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38화 (38/305)

제38화 미끼들

* * *

타타타타타!

“저거이 뭐이간?”

을지부루가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동공에는 헬기가 천천히 내려앉는 모습이 새겨지고 있었다.

“길드에서 쓰는 헬깁니다. 긴급 출동용인데…….”

“이거 됴쿠만!”

부루의 얼굴이 환해지는 모습을 보며 마중을 나온 육 감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양반들 스케일은 하나같이 다 크네…….”

“빨리 탑시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부루는 빠르게 헬기 위에 올라탔다.

이내 전신길드원과 강림자들을 태운 헬기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걸 바라보던 육 감독이 중얼거렸다.

“만화나 소설 보면 소환물 같은 건 주인이 부를 때만 나오던데 현실은 왜 그런 걸까.”

육 감독의 중얼거림에 옆으로 다가온 광호가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현실은 시궁창이잖습니까.”

“오라질…….”

육 감독은 왠지 반문하지 못했다.

그 옆에는 전창걸 대표가 이리저리 오줌 마려운 강아지마냥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가 낀 거야. 마가…….”

“마는 무슨.”

“그 양반들 오면 꼭 무슨 일이 벌어지잖아!”

“안 왔으면 판도라 벌써 작살났을 거란 생각은 안 하우? 거 양아치들에게 습격도…….”

말을 하던 육 감독은 점차 말수를 줄여 나갔다.

당시 그 일의 핵심이 조심스럽게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

순간 전대표가 광호에게 달려들어 뒤통수를 후렸다.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또 그래요!”

“너 땜에! 너 땜에!”

“그럼 재계약 안 하면 되잖아요!”

광호의 외침에 매질은 손길이 되었다.

“하긴 사람이 과거에만 매달리면 안 되는 법이지. 미안하다. 나 이해하지?”

“어우씨…….”

그 광경을 바라보던 육 감독이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 * *

상황실을 나와 장벽 위로 올라온 이원철 소장은 전장을 살피다가 이를 악물었다.

“지원은 언제 와!”

이미 장벽에까지 전파장애가 찾아와 모든 전자기기가 마비되었지만, 유선전화기는 여전히 살아 있어 외부와의 통화는 가능한 상황이었다.

“지금 오고 있습니다! 최소한 오 분 후부터 순차적 도착 예정입니다!”

“오 분? 오 부운? 장난해! 지금 이삼 분 버티기도 힘들 구만!”

“그게 외부 균열을 처리하면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 그리고 장벽 너머 이 키로 지점까지도 전파장애가 생겼다고 합니다!”

“뭐?”

통신병의 외침에 이 소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침식지에 설치된 장벽은 예전의 정보를 토대로 지어졌다.

그 정보에는 이전에 벌어졌던 침식균열까지도 포함된다.

그걸 감안해서 넓게 둘러싼 것이 침식균열이었건만, 지금 상황만 해도 기존 데이터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지원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 영향이 이미 장벽을 넘어섰다는 말에 이 소장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대침식 때 발생했던 최대 규모의 침식균열을 기준으로 지어진 장벽이다.

그 말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이 역대 최고라는 의미와 같았다.

“빌어먹을. 혹시 모르니까…….”

“예?”

“미끼.”

“아…….”

미끼라는 말에 장벽 위에 함께 오라와 있던 장교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미끼 준비하라고 해.”

이 소장의 말에 작전장교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강림자와 한 조입니까?”

“아니. 기동대 단독.”

“하지만…….”

단독이라는 말에 작전장교가 무언가 말을 이어 붙이려 했지만, 전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주먹을 말아 쥔 이 소장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지금 마지막 방어선에서 강림자 빼면 장벽이 얼마나 버틸 거 같은데?”

순식간일 거다.

그걸 알기에 작전장교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빌어먹을 내 생에 이런 꼴을 다시 볼 줄이야…….”

