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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39화 (39/305)

제39화 불의 전차 그리고 새로운 적?

“후우.”

마물들의 안쪽으로 돌입한 뒤 중앙을 누비며 화염줄기를 뿜어 내는 미끼들을 보며 이원철 소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호숫가에 돌을 던져 만들어 내는 것처럼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오던 마물들의 동선도 바뀌기 시작했다.

화염방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줄기 자체는 마물을 즉사시킬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은 없었지만,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마물들을 제대로 자극한 것이다.

캬라락!

캬아!

마물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발광했다.

방어선에서 화염방사기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오히려 마물들이 발광하며 불이 사방에 옮겨 붙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불이 여기저기 옮겨 붙기를 기원했다.

붙어봐야 다른 마물들이니까.

하지만, 일부를 제외한 마물들은 잘 꺼지지 않는 연료가 몸에 묻어 계속 타들어가면서도 미끼들을 향해 따라 붙었다.

마치 복수를 꿈꾸듯.

그리고 미끼들은 이런 불붙은 마물들을 꽁무니에 달고 이리저리 누비며 계속해서 여기저기 또 다른 불줄기를 새로운 마물들에게 뿌려 대었다.

이것이 미끼작전의 핵심이었다.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지프를 활용해서 적들의 이목을 끄는 것.

그 덕에 일부 마물들이 이탈하면서 방어선은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일 수 있었다.

문제는 이게 한없이 이어질 수 있는 작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지프들에게서 꽁무니에서 뿜어내던 불줄기가 끊어졌다.

화염방사기의 연료가 다 떨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목을 끌고자 돌아다니며 고속유탄이나 소총탄을 쏘아대었다.

그러던 중 차량 한 대에게로 보랏빛 광원이 날아들었다.

“마……마법계열!”

원거리에서 쏘아내는 구체의 파괴력은 전차탄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

콰앙!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이었지만, 마치 귓가에서 울려오는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급격히 방향을 꺽은 덕에 직격은 면했지만, 그 뿐이었다.

“흐어어…….”

이 소장의 입에서 울음소리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폭발의 여파를 피하지 못한 지프는 그대로 허공에서 한 바퀴 맴돌더니 옆으로 자빠져 길게 미끄러졌다.

그 와중에도 고속 유탄은 계속 쏘아졌다.

방아쇠를 놓지 않은 건지, 놓지 못한 건지…….

그리고 그 미끄러지던 지프위로 마물들이 뒤덮였다. 그리고 즉시 폭음과 함께 지프를 뒤덮었던 마물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끄으흑!”

그걸 지켜보던 이 소장은 끝내 입술을 씹으며 울음 섞인 목소리를 흘렸다.

자폭이다.

그들은 폭발 직전까지 살아 있었던 거다.

살아서 한발이라도 더 쏘다가 마물들이 몰려드는 순간 차에 실린 기폭기를 누른 거다.

이 소장이 벌게진 눈으로 외쳤다.

“지원은! 대체 언제 온다는 거야! 저러다 우리 애들 다 죽겠다고오오!”

이 소장의 울부짖음에 그 주변을 지키던 군인들의 눈시울 역시 젖어있었다.

장벽 안으로 기동대원들이 모두 들어가고 철문이 닫혔다.

그 장벽위에는 강림자들이 각기 다른 시대를 상징하는 갑주와 무기를 들고 있었다.

먼저 총안구에 거치된 화기가 불을 뿜었다.

그 다음으로 움직인 것은 강림자들이었다.

원거리 투사 무기인 활을 든 강림자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린 것이다.

그러자 결과가 판이하게 나타났다.

고속유탄을 맞으면서도 전진해 오던 마물이었지만 머리통에 날아든 화살 한 방을 버티지 못하고 나자빠진 것이다.

그우워어!

퍼퍼퍽! 퍼퍽!

강림자들의 화살은 중형이상의 마물들을 향해 계속 날아들었다. 화기가 통하지 않는 마물들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림자의 숫자보다는 마물의 숫자가 압도적이었다.

