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전투의 시작
* * *
사방에서 군인들이 뛰어다니고 총성과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그럴 때마다 제이와 레이니 그리고 세인이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비교적 다들 침착한 모습이었다.
대침식 이후의 세상이 이런 적응력을 가져다 준 것이다.
“헬기를 부를 걸 그랬나……. 아니지 가능하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긴급출동을 하기 위해 헬기가 오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의 경우는 민간인의 신분이기에 되돌아가는 헬기편으로 옮겨 갈 수도 있었다.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십니다.”
그때 기동대원 중 하나가 고개를 내저으며 승배의 생각에 부정적인 의사를 표현했다.
“침식균열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가끔 전파방해가 꽤 멀리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은 드론이야 인근까지 어떻게 가 본다지만, 헬기처럼 덩치가 큰 경우는 가끔이지만 먹통이 돼서 추락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아…….”
“물론 인근에 내릴 수는 있지만…….”
말끝을 흐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타타타타! 타타타타!
연달아 울리는 총성들이 그게 녹록치 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수가 많다지만 그래도 길은 뚫릴 겁니다. 상황 발생 후 십 키로 이내의 소환자들이 바로 집결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기동대원의 설명에 승배는 아쉽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가 가진 무기에 침을 삼켰다.
그런 승배의 눈빛을 느꼈는지 기동대원이 고개를 내저었다.
“안 됩니다. 어차피 지금 가시는 곳에서 이걸 쓸 일이 있으면 어차피 못 벗어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예, 예. 애들 겁주진 마시고.”
승배의 말에 기동대원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길이 뚫리는 순간 제일 우선순위는 민간인 소개니까요.”
기동대원의 말에 승배는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결국 이 위험한 곳에 이들을 남기고 이탈해야 한다는 것이니까. 그런 승배의 마음을 느꼈는지 기동대원이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화기가 안통하면 우리도 곧바로 빠지니까요. 우린 인해전술 같은 거 안 해요.”
인해전술.
옛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침식 때 중국에서 벌어졌던 일이기도 했다.
그때도 소환자를 우선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인들을 방패로 밀어 넣은 일이 허다했다.
우리나라야 최대한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발목을 묶는 수준에서 하는 퇴각작전이 주를 이루었지만, 중국은 아니었다.
몸으로 때웠다.
그때 세계에서 잠시 인권 문제 등의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금세 들어가 버렸다.
다들 살기 바쁜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인해전술 운운하는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아무리 봐도 무식하기 짝이 없는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동대원들을 따라 그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갔다.
“아이씨!”
드론 운용병이 쌍욕을 뱉었다. 그리고 이어서 뒤를 향해 외쳤다.
“영향력이 너무 큽니다! B3지역도 운용불가!”
이미 상황실을 가득 메우는 카메라의 절반 이상이 꺼져 버린 상황이었다.
그나마 장벽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남아있어 전반적인 상황을 알려주고는 있었다.
“화면 최대한 당기고…….”
그 순간이었다. 전체 전원이 갑자기 나간 것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전원이 들어왔다.
“뭐야?”
“비상전원 가동되었습니다! 사태가 꽤…….”
상황병들의 표정이 심각해져 있었다.
특히 나이 들어 보이는 이들의 경우가 더 심했다.
“이거 영향력이 너무 큰 것 같은데요.”
“드론 운용 불가!”
드론들이 결국 운용이 불가능해졌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젠장.”
이곳 제3장벽을 지키는 이원철 소장은 이를 악물고 장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병사들이 바이크에 쇠막대를 집어넣어 돌리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동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적들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건만, 영향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 앞으로 허둥거리며 쫓겨 오는 소환자와 강림자들 무리가 눈에 보였다.
그때였다.
화면에 뭔가가 잡혔다.
“나왔다.”
작은 개체들이었다.
“아, 다행입…….”
다행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마치 불이 난 정글에서 가지각색의 동물들이 뛰쳐나오는 그런 영상처럼, 수종 이상의 마물들이 뒤섞여서 달려 나오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숫자도 어마어마했다.
“미친…….”
“이, 이런 경우 보셨습니까?”
“아니. 이렇게 잡다하게 나오는데 사람 살 떨리게 만드는 건 처음이다.”
이 소장은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대침식 때 나름 활약을 했던 이였다.
특히 침식균열을 효과적으로 방어해 내면서 최소한으로 피해를 막았던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봤던 것과 지금의 상황은 비교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내 이 소장은 침착을 되찾았다.
“화기가 통하는 개체만이라도 최대한 솎아내! 최대한 수를 줄이란 말이야!”
“진내사격부터 요청하겠습니다!”
“빨리!”
장벽 위와 중간에 만들어진 총 안구에서 중화기를 거치하고 있던 군인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지리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중대당 배치된다는 K-4고속 유탄발사기가 마치 소총수마냥 늘어서 있는 모습이 든든해 보일 법도 하건만 그것을 붙잡고 있는 사수들은 긴장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지휘관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직격이다! 직격! 범위사격을 하되 맞추지 못하면 의미 없다! 파편에 긁힌다고 아프다 징징거리는 놈들이 아니야! 어떻게 쓴다?”
“일발필살! 악!”
“악!”
사수들이 악소릴 내었다.
“아래 저지선의 아군들의 목숨이 우리에게 달렸다! 눈 똑바로 뜨란 말이야!”
“예!”
군인들은 공포심을 이기기 위해서인지 악을 써대었다.
그런 군인들을 보면서도 지휘관은 입술을 짓씹었다.
