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52화 (52/305)

제52화 1차 연구보고

“그래도 부자 됐잖아.”

“……형님은 왜 여기 자꾸 오는 거요. 염장 지르러 왔소?”

육의찬 감독이 울분을 누르며 전창걸 대표에게 물었다.

사실 전창걸 대표의 말마따나

돈은 벌었다.

그것도 많이.

그러나 이미 이 주변의 땅을 매입했던 전창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물론 그의 의견을 따라 조금 더 구매를 한 덕에 재미를 봤지만.

그때 육 감독의 질문에 전 대표의 얼굴이 썩어 갔다.

“몰라서 묻냐?”

“하긴…….”

육 감독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는 여인들이 있었다.

바로 세인과 송가은 작가였다.

시커먼 사내들에게 둘러 싸여 호위를 받는 건 둘째치고 자신들에게는 악마나 다름없던 을지부루가 그녀 앞에서는 돌쇠마냥 행동하고 있었다.

“지금 세상에 무슨 후궁이라니…….”

“놔둬라. 지들이 좋다는데. 그리고 안전하고…….”

“안전이라…… 하긴 지금 세상에는 그게 최고기는 하죠.”

사실 자신의 터전이 거대한 훈련소가 되어 버렸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이곳만큼 안전한 곳도 없었다.

침식균열이 다시금 생성되고 나서 대한민국은 다시 계엄에 들어갔다.

연예계 활동이 아예 멈춘 것은 아니지만, 판도라의 경우 어차피 휴식기이기에 대외활동을 멈추었다.

다만, 군부대를 위주로 위문 공연을 하는 것은 판도라 멤버들이 원한 일이기에 여전히 스케줄을 잡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그녀들이 이곳에 있는 것은 을지부루의 요구 아닌 요구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바로 전에 있었던 침식균열을 겪고 무어라도 해야 한다며 나서서 무료행사를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저기 변탠지 은탠지 하는 양반은 왜 저렇게 찰떡같이 붙어 있답니까?”

“구은태 박사. 뭐, 연관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

구은태 박사는 물 만난 고기마냥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번 침식균열은 세계적으로 큰 전환점을 의미했다.

소환자와 강림자의 상관관계가 처음부터 잘못 설정되었다는 이의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루와 고빈의 관계이기는 했지만…… 새로운 표본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구도하와 김경징이었다.

빈의 명령에 주먹부터 날리는 부루야 그렇다 치더라도, 도원의 명령에 저항한 김경징의 경우는 또 달랐다.

심지어 전신길드의 강림자들이 일제히 영향을 받고 있는 것들이 발견되었다.

물론 대놓고 소환자의 명령에 불복하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생동감이 있어졌다는 의미였다.

강림자의 급수는 단순했다.

의병급, 병사급, 갑사급, 장수급, 영웅급.

인지도를 기준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소환 당시의 복장을 토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장수급부터는 역사서에 이름을 알린 경우가 많았다.

좋던 나쁘던 말이다.

일견 외모로만 봤을 때에는 모는 강림자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반응하고 행동하고.

다만 그 부분이 수동적인 면이 많다는 점이 달랐다. 감정이 거세된 사람 같은 모습도 보였다.

그 경계가 장수급부터 달라진다.

감정도 보이고 확인은 어렵지만 생전의 성향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그게 영웅급쯤 되면 더 높아진다. 그런데 그 경계와 상관없이 전신길드의 강림자들은 대부분이 감정이 풍부해지고 있었다.

심지어 농담도 인지하며 존맛이니 하는 현대의 단어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쯤 되자, 강림자에 관한 정보부터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침식이 시작된 이후 7년.

안정을 찾은 건 불과 4년 정도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것이 베일에 쌓여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이런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고 나니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거기에 미국도 곁다리를 제대로 걸쳤다.

아무리 대침식 이후 세계의 경찰노릇을 하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강대국이란 지위가 어디 간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대침식 초기 본의 아닌 북진통일에 힘을 실어 준 것도 미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루 주변을 알짱거리던 첩보부가 이런 변화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 결과 그들이 내린 결론은 세계평화를 위해 미국에 내놓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쫌…… 이었다.

사실 그들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을지부루라는 강림자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것이 미국과 한국이었다.

십 년 전의 비밀을 공유한 것도 있지만 말이다.

그때도 단지 창칼만으로 경악할 만한 전과를 만들어 낸 이들의 일행이 바로 부루였다.

그러다 보니 더욱 조심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재빠르게 협조와 함께 숟가락을 얹었다.

그 표면적인 결과가 지금 전신길드의 뒤를 따라 달리며 먹은 것들을 확인하는 이들이었다.

“웨에에엑!”

“쿨럭!”

“가, 갓뎀! 언제까지 뛰냐고오오!”

눈물을 글썽이는 그들을 보며 뒤따르며 그들이 처질 때마다 창 끝으로 콕콕 찌르던 가우리 군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뛰기 싫음 말아. 대신 창 끄트머리가 궁뎅이가 아니라 아가리로 나올 거야.”

“홀리 셋!”

미군 혹은 정보국 출신 소환자들은 이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이들이 두려워서라도 내달려야만 했다.

그들은 이레귤러니까.

소환자 강림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롭게 재조명된 이레귤러.

물론 구 박사는 이들의 존재에 한글 사랑의 의미로 명명하긴 했다.

군식구.

부루에 따라붙은 식솔들이라는 의미였다.