콰직!

일부 마물들이 그대로 벽을 찍으며 오르기 시작했다.

몇 번 찍지도 않았다.

두어번 찍어 오른 뒤에 그대로 장벽 위로 날아오른 것이다.

그런 그들을 맞이한 것은 창과 칼등을 든 강림자들이었다.

“으아아압!”

창날이 무방비로 뛰어오른 마물의 몸통을 꿰뚫었다.

“크럭!”

“크워어억!”

확실히 강림자들의 공격은 제대로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현대 전쟁의 총아인 총화기들이 무색한 결과였다.

하지만 강림자들이라고 무적은 아니었다.

“어구구우우!”

죽창을 든 강림자 하나가 허무한 비명과 함께 마물에게 끌려 내려갔다.

“돌쇠야!”

그 강림자의 이름이 돌쇠였는지 소환자의 안타까운 외침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내 강림자의 몸뚱이는 사방팔방으로 뜯겨져 나간 뒤 먼지가 되어 사라져갔다.

사실 미끼 팀들이 마물의 일부를 끌고 가서 버틸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상주하는 강림자들이 있다고 해도 그 숫자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거대한 검은 소의 형상을 한 괴수가 묵직한 발걸음을 울리며 내달려 오고 있었다.

“버팔러너…….”

네발로 달리다가도 전투에 돌입하면 앞발 두 개를 휘두르는 마물이었다.

몸을 일으켜 세우면 그 높이가 십이 미터에 달하는 대형 마물이었다.

굳이 몸을 세우지 않아도 높이가 칠 미터에 달했다.

누군가는 미노타우르스라고 했지만, 신화 속 미궁의 괴수는 이 족보행이라는 인식 속에 버팔로와 러너의 합성인 버팔러너라 불렸다.

이것의 무서움은 바로 이 돌진력이었다.

콰아앙! 콰앙!

순식간에 내달려온 버팔러너가 그대로 장벽을 들이받자 장벽의 한쪽이 움푹 들어갔다.

컨테이너 안에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튼튼한 장벽이 균열을 일으킨 것이었다.

쿠구구궁!

커다란 진동음에 제이와 세인 그리고 레이니는 이를 딱딱 부딪혔다.

다시금 이어지는 진동음.

쿠쿠쿵!

“젠장, 이러다가 무너지는 거 아냐?”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이승배가 인상을 확 구겼다.

“쫌!”

그때였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천장에 균열이 생기더니 돌가루와 모래가 우수수 쏟아졌다.

“제, 젠장!”

벙커에 있던 이들이 모두 질린 얼굴을 했다.

사실 벙커라 하지만 지하로 파고 들어간 형태는 아니었다.

장벽에서 가장 안전하다 싶은 곳을 벙커라고 명명했을 뿐이었다.

“나오십시오! 장벽 상층부로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예에?”

“차라리 거기가 낫습니다! 강림자들도 많고 지휘부도 있으니까요! 지금 버팔러너 때문에 내부 균열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 양반아! 여기 무너지면 위도 폭삭 가라앉는 거잖아!”

승배의 항변에 탈출을 요구한 기동대원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장벽 상층부는 지지구조가 별도라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실 버펄러너가 등장할 줄은 몰랐습니다.”

기동대원의 탓은 아니었다.

승배는 판도라 멤버들을 이끌고 기동대원을 따라 다시 이동했다.

그 뒤로 스텝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함께 따라 붙었다.

“아…….”

상층부로 올라간 세인의 입에서 안타까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전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상층부 바로 아래의 장벽 위에서는 강림자들이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소환자들이 각자 저마다의 강림자들을 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마치 격투기장에 응원하러 온 관객마냥.

그 이질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시선을 멀리 돌렸다.

불줄기를 쏘아내며 내달리는 지프들.

콰쾅!

그 와중에 뒤집어지면서 크게 터져나가는 지프.

비현실적인 장면이었지만, 대침식을 겪었던 이들이기에 이게 현실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끔찍한 기억들이 잠시 멀어졌던 것이지 사라진 것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때였다.

