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51화 (51/305)

제51화 소환자와 강림자

“저거이 사시네?”

부루가 김경징을 보며 내뱉은 첫 감상이었다.

“……에이씨.”

강림자의 쪽팔림은 소환자의 것이다. 도원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나왔다.

“장난해!”

도원이 뒤를 돌아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찍어 눌러 버려!”

도원이 명령을 내렸다.

“재밋갓어. 와 보라우.”

여전히 부루는 팔짱을 끼고 앉아서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도원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쿵쿵쿵쿵.

“뭐하는 거야.”

도원의 질문에 김경징이 계속 칼집으로 땅을 찍으며 대답했다.

“따, 땅을……. 찌, 찍어 누르고 있소.”

“장난해?”

“지, 진지하오.”

도원은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명령을 이상하게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거부한다는 것이다.

김경징이 수틀리면 도주할 생각을 기본적으로 장착한 강림자라고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이 도주할 시간을 벌기 위해 적을 막으라 하면 죽을상을 지을망정 그의 명령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명령을 간접적이나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강림자에게 역소환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런 감정을 소환자가 일일이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다.

일정 시간 뒤에 되돌아오니까.

그리고 그런 명령을 내린다 해도 강림자는 거부하지 않는다.

그게 강림자와 소환자의 관계다.

그런데 지금, 김경징은 알면서도 그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도원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상황이 전장에서였다면?

도원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도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장. 명령에 따라라.”

지금 도원은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투가 끝난 상황에서 그것도 함께 싸운 상대 길드의 강림자를 상대로 이런다는 것 자체가 해선 안 될 일이었다.

신컨길드원들 조차 지금 도원의 행동에 걱정이 담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도원의 정신은 그것들을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

반쯤은 패닉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도원의 강력한 명령 때문이었는지 김경징이 드디어 나섰다. 하지만 부루는 여전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뿐이다.

김경징이 다시 한걸음 내딛는 순간 부루의 입이 열렸다.

“감당 어려우면 가만있으라. 토막 나기 싫으면.”

부루의 말에 김경징의 발걸음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그러나 발걸음을 내딛으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하아아아아.”

길고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어깨가 처졌다. 김경징이 경악하고 있는 도원을 바라보았다.

말은 없었지만 그 흔들리는 시선은 분명했다.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서 앉으라. 아들 싸움에 어른 나서는 거이 웃기는 일이니까네.”

“알겠소.”

심지어 이제는 부루의 말에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더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미친 거야?”

“…….”

도원의 말에 김경징은 다시 시선을 피했다.

도원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말이 돼?”

다들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전신길드장인 병화와 다른 이들까지도 말이다.

그때 그의 말을 대신 받는 이가 있었다.

“와 말이 안 되는 거간? 길코, 말이 안 되는 건 너디.”

그때 부루가 도원을 응시했다.

부리부리한 두 눈동자가 도원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

도원은 말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마치 자다가 가위에라도 눌린 듯 생각은 있는데 온몸을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그런 느낌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다리가 휘청였다.

다리가 풀린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 그를 김경징이 부축했다.

“공께선 그만 하시오.”

김경징이었다.

“부탁드리오.”

그제야 고개가 돌아갔다.

도원은 혼란스러웠다. 이 모든 것이 말이다. 심지어 김경징의 행동까지 말이다.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김경징의 눈동자에서 감정이 느껴졌다.

안쓰러움.

“뭐야…… 이게 대체.”

“그만하시오.”

심지어 김경징이 그를 말렸다.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소. 어서 길드장을 모시게.”

심지어 뒤돌아보며 길드원들에게 도원을 넘겨주며 명령을 전달하기까지 했다.

김경징의 행동에 신컨길드원들도 당황해 하면서도 자신들도 모르게 그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나서야 김경징은 다시 부루를 바라보았다.

아까처럼 두려움에 떨던 것과는 달랐다.

“배려에 감사드리오.”

“내래 좀 무례했디. 기건 이해하라. 전장에선 내 편 아니면 다 적 아니간?”

“이해하오. 그리고 우린…….”

김경징이 애써 말을 이었다.

“적이 아니오.”

“기럼 됴쿠.”

그 말을 끝으로 김경징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뒤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빈이 궁시렁거렸다.

“뭐야, 싱겁게. 쯔읍.”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뒤돌아서려다 문득 위화감을 느끼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이들이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신길드를 축하하기 위해 모였던 이들부터 신컨길드와의 마찰에 구경하러 모였던 이들까지.

심지어 이 소장도 모두 얼이 빠진 채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정신을 차린 빈이 슬쩍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싸우려던 건 아닌데…….”

그때 병화가 그의 어깨를 짚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얼굴도 놀라움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게 아니야.”

“예?”

빈은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때 강 대위가 다가오며 병화가 하려던 말을 대신 이어 나갔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시선이 부루와 김경징을 번갈아 스쳤다.

“소환자와 강림자의 관계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아니 강림자에 대해서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었을 수도…….”

강 대위의 말에 병화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날의 소란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두 번째 침식균열은 한국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졌다.

