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마물 맞아?
그때 진영이 바뀌는 순간 마물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본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도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타격대 뛰쳐나가!”
도원의 명령과 거의 동시에 안쪽에 있던 강림자들이 일제히 뛰쳐나갔다.
타격대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그들은 초반 진입 때 길을 확보했던 강림자들이었다.
도리깨나 죽창을 들고 있었지만, 강림자라는 존재임은 분명했는지 틈을 노리고 밀려오는 마물들의 발을 묶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그럼에도 중형 이상의 마물들 때문에 일부 강림자들이 재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도원은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소모된 강림자들은 일종의 쿨타임을 가진 뒤 되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다른 강림자들이 뒤를 돌아서서 후미를 쳤다.
마물들을 막아선 강림자들과 달리 제대로 무장을 갖춘 이들이었다.
무장의 행세는 아니었지만,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로 구성된 강림자들이었다.
콰직! 콱!
“끄워억!”
“캬아아!”
마물들의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단순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일단 막고 돈좌된 적의 후미를 노리는 전술.
달려들던 마물들이 삽시간에 녹아내리는 모습에 도원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프로게이머로서 전략 전술게임을 할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그건 화면이었고 이건 실제니까.
“이거지. 흐흐흐.”
비록 프로게이머로서 돈을 쫓은 덕에 승부조작에 발을 담가 그 끝이 바랬지만, 나름 일가를 이룬 실력자였다.
그게 강림자들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도 빛을 발한 것이다.
게임과 현실은 다르지만, 그 차이를 극복해 낸 것이다.
거기에 운용하는 이들이 사람이라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의 강림자 덕이었다.
그의 강림자는 김경징이었다. 인지도는 높았지만 무력이 높은 강림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존재가 알려지자 사방에서 그를 보고 웃었다.
수치로 따지면 거의 영웅급에 가까웠지만, 실 전투력은 바닥이었다.
실제로 역사에는 조선시대 최악의 장수로 꼽히는 이이기도 했다. 그의 아비인 김류 역시 최악의 장수 중 하나이기에 견부에 견자였다.
다만 김경징이 아비보다 더 최악인 덕에 그거 하나만큼은 청출어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최악의 평을 받은 강림자였지만, 그의 능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전장에서 살아날 구멍을 본능적으로 찾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그대로 도원에게 전달되어져 온다는 것이었다.
강림자와 소환자간에는 일정부분의 감각이 연결된다.
그 덕에 소환자가 안전한 후방에서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이유였다.
다만 인지도가 높아지면 그 감각전달이 구체화 된다.
도원은 살 구멍을 살핀다는 것을 역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가 막히게 위험한 곳을 인지하는 그의 능력으로 강림자들을 운용하여 막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과감하게 내빼었다.
그 덕에 지금의 신컨길드가 있었던 것이다.
나라를 말아 먹고 결국 자신의 목이 잘리게 만든 그 감각이 도원에게는 다른 의미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의 강림자는 사방을 연달아 살피고 있었다.
그때 도원의 감각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공포였다.
“아, 또 왜!”
도원이 김경징의 감각을 느끼고 짜증을 내었다.
“도, 도망가야 하오!”
“씨파 엔피씨도 아니고 전장만 나오면 도망가야 하오라고 그러냐!”
버럭 소릴 지르며 고개를 돌리는 도원의 귓가로 팀장들의 경악성이 들려왔다.
“어억!”
“미친!”
“대체 저게 뭐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도원이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어?”
검은 기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우, 우리 기마 어디 갔어?”
“벌써 다 쓸렸습니다!”
“뭐?”
순간 도원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눈을 돌렸을 뿐이다.
그리고 분명 명령을 내리길 적들의 돌파력을 죽이는 정도로 견제하라고 했었다.
기병운영을 맡고 있던 부길드장에게 버럭 소릴 내질렀다.
“장난해!”
도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부길드장인 민재는 붉어진 얼굴로 목소릴 높였다.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했습니다!”
