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전투의 끝
“넙덕 다릿살도 꽤나 별미디. 생으로 씹으면 고소하디. 궁금하면 내래 잘라서 네 입에 넣어 주디.”
-닥쳐라!
“내장탕 먹어 봤네? 내장을 푹 우려서 말이디…….”
-그 입 닥치래도오오!
“기럼 구이는 어떻네? 등심이나 갈빗대 사이에 있는 살이 쥑이디.”
-크아아아아!
쿠베르탄이 광포하게 무기를 휘두르며 반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 사이에 공포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본인은 모르고 있는 듯했다.
전투를 지켜보던 임병화는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트래쉬 토크?”
사실 상대방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부루가 말할 때마다 광분하는 상대를 보면 굳이 그 마물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먹방 인터뷰 같은데요? 그런 거 있잖아요. ‘영국친구에게 삼겹살을 대접해 봤습니다.’같은 거?”
나름 고빈이 농담처럼 말을 붙여 왔지만, 병화는 무시했다.
그의 짧은 경험으로 지금 내뱉은 헛소리는 농담보다는 진담에 가까울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크워어어억!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거대한 마물이 삐뚤어졌다.
엇나가서 삐뚤어지는 그런 걸 말하는 건 아니다.
한쪽 무릎아래가 잘려나가서 똑바로 설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삐뚤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대부를 양손으로 쥔 을지부루가 빙그르르 맴돌며 반대편 무릎아래도 찍어서 달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오, 이제 좀 균형이…….”
빈의 중얼거림에 병화는 할 말을 잃었다.
“…….”
“저거 싸이코패슨지 뭔지 아니에요?”
“……잘라야 하나.”
윤치원의 말에 병화는 심각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물의 피를 보는데 있어 과감해야 하는 건 맞았다.
그러나 너무 무감감한 것도 문제다. 말 그대로 싸이코패스라면 그것도 문제니까.
그때 강문호 대위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그냥 이상한 놈이라 생각하십시오.”
“예?”
“저 친구 어머니가 지금은 사진 작가지만, 대침식때는 종군기자나 다름없었으니까요.”
“그거랑 빈이랑 무슨…….”
“당시 저 친구 엄마가 항상 저 친구를 끌고 다녔거든요.”
“전장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강 대위를 바라보았다. 무슨 엄마가 그런단 말인가.
“그땐 전후방이 없던 때 아닙니까. 그리고 전쟁 때는 차라리 군대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틀린 말도 아니고.”
대침식 때를 생각해 보니 꼭 그게 틀린 건 아니었다.
게다가 여자 홀로 애를 키웠다면, 어쩌면 고육지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러기 위해서 종군기자 역할을 자처했을 수도 있고요.”
“그런가요?”
“오! 등심을 아예 발라내시네?”
“……뭐 아닐 수도 있고요.”
빈의 활기찬 감상평에 강 대위가 어설픈 미소를 머금었다.
쿠베르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힘에서 밀린다 싶은 순간 정신없이 온몸을 난도질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이런 상황에 처했는데 아무도 그를 도우러 오지 않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고개를 돌려본 쿠베르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를 중심으로 공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공터는 인위적인 것이다.
배반자들의 기마가 맴돌며 만들어낸 공터.
사방에서 그를 돕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지만,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아니 접근하면 맴돌고 있는 기병들에 의해 돌아가며 칼질을 당해 육편으로 변해 버렸던 것이다.
물론 착실하게 몸뚱이는 남겨 두었다.
쿠베르탄에게 한줌의 힘도 더해지는 것을 막겠다는 듯.
그때 쿠베르탄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안식을!
쿠베르탄의 외침이 터져 나오자 주변에서 견제를 하던 마계기사들의 칼끝이 부루의 일행들이 아닌 몸뚱이만 남아 연명하던 마족들을 향했다.
콰콰콱!
