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시시비비
이전 처리한 침식균열처럼 군주급 마물을 처리한 것은 아니지만, 쫓아낸 쾌거를 이루었다.
이것만 해도 대침식 때에도 몇 없던 전과였다.
그럼에도 승리의 기쁨은 짧았고, 전우를 잃은 슬픔은 길었다.
대침식 이후 대규모 전투는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반 균열이야 게릴라성 이벤트에 불과했었기 때문이었다.
외부에 대기하던 군인들과 중장비들이 안으로 들어와 수습을 하는 중이었다.
미끼팀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부 전복된 지프에 목이 꺾여 온전한 시신으로 남은 이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시신마저 끌려나와 마물에게 갈가리 찢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미끼팀이 시간을 벌어 준 덕에 마물들이 장벽을 넘어오는 시간은 벌 수 있었다.
수습은 군인들이 아니라 별도의 팀이 와서 작업을 했다.
그렇게 분주한 가운데 소환자들 사이에도 슬픔은 있었다. 미처 도주하지 못한 소환자 몇이 휘말려 죽음을 당한 것이다.
강림자에게 명령만 내리는 소환자라지만, 전장에 가까운 곳에 있기에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나마 전방과 후방이 명확한 구분이 되는 경우이기에 이런 일은 드물었다.
보통은 기동대원들이 시간을 벌어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운이 안 좋았는지 기동대원들과 함께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이원철 소장은 슬픈 기색을 지우지 못한 채 전장을 정리했다.
그런 그에게 강문호 대위가 찾아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최소의 희생으로 막아 내셨습니다.”
“내 새끼들 사지에 밀어 넣었으면 이 정도 성과는 나오는 게 정상이지.”
“매뉴얼에 따르셨을 뿐입니다.”
“빌어먹을 매뉴얼. 그나저나 자넨 이쪽에 웬 일인가? 담당지역은 다른 쪽으로 기억하는데.”
“합작연구로 소속이 빠졌습니다.”
“연구에 빠진 사람이면 이런 곳은 더 오면 안 되지 않나?”
이 소장의 질문에 강 대위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연구 대상을 쫒아야 하니까요.”
“응?”
그의 시선을 따라간 이 소장이 탄식을 흘렸다.
“아! 내 얼핏 듣기만 했는데 진짜였더군. 아까는 경황이 없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전신길드를 향하고 있었다.
“설마 소환자가 총화기가 통하는 급수 이상의 마물을 쓰러트릴 수 있을 줄이야.”
“그것도 그렇지만, 소환자의 생존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방패도 필요 없어질 수 있고요.”
“……그래야지.”
인간방패는 기동대원들을 말한다.
최후까지 남아서 소환자들에게 시간을 벌어 주거나 그들을 태우고 탈출하는 임무를 가진 기동대원들의 희생은 적지 않은 편이었다.
그 덕에 인간방패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나마 그들은 지원병이면서 직업군인이라 양심의 가책은 덜했다. 그들의 임무가 그것임을 알고 스스로 정한 길이었으니까.
그런 일을 징집병에게 시킨다면 세상 어떤 부모가 군대에 자식을 보내겠는가.
그럼에도 그들의 희생이 달가울 수는 없었다.
아무리 보상으로 큰돈이 돌아간다 해도 말이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못하니까.
“싹 다 훈련소에 집어넣어 단련시키면 좋겠군.”
군인인 이 소장다운 발상이었다.
다만 소환자들 입장에서는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미치고 팔짝 뛸 일일 것이다.
다시 군대를 가야 하니까.
하지만 나쁠 것도 없었다.
소환자 적성을 확인한 인원들의 소집훈련에 새로운 커리큘럼을 넣는다면 그 또한 방법이니까.
다만…….
“으음.”
순간 부루가 수천의 소환자들을 개처럼 굴리는 장면을 상상한 강 대위가 몸서리를 쳤다.
“어디 안 좋은가?”
“아, 아닙니다.”
이 소장의 질문에 강 대위는 어설프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였다.
이 소장이 다시 한쪽을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영웅급 강림자가 새로 나타났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아…….”
