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 * *
마켈그로이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공성을 나왔다. 그의 앞에 육중한 갑주를 입은 마족 하나가 다가와 부복했다.
-그들은 어찌 하고 있는가.
-색정의 지배자 스베냐 반 실바로니아 대공이 요청한 반란지를 진압하고 있나이다.
-반란자가 변경백이었다지?
-그러하옵니다.
마켈그로이어 그가 주로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용병의 운용이었다.
일개 떠돌이 마족이었던 그는 자신의 특성을 활용하여 하위 마족들을 회유했다.
그렇게 회유와 계약을 통해 용병대를 구성하여 영향력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마계의 3대 강자인 기오르그의 변경백 하나를 꺾고 그 영지를 흡수했던 것이다.
힘을 숭상하는 마계인 만큼 그의 본신의 능력보다 끌어들인 용병들의 힘으로 변경백 자리를 찬탈한 것에 대해 다른 마족들이 그를 경멸했지만,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군주들에게는 그의 용병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었다.
거기에 그들의 용병 중에는 특이한 존재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존재 덕에 이번 차원의 침략에도 한 몫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런데 스베냐 대공이 그들을 다시 쓰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안 될 말이지.
이제는 그들을 마계의 세력 다툼에 쓸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침공의 한 축을 차지했던 카르베이온의 자리를 차지할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마켈그로이어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들을 불러라. 새로운 침략의 선봉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알겠나이다.
마족이 그의 명에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지독히도 말을 안 듣는 놈들이지만, 이번에는 꽤나 쓸모가 있겠어. 실력만큼은 대단한 놈들이니까.
마켈그로이어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 *
전신 길드원들은 밝게 웃고 있었다.
“와 신병이다.”
“흐흐흐.”
“그래. 이거지.”
그들의 앞에 새로이 합류한 인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 소속의 소환자들과 기동대 소속의 소환자, 그리고 긴급균열 대항팀 소속의 소환자들이 이곳에 함께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모종의 훈련을 통해 소환자의 생존력을 향상시킨다는 이야기만 듣고 도착한 상황이었다.
“빈이 니가 왜 그리 우릴 반겼는지 알 거 같다.”
“그쵸?”
고빈이 회죽 웃으며 되묻자 임병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그래. 이걸 우리만 당하기에는 억울하지.”
“제 말이요.”
“흐흐흐흐.”
전신 길드원들이 해맑게 웃었다.
그런 그들의 미소에 도착한 이들이 환영의 의사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옥에 빠져들었다.
* * *
판도라 멤버들이 무대 위로 나타나자 군인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비록 군통령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무려 판도라다. 그녀들의 등장만으로도 분위기가 확 달궈졌다.
“얘들아 안녕! 니들 고생이 많다!”
“누나! 제이 누나!”
제이가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자 군인들이 다들 자지러졌다.
이들은 침식지 주둔군의 장병들이었다.
통일이 이루어진 후 장병들에게 있어서는 이곳이 최전방이었다. 그런 만큼 고단한 나날 속에 이런 위문공연 가뭄 속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세인누나! 날 가져요!”
“세인 짱! 세인 짱!”
굵은 톤의 연호에 세인은 밝게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밝아진 모습에 제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은 그녀들에게 있어 휴식기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렇게 행사를 다니는 것은 세인이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을지부루와의 만남 이후 부쩍 밝아진 표정의 세인이었다.
비록 원했던 이는 아니지만, 그를 통해 그들의 옛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저리 좋을까?”
“안녕 오빠들!”
레이니까지 등장하자 군인들이 모두 일어서 열심히 반동하기 시작했다.
이어 불꽃이 터지며 위문공연이 시작되었다.
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들으며 경계를 서던 기동대원들은 피식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겠다. 새끼들.”
“아이씨. 나도 보고 싶은데. 하필 경계가 잡힐게 뭐야.”
“그게 부럽냐? 지금 난리 난 거 모르냐? 긴급이잖아.”
“알긴 하지.”
긴급이라는 말에 함께 경계를 서던 기동대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긴장 좀 풀어 주려고 온 거지. 우리야 월급이라도 받지. 쟤들은 징병 아니냐.”
“쩝.”
기동대원은 입맛을 다셨다.
얼마 전 침식 균열이 터진 이후 전 군에는 비상력이 떨어졌다.
심지어 침식지 주변으로 소환자들을 소집하는 소집령도 떨어졌다.
각 침식지 주변 십 키로 이내로 주거를 옮기는 것이 골자였다.
물론 거기에 일반 균열이 자주 생기기 시작하면서 긴급균열대항팀에 예비 소집도 벌어졌다.
“중국 소식 들었냐?”
“들었지. 그래도 거긴 인구수가 어마어마해서 소환자 숫자도 많잖아. 그 덕에 침식 균열을 깔끔하게 막아 냈다지?”
“그래 봐야 막은 거지 우리 봐라. 이번에 전신 길드에서 하드캐리 했잖아.”
“하긴 대단해. 그런데 중국에서 이번에 전설 급 무장이 방한 한다대?”
“나도 들어서 알지. 장비라니…… 삼국지 게임 참 많이 했는데.”
그렇게 말을 나누던 그들이 고개를 돌렸다.
“응?”
“뭔데?”
“뭔가 보이는 거 같은데?”
저녁어스름이 깔린 덕에 시계가 좋지 못했다.
“상황실에 문의 넣어 봐. C7지역에 뭔가 보이는가.”
C7지역이라는 말에 시선을 돌린 기동대원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아이씨, 아니면 좋겠는데.”
먹구름이 모이는 듯한 모습에 불길함을 느끼기 시작한 대원이었다.