“뭐?”
“씨팔 마법형이었나 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마법형에게 깨지면 강림자는 허수아비냐!”
“접근도 하기 전에 반수가 깨졌고 방향을 틀기도 전에 휩쓸려 버렸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개소리야!”
“가까워집니다!”
다른 팀장의 외침에 도원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뭐해! 궁수 쏴!”
도원의 명령과 동시에 화살들이 하늘을 날아다.
그때 달려오던 이들이 무언가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작은 방패였다.
타라랑! 타랑!
“화, 화살이 안 먹힙니다!”
“이런 일 한두 번이야? 속도만 줄어도 남는 장사잖아! 계속 쏴! 전열은 창대 세울 준비하고! 마법형이라니까 방패병 창병 앞으로 방벽 세워!”
순식간에 병력이 이동했다.
“타격대 뛰쳐나가! 몸으로 때워!”
옆으로 접근했던 마물들을 막았던 타격대들을 방패병 앞으로 집어넣었다.
도원 역시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때였다.
“으헉!”
도원의 전차를 몰던 그의 강림자인 김경진의 공포 어린 감정이 훅 밀려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앞에서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 행동에 도원 역시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퍼억!
거의 동시에 뭔가가 머리 위를 스친다 싶더니 뒤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 왔다.
머리를 숙이며 고개를 돌렸기에 그 소리가 난 곳으로 도원의 시선은 이미 돌아가 있었다.
바로 뒤에 있던 기마를 탄 강림자 하나가 뒤로 튕겨 나가는 모습이 그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뭐, 뭐야?”
가슴팍에 화살 깃 하나가 꼬리를 내밀고 있었다.
화살을 쏘는 마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켈레톤 아처라 불리는 언데드 종류가 화살을 쏘긴 한다.
하지만, 그 위력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날아온 방향으로 보아 말을 타고 달려오던 마물들에게서 쏘아진 것이 분명했다.
“뼈다귀 기병이 활도 쏘나?”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도원이 당황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피해야 하오!”
“닥쳐라 좀!”
다시금 벌벌 떨며 불안한 시선을 보내던 김경징의 외침에 도원이 버럭 소릴 질렀다.
“뼈, 뼈다귀 아냐! 인간형이야!”
그 말에 도원이 쌍안경을 들어 올렸다.
가까이 다가와서인지 마물의 얼굴이 확 들어왔다.
무감정하게 느껴지는 눈동자.
“아우씨팔!”
순간 도원이 화들짝 놀라 쌍안경을 내렸다.
감정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섬뜩한지 처음 알았다.
“타격대 뛰어!”
타격대 운용을 맡은 팀장의 명령이 터지자 강림자들이 달려 나갔다.
기마들이 달려오는 앞으로 강림자들이 내달렸다.
실제 인간이었다면 불가능한 행동이었지만, 명령에 따르는 강림자들은 달랐다.
그런 강림자들을 보며 도원이 욕설을 내뱉었다.
“에이씨, 레이드에 쓸 것을 벌써 날려먹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하급 강림자들을 다소 희생시키더라도 본대 병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때였다.
“이런씨!”
화살비가 쏟아져 왔다.
퍼퍼퍽! 퍼퍽!
타격대라 불리운 강림자들의 몸뚱이들이 그대로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하, 한 방?”
죽창 하나 들었다고, 무시 받을 강림자가 아니었다.
최소한 죽창을 들었지만 나름의 인지도가 있어야만 강림자가 될 수 있었다.
왜군을 많이 때려잡았다던지, 생전에 의병으로서 용력을 뽐냈다든지 말이다.
그리고 강림자가 되면서 외형은 생전의 형태와 같지만, 구현되는 능력은 초인이라고 해야 보았다.
아무리 하급이라 해도 폐급 마물 서넛 정도는 이겨 낼 수 있는 게 강림자였다.
