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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44화 (44/305)

제44화 가장 후회하는 일

부루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유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이 뭔 개소린지 아는 놈 있음 말해 보라우.”

“그게, 사실…….”

내용은 단순했다.

죽었다 싶었는데 이상한 동네에 떨어졌다. 방향성을 잃고 있던 그들에게 저자가 와서 계약을 들이밀었다.

그 계약은 말 그대로 우두머리를 찾을 때까지 그쪽의 일을 도와주는 것.

그리고 지금은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부루를 만났으니 끝이 났다는 것이다.

“여기가 어데인지는 아는 거이간?”

그들의 말을 듣던 부루가 혀를 찼다. 그러자 다들 눈을 멀뚱거렸다.

“글세요?”

“우리 후손들이 사는 곳이야. 알간?”

“억! 그럼 방금 쓸어버린 애들도?”

“비슷하긴 한데 되살아 날 터이니까네, 그때 미안하다 하면 되디 않갔네?”

“오! 그럼 되겠습니다!”

“기러고 말이디. 여기에 폐하의 그…… 후궁께서 계시단 말이디.”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이미 왔다 가셨디.”

부루의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그들의 말이 이어지는 사이 마켈그로이언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깐, 내 말을…….

“닥치라우. 내 말하는 거 안 보이니?”

-뭐?

“딱 보니까네, 협잡질로 먹고 사는 아새끼인 것 같은데, 그만 하고 돌아가라우. 내 아들을 봐서 살려는 주갔어.”

-…….

마켈그로이언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리고 이내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대우는 옛날 바닥에 구를 때 이후 처음이었다.

더는 무시당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대놓고 무시를 당한 것이다.

-부귀와 영화를 내리려 했건만, 스스로 악수를 두는구나.

마켈그로이언이 화를 억누르며 내뱉은 말.

“데진 놈들이 부귀와 영화를 누려 뭐하간.”

마켈그로이언이 부루의 말에 눈가를 가느다랗게 떴다.

보통 죽어 마계로 오는 영혼들은 무언가에 집착하게 된다.

보통은 그것이 욕망이다.

그 욕망을 충족시켜 주면 부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지막 권유다.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부루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쪽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

그리고 그 너머의 요상망측한 장벽.

“우리 할 일을 다 한 거 같네?”

부루의 말에 유화가 웃었다.

“글쎄요. 보지 못하고 죽어 모르겠습니다.”

“길티. 나도 끝은 보지 못했어야. 기래서 이번에는 끝을 보고 싶구만 기래.”

부루의 말에 천유화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죠?”

유화의 대답에 부루가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원하는 거 말하디.”

마켈그로이언이 부루를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으며 부루가 말했다.

“지키는 거이야.”

-뭐?

“지키고자 하는 곳을 지키는 것. 기거이 우리가 원하는 거이디.”

부루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후회는?

“지키지 못하는 거이 가장 후회되는 일이디. 기러니…….”

부루가 대부를 단단히 그러잡으며 말을 이었다.

“갈 거 아니면 뎀비라. 말로만 떠들디 말고 말이디.”

부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화와 기마들이 일제히 무기를 고쳐 잡았다.

명백한 전투의지.

-영혼조차 남기지 못하게 갈가리 찢어 주마.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여 있던 마물들이 일제히 내달려 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부루가 퓨켈 위로 뛰어올랐다.

동시에 내달리기 시작하자 그 뒤를 유화와 일행들이 따르며 반가운 목소리를 내었다.

“이거 얼마 만입니까?”

“닥치라. 말도 안 듣는 아새끼들래 시간만 있었으면 더 줘팼을 거이야.”

“클클!”

“우흐흐흐!”

부루의 말에 뒤쪽에서 키들거리는 웃음소리들이 울려왔다.

그렇게 그들은 내달려오는 마물들을 등에 지고 열심히 도주를 시작했다.

“응?”

을지부루와 기병형 마물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더 많은 마물들.

그걸 지켜보던 전신길드원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쪽으로 오는데?”

“배, 배신도 하나?”

“강림자가?”

순간 다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벼락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구경났네! 공격하라우!”

부루의 외침.

순간 병화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공격!”

병화는 부루의 외침과 동시에 전신길드의 모든 강림자들을 출동시켰다. 동시에 뒤를 돌아보며 이원철 소장에게 말했다.

“기병들이 가속을 얻을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순간 병화는 이소장에게 딱히 설득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편이 되었어요 하기에는 조금 전 신컨길드가 박살이 난 장면이 너무 선명했다.

그사이 전신길드의 기병이 부루와 일행들을 스쳐 지나갔다.

“어라? 저거?”

“강림자라는 거이디.”

“이거 참…… 그런데 뭔가 좀 허합니다.”

무언가를 눈치 챈 천유화의 말에 부루가 답했다.

“여기선 우리가 이상한 기야. 알간?”

“아, 예…….”

그때 이를 악물고 이쪽을 바라보며 견제하던 이들의 모습이 훅 하고 가까워져 왔다.

하지만 부루는 그대로 말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반전!”

그의 외침에 유화와 그 뒤를 따르던 이들이 복명했다.

“반전하라아아!”

두두두 두두두!

숫자는 고작 이백 여기 정도였지만, 그 기세는 남달랐다.

대치하던 병력에게 그대로 옆구리를 보여 주며 크게 반전을 하며 속도를 다시 높여나갔다.

그들을 스쳐 지나간 강림자들이 부루 일행의 뒤를 따르던 마물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부루가 활을 들었다.

