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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47화 (47/305)

제47화 사람이 쪽팔리면 죽을 수도 있을까?

그워어어억!

높이만 십여 미터는 되는 거대종.

히어로 급이라 불릴 만한 마물 앞에 강림자들이 말 그대로 추풍낙엽처럼 휘날렸다.

콰앙!

거대종의 온몸에는 상처가 그득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상처 입은 맹수가 왜 강한지 몸소 보여 주고 있었다.

강림자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상처를 늘려 가고는 있었다.

하지만, 거대종은 영리하게도 상처와 강림자를 맞바꾸고 있었다.

상처 하나를 입는 순간 마치 그걸 미끼라도 삼았다는 듯 그 상처를 낸 강림자를 곤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거대종 주변으로 중형종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강림자들의 레이드를 방해했다.

“뭐가 이렇게 쎄!”

신컨길드장 구도원은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침식균열은 처음이었다.

대침식 말기에 각성한 케이스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봐 왔던 침식균열과 병종형태가 다릅니다!”

“그건 나도 봐서 알아!”

침식균열을 겪어 본 경험이 있는 팀장 하나의 외침에 도원이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당시의 자료라면 익히고 있었다.

어떠한 형태가 있고, 어떠한 대응을 했었는지…….

그러나 실전은 달랐다. 그리고 여러 계열의 마물이 뒤섞인 지금의 형태가 더 까다로웠다.

“제길 마치 저그에다가 플토랑 테란 섞은 거 상대하는 느낌이네.”

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강림자 백여 기가 역소환 당했다. 그럼에도 적들은 여전히 두터웠다.

바닥을 스치는 보랏빛 물결이 마음을 더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퇴각해야 하오!”

그러는 와중에 귀신같이 내뺄 타이밍을 재고 외치는 김경징의 알람에 도원이 버럭 소릴 내질렀다.

“넌 좀 닥치라고! 나가서 칼이라도 휘두르던가!”

“나 김경징이 간드아아!”

도원의 외침에 김경징이 보란 듯 칼을 휘둘러 다리를 쩔룩거리던 소형종의 모가지를 땄다.

그리고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도원을 바라보았다.

“……씨팔. 정말 쪽팔리다.”

그런 김경징을 보며 도원은 눈물을 글썽였다.

도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전신길드쪽을 향했다.

마물들로 뒤덮여 보이지는 않고 있었지만, 확실히 그쪽은 다른 느낌이었다.

마물들의 벽 위로 둥근 것들이나 길쭉한 것들이 튀어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가끔은 중형종의 상체가 내장을 크리스마스 트리마냥 늘어트린 채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또는 꼬치마냥 창대에 꿰인 마물이 비명과 함께 휘둘러져 날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흐리야압!”

기가 막히게 소형종만 골라서 멱을 따는 김경징의 모습을 보며 도원은 눈시울을 붉혔다.

쥐구멍이 있다면.

보금자리로 삼고 싶을 지경이었다.

“장군님!”

을지부루의 곁으로 겨우 도착한 임병화가 그를 불렀다.

“떠들 시간 있으면 하나라도 더 죽여야디!”

“그게 아니라! 지금 놈들이 침식 지대를 넓히고 있습니다!”

“응?”

저번 침식균열 사태 후에 부루에게 침식균열이 왜 위험한지 설명을 한 바가 있었다.

“기, 기거이 뭐였디?”

“…….”

생각해 보니 졸았던 것 같기도 했다.

“저놈들 땅 넓힌다고요!”

그때 빈이 바락 소릴 내질렀다.

“아! 기거? 기럼 큰일 아니네?”

“어쩐지 애들이 제대로 안 싸우고 찝적거리드만.”

그때 옆으로 다가온 기병이 입을 열자 병화가 그를 의아한 시선으로 보았다.

“천유화라고 한다.”

“아, 전…….”

“대장이라고 불러라.”

인사를 마치기도 전에 돌아온 대답에 병화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예?”

“대장군. 전투 끝나면 애들 군기 좀 잡아야겠습니다.”

“알아서 하라우.”

“저, 저기 무슨 말씀이신지…….”

병화는 무언가 크게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말을 이으려 했지만, 부루의 음성이 더 빨랐다.

