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침식지대의 확장
콰콰콰콰쾅!
폭음이 연달아 터지면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크륵! 감히!
마법병단을 이끄는 마족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순간이었다.
푸화악!
폭연을 뚫고 거대한 뭔가가 그대로 날아든 것이다.
동시에 놀란 마족이 은은한 보랏빛의 방어막을 소환했다.
그러나 그것을 너무도 쉽게 찢으며 마족의 몸뚱이를 갈라 놓았다.
콰두둑!
거의 뜯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족의 상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 어떻게?
바닥에 처박힌 마법병단의 마족은 황망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콰작!
그뿐 아니라 뒤쪽에 있던 마법 병단 마족 둘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몸뚱이가 토막 나 뒹굴고 있었다.
그중 하난 운이 나빴는지 머리통으로부터 사선으로 허리 쪽까지 쪼개져 절명했다.
그 뒤에 박혀 있는 커다란 대부.
-저 먼 거리에서…….
생명력이 꺼져 가는 마족이 멍하니 대부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하나하나 강력한 마탄이 만들어 낸 먼지구름은 아직 가라앉지도 않았다.
그 폭연 속에서 신형 하나가 뚫고 나왔다.
대부를 집어던진 을지부루였다.
맨손의 그는 그대로 달려드는 마계병사들을 부수어 나갔다.
내지른 주먹이 병사의 머리통을 부수고 지나갔다.
반대편 손도 연이어 휘둘러졌다.
이번엔 주먹이 아닌 손바닥이었다.
쩌억!
두툼한 손바닥이 그대로 마계병 사의 면상을 반쯤은 파고들었다. 그리고 크게 휘둘러진 팔.
콰앙!
마계병사의 몸뚱이가 머리부터 해서 바닥으로 틀어박혔다.
-괴물인가…….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법병단 소속의 마족은 그대로 고개를 떨어트리며 중얼거렸다.
“받으쇼!”
부루는 뒤쪽에서 던져 준 무기를 받아 쥐었다.
어떤 마족이 쓰던 것이었는지 몸뚱이 크기만 한 태도였다.
“됴쿠만!”
부와아악!
그걸 양손에 잡고 크게 휘둘렀다.
콰자작!
그 궤적에 있던 마계병사 셋의 몸뚱이가 동시에 여섯으로 늘어나며 토막 난 부위가 각기 같은 방향으로 팽그르르 돌며 후두둑 떨어졌다.
콰앙!
다시 강하게 한 걸음 내딛은 부루의 몸뚱이가 또다시 돌아가고 태도는 그를 축으로 다시 횡으로 원을 그렸다.
투더더덕!
그 간격 속에 있던 모든 것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팔이 잘리고 몸뚱이가 잘렸으며 방패와 갑주는 왜 입었는지 모를 정도로 허무하게 갈려 나갔다.
부루가 있는 주변으로 공터가 생겨 버렸다.
그 공터를 천유화와 일행들이 그대로 파고들었다.
“와…….”
“허어…….”
뒤따라 붙은 강림자들이 마물들과 어우러지는 사이, 이원철 소장과 임병화는 전장을 살피기 위해 기동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전진해왔다.
그런 그들의 눈에 을지부루의 전투가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이거 누가 마물인지 모르겠구만…….”
다가오던 대형종의 몸통에 태도를 던져서 박아 버린 부루가 맨손으로 마계병사들을 찢어발기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기병들이 맴돌면서 마치 잡초를 솎아내듯 마계병사들을 털어대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이게 과연 엘리트급 마물들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허무하게 당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어어어어!
심장이 철렁하게 만드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읏!”
“히어로 급이 움직인다!”
순간 기동대원들이 긴장 어린 표정을 지었다.
히어로 급이라 불리는 것들의 랭크는 A.
단순한 A급이 아니다.
침식균열에서 발생한 본대병력의 A급 마물은 다른 마계병사들처럼 엘리트급이라 부르지 않는다.
히어로급이라 별도 분류된다.
전차마저 맨손으로 찢어발기는 괴물들이면서, 날아드는 순항미사 일에도 멀쩡했던 개체가 바로 이들이었다.
다수의 강림자들이 집중적으로 레이드를 해야 겨우 물리치거나 막아 낼 수 있는 개체가 바로 그들이었다.
물론 모두가 한 종류는 아니었지만, 배치 상황을 보았을 때 그렇게 구분할 수 있었다.
마켈그로이언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빌어먹을…….
모욕을 당한 것은 둘째 치고 용병대 병력의 절반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물론 용병기사단은 건재했지만, 이미 피해는 적지 않았다.
침식균열을 만들어 내면서 끌고 올 수 있는 병력의 수는 사실 한계가 있었다.
그건 침식지대의 규모에 비례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침공을 위해서 침식지대를 넓힐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고심 끝에 최정예를 꾸린 것인데 그 규모 중 한 축을 차지한 이들이 계약종료선언과 동시에 칼을 거꾸로 겨눈 것이다.
전혀 예상에 두지 못한 상황.
전혀 예상에 두지 못한 피해.
승리를 거둔다 해도 신분상승의 결정적 기회를 잡은 마켈그로이언에게 뼈아픈 상처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켈그로이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침식지를 넓혀라.
그의 명령에 한쪽에 보호받고 있던 마계의 주술사들이 빠르게 제단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살아남은 마물들과 일부 마계기사들이 벽을 쌓기 시작했다.
