의 약들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뭘 그리 처먹고 있는거이간? 좋은 건 나눠 먹어야디 않갔어?”
그때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이는 을지부루였다.
순간 장웨이는 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부루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맷 중장 앞에 와서 섰다.
“뭐이간?”
그러더니 종이봉투에 있던 음료 하나를 쭉 찢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억!”
“음?”
순간 장웨이는 놀란 외침을 터트렸고, 여포는 신기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