“유화.”

“예!”

“절반으로 나눠서 외곽으로 길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저쪽으로 뚫고 가는 게 낫갔어.”

“그런데 꽤 까다로울 겁니다. 저쪽 저놈 보이시지요?”

유화의 말에 병화가 시선을 돌렸다.

거대종이라는 말도 부족한 거대한 체구가 보였다.

신장 2미터 이하가 소형종.

그 초과부터 5미터 이하가 중형종이다.

그리고 5미터 이상이 대형종, 혹은 거대종이라 부른다.

그런데 천유화가 가리킨 건 십 미터도 훨씬 넘어가는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위압적인 뿔마저 달고 있었다.

“저거이 몸땡이만 큰 거이니 걱정 말라.”

“예?”

“뭔진 모르갔지만, 내래 저런 놈들 숫하게 봤어야.”

“장군도 우리 있던 곳에 계셨던 겁니까?”

유화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부루가 대답했다.

“길티. 내래 저런 놈은 숫하게 봤어야.”

“……포식자라 칭한 마물이 있다던데.”

“기거이 뭐하는 거이간?”

“아, 아닙니다. 여하간 저놈이 이 용병기사단을 이끄는 기사단장입니다.”

“기래? 기럼 저놈 모가지를 따면 쉽갔구나!”

“뭐, 그렇겠죠?”

“됴아!”

순간 부루의 얼굴이 환해졌다.

동시에 류화가 외쳤다.

“주변을 털어!”

그 외침에 하나의 뭉덩이처럼 움직이던 기마들이 한 방향으로 맴돌기 시작했다.

콰드득! 콰득!

말의 몸뚱이에 채이고 맴돌며 뒤두르는 무기에 몸뚱이가 잘려 나가는 마물들의 비명이 연달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보랏빛 구체들이 연달아 날아들었지만, 안쪽의 기병들이 재빠르게 화살을 날리고나 손도끼를 날렸다.

콰앙! 쾅! 쾅!

중간에 요격되는 마계마법의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는 중 길이 만들어졌다.

그때 한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간 부루가 바닥에 박혀 있던 대부를 뽑아들고선 다시 퓨켈 위에 올라탔다.

“너.”

“네?”

“비니랑 같이 따라오라우.”

부루의 말에 병화와 빈의 눈동자가 마치 진자운동을 하는 것마냥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제가 잘 설명을…….”

“시간 없으니까네, 따라 붙으라! 그이 쇗댕이는 버리고!”

“그럼 저는 뭘…….”

그때 마물들이 타고 다니던 말 한 마리를 누군가가 끌고 왔다.

“…….”

톱니 같은 이빨이 인상적이었다.

“이거 탈 줄 알디?”

부루의 말에 병화와 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훈련 받은 곳이 어디겠는가.

바로 액션스쿨이다.

그곳에는 작은 승마장도 있었다.

당연히 배웠다.

맞아 가며…….

그때 빈이 끼어들었다.

“아저씨. 제가 아는 말은 저거랑 좀 다르게 생겼는데요?”

“크아앙!”

빈의 말이 맞다는 듯 끌려온 마계의 말이 입을 쩍 벌리며 포효했다.

퓨켈과 유사하게 생겼지만, 조금 더 흉폭했다.

우적!

부루가 그 마계말의 죽탱이를 후려 갈겼다. 그리고는 갈기를 휘어잡고 그의 눈앞으로 대가리를 끌고 왔다.

마계말의 눈동자가 부루와 맞닿았다.

“껍데기 홀랑 까서 쌩으로 씹어 삼키기 전에 앙탈 말라우.”

부릅뜬 부루의 두 눈동자와 마주한 마계의 말이 눈을 꿈뻑거렸다.

그러더니 혀를 내밀어, 부루의 볼을 핥았다.

꼬리도 흔들었다.

“개냐…….”

그걸 보던 빈이 허탈한 음성을 내뱉었다.

“자, 타라우.”

빈은 그 마계말의 등에 올라탔다.

순간 마계 말이 띠꺼운 시선으로 빈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빈이 마계말의 갈기를 휘어잡으며 머리를 돌려 자신의 눈을 그 앞에 두고 으르렁거렸다.