이 소장이 억눌린 음성을 뱉어 내었다.

TA-1 전화기를 받아든 통신병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하아아.”

통신병의 표정을 보는 순간 기동대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구먼. 강림자는?”

“제욉니다.”

“알았다. 하긴 조금 아까 보니까 어마어마하던데. 뺄 강림자가 있겠어?”

“특수팀 헤쳐모여!”

몇몇 기동대원들이 통신병을 오히려 위로하고는 특수 기동대장의 외침에 팀별로 집결했다.

세 명씩 총 이십여 개 팀이다.

“각 담당 지역으로 이동한다. 다들 운전 잘들 하고.”

“알겠습니다!”

든든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럼에도 명령을 내리는 특수기동대장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특수기동대원들이 팀별로 복도를 내달렸다.

그리고 남은 이들을 향해 특수기동대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도 준비하자.”

“예.”

그 말과 함께 남은 대원들이 한쪽에 세워져 있는 지프들을 향해 움직였다.

최후 저지선에서 대기하던 기동대원들의 표정위로 착잡함이 내려앉았다.

“미끼 움직인단다. 길 열어.”

“젠장, 지금 저길 달린다고? 완전 쑥대밭인데?”

“후우. 최대한 널찍하게 열자.”

“고정포 준비해!”

각 분대장들의 외침에 기동대원 일부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컨테이너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꽤 낡아 보이는 전차가 눈에 들어왔다.

“길이 잘 열리려나 모르겠네.”

전차지만 달리기 위한 전차가 아니었다.

길을 열기 위한 용도였다.

“이거 사격 점검 언제 했지?”

“삼 개월 전?”

“그럼 되겠지 뭐.”

그 말을 마친 기동대원들이 각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금 탑승하고 있는 것은 반백년이 훌쩍 넘은 물건이었다.

M47 시리즈와 M48시리즈 전차들이었다.

분단시기에 일부 해안과 고지에서 고정포로 활용되던 것을 끌어 와 활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용도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길을 열기 위한 일회용이 무기였다.

세월은 흘렀지만, 장점이 많은 무기였다.

전자기기의 영향이 적다는 것 한번 쓰고 버리기에 부담이 적다는 것.

마지막으로 수량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런 고정포용도의 전차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일반적인 활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전차들이 지그재그로 놓여 있어 전차 포신들이 촘촘하게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큰 개체들 때문에 걱정이긴 한데.”

“튕겨나가기는 하잖냐.”

“후우.”

그렇게 말을 주고받은 이들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신호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전방 저지선을 지키던 기동대원들이 거의 도착해 오는 것과 동시에 속속들이 최후 저지선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 역시 좋지 못했다. 전차 포신이 있는 문이 열린 것을 본 것이다.

그때 전차포의 조준경을 바라보던 기동대원이 입을 열었다.

“영화에서 보면 말이야.”

“응.”

“이럴 때 꼭 누가 도와주러 오던데.”

“…….”

그 말에 다들 피식 거렸다.

그때 누가 입을 열었다.

“야, 전투 끝나면 술이나…….”

그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뒤에서 분대장이 그 대원의 뒤통수를 후렸던 것이다.

“야이 새끼야! 영화 좋아하는 놈이 사망 테크도 모르냐! 끝나고 술 먹자는 거랑 가족사진 자랑하는 거랑 전쟁 끝나면 뭐 할 꺼냐고 묻는 거랑 싹 다 뒈지는 코스야! 재수 없게…….”

분대장의 말에 다들 키득거렸다. 그때 뒤통수를 맞은 병사는 툴툴거렸다.

“방금 자기가 다 말해 놓고선.”

“하, 이 새끼들. 여하간 군인이 공무원처럼 변하면 꼭 이렇게 빠진 놈들이 있어요. 아가리 닥치고 앞이나 봐라.”

다시금 긴장이 흐르는 때에 분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순신 장군께서 그러셨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그 말에 뒤통수를 맞았던 기동대원이 울상을 지었다.