동시에 유화를 비롯한 다른 이들 역시 활을 들었다.

부루가 재자, 다들 마찬가지로 활시위에 화살을 재었다.

그리고 당겨지는 화살.

쉼 없이 내달리는 기마들.

“쏘라우!”

부루의 명령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살들이 시위를 떠났다.

태태태태탱!

마치 쇠줄을 퉁기는 듯한 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려 퍼졌다.

콰콰콰콰!

내달리던 마물들이 일제히 뒤로 나자빠졌다.

뒤이어 한 차례 더.

전신길드의 강림자인 검모잠과 개마기병들의 주변이 훤해졌다.

검모잠이 뒤를 돌아보며 미간을 꿈틀거렸다.

“가자우!”

그를 스치며 내달리는 부루의 말을 이어 유화와 일행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같이 갑시다!”

“반갑수!”

그들을 보며 검모잠이 얼굴을 꿈틀거렸다. 무언가 움직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꾸만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검모잠이 그들을 따라 달리며 외쳤다.

“가자!”

검모잠의 외침에 잠시 강림자들이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군 맞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신컨길드의 길드원들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눈이 있으니 안 믿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 구도원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저거 혹시?”

자연스럽게 길드원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테이밍?”

“…….”

순간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정적이 흘렀다.

곁에 있던 이원철 소장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적을 뚫고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역시, 길드장.”

“과연!”

“테이밍이 가능하다니!”

“…….”

도원과 신컨길드원들이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이 소장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잘못된 건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는 공격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전신길드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지휘권 양도 받겠습니다.”

이 소장의 말에 병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외쳤다.

“기병형 전부 출동시키십시오! 보병형은 방진을 이루어 뒤를 따르고! 궁수형 간격 맞추어 그 뒤를 받친다!”

병화의 외침에 다들 목소리를 높여 답했다.

그리고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강림자들이 일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급조한 방위병력이었지만, 행동은 일사불란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상당수가 군필자들. 반세기 이상을 예비군을 운용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아무리 급조되었다 해도 구심점만 있으면, 이 정도는 문제없었다.

강림자 병력이 돌파를 해 나가는 부루와 가우리 기병들을 따르며 빠르게 전진해 나갔다.

-으음.

마켈그로이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군일 때도 그들의 효용가치를 높게 보았던 그였다. 그런데 막상 뒤통수를 맞고 나니까 그들이 더욱 아까웠다.

일반 마물들은 그야말로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있었다.

덩치가 큰 거대종들은 투척무기에 너덜해지며 나자빠졌고 소종들은 그대로 기마에 채여 박살이 났다.

마물로 만들어 낸 장벽이 그대로 뚫려 나가고 있었다.

-어차피 소모품들입니다.

용병기사단장인 쿠베르탄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처음부터 자격도 없고 근본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계의 짐승들로 변했을…….

마켈그로이언과 달리 쿠베르탄은 저들의 변심이 기꺼운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의 자리를 저들이 몇 번이나 차지를 했었으니까. 마켈그로이언이 이용할 뿐이라고는 했지만, 점차 그들을 부르는 숫자가 줄어들면서 용병기사단장인 쿠베르탄의 심기는 점점 불편해졌다.

마켈그로이언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신분상승의 꿈이 있었으니까.

쿠베르탄과 같은 전투 마족은 승리를 거두어야 그 길에 가까워질 수 있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저들이 돌아선 지금이 다시 기회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자신들만이 대안이라는 기회.

쿠베르탄이 나아가며 외쳤다.

-배반자들을 갈가리 찢어 놓아라!

그의 외침에 마계의 병사들과 그의 용병기사단들이 일제히 튀어나갔다.

마물들의 벽을 뚫고 나온 부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계병사들과 기사들.

도합 천 정도 되는 병력이 마치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기세도 좋았다.

하지만 부루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그대로 양손에 손도끼를 들어 올렸다.

어차피 거리는 짧았다.

“이런 것들을 뒤에 두고 싸운 거이간?”

부루의 말에 유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다들 저리 싸우던데요? 그래서 우리가 좀 편했죠.”

부루의 손에서 손도끼들이 날았다. 그리고 그 뒤에서도 손도끼들이 일제히 하늘을 따라 날았다.

날아간 손도끼들이 달려 나오던 마계병사들의 방패에 퉁겨 나갔다.

마물들과는 달리 일사불란한 막은 없지만 제법 병기를 다룰 줄 아는 데다가 힘도 좋았다.

그러나 그 다음.

내달리던 기병들이 삭을 들이밀었다.

콰콰콰콱!

마계병사들의 몸뚱이에 창대들이 틀어박혔다.

“크에에에!”

마계병사들이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창대에 꿰여 이리저리 휘둘러졌다.

한차례의 돌파 후 선두에 선 부루가 대부를 그대로 휘둘렀다.

부와아악!

거침없이 휘둘러지는 부루의 대부를 마계병사가 방패를 들어 막았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방패는 그대로 박살이 났고 나아가 뒤의 몸뚱이마저 박살을 내었다.

그사이 창대를 부루에게 들이미는 마계병사가 있었다.

하나는 반대편 손으로 잡아서 당겼다.

그대로 딸려 올라오는 마계병사의 몸뚱이.

콰작!

그러나 그걸 마치 먹잇감이라도 되는 듯 부루가 타고 있던 퓨켈이 그대로 입을 벌려 덥썩 물어 버렸다.

와그작!

뼈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허리춤이 퓨켈의 입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상체와 하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렇게 빼낸 창대를 날려 보내는 부루를 향해 보랏빛 광구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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