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안 팔아요
영상을 보고 난 뒤 연구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강훈련이라는 말도 모자란 장면들이었다.
“훈련을 빙자한 살인행위요!”
장성이 벌떡 일어서며 버럭 소릴 내질렀다.
그뿐 아니라 다들 별반 다른 표정은 아니었다.
심지어 한국 쪽 공무원들은 이 일이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까 봐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아무도 죽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이 정도 강도는 아니니까요.”
“그래도!”
“담금질과 같은 과정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때 인체를 스캔한 듯한 화면이 나왔다.
“하루하루 훈련을 통한 변화를 보여주는 영상입니다. 이 인체 외부의 푸른 막 보이시지요?”
“저건?”
연구원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마물들의 체외에 존재하는 에너지막과 같았다.
물론 강림자에게도 존재하는 에너지였다.
다만 소환자의 경우 존재는 하나 의미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화면에 비치는 건 마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일정 이상의 충격과 운동능력이 동반되었을 때 이 에너지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눈앞에 보이는 증거를 보며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이어서 전신 길드의 스캔 화면이 떴다. 더욱 큰 탄성이 흘러나왔고, 마지막으로 고빈의 신체스캔 자료가 떴다.
“이럴 수가…….”
“다만 이 그룹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또 다른 사진이 화면에 비춰졌다.
“음?”
연구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에너지가 짙기는 했지만, 약간 부족함이 느껴졌다.
훈련도가 떨어지는가 싶었지만, 굳이 이걸 왜 이 시점에 보여 주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신길드원입니다. 앞서 보여 줬던 이들과 똑같이 훈련을 받았던 이들입니다.”
“응?”
“그건 무슨 말입니까?”
“이게 같은 기간이라는 말입니까? 3차 연구대상인원보다는 낫지만 다른 이들과는 차이가 너무 크잖습니까?”
“무슨 차이가 있는 겁니까? 아까 말한 담금질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연구원들의 질문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구 박사가 살짝 손을 들어 올리자 소란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실전의 차이입니다.”
순간 다들 놀란 눈을 했다.
“이들은 외곽에서 백업을 맡았던 병력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마지막 전투에서 직접 돌파를 했던 인원들입니다.”
“개인차가 아니라는 말이군요.”
전투를 겪었던 이들 중에서도 차이가 드러난 것이다.
“극한의 훈련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에너지의 충돌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구 박사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극한의 훈련을 통한 에너지의 활성화에 이은 강림자들의 구타를 통해 에너지가 뭉쳐지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이 끝이 나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짝짝짝짝짝!
“역시 선구자답습니다! 어떻게 이런 방법을 밝혀냈습니까?”
“대단합니다!”
“하, 하하하…….”
연구진들의 찬사에 구 박사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이는 바로 강 대위였다.
그의 표정 역시 비슷했다.
사실…….
이 연구는 결과가 먼저 나온 뒤 추적하면서 나온 것이다.
데이터를 쌓아 가며 만든 것이 아니었다.
빈과 전신길드원들의 발전에 의구심을 가진 구 박사가 뒤늦게 과정을 유추했던 것이다.
실제 연구 데이터는 후발주자인 3차 연구 대상들로 쌓아 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소환자들 말이다.
구 박사가 질문을 했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때 부루가 말했다.
‘데지기 싫으면 자연스레 늘게 되어 있는 거이디.’
이유는 없었다.
굴리고 패고.
물론 아예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다.
실전을 방불케 한 훈련이야말로 강군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봤을 때는 죽지 못해 발악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그게 끝이 난 다음에는 실전에 필요한 기술을 차분하게 익힐 시간을 준다.
즉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대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일반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연구원들은 결과에 고무되었다.
어느 정도는 의도된 부분도 있었다.
사실 소환자들의 생존력 향상을 위해 희생되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전 세계적인 문제였다.
또 한 가지.
강림자는 강력하기는 하나 소환자들의 명령에 따르는 존재다.
특히 인지도가 낮을수록 수동적인 면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원활한 전투가 이어지지 못했다.
물론 중심이 되는 장수급이나 영웅급의 강림자가 있기는 하지만, 그 역시 소환자가 후방에 잔류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신컨길드의 구도하가 직접 개조한 전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다.
또 전신길드원들의 경우도 완전 후방이 아닌 어느 정도 중간까지 기동을 하며 전투를 벌여 왔다.
그런데 이런 생존력이 확보 된다면 양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최소한 소환자도 적극적인 전투는 몰라도 전투의 한 축을 유지하면서 강림자와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혁명이 될 수 있어.”
장성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핵심을 알았으니 행하면 된다.
지금이야 한국에 빌붙은 상황이지만, 방법을 알았으니 본국으로 돌아가서 이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땡큐. 구.’
장성은 속으로 구 박사를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그 순간 구 박사와 장성의 눈이 마주쳤다.
구 박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뭐지?’
장성은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구 박사의 말에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일반적인 강림자들은 소환자에게 이러한 훈련을 시키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구 박사의 말에 연구원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강림자들은 기본적으로 소환자를 보호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물론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극한에 달하는 훈련은 강림자를 통하지 않아도 가능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입니다. 실전에 가까운 대련이 불가능했습니다. 일반적인 대련? 그게 한계였습니다.”