“오이씨! 살 생각만 하고 있는데. 우리 다 죽겠네.”

“킬킬킬킬!”

순간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분대장도 이번만큼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지프의 엔진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바리케이트의 일부가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로 도주해온 기동대원들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오자 곧바로 지프들이 튀어나갔다.

그때부터 침묵이 흘렀다.

지프들은 저지선을 무너트리고 달려드는 마물들을 향해 그대로 내달리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달리는 상황. 순식간에 마물과 지프들 사이는 가까워졌다.

그때 분대장의 입이 열렸다.

“쏴!”

커다란 호령소리와 동시에 전차들이 들썩였다.

콰콰콰쾅!

포탄이 날았다.

지프의 옆으로 바람소리가 뒤늦게 울려왔다.

씨앙! 씨아아앙! 씨앙!

그 소리가 들릴 즈음에는 마물들의 일부가 폭음과 함께 이리저리 날았다.

“가즈아아아!”

그렇게 세 번 그들의 옆으로 포탄이 지나가는 것과 동시에 운전병들은 일제히 핸들을 꺾었다.

방향은 방금 전 포탄이 날아간 사선이었다.

부와아아앙!

순식간에 마물들이 주변을 스쳐 지나갔다.

“훅! 훅!”

운전병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콰드득! 콰득!

차량이 마물의 잔해라도 밟았는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럼에도 차량은 안정적으로 전차 포탄이 만들어 낸 길을 따라 달려 나갔다.

“씨팔!”

그때 운전병이 급격하게 핸들을 꺾었다. 그 앞에 이전에 쏘아낸 포탄이 만든 구덩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훅!”

핸들은 이리저리 미친 듯이 돌려졌다.

좌우를 오가는 헨들.

차량 역시 급격한 기동을 하며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오프로드 차량은 이런 급격한 기동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지만, 이 차량들은 좀 달랐다.

나름의 개조가 된 덕에 전복이 될 만한 기동에도 용케 버티고 있었다.

물론 이 차량들을 모는 이들은 고르고 고른 난폭운전의 달인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항상 좋을 수는 없었다.

“이썅!”

순간 운전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대한 체구의 마물이 앞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전차포가 저지력을 최우선으로 쏘아낸 탄이라지만, 운이 나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지금처럼.

퉁퉁퉁퉁!

운전병의 욕설과 동시에 머리위 쪽에서 고속유탄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뿐이었다.

“꽉 잡으아아!”

운전병은 오히려 페달을 밟았다.

바아아앙!

동시에 지프는 뒤뚱거리는 마물의 팔을 들이받았다.

콰아앙!

동시에 지프가 반 바퀴 돌았지만, 마물의 옆으로 튕기듯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운은 거기까지였다.

“하아…….”

운전병의 김빠지는 목소리.

터엉!

쓰러져 있던 또 다른 마물의 몸통에 맴돌던 차량의 측면이 받혀진 것이다.

차량은 이내 팽그르르 돌았다.

그리고는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커다란 불기둥을 남겼다.

콰콰쾅!

“하아…….”

몇몇 군대에서 울려 퍼지는 폭발음에도 안타까워할 시간은 없었다.

미친 듯한 드라이빙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내 마물들이 줄어들었다.

“진입! 진입!”

긴장이 살짝 풀어지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푸화아아악! 퉁퉁퉁 퉁퉁!

그리고 고속 유탄소리.

마치 거대한 띠와 같은 마물의 벽을 뚫고 안으로 진입한 차량들은 꽁무니에서 커다란 화염줄기와 더불어 고속유탄을 쏘아내며 이동해 나갔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충분히 피해 갈 수 있는 수준의 마물들밖에 남지 않았다.

그 사이로 불의 꼬리를 만들어 내며 미끼들이 마치 존재감을 뽐내듯 내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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