마켈그로이언은 이내 용병기사단장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쿠베르탄. 시간을 끌어라.
-배반자들에게 단죄를 내려야 하옵니다!
-잊었느냐. 시간을 끌어라. 단죄는 반드시 한다. 허나 지금은 우리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때.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쿠베르탄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항명은 없었다.
-뜻대로 따르겠나이다.
쿠베르탄이 이를 갈며 부루와 배반자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눈에 새겨 놓겠다는 듯.
우우웅!
침식지의 땅 위로 은은한 보랏빛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침식균열을 만들어 낸 개체의 주변에서부터 퍼져 나왔던 것이다.
“이, 이런!”
이원철 소장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보랏빛으로 물든 대지가 실시간으로 넓어져 가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시간을 주어선 안 되네!”
“젠장.”
임병화 역시 이게 무슨 일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후미를 향해 붉은 깃발을 올렸다. 지금의 상황을 사전에 알리기 위한 신호였다.
하지만 이 신호가 아니더라도 이미 이상상황을 확인했다.
다수의 강림자를 잃었지만 여전히 남은 강림자 숫자가 많은 신컨길드가 우선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회를 통해 마물들의 행위를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이런 작전은 하나의 길드가 맡아 주는 것이 나았다.
사전에 미리 말을 해 두었는지 신컨길드의 강림자 외에도 중소길드의 강림자 두 팀이 좌우로 붙었다.
그 자리를 기동대원들이 다시 채웠다.
마물들에 의해 방어선이 박살나다시피 했지만, 일부 거치식 무기 중에는 쓸 만한 것들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신컨길드가 움직이는 것을 본 병화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부루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검모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직선거리로는 자신이 부루에게 더 가까웠다.
공교롭게 검모잠과 부루의 사이에는 히어로급 마물들이 가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빈아.”
“뭡니까. 그 부담스러운 눈빛은.”
“가자.”
그 말과 함께 병화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함께 그 시선을 따라갔던 빈이 말했다.
“미친 건 아니시죠?”
“심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으면 안 가도 되고.”
“……움.”
병화의 말에 빈은 부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길짱님!”
“됐어?”
“망했어요! 하나도 안 돼요!”
병화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바이크에 크랭크축을 걸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걸 본 이원철 소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뭐하는 건가?”
“가서 전달하는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길드장의 강림자인 검모잠을 통해 전달하는 게 낫지 않는가?”
“보시다시피…….”
“으음.”
그제야 이 소장도 상황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럼 기동대도 함께 하지.”
“아닙니다. 위험합니다.”
“소환자가 더 귀하네.”
“하지만…….”
그때 뒤쪽에서 바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
강문호 대위가 기동대원들과 함께 바이크를 몰고 오고 있었다.
기동대원들 역시 안면 있는 이들이었다. 이전에 침식균열을 해결할 때 함께 했던 이들이었다.
“좀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상황이 별로 안…… 뭡니까 저건?”
말을 하던 강 대위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부루.
그 무지막지한 전투에 모르기가 더 힘들었다.
그런데 그 주변의 기마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강 대위의 질문에 병화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마물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같이 다니네요? 복장을 보니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일단은 같은 편이라 봐야 할 듯합니다.”
“구 박사님을 말리길 잘했군요.”
“그러게요.”
“강 대위 여긴 어쩐 일인가?”
“전신길드가 우리 쪽 주요 프로젝트 협조자라서 말입니다.”
“아! 그렇지.”
이 소장도 들은 기억이 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직접 가서 전달하시려는 겁니까?”
“그게 나을 듯합니다.”
병화의 말에 강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만 가지요.”
“음.”
강 대위가 눈짓으로 이 소장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호흡을 맞춰 본 적이 있잖습니까.”
“그게 좋겠습니다.”
“그럼…… 알겠네.”
“소장님은 뒤를 부탁드립니다.”
이 소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동대가 뭔가 큰일을 해 낼 수는 없지만, 최악의 경우 소환자들이 이탈할 수 있는 시간이나마 벌어 줄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따라 붙는 것이다.
“그럼 출발하지요.”
“제일 숙련자부터 가는 게 낫겠지?”
강 대위의 말에 빈이 울상을 지었다.
“아, 진짜!”
그러면서도 자신의 도끼를 한 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는 먼저 출발을 했다.
그 뒤를 병화를 비롯한 전신길드원 다섯과 강 대위를 비롯한 기동대원 다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위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촐한 강림자 둘이 그들의 양 옆을 따라 붙었다.
그 모습을 비장미 넘치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 소장의 귓가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왜 다 한손에 도끼를 들고 있죠?”
“응?”
“희한하네.”
그 말에 이 소장이 다시 바라보았다.
한손으로 바이크를 몰며 다른 한손으로 도끼를 단단히 쥐고 늘어트린 체 달려 나가는 전신길드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하하, 달리면서 마물 대가리라도 치려나 보지요!”
기동대원 하나가 크게 웃으며 말을 하는 순간 고요가 흘렀다.
“응?”
다들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뭐, 뭡니까?”
그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바이크 주변으로 달려들던 소형 마물이 도끼에 맞아 나자빠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그걸 해 낸 이들이 강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바이크를 몰고 달리는 전신 길드원이었던 것이다.
물론 철저히 접근을 피하며 달리지만 소수의 적은 그대로 뚫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걸 멍하니 바라보던 기동대원 중 하나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도 도끼 한 자루 장만해야 하나…….”
그들에게 있어 상상하기 힘든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