이 소장의 시선은 을지부루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침식지대를 내달리며 잔당을 처리하고 있었다.
침식균열의 원흉인 군주급 마물이 되돌아가자 몰려 있던 마물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마치 구심점을 잃은 패잔병처럼 말이다.
심지어 일부는 먹이사슬이 다시 발동이라도 한 듯 서로 잡아먹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일단…… 기밀이긴 합니다.”
“그런가? 그런데 저 병력에 대해서는 나도 좀 알아야겠네.”
이 소장의 시선은 일단의 기마들을 향하고 있었다.
“아…….”
강 대위는 부루의 뒤를 따르는 기마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보며 강 대위는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같은 편은 맞습니다. 다만 저도 많이 궁금하군요.”
“꼴 보니 위에서 아가리 다물라고 하겠지만, 내 입 무거운 것 알지?”
이 소장이 슬쩍 웃음을 머금자 강 대위가 머리를 긁적였다.
알 수밖에.
그는 대침식 때 자신의 상관이었던 이들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당시 지휘관들은 모두 영전이 되어 사령부로 갔음에도 장벽을 자처해 온 제대로 된 야 전군이었다.
“예. 대신 아시죠?”
“그래. 비밀이라는 거.”
그렇게 둘이 대화를 나누던 사이 한쪽이 시끌시끌해졌다.
전신길드원들에게 몰린 소환자들 때문이었다.
다들 그들을 향해 환호하고 있었다.
소환자들의 역사를 새로 쓴 전신길드원들은 이 전투 한번으로 소환자들의 우상이 된 것이다.
“쯧, 좋아할 때가 아닐 건데.”
이 소장의 중얼거림에 강 대위도 쓴 웃음을 머금었다.
남자들이 가장 몸서리치는 것 중 하나가 다시 군대 가는 꿈이니까 말이다.
와아아아!
구도원은 환호를 받고 있는 전신길드와 임병화를 보며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 나서서 주둥이를 털었다간 이곳에 모인 소환자들에게 영혼까지 털릴 게 뻔했다.
결과가 말해 주는 세상이다.
자신의 길드가 아무리 대기업의 스폰을 받고 있어 유명도가 높다지만, 위상이라는 것은 돈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씨파.”
부길드장도 그걸 아는지 낮게 욕설을 내뱉을 뿐이다.
그때였다.
“길짱? 어디가?”
뒤에서 도원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말없이 걸음을 옮겨갔다.
신컨길드의 도원이 전신길드로 다가서자 소환자들이 길을 열어 주었다.
아무리 이번에 낭패를 봤다 해도 거물은 거물이었으니까.
“오덕 아재 한 건 하셨네.”
도원이 말을 걸자 임병화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군.”
“개고생했지.”
병화의 말에 도원이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그때 병화의 뒤편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뭐래? 쟤는 왜 말이 반 토막이에요?”
“원래 그래.”
“어이 털리네. 나 같으면 쪽팔려서 찌그러져 있겠네.”
그 중얼거림을 들은 도원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전신길드 웃기네. 길드원 간수도 엿 같고.”
“신컨길드는 윗물부터 엿 같네. 혓바닥 간수도 못하고.”
도원의 눈썹이 역팔자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 입을 삐죽이던 이는 바로 고빈이었다.
“미쳤냐?”
“난 제정신인데 가끔 남들이 미쳤다고는 하드라.”
“반말?”
“그럼 너님은 존댓말이니?”
둘의 싸움을 보던 병화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빈이 전신길드원은 맞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게 또 묘했다. 빈과 을지부루가 전신길드에 와 준 것은 행운이었다. 그럼에도 갑질을 하지 않는 빈이다.
가끔 똘추 짓을 하지만, 나름 귀엽게 봐줄 수 있었고, 타이르면 바로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또 훈련받을 땐 윗줄이다. 먼저 개고생 한 것도 짬밥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이걸 부루가 인정한다.
그리고 웃기게도 실전 대련을 하면 빈을 이기는 이가 없다.
먼저 개고생 한 짬밥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거다.
“하아. 강림자 불러와 봐라. 역소환 시켜 주마.”