저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움직여오고 있었다.

수는 약 이백여기.

“뭐지?”

순간 관측병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이백 여기가 나타나자 그 앞을 얼쩡거리던 마물들이 일제히 좌우로 흩어졌다.

마치 길을 열어주듯, 혹은 두려움에 도망가듯 말이다.

“가, 강림자?”

관측경으로 살피던 관측병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아닙니다. 꼭 기마병단 같아서…….”

“기승형 마물이 없는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지금껏 보고되지 않은 개체입니다!”

관측병의 말에 달려온 이 소장이 관측경을 받아 확인했다.

“뭐야 저건?”

이 소장 역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왔구나!”

“빨리 오라고!”

환호성에 뒤쪽으로 이동한 승배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왔다.”

강림자들이 일제히 뒤쪽에 들끓던 마물들을 휩쓸며 내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눈에 띄는 기마들.

바로 전신길드의 강림자 기병들이었다.

그 선두에는 을지부루가 있었다.

“부루형니이이임!”

승배가 그를 목 놓아 불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비명과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자, 장벽이 점령당할 것 같습니다!”

다급한 외침.

이 소장은 이를 악물더니 명령을 내렸다.

“전원 퇴거하라! 전원 퇴거하라!”

퇴거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자 상층부 장벽의 소환자들이 아래에서 싸우고 있던 강림자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현 자리를 사수해!”

그리고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장벽의 강림자들이 기동대원들과 군인들이 이탈하는 것을 돕기 위해 남는 것이다.

상층부의 인원들이 한쪽의 미끄럼틀을 통해 빠르게 이탈을 시작했다.

그나마 뒤쪽에서 몰려오는 지원군들 덕에 이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판이로구만 기래.”

마물들을 짓이기며 달리던 을지부루가 쏟아져 나오는 군인들과 기동대원들을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의 눈은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폈다.

판도라 일행들을 찾는 것이었다.

“무사했구만!”

그때 부루의 얼굴이 환해졌다.

판도라 일행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승배가 부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부루가 마물 한 마리를 쳐날려 버리고선 대부를 들어올려 보였다.

반갑다는 의사표시였다.

그때 부루의 귓가가 쫑긋거렸다. 그의 귀로 가느다란 피리소리 같은게 들려왔던 것이다.

부루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누가 쏜 거지 하는 표정이었다.

“들었네?”

“들었소.”

부루의 질문에 답한 것은 검모잠이었다.

“우리는 아니디?”

“안쪽이 확실하오. 효시오.”

“길티. 효시디.”

안쪽에도 강림자가 있으니 효시가 울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부루 입장에서는 묘하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무너지기 시작한 장벽에서 뛰어내린 강림자들이 뭉쳐서 마물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산적모습의 강림자도 있었고, 갑사모습의 강림자도 있었다.

일부는 장군처럼 화려한 갑주를 입은 강림자도 있었다.

남아있는 강림자들은 하나같이 강한 개체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버팔러너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들에게 달려들던 버팔러너가 순식간에 해체되어 버릴 정도였다. 그때 마물들이 좌우로 물러났다.

“무엇이더냐.”

장군 모습의 강림자가 눈썹을 꿈틀거리는 순간 마물들이 만들어낸 길 앞으로 창대를 내세우고 달려드는 개체가 있었다.

“흥! 이따위!”

순간 강림자가 그 창대를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날아든 것들이 있었다.

쾌래래랙!

쾌래랙!

은빛으로 빛나는 그것들은 마치 나비처럼 날아와 강림자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퍼퍼퍽! 퍼퍽!

“도끼?”

뒤로 튕겨져 나갔던 강림자 하나가 먼지로 흩어지면서 자신의 가슴팍에 날아와 박힌 것을 보았다. 손도끼였다.

그 강림자가 시선을 들어 올려 습격자들을 바라보았다.

먼지가 되어 사라지면서도 입술을 달싹였다.

“마물이 아니…….”

콰두두두!

먼지가 된 강림자위를 말발굽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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