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신병 받아라!
구도원은 시뻘게진 얼굴로 전차를 몰며 나아가고 있었다.
“아우씨 쪽팔려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일단 달려! 저거 막아야지!”
도원과 함께 내달리는 강림자들의 숫자는 오백에 가까웠다.
그중 오분지 일이 조금 못 미치는 숫자는 그의 남은 길드원이고 나머지가 새로 합류한 다른 길드의 강림자들이었다.
숫자는 처음 진입했을 때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기세는 이전보다 못했다.
상위 랭크의 강림자들이 전부 역소환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후방 안전 및 후퇴상황을 대비해 남겨 놓은 병력이기에 이렇게 다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나마 이정도 숫자가 되니 비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신광건설!”
“왜!”
“먼저 치고 나가세요!”
“그래!”
신광건설은 바로 길드명이었다.
신기하게도 중소기업이었던 신광건설에서 사장을 필두로 소속 직원들 서른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각성을 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대로 사명을 길드명에 붙여 버리는 만행을 저질러 버렸다.
회사 광고도 할 겸 그러자는 사장의 의견을 또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게 가능한 것이 직원들과 사장과의 사이가 좋았던 것이다.
흔치 않은 가족적인 분위기의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길드명에 어울리는 강림자들이 소환된 것이다.
하나같이 건장한 것이 손에는 망치나 바위같은 것들을 들고 달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축성인력들이었던 것이다. 전쟁 중에서도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며 적들과 싸우던 강림자들이었다.
물론 그 주변으로 일반 병사들도 있었지만, 주축은 축성 인력이었다.
그 덕에 인지도는 사실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단합력이 좋아 중소길드 중에서는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이었다.
“그럼 난 이만 간다!”
“예! 가세요!”
신광건설의 길드장 신동우 대표가 마지막 명령을 전달 후에 뒤로 빠졌다.
물론 완전 빠지는 것은 아니다.
호위 강림자들과 팀장급과 함께 주변을 맴돌다가 또 다른 명령이 필요할 때 접근해서 외칠 것이다.
능력 부족이었다.
심상으로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인지도가 높아야 했다.
최소한 장군급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광건설의 대표 강림자는 갑사급이 최고였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명령을 내리고 이탈하는 모습이 별로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남은 길드 역시 자신들의 강림자에게 명령을 전달하고 이탈했다.
일부는 도원에게 명령권을 이양했다.
누구의 명을 따르라는 지시.
만약 그게 없었다면 소환자들이 마물들이 난무하는 전장에 우르르 몰려 다녀야 했을 것이 분명했다.
초반에는 이게 문제가 되었다.
강림자들을 부려 명령을 통해 마물을 처리하고는 했지만, 자신의 목숨이 먼저다 보니 오히려 동선이 꼬이고 대열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기동대가 사실 그 이유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최소한의 자위력이 바로 기동대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명령의 이양을 통해 전투를 벌였다.
그나마도 대다수 길드는 명령만 던져놓고 후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강림자를 전령으로 활용했다.
그런 면에서 신컨길드는 확실히 다른 길드에 비해 적극적인 강림자 운용을 하는 것이었다.
최소한 전차를 타고 움직이면서 강림자들을 직접 운용하니 말이다.
“헐?”
그때 신컨 길드의 부길드장 여민제가 놀란 목소리를 터트렸다.
“왜? 또 뭐!”
한번 호되게 당해서인지 도원이 긴장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야! 저거 봐! 오덕들!”
“뭐?”
빙둘러 가는 자신들과 달리 직접 나아가고 있는 전신길드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뭐, 뭐야! 미친 거야?”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바이크를 몰고 나가던 전신길드원들 중 일부가 달려드는 소형마 물을 도끼로 쳐 죽이며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소형이라지만 처음 보는 광경에 도원은 저도 모르게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위, 위험한데!”
그때 도원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중형 마물이 그들의 앞을 가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수는 적지만 주변으로 부서진 방어선 때문에 장애물이 있어 그 중형마물을 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심지어 호위로 따라온 강림자가 중형 마물 셋을 상대하느라 살짝 뒤쳐진 상황이었다.
그때 기동대원들에게서 유탄이 쏘아져 나갔다.
일종의 시선분산효과를 노린 것에 가까웠다. 물론 타격력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형마물도 바보는 아닌지 옆 장애물에 걸쳐져 있던 다른 마물의 시신을 들어 막았다.
“이 병신들아! 그냥 빽 해야지! 빽 하라고!”
도원이 벌게진 얼굴로 외쳤다.
물론 그런다 해서 들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평소에 아웅다웅한다 해도 전장에서는 같은 편이다. 아군이 당하는 꼴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도원의 외침에도 전신길드는 계속 나아갔다.
“기동대 말려야지! 씨파!”
도원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계속 외쳤다.
그런데 그때였다.
유탄이 방패로 삼은 시신들을 계속 맞추었다.
거의 걸레가 되어 버린 시체를 마물이 집어던지는 사이 나아간 전신길드원들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워어어억!
중형마물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대열이 모두 지나갈 때 즈음 중형마물은 바닥에 엎어져 버둥거렸다.
그리고 뒤늦게 따라 붙은 강림자들이 마치 확인사살을 하듯 머리통을 부수며 나아갔다.
“…….”
도원은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길드장인 민제도 그리고 다른 길드원들은 멍하니 입까지 벌리고 있었다.
그때 멍하니 있던 도원의 정신을 차리게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음, 대단한 병사들이로다.”
“…….”
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내뱉는 그의 강림자인 김경징을 바라보았다.
나름 준영웅급으로 분류되기에 간단한 감정표현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의 모습에 도원이 버럭 소릴 내질렀다.