동료들에 의한 학살극이 펼쳐진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다들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설마하니 자신들의 동료를 직접 죽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쿠베르탄의 온몸이 점점 붉은 기운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걸 본 부루가 대부를 단단히 그러쥐며 입을 열었다.
“늦었어야.”
-무슨 소리!
쿠베르탄이 붉어진 눈자위를 부루에게 응시하며 넘쳐나는 힘을 활성화시켰다.
콰두두둑!
잘려나갔던 무릎아래에 새로운 다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위로 대부가 휘둘러졌다.
콰둑!
콰두둑!
동시에 쿠베르탄의 몸뚱이가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런 비겁한…….
다리가 재생되는 것과 동시에 부루가 그것들을 도로 잘라 버렸던 것이다.
이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던 쿠베르탄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고 말이다.
그런 쿠베르탄의 몸통 위를 부루가 내달렸다.
그리고 가슴팍을 밟고 솟구쳤다가 내려서며 왼쪽 어깻죽지를 잘랐다.
콰자작!
-끄어어어!
왼쪽 어깻죽지가 잘려나가는 고통에도 오른팔로 몸뚱이를 지탱했다.
그리고 그걸 부루가 다시 냅다 잘라냈다.
썽둥!
쿠우웅!
그제야 쿠베르탄의 몸뚱이가 바닥에 완전히 처박혀 버렸다.
오른쪽 손목 위를 빼고는 모조리 잘려나간 쿠베르탄의 모습.
그러나 쿠베르탄은 다시금 팔다리를 재생시켰다.
그리고 그것들을 부루는 마치 익숙한 도축업자 마냥 돌아가며 댕겅댕겅 잘라내었다.
“미친……, 몸뚱이는 하난데 팔다리가 대체 몇 개야?”
고빈의 중얼거림에 임병화나 다른 이들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윤치원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미친놈인가? 잔인한 장면인데 자꾸 웃겨서 웃음을 참을 수 없네…….”
“차라리, 웃어라.”
병화는 이미 웃고 있었다.
다만 웃긴다기보다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게 현실이구나.”
“뭐가?”
빈의 말에 병화가 반문했다.
“아니 어렸을 때 만화 보면 합체할 때 적들이 구경하잖아요.”
“아…….”
아마도 어른이 되고 나서 다들 한 번씩 해 봤음직한 고민이었다.
“그러니 만화지. 이게 현실인 거고.”
병화의 담담한 답변에 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쿠베르탄이 외쳤다.
-비겁하도다아아아!
그거 들은 빈이 중얼거렸다.
“비겁하다…….”
빈의 중얼거림에 병화가 흠칫하며 물었다.
“혹시 능력 동화가 일부 생긴 건가?”
감각 정도를 전해 받는 경우기는 하지만, 소환자와 강림자의 유대가 깊어질 즈음 강림자의 능력에서 뚜렷한 부분을 소환자가 익숙해지는 경우가 있다.
구도원의 경우 공간포착이다.
도주로에 집중되긴 했지만. 그렇기에 빈의 중얼거림에 반색을 한 것이다.
“왠지 그렇게 말할 거 같지 않아요?”
“…….”
-비겁……
“닥치라우! 어떤 애미나이가 전장에서 비겁이니 뭐니 떠드네?”
쿠베르탄의 외침에 부루가 버럭 소릴 내질렀다.
그 외침을 들은 빈이 반색했다.
“오! 때려 맞췄어요!”
“그래. 잘했다.”
“아…….”
병화가 한숨을 쉴 때 옆에서 치원이 탄식을 흘렸다.
“어쩔 수 없지.”
“아니 그게 아니라, 살려 달라고 한 줄 알고…….”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던 치원을 보며 병화는 빈의 퇴출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왠지 멀쩡한 길드원들까지 물들어 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구도원은 할 말을 잃었다.
“씨파 지리겠네.”
그는 전차 옆에 고정되어 있는 사다리 위에서 을지부루가 하는 모습을 보며 질린 얼굴을 했다.
똑같은 팔다리 여러 개가 나뒹구는 모습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부루가 두려웠던 것이다.