“껍닥 홀랑 벗겨 육회로 먹기 전에 말 들…….”

덥썩!

빈의 상체가 마계말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빠악!

부루의 주먹이 다시 작렬했다.

“먹지 말라우! 이 아새끼래 이제 주인이야! 알갔어!”

“크릉, 헥헥헥헥!”

침으로 범벅이 된 빈이 마계말의 말등 위에서 혼이 나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병화 역시 비슷한 순서를 거친 뒤 말 위에 올라탔다.

물론 그 마계말 역시 띠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병화는 빈과 달랐다.

“이놈 시선이 불량합니다!”

부루에게 꼰지르자 거의 동시에 놈이 병화의 다리에 머리를 문대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빈이 탄식을 흘렸다.

“아…….”

나도 저렇게 할걸. 따라하지 말걸 하며 중얼거렸다.

“가자!”

부루가 말을 내달렸다.

그리고 그 뒤로 기병들이 늘어섰다.

그 중앙에는 빈과 병화가 있었고 뒤를 따라붙는 바이크 한 대가 있었다.

“강 대위님! 위험합니다!”

“어디든 안 위험한 곳이 어딨습니까!”

바로 강문호 대위였다.

그의 말에 병화는 씁쓰레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디든 위험하지 않은 곳은 없다.

대침식 때 소환자와 군인들 사이에 유행하던 말이었다.

물러서지 않기 위한 다짐처럼 하던 말이었다.

강 대위의 말에 병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마의 대열이 시위를 떠난 활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켈그로이언의 눈동자가 커졌다.

-막아라! 막으란 말이다!

순식간이었다.

견제를 하며 압박하던 병력을 을지부루가 이끌던 배반자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포위의 두께가 옅어졌다. 그와 동시에 안쪽에 있던 백여 기의 기마가 한 방향으로 쐐기형으로 튀어나갔다.

돌파만을 위한 대열.

달려 나감과 동시에 견제를 위한 대열은 순식간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

콰두두두!

마켈그로이언의 비명과 같은 외침에 마계병사들이 막으려 했지만 의미 없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빌어먹을!

그리고 급기야 빠져나가는 꽁무니를 따라 밖으로 밀어붙이던 기마들이 마치 꼬리를 문 것처럼 함께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 뒤를 마계기사들이 따라 붙기 위해 붙었다.

그걸 본 마켈그로이언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방패 들어!

용병군단을 만들어 낸 이가 바로 그였다.

그만큼 전장의 흐름을 잘 아는 이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또 배반자라 불리는 이들의 능력을 가장 잘 아는 이도 바로 그였다.

방패를 들라는 경고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대열의 끝으로 합 류하던 배반자들의 상체가 뒤로 뒤틀려졌다.

그리고 손에는 팽팽히 당겨진 활이 있었다.

뒤를 바라보며 활을 겨눈 그들의 시위에서 화살들이 쏘아져 나갔다.

투투투투퉁!

그들의 뒤를 함부로 쫓아서는 안 되는 이유.

강력한 화살들이 뒤를 쫓으려 하던 마계기사들의 몸통을 꿰뚫었다.

퍼퍼퍼퍽!

-크어어!

-커어!

마계기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화살이 박힌 곳에서 보랏빛 기운이 안개처럼 빠져나오고 있었다.

타격이 큰 것이다.

죽은 기사는 서넛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입은 타격으로 이미 쫓는 발걸음은 한차례 늦춰져 버렸다.

입술을 깨문 마켈그로이언이 외쳤다.

-막아라! 막으란 말이다아아!

그의 분노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위험하오! 지금이 아니면 아니 되오!”

“제발 닥쳐 줘! 마물에 찢겨 죽기 전에 쪽팔려 죽을 거 같으니까!”

“그것도 아니 되오!”

“닥치라고!”

구도원이 김경징을 향해 애절하게 외쳤다.

상황은 좋지 못했다.

처음 끌고 온 강림자들의 숫자가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문제는 아직 적들의 방어를 제대로 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뒤쪽에도 엘리트급은 아니지만, 일반 마물들이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쯤은 포위된 상황이었다.

도원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후발대들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중간을 차단한 마물들에 막혀 제대로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원이 이를 악물었다.

“씨파.”

도무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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