“닥치고 말이나 몰아! 이 역대급 간신새끼야!”
“……으음.”
도원의 타박에 김경징은 다시 말을 몰아 나갔다.
씩씩거리던 도원은 다시 전신길드원들을 보며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대체 뭐가 어떻게 한 거야?”
왠지 열 받는데 부럽고, 멋있어 보였다.
병화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후욱! 훅!”
지금은 사실 무리한 게 맞았다.
그러나 함부로 멈추기도 어려웠다. 멈추는 순간 사방에 마물들이 몰려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멈추었다가 자칫 바이크의 시동이 꺼지기라도 하면 마물들을 피해 탈출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일반 침식지대 사냥도 아니고 지금과 같은 균열상황에서는 특히 말이다.
그럼에도 달린 이유는 고빈 때문이었다.
“대체 왜 무리를 한 거야!”
병화가 소리쳐 빈을 부르자 빈이 멍한 얼굴로 뒤돌아보며 말했다.
“아…… 멈춰도 되는 거예요?”
“응?”
순간 빈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아씨! 그럼 빨랑 말해 주지! 돌아가거나 하면 된다고! 쌌잖아요!”
“…….”
빈의 말에 병화를 비롯한 전신 길드원들은 일제히 그의 바이크를 내려다보았다.
바이크를 끼고 있는 양 다리에서 물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미안.”
병화는 짧고 간단하게 사과를 했다.
생각해보니 선두에 세워 놓고 상황에 따른 명령을 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중형이라니.”
병화는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중형마물을 무력화 시켰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무용담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마물들의 무리를 볼 수 있었다.
포효소리와 함께 무기를 휘두르는 마물. 비명을 내지르며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개체까지.
전장의 한복판까지 다가온 것이다.
“씨파, 진짜 지리겠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전신길드원들이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때 기동대원중 일부가 앞으로 나섰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맡을게!”
“위험합니다!”
병화의 외침에 기동대원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 미끼 팀 출신이야! 나만 따라와!”
그 말로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구간을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능력은 미끼팀이 최고다.
때론 탈출로를 확보하면서 이동할 때도 미끼 팀이 선두에 서기도 한다.
아무리 중형종을 쓰러트렸다지만, 지금 이곳은 엘리트 타입의 마물들이 득실거린다.
싸우고 자시고 할 상황이 못 되었다.
그렇게 마물들 사이를 진입해 나가는 사이 점점 을지부루와 그와 함께하는 기마들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져 왔다.
멀리서도 그 박력에 놀랐지만, 점점 가까워져 오자 그들의 모습에 점점 말이 없어졌다.
일부는 말 위에서 내려와 마물들을 박살내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보았는지 앞뒤 양 옆을 번갈아 가며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에 질릴 정도였다.
등 뒤에 있는 아군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지 쳐다도 보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마치 내 뒤는 당연히 지켜질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콰콱!
마물이 내지른 무기가 갑주를 뚫고 들어왔음에도 그들은 그 무기를 내지른 마물의 머리통에 가진 무기를 휘둘렀다.
퍼석!
마물의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때 마물의 머리통을 부순 기병이 전신길드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전신 길드원들의 등줄기가 축축해졌다.
수많은 강림자들을 보았지만, 이런 위압적인 느낌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부루를 찾아 달려왔지만, 이들이 아군인지는 아직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저 마물과 싸우니까 이들이 같은 편이겠거니 하고 달려왔던 것이니 말이다.
그때였다.
“부루 아저씨! 형! 우리 좀 살려 줘어어어!”
빈이 저질러 버렸다.
“부루 아저씨! 형! 우리 좀 살려 줘어어어!”
빈의 외침에 천유화가 근처에 있던 마계병사의 머리통에 창날로 구멍을 만들고 난 뒤 물어 왔다.
“뭡니까?”
유화의 질문에 을지부루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날래 가서 신병 받으라우.”
“예에?”
“여기 계신 마마님 뫼셔야 할 놈들은 있어야 하디 안 갔어?”
그렇게 말을 한 부루가 방금 떼어낸 마계병사의 머리를 든 손을 흔들어 전신길드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저요! 여기요! 여기!”
고빈은 마계병사의 대가리를 들고 반갑게 맞이해 주는 을지부루에게 연신 손을 흔들었다.
그때였다.
약 십여 기의 기병이 갑자기 길을 헤치며 그들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빈이 움찔했다.
그들은 삽시간에 다가와 그들의 주변을 감싸고돌며 주변을 위협했다.
“와 쩌네…….”
긴장도 잠시 마치 이 영역으로 들어오는 이들에게 자비라는 것은 없다는 듯 벽을 둘러치는 모습에 다들 입을 쩍 벌렸다.
“야.”
“예?”
그때였다.
한 기병이 그들에게 말을 걸어 오자 빈이 살짝 놀라 대답했다.
갑자기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니가 빈이냐?”
“예. 우리 아저씨 부하세요?”
“그렇긴 한데. 뭐하냐?”
“예?”
갑자기 기병이 험악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도끼 안 들어 올리냐? 그거 나무 패러 가져왔어?”
“예?”
“신입들이 왜 이리 굼떠?”
“시, 신입?”
병화가 벙찐 얼굴로 되묻는 순간 다시금 버럭 하고 외침이 터져 나왔다.
“도끼 든다!”
“빨랑 밖으로 안 튀어나오지!”
기병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험악한 외침을 터트렸다.
“저, 저기요?”
“복귀한다! 낙오하는 새끼들은 줄에 매달아서 끌고 간다! 알았나!”
그의 외침에 전신길드원들은 일제히 답했다.
“네!”
“가자아아!”
“가, 가자아아!”
“우아아아!”
순간 전신길드원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함성을 내지르며 그들을 따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