그런 강림자들이 화살에 맞아 그대로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는 살아남아 무기를 들고 일어섰지만 의미는 없었다.
콰자작!
기마들이 그 위를 밟고 지나치면서 둔탁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재가 되어 휘날렸던 것이다.
“속도가 안 줄어!”
“빌어먹을 나도 봐서 안다고!”
도원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 적들이 갑자기 팔을 휘둘러 왔다.
쾌래랙! 쾌래래래랙!
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소리가 울려 왔다.
그대로 날아온 것들은 방패 위로 날아들었다.
퍼퍼퍼퍽!
앞 열은 아니었지만 두세 줄 뒤에 있던 창병들의 몸통에 무언가가 틀어박히는 소리가 울려 왔다.
“뭐야!”
“도끼다! 손도끼!”
패래래랙 패랙!
뒤이어 또다시 손도끼들이 날아들었다.
퍼퍼퍽!
무언가 박히는 소리와 함께 창대들이 먼지로 화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대열이 듬성듬성 빠져 버렸다.
“앞으로 밀차악!”
도원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그와 함께 창병들이 앞으로 나아가며 간극을 메워 가는 순간 마물기병들이 긴 창을 내밀었다.
“마물이 맞긴 하는 거야?”
그 모습에 도원이 질린 얼굴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기마들과 신컨길드의 강림자가 만든 방벽이 부딪혔다.
콰콰콰쾅!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도원은 눈을 믿을 수 업었다.
방패와 부러진 창대를 쥐고 있는 강림자들이 이리저리 튕겨져 날아가고 있었다.
일부는 창대에 꿰뚫려 들어 올려졌다가 멀찍이 던져지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도원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겁쟁이 말이 맞았어.”
그의 눈앞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이리저리 도망갈 구석을 찾고 있는 김경진의 모습이 오늘따라 현명하게 느껴졌다.
을지부루가 달려가다가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와 동시에 그가 있던 곳으로 커다란 몽둥이가 스쳐지나갔다.
“그워억!”
그렇게 부루는 옆으로 매달린 채로 그대로 대부를 휘두르며 다시 말 위로 올라왔다.
마치 대부를 휘둘러 그 원심력으로 말 위로 올라오는 것 같이 말이다.
하지만 그가 대부를 휘두른 것은 말 위에 오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워어어어!”
부루가 지나온 뒤쪽에서 대형 마물의 비명소리가 울려 왔다.
다리 하나가 잘려 무너지는 마물의 몸통을 부루의 뒤를 따르던 검모잠과 다른 강림자들이 스치듯 지나며 연달아 타격했다.
대형종이라는 구분이 무색하게 그대로 나자빠진 채 장애물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시체가 되어 버렸다.
부루가 말을 몰아가다가 갑자기 대부를 집어던졌다.
엎어진 차를 들어 올리려던 대형 마물의 머리통에 그대로 날아가 꽂혔다.
비명도 없었다.
그때 그 주변에 달려들던 다른 마물들이 부루를 바라보았다.
그런 마물들을 향해 부루가 그대로 몸을 날렸다.
맨손이어지만 거침이 없었다.
뛰어내리며 한 놈.
와그작!
발아래에 목과 척추가 접혀서 죽어 버린 마물을 디딤돌 삼아 부루가 그대로 앞으로 몸통을 날렸다.
콰아앙!
마치 볼링핀들이 강렬하게 비산하듯 이리저리 튕겨나가는 마물들.
이어 부루가 뒤쪽에 있던 중형종의 발목을 잡았다.
중형이라지만 그 덩치가 이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크기였다.
그러나 부루는 상관없다는 듯 발목을 잡아끌었다.
“키에에엑!”
중형종이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중형종의 몸뚱이가 빠르게 휘둘려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싹 다 꺼지라우!”
부루의 외침과 함께 휘둘려진 중형종에게, 그의 앞을 가로막았던 마물들이 빗자루에 쓸려나가는 것 마냥 싸그리 튕겨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