다만 한국과 달리 대부분의 나라들은 침식지의 확장이 하루 이상이 이어진 뒤에야 멈추었다.

그 결과 원래 침식지대의 규모가 작게는 서너 배에서 크게는 여섯 일곱 배까지 커졌다.

한국의 경우는 두 배가 조금 안 되는 크기에서 멈추었다.

그나마도 한국에서 처음 벌어졌던 침식균열 사태 이후 각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나머진 버틴 것이고, 한국은 또다시 격퇴를 해 낸 것이다.

그 때문인지 세계의 시선은 다시 한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시선이 유독 쏠린 곳이 있었다.

바로 전신길드였다.

어떻게 촬영을 했는지 원거리에서 잡은 침식지대 전투가 동영상으로 퍼졌던 것이다.

소환자가 마물을 물리치는 장면이 그렇게 퍼졌다.

그리고 의문의 기마부대.

그 기마부대를 이끄는 강림자. 이 또한 의문과 경악을 낳았다.

일부는 테이머라는 말도 돌았다.

그 정도로 많은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국정부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일단 전신길드는 본의 아니게 외부와 강제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격리 혹은 감금이고 좋게 말하면 보호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격리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바로 부루의 뒤를 따른 기마부대의 존재 때문이었다.

부루 자체가 이미 기존 강림자와 다른 존재라는 게 암암리에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가 또 사고를 쳤으니 한국 정부가 정신이 없는 건 당연했다.

일단 마물인지 아군인지 모를 기마들도 문제였고 말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전신길드원이 아닌 이도 있었다.

“갑주 특이한데?”

“고, 고맙소.”

“장군이었소?”

“그, 그랬소.”

“그런데 왜 그리 얼어 있수? 응? 사시오? 눈알이 왜 저쪽에 가 있소?”

“으음…….”

김경징이다.

그리고 그의 소환자.

“이놈이오? 미친 거 아닌가? 대장군에게 덤볐다며?”

“에이, 설마. 살아 있는데? 덤볐으면 뒈졌지.”

“…….”

껄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가우리 군들 사이에 구도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각 잡힌 군인처럼 앉아 있었다.

김경징의 이상 징후.

그것 역시 연구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 덕에 여기 끌려와 있었다.

그가 아무리 대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고 대한민국 삼대 길드의 길드장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부 정부가 무너진 나라의 경우 소환자를 중심으로 군벌이 생겨난 곳도 있고, 작은 왕국처럼 변한 곳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예외다.

오히려 준전시체제가 이어지면서 오히려 국가의 힘이 조금 더 강해진 상황이었다.

물론 부작용으로 인권이라 불릴 수 있는 부분이 약해진 것도 있었다.

물론 이건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위기감을 느낀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 관계로 구도원은 격리에 대해 몸부림을 쳐 봤으나 결국 끌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하루하루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믿을 만한 김경징은 마치 군기가 잘 든 신병마냥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도.

도원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소환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선두에는 고빈이 있었다.

‘내가 미쳤지, 저 새끼에게 대들다니…….’

껄렁해 보였던 빈은 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절벽을 맨손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들기조차 힘든 대부를 휘둘러 거대한 통나무를 자르는 것은 빈에게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정작 경악할 일은 전날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건 일종의 실험이었다.

강림자와의 대련.

외부에서 초빙해 온 강림자와 빈과의 대련이었다.

그 강림자는 인지도 5의 강림자였다.

소형종은 당연했고, 중형종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급수로 따지면 C급의 마물까지도 이기지는 못해도 상대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강림자를 상대로 밀리기는 했지만 버텨냈던 것이다.

소환자가 강림자를 부린다지만, 강해서 부리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빈은 그런 강림자를 상대로 제대로 된 전투를 해 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경악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낸 빈은 그날 부루에게 끌려간 뒤로 미치듯이 구르고 있었다.

밀렸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또 하나 기괴한 풍경이 있었다.

“무브! 무브! 무브!”

전신길드원들의 뒤를 따르는 푸른 눈의 건장한 사내들.

미국에서 온 이들이었다.

이쪽 연구에 함께 참여했다고 하는데 군인의 향기가 물신 풍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전신길드에 뒤처지고 있었다.

차이는 있었다.

먼저 구르기 시작했다는 것.

도원은 안절부절했다.

왠지 이 풍경을 보며 자신의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길드의 장이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훈련을 통해 생존력이 올라갈 수 있음을.

그리고 그 사실이 확인이 되는 순간 자신들과 같은 소환자들은 모두 재교육을 받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특히 이 나라는 예비군 소집 등의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 있으니까.

“어이, 너 이름이 뭐랬냐?”

“구도원이다……요.”

“물 좀 떠와라.”

“네.”

물 뜨러 달려가는 도원은 주변에 넓게 펼쳐진 가벽들을 보며 절망적인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감옥.

“하아…….”

그리고 비슷한 한숨을 내쉬는 이가 있었다.

“하아.”

바로 서울액션스쿨의 육 감독이었다.

“이번 생은 망했어.”

이 캠프는 바로 서울 액션스쿨을 중심으로 지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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