“효과는요?”
효과에 대해 묻자 구 박사가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없다는 건 아닙니다. 확실하게 달라지니까요. 자 여기 표를 보십시오.”
“아…….”
가장 낮은 부분.
트레이닝을 받은 그룹. 그리고 바로 그 위.
완만하게 상승을 그리고 있는 그래프가 있었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꾸준한 훈련을 통한다면 충분할 것입니다.”
“으음.”
“사실 문제라 할 건 없습니다. 앞선 그룹의 성과가 너무 확실해서 낮게 느껴지는 것뿐이니까요.”
미국 쪽 연구원들은 구 박사의 미소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초반에 그런 그래프를 노출 시키고 마지막에 이걸 보여 주면…….’
구 박사가 마치 노련한 장사꾼처럼 보였다.
이미 명품에 눈이 멀었는데, 이런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연구 자료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 조만간 공개할 예정입니다. 그럼 오늘 연구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구 박사가 밖으로 나서기 시작 하는 동시에 미국 쪽 연구원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역시 토르가 핵심이야.”
코드명 토르.
을지부루의 별명이었다.
물론 그가 망치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쌍둥이 형제가 호크아이라는 코드명을 가진 덕에 저절로 붙었던 것이다.
그 중얼거림을 들은 한 남자가 중얼거렸다.
“무슨 어벤져스도 아니고…….”
내부 경비를 맡은 최후배 경감이었다.
그만이 온 것은 아니었다.
정보부 쪽 요원으로는 김창진 역시 파견되어 왔다.
물론 서준모 경장 역시 이곳에 파견되어 왔다. 그의 직위 역시 상승했다.
무려 경위였다.
“야, 정리하자.”
“저 경감입니다.”
“알어. 경감. 나보다 두 계급 높네. 좋겠다.”
“끙.”
서 경위의 말에 최 경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이곳에 온 것은 십 년 전의 일과 연관된 인물들이기 때문에 특채로 온 것이다.
“그나저나 이 양반들은 뭔가 평범한 거랑은 거리가 멉니다.”
“그러게.”
“저쪽 봐라. 눈빛 살벌하다. 납치라도 할 표정이다.”
서 경위의 말에 최 경감이 슬쩍 시선을 던져 보았다.
미국 쪽 인원들의 눈동자가 번들거리는 것이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아 보였다.
“납치나 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해도 문제 아닙니까?”
“그렇지. 십 년 전보다 더한 일이 벌어질지도…….”
“하긴 숫자가 다르니.”
부루와 이백에 달하는 그들을 생각하면 절로 다리가 떨려 왔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판도라 멤버들을 잘 지키라고 말만 했는데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할 걸요?”
“그렇지? 강림자는 또 다른 존재니까.”
“그렇죠.”
신체의 능력을 벗어난 존재다.
괜히 인지도 타령을 하는 게 아니다.
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가 달랐다.
실제 병사급 강림자도 소형 자동차를 들 정도의 괴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뭔가 별 어쩌고는 발표 안 한 거 같은데?”
“그건 비밀이겠죠. 쟤들 아까 눈 반짝거리는 거 안 봤어요?”
“봤지. 그리고 마지막에 똥 씹은 표정 짓는 것도.”
그렇게 말을 나눈 둘은 구 박사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 * *
“회유를 하는 건?”
“일단 요원을 붙이기는 했는데 보안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연구에 참석을 했던 맷 할러데이 중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접근을 해야 설득을 할 것인데.”
“3차 훈련자들과 접촉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으음.”
고심이 이어졌다.
그때 멧 중장이 꾹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내가 훈련을 참여하도록 하지.”
“예?”
“지금까지는 강림자가 있는 소환자의 경우이지 않았는가.”
“그건 그랬지요.”
“강림자가 없는 소환자의 훈련은?”
“설마?”
정보부 요원이 맷 중장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강림자가 없지만 소환자 적합자일세.”
“하지만, 연세가…….”
“아직 팔팔해!”
버럭 소리를 지른 맷 중장이 몸의 근육을 드러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난 아직 현역이라고!”
맷 중장의 외침에 정보국 요원은 어떻게 본국에 보고를 해야 할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말리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의 말마따나 설득하기에 적절한 직위와 재량을 가진 이는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가 나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한국정부가 모를 리 없었다.
“흥, 납치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정당한 제의를 통한 스카웃일 뿐!”
맷 중장의 말에 정보국 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직접 참여하신다고 보고는 올리겠습니다.”
“어차피 내 참여는 그들의 선택일 테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당장 보고부터 올려야겠군.”
맷 중장과 정보국 요원이 각자 보고를 위해 움직였다.
* * *
와아아아!
공항에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게이트를 나서는 이는 바로 강림자였다.
떡 벌어진 어깨에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당당한 체구.
게이트를 벗어나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며 나온 이는 바로 중국의 강림자였다.
“여포다!”
“와, 실물 쩐다!”
중국의 전설급이라 불리는 강림자 여포 봉선이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