마치 악귀의 모습처럼 연신 잘라내는 모습.
“공격하라아!”
“아…….”
그때 김경징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제야 도원이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쿠베르탄의 주변으로 마계기사들이 몰려간 덕에 이쪽의 방어대열이 흐트러진 것이다.
김경징의 시선은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부루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쪽으로 갈까 봐 칼로 그 방향을 휘저으며 다시 외쳤다.
“이쪽이다아!”
“…….”
그 모습을 보던 도원의 눈과 김경징이 힐끔거리는 시선이 마주쳤다.
마치 눈치를 보다가 걸린 듯.
두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도원이 답했다.
“씨파, 나도 저긴 안 가.”
그때였다.
도원은 왠지 김경징의 눈동자에서 안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희한한 것에서 감정이 풍부해지네.”
강림자가 감정이 풍부해진다는 것. 그건 격이 그만큼 올랐다는 의미였다.
지금 김경징은 소환자의 눈치를 보다가 격이 올라가는 기연을 얻을 수 있었다.
퍼억!
주술사의 머리통이 박살이 났다.
침식지를 넓히는 것에 집중하던 다른 주술사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을 방어하던 마계병사들의 벽이 급격하게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마켈그로이언이 쿠베르탄을 바라보았다.
-미련한…….
이젠 세기도 힘들 정도로 팔다리를 뽑아내고 있는 쿠베르탄을 보며 마켈그로이언은 이 전투가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마켈그로이언이 쿠베르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쿠베르탄과 그의 사이로 붉은 실선이 이어졌다.
-주, 주군이시어!
-미련한 놈. 네놈의 권능은 내 회수하노라.
-계, 계약을 어기시려 하나이까!
-네놈과 나와의 계약은 끝없이 투쟁할 때라고 되어 있느니라. 지금은 그저 끝없이 발버둥치고 있구나.
-아…….
쿠베르탄의 얼굴이 쭈글쭈글해지기 시작했다.
점차 둘 사이에 연결된 붉은 선이 진해졌다. 쿠베르탄의 팔다리는 더 이상 새로 자라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주변에 맴돌던 마계기사들이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네놈이 이겼도다. 포식자여.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만…….
“조지라우!”
-무, 물러가지만…… 빠, 빨리 이탈하라!
마켈그로이언이 당황한 음성을 터트렸다.
갑자기 을지부루와 배반자 일행들이 둘로 나뉘더니 퇴각하는 병력과 주술사들을 향해 쏟아져갔다.
등을 보인 마계기사들의 등짝에다가 연신 화살을 쏘아내었다.
이어 다른 소환자 무리들의 공격에 이탈을 시작하는 주술사 무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말이다.
그 행동에 마켈그로이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런 빌어먹을!
결국 마켈그로이언이 침식지대의 균열을 닫고 되돌아 갈 때에는 처음 끌고 온 병력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숫자만이 후퇴에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겼다아!”
기동대원들과 군인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어 소환자들의 함성이 뒤따랐다.
사방에 연기와 마물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승리를 만끽했다.
그 환호를 들으며 을지부루는 바닥에 바짝 말라 있는 쿠베르탄을 향해 다가갔다.
생기가 꺼져 가는 눈동자.
부루가 그 앞에 도끼를 지팡이 마냥 턱하니 짚고 서서 입을 열었다.
“이건 뭐 이간? 피죽도 못 먹은 아새끼마냥…….”
부루의 중얼거림에 쿠베르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머…….
“말하라우.”
-먹지 말아다……오.
그 말에 부루가 인상을 팍 썼다.
“내래 아무거나 먹는…….”
하지만 대답을 들을 쿠베르탄은 이미 생기를 잃어버렸다.
“니보라우.”
“이런 것도 드십니까?”
뒤늦게 다가온 천유화의 질문에 부루가 버럭 소릴 내질렀다.
“닥치라우!”
“왜 화를…….”
유화는 억울한 표정으로 부루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