“저런 게 제일 개 같은데.”
이렇게 많은 개체가 섞인 것은 아니었지만, 유사한 경험은 있었다.
개체수가 너무 많으면 강림자라 하더라도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강림자가 비록 사람은 아니라지만, 피해를 한계 이상 입게 되면 역소환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덩치가 있는 놈들이 나았다.
그런데 이렇게 뒤섞여 있으면 처치곤란이다. 작은 놈들을 제때 걸러내지 못하고 큰놈들 때문에 퇴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후우.”
지휘관이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씨부랄.”
소심한 원망 한마디 남기고는 다시 몰려오는 마물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하늘이 있으면 좀 도와주쇼.”
원망은 했지만, 결국 하늘의 도움을 바랄 뿐이었다.
두두두두!
진동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대체 몇 마리냐?”
“몰라. 징글맞네.”
침식지 안쪽으로 컨테이너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원래는 장벽에 붙어 있던 것들인데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약속된 위치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이곳이 일차 저지선이었다.
안쪽에는 발포 스티로폼을 적당히 부어 놨다.
빠르게 옮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저지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방어력 자체는 좀 올라가니까.
그 위에는 기동대원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몰려오는 마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1차 저지선! 통과한다!”
“발파!”
명령과 동시에 기수가 붉은 깃발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딸각 소리와 함께 땅거죽이 뒤집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울려오는 진동 그리고 폭음.
쿠와아아앙!
흙먼지가 마치 장벽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 사이로 내달려오던 마물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싹 다 뒤졌으면 좋겠네.”
“그럼 우리가 여기 있을 필요가 있겠냐?”
기동대원들이 긴장을 이기기 위한 농담을 나눌 때 비산하는 흙먼지를 뚫고 나오는 마물들을 보았다.
“각 저지선마다 순차적으로 발파!”
꾸궁! 꾸구궁!
사방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때 한쪽에 엎어져 있던 기동대원들이 일제히 조준경에 시선을 맞추었다.
대물 저격총이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이쯤은 되어야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거기에 거리도 확보할 수 있었다.
퉁! 투투투퉁!
묵직한 사격소리와 함께 저격수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아싸!”
“잡았다!”
“다음!”
여기저기서 명중을 자신하는 외침들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젠장, 마지노선 넘어온다!”
“뒤로 빠져서 시동 걸어!”
대물저격총을 쏘던 사수들이 일제히 콘테이너 박스에서 내려갔다. 남은 이들은 유탄사수들뿐이었다.
일부 K-6 중기관총도 뒤섞여 있었다.
투타타타타! 투타타타타!
중기관총이 먼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어서 고속유탄 역시 불을 뿜었다.
그 와중에 컨테이너를 내려간 기동대원들이 열심히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마치 옛날 영화에 자동차 시동을 걸 듯 혹은 옛 경운기에 시동을 걸 듯 열심히 막대를 돌렸다.
빠다다당!
“걸렸다!”
“래디!”
시동을 건 기동대원들이 일제히 바이크에 올라탔다.
그런 그들의 양 옆으로 옛날 2차 대전영화에서나 볼 법한 보조석이 달려 있었다.
사격소리가 멈추자 또다시 발파음이 울려 퍼졌다.
마물들이 최종 저지선에 도착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끝까지 남아 사격을 하던 기동대원들이 일제히 뛰어들어왔다.
물론 거치되었던 무기들은 그대로 내버려 둔 채였다.
그것까지 챙길 시간이 있으면 한 발이라도 더 쏘는 게 침식균 열작전에 대한 FM대응이었다.
뛰어나온 이들이 일제히 바이크 보조석에 올라타자, 곧바로 출발을 시작했다.
“달려!”
“끼요오!”
그들은 그렇게 2차 저지선을 향해 내달렸다.
“1차 방벽 이탈했습니다! 2차 방벽으로 이동개시!”
“좀 파악은 되나?”
이원철 소장의 질문에 상황병이 고개를 내저었다.
“시계가 좋지 않습니다.”
“젠장. 위에 관측병에게 물어봐.”
이원철 소장의 명령에 병사는 구닥다리의 대명사인 TA-1 전화기를 들었다.
“뭐래?”
“다행히 작은 개체는 많이 줄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젤리베어들이 좀 보인다고 합니다.”
“젠장, 그놈의 젤리베어!”
“1차 방벽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개체들이 힘을 주자 1차 방벽이 뚫리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기동대원들이 2차 방벽에 도착했다는 점이었다.
그때였다.
씨아아아앙!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침식지 내부가 뒤흔들렸다.
콰콰콰콰!
포병 사격이 떨어져 내린 것이다.
“와, 이걸 또 보네.”
“내 말이.”
2차 방벽으로 피한 기동대원들이 거치된 무기를 쥐고 바라보며 혀를 내찼다.
자신들이 터트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 폭발력을 보여 주는 포병사격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얼굴은 질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대체 쟤들은 뭘 먹고 자라서 안 죽는 걸까?”
“몰라, 무슨 방어막 같은 게 있어서 단순 물리력으론 안 뚫리는 애들이라잖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진동이 느껴질 만큼의 폭발 속에서도 꾸역꾸역 몸을 일으키는 개체들을 보며 기동대원들은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하아. 얘들아 일하자!”
“씨파, 그동안 받은 월급값 오늘 다하는구나.”
폭발을 뚫고 꾸역꾸역 밀려나오기 시작하는 마물들을 보며 2차 방벽 위의 기동대원들은 다시금 반복되는 노동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