물론 영웅급 이상의 강림자들중 일부는 자신 외에 자신이 이끌던 병력을 소환해 내기도 했다.

여기서 전설급이라는 구분도 있기는 했다.

수는 수십에서 백여 기까지.

강림자 하나의 전력이 웬만한 길드 전력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런데 부루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다.

싸우다가 달고 왔다.

거기에 이들은 마물들과 함께 이곳에 왔다가 전향을 한 것이다.

군식구라 했지만, 이레귤러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리긴 했다.

* * *

구은태 박사는 임시로 마련된 세미나실에 앉아 있었다.

그 주변으로 국가소속 연구원들과 미국에서 넘어온 연구원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구 박사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강림자를 단순한 도구로 인식했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구 박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대하는 자세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부린다는 인식이 시작이었으니까.

실제 그들이 세상에 나타난 뒤에 소환자의 말에 목숨을 도외시하며 싸우니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당연했다.

소환자의 기본 방어력이 함께 올라간 것은 강림자가 생기면서 생존을 위한 미지의 힘이 준 선물로만 생각하였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 침식균열을 통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때 강문호 대위가 화면을 돌렸다.

여러 가지 수치가 올라와 있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훈련을 받기 전의 신체능력과 그 후의 능력만 봐도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으음.”

“허?”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래프 수치가 거짓말처럼 솟구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보면 고빈이라는 소환자의 경우 그 능력치가 병사급을 넘어서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만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면 우리가 여기 모일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몇몇 연구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전신길드장을 비롯한 2차 훈련 인원들의 경우 역시 의병급 이상 병사급에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표를 본 이들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3차 인원인 미국의 지원병들의 경우도 병사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꾸준한 상승을 보이고 있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때 미 장성복장을 한 이가 손을 들었다. 그 역시 연구원 중 하나였다.

강 대위와 같은 경우다.

“말씀하시지요.”

구 박사가 지목하자 장성이 입을 열었다.

“훈련 기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지만, 그 기간이 몇 달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격차가 벌어지는지 궁금하군요.”

그의 질문에 구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직 그 상관관계는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기 보면 다른 실험군이 있습니다.”

실험은 이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실험군은 별도의 장소에서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소환자들입니다. 기간은 3차 투입된 소환자들과 같습니다.”

이번에 나타난 그래프에 웅성임이 약간 일었다.

그래프는 분명 상향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상당히 완만했다.

“여기에 이 그래프를 겹쳐 보겠습니다.”

이번에도 상향선을 그리기는 하지만 약간은 낮은 상승을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이는 그룹은 소환자가 아닙니다. 일반인들이지요.”

“으으음.”

여기저기서 침음성이 흘렀다.

그래프를 보면 소환자 그룹이 눈에 띄게 우수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던 것이다.

“여기 별도의 장소에서 실험한 소환자들이 이곳의 소환자들과 다른 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구 박사의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훈련에 강림자가 관여를 안 했다는 점과…….”

연구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죽도록 굴리지 않았다는 점.”

그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질문을 던졌던 장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강림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죽도록 굴리지 않았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군요. 꽤 하드한 트레이닝과 특수부대급에 가까운 훈련이라고 들었는데요.”

장성의 말에 구 박사가 입맛을 다시더니 강 대위를 바라보았다.

강 대위가 쓴 웃음을 머금으며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이 재생되면서 구 박사의 말이 이어졌다.

“소환자 훈련 프로젝트에 들어오면서 서약서를 쓴 게 있을 겁니다.”

“그랬소.”

“어떠한 훈련도 감내하겠다는. 그리고 외부 유출도 없다는 내용. 그 덕에 난 우리 병사들의 가족들의 항의 전화를 매일 받았어야 했지요.”

장성의 마지막 말에 몇몇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 이제 시작되는군요.”

그때 구 박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뭔가가 날아갔다.

[워어어억!]

콰아앙!

[으아아아!]

와당탕탕!

계속해서 뭔가가 날아갔다. 그걸 멍하니 보던 장성이 중얼거렸다.

“와이어 액션이라도 보는 것 같군.”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건 바로 밝혀졌다.

날아가 구르고 있는 것들은 모두 3차 훈련병들이었다.

십여 미터는 날아가 뒹군 그들은 괴로워하면서도 재빨리 일어섰다.

그러나 그 재빠른 움직임은 뭔가 그들의 의지 때문은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들.

몸을 일으킨 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순간 그들이 있던 자리로 뭔가가 날아와 박혔다.

퍼버버벅!

“왓?”

순간 장성이 놀란 얼굴로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들이 있던 자리로 쏟아진 것은 화살들이었다.

카메라가 급격하게 움직였다.

[덤비라했지, 도망치랬어!]

[마미!]

[이 새끼! 내가 왜 니 엄마야!]

강림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시퍼런 칼을 들고 쫓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피해 달아나는 소환자들.

결국 그들은 얼마 달아나지도 못하고 구타를 당했다.

아니 얼마 맞지도 못했다.

맞는 순간 또 아까와 같이 이리저리 날아다녔으니까.

침묵이 흘렀다.

장면이 바뀌었다.

[노오오오오우!]

절벽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내지르며 떨어져 내렸다.

콰앙!

일반인이라면 어딘가 부러질 법한 높이었다.

하지만 소환자의 특성 덕에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그러나 불상사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강림자들이 우루루 몰려오더니 몽둥이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새끼! 누가 떨어지래! 영원히 쉬게 해 줄까! 안 기어올라!]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져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