도원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병화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보통 이쯤 되면 말려야 하는데 말이다.
도원의 시선이 의아함을 가지고 병화를 바라보는 순간 기다리던 대사가 흘러나왔다.
“참지?”
“저걸? 우리 애들이 아재에게 그럼 참았을 거 같아?”
“흠.”
길드장끼리의 신경전은 그렇다 치지만 그 밑의 길원이 상대 길드장에게 드잡이질을 하지는 않는다.
그게 룰이다.
그때 병화가 입을 열었다.
“우리 길드원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초빙상태라 내가 강압을 하지는 못하지.”
“뭐 그런 개족보가 다 있대?”
도원이 계속 이죽거리자 윤치원이 발끈했다.
“아, 이씨!”
그런 치원에게 빈이 말했다.
“선빵! 배웠잖아요. 선빵 필승!”
그 모습에 도원이 혀를 찼다.
“미친 거 맞구나 너? 맞고프냐?”
도원이 이렇게 나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
그는 소문난 파이터이기도 했다. 프로게이머이기도 했지만, 학창 때는 나름 주먹질 좀 하고 다니기도 했다.
또 침식 이후 개인적인 단련을 해 온 터라 주먹으로 어디 가서 털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도원을 병화가 다시 말렸다.
“참으라니까.”
“말리지 마시지? 초빙이라매?”
그때 빈이 도원의 앞으로 나섰다.
“참지 마. 길장님 말리지 말아요. 살살 할게요.”
순간 도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러고 보니 이들과 함께 있었다는 건 아까 돌파 때 이들과 함께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먼 거리에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기에 건들거리는 빈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못 보았다.
다만, 지나친 자신감에 도원은 한걸음 물러섰다.
“니 강림자 불러라. 갈아 마셔 줄게.”
“후회할 건데?”
“풉. 내 강림자가 누군지는 알고?”
“저기 뒤에서 눈알 부릅뜨고 가오 잡는 아저씨?”
빈의 시선이 김경징을 향했다. 전투가 끝난 뒤여서인지 늠름한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태세전환이 가장 빠른 강림자다. 그래서 강림자계의 우디르라는 별명도 있었다.
“영웅급인 건 알고?”
살짝 모자라지만 영웅급에 준하니 영웅급으로 친다. 그러나 무시 못할 강림자다.
기본 사양이 다르다는 거다.
특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뿐이지 실 역사와는 다르게 무력도 손에 꼽는 편이다.
“오, 인지도 쩔겠네? 난 소숫점 아랜데. 0.00001.”
빈의 말에 도원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인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그때였다.
기마대열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동시에 도원과 김경징이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적이었다가 아군처럼 움직이는 저들을 아직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건 도원뿐 아니라 대다수 소환자들도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걸 알았는지 기마대는 일정거리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 선두에 있던 대부를 든 강림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도원은 그 강림자를 보며 긴장 된 표정으로 슬쩍 자신의 소환자용 워치를 들어 탐색을 했다.
띠띠띡!
“…….”
도원은 눈을 꿈뻑 거렸다.
0.00001.
찍힌 숫자를 본 도원이 한손으로 자신의 워치를 툭툭 두들겼다. 마치 고장난 가전제품을 두드리듯.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들했어야.”
“고생하셨습니다.”
그의 말에 병화를 비롯한 전신 길드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비니, 지금 뭐하는 거이간?”
“이 새끼가 시비 털잖아요.”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도원은 그가 빈이 말한 0.00001 인지도의 강림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기런데 왜 구경하고 있는 거이간?”
“예?”
부루의 말에 빈이 반문했다.
그러자 부루가 한쪽에 엉덩일 깔고 앉으며 말을 이었다.
“내래 언제 아가리만 털라 그랬네? 제대로 이빨을 털어야디. 재미 있갔구만.”
그리고는 관람모드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황당함을 느낀 도원이 뒤쪽의 김경징을 불렀다.
“가만 보고 있…….”
도원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김경징의 자세는 아까와 같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엄 있게.
다만.
그의 두 눈동자만 한쪽 끝으로 쳐박혀 있었다.
이쪽은 절대 보기 싫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