“11호기 꺼졌어!”
“12호기도 끊어졌습니다!”
“15호기 인근으로 돌려 빨리!”
상황실은 난리가 났다.
그때 경계초소에서 보고가 들어 왔다.
“뭐? C7?”
“씨팔 난리 났네! 지금 떨어진 거 다 그쪽 지역 맞아!”
감시를 위해 띄워 놓은 드론들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다른 쪽 드론을 이동시키던 운용병이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에이씨!”
“뭔데?”
“긴급 쳐야 할 것 같습니다! 침식 균열이 또 벌어진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언젠가 터질 줄은 알았는데…….”
상황실은 긴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침식지 내부에 있던 소환자들 5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일단 최초 저지 가능한지 물어보고, 그게 아니면 정찰 임무라도 좀 부탁해 봐.”
마치 시장바닥처럼 고성이 난무하고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줌 기능 있는 드론 그쪽으로 이동시켜! 저번에 위에서 내려온 식별자료 있지!”
“예!”
“그거 확인 준비하고!”
“전신 길드에 지원 요청해! 빨리!”
거친 숨소리들이 상황실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씨팔 여기 무너지면 바로 서울이야. 막아야 해!”
“하아.”
“상황실도 지금 난리 났는데 이거 아무래도…….”
“침식 균열이다. 젠장 저걸 또 볼 줄이야.”
상황실에 연락을 넣었던 경계초소를 점령중인 기동대원은 세상 다 산 사람같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랏빛 뇌전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필 밤이야 왜.”
어둠은 여러모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싸이렌 소리와 함께 신나게 울려 퍼지던 음악이 멈추었다.
“후우. 운도 없는 놈들.”
신나게 즐기고 있었을 병사들을 떠올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에에에엥!
싸이렌이 울려 퍼지자 제이와 레이니, 그리고 세인은 얼굴을 굳혔다.
“무슨 일이야?”
그때 승배가 헐떡거리며 달려오더니 외쳤다.
“빌어먹을 침식균열이 터진 것 같아!”
“아…….”
환호하던 병사들은 이미 대열을 맞춰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니.”
그 병사들을 보며 제이가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었다.
“일단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해. 여기 있으면 위험하니까…….”
그때였다.
주변의 공기가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뭐, 뭐지?”
그때 기동대원 하나가 바이크를 타고 그들에게 달려왔다.
“일단 내부 벙커로 이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부로요? 밖으로가 아니고요?”
승배가 당황한 얼굴로 묻자 기동대원이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주변에 일반 균열이 동시 다발적으로 터졌습니다. 지금 이동하는 게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군의 보호를 받으시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기동대원의 말에 승배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그녀들에게 입을 열었다.
“일단 이동하자. 그리고 육감독님에게 전화 할게.”
승배의 말에 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육감독에게 전화를 한다는 말은 곧 부루에게 알리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타타타타타!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릴 들은 기동대원이 그녀들을 안심시켜 주려는 듯 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
“총성이 울리는 거 보니 폐급 같네요. 차라리 다행입니다. 가시죠!”
기동대원을 따라 승배와 판도라 멤버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승용차를 임시로 바리케이트를 친 군인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총성과 함께 매캐한 화약 냄새가 풍겨졌다.
“제논! 제논 좀 비춰!”
제논이라 불리는 강한 불빛의라이트가 전방을 비췄다.
균열을 통해 쏟아져 나온 것들이 미친 듯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분대화기 빨리 거치해!”
소대장이 지위를 하는 가운데 한쪽에서 바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기동대다!”
기동대들이 외부 지원을 위해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그 수는 턱도 없이 작았다.
“왜 이것밖에 안 됩니까!”
기동대장에게 소대장이 목소리를 높이자 기동분대장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답했다.
“침식균열을 막는 게 우선 아닙니까!”
“그건 아는데 여기 뚫리면 후방에 구멍 나는 거예요! 뒤에서 마물들이 미친 듯이 달려드는데 맘 놓고 침식 균열을 막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나마 폐급이라 좀 힘들겠지만 막을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나마 일반 균열에서 나오는 개체 수는 적은 편이니…….”
그때 누군가의 욕설이 튀어나왔다.
“씨팔. 졸라 많네…….”
화가 나서 내뱉는 욕설이라기보다는 어이없이 뱉어 내는 것에 가까웠다.
“무슨…….”
대화를 나누던 기동분대장과 소대장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미치겠네.”
기동분대장이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여기 12분대장인데. 기동대대장님 좀 바꿔 줘.”
-현장 나가셨습니다.
“여기 지원 필요해.”
-안 된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아는데. CCTV 통해서 이쪽 상황 눈으로 봐라. 싹 다 쓸리게 생겼어.”
-예?
잠시 뒤 절망적인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저게 다…….
“그래. 침식균열만 신경 쓰다가 뒤를 당하게 생겼다. 빨리 조취 좀 취해!”
그렇게 외치고 분대원들에게 장비 배치를 명했다.
“하아.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한숨을 털어내는 기동분대장의 눈앞에 새까맣게 몰려오는 마물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 * *
텔레비전을 보던 육 감독이 울려 오는 전화를 받았다.
“어, 승배냐?”
-여기 난리 났어요!
“응?”
-침식 균열이 발생해서…….
육 감독은 멍한 얼굴로 갑자기 떠오른 속보를 바라보며 말을 가로챘다.
“젠장. 지금 뉴스 보고 있다. 내 빨리 장군님께 알릴 테니 애들 잘 간수해!”
-예! 빨리요!
화면에는 계속해서 침식균열 보도와 함께 판도라 멤버들이 고립되었다는 속보가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