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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35화 (35/305)

제35화 침략자들

* * *

보통 노을이라 하면 자줏빛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곳의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푸른 밤이 찾아오기 직전의 그 빛과는 또 달랐다.

그저 태양이 보랏빛이라도 되는 듯 대지 역시 보랏빛을 띄고 있었다.

거기에 흙은 퇴비마냥 거뭇한 색상일색이었다.

이따금 서 있는 나무의 이파리 역시 녹색과 보랏빛이 어울리지 않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기괴한 형태의 짐승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대지에 높게 솟은 거대한 성이 있었다.

권력의 상징처럼 말이다.

높이만도 삼십여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대전.

-3군단장이 소멸했더군.

묵직한 음성이 커다란 대전을 울렸다.

그 끝에는 권좌가 있었다.

게르하이오 펜 기오르그.

사자의 대공이라 불리우는 이였다.

권좌에 앉아 있는 그는 미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없이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주변으로 언데드라 불리우는 존재들이 도열해 있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옵니다.

무력으로 따지면 그리 높지 않은 이가 바로 카르베이온이었다.

다만 그의 중요도는 결코 낮지 않았다.

그는 그 어떠한 땅도 마계의 형질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물론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이라면 다른 비슷한 능력을 가진 이들보다 같은 시간 동안 수 배 이상의 범위를 장악할 수 있었다.

마계의 환경에서 벗어나면 그 능력이 크게 줄어드는 마계의 종족들에게는 그 능력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일반 마수야 그 능력의 차이가 미미하다지만, 강할수록 그 능력의 제약이 심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대지정화는 필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지. 우습게 되었어.

기오르그의 중얼거림에 도열해 있던 이들이 몸을 떨었다.

마계의 대공은 하나가 아니다.

각자의 영역을 가진 이들이 모두 일곱이나 되었다.

그들 중 점령에 나선 이는 총 셋이다.

마계에서도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회다. 강자들의 세상이기에 그들 간의 자존심 싸움 또한 치열했다.

그것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모처럼 스스로 균열을 낸 세상을 찾았건만.

마계의 존재가 다른 차원을 침공하는 일은 드물었다.

일부 세상에서 그들의 힘을 필요로 하여 계약을 통해 조금씩 영역을 넓혀 가는 경우는 있었다.

때론 터부시 되는 존재로, 때론 약해진 마음을 흔들며 신적 존재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곳으로 신호가 온 것이다.

차원을 뚫고 말이다. 그게 기회가 되었다.

이곳이라고 해서 모든 차원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스로 먹이가 되길 자처하듯 신호가 왔던 것이다.

기회였다.

그래서 침공을 했고,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다만 처음에는 하급 마물부터 보내어 영역을 넓혀 갈 필요가 있었기에 서두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기가 되어 본격적인 침공을 준비하는 이때에 처음부터 일이 틀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행성 재미나더구나. 강림자라 했던가?

-그러하옵니다.

-그러한 대응은 오랜만이더군. 별의 기억이라…….

별의 기억.

그건 그 세상에 영향력을 끼친 영웅들의 흔적을 되살려 불러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문명보다 물질문명이 더 발달한 세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별이 의지가 있어서 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곳의 침공을 받는 순간 인과의 법칙과 어우러져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마치 면역체계 같은.

-투쟁의 역사가 긴 행성일수록 두드러지는 현상이옵니다.

-그렇지. 하지만 어차피 조각난 기억이 전부일 뿐이다.

기오르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내 인내심을 시험치 말라.

기오르그의 말에 다들 허리를 숙였다.

그때 대전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보랏빛 아지랑이가 온몸을 뒤덮고 있는 존재가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왔는가.

-왔나이다.

-회유와 교언의 마족이여.

회유와 교언의 마족이라 불리는 이. 마켈그로이어 백작이었다.

-그대 재미난 일을 했다 들었다.

-별일 아니옵니다. 차원의 틈새에서 끼어들어온 이들일 뿐.

마켈그로이어 백작의 말에 기오르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번 일에 최적화 된 존재들을 끌어 모았더군.

-운이 좋았나이다. 대공이시여.

-조만간 그대가 우리의 영역을 넓히는 최전선에 서 주어야 할 듯하구나.

기오르그의 말에 마켈그로이어가 부복하며 외쳤다.

-기회만 주신다면 신명을 다하겠나이다.

마켈그로이어의 외침에 기오르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러가 있거라. 기회는 곧 주어질 것이니.

-기다리겠나이다. 사자의 대공이시어.

기오르그의 명에 마켈그로이어는 뒤로 물러서더니 다시 들어왔던 곳을 통해 밖으로 되돌아 나갔다.

그가 사라진 뒤 한쪽에 서 있던 이의 불만 어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근본 없는 넝마주의자이옵니다.

-그 능력으로 백작 위를 올랐으면 그 또한 실력이다.

-허나…….

-카르베이온의 훌륭한 대체가 될 것이다. 그 능력으로 기존 마계백작의 위를 찬탈하였으니.

-더는 언급 말라.

기오르그의 말에 말을 꺼내었던 마계귀족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더는 실수가 없어야 할 것이다.

기오르그의 눈이 다시금 차가워졌다. 처음처럼.

* * *

정보요원들이 보내준 내용을 취합하던 정보부로 학자로 보이는 이가 열띤 얼굴로 달려들어 왔다.

“그 강림자를 확보해야 합니다!”

연구원의 외침에 초췌한 얼굴의 케인 스미스 국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외교적 마찰이 있을 수 있소.”

“하지만, 그는 침략자들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허나 죽이는 것과 먹는 이야기만 해대고 있소.”

“그것조차 도움이 됩니다!”

연구원이 열변을 토하자 케인 정보국장이 그를 서늘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걸 모르지 않으니 요원들을 무리한 것을 알면서도 운용하고 있는 것 아니겠소.”

“모든 외교적 힘을 총 동원해서라도…….”

“그걸 왜 여기서 떠드는 것이오? 백악관에 가서 떠들어야 하는 것 아니오?”

“그…….”

“연구를 하라 했지 사고를 치라 했소! 지난 몇 년간 희생당한 요원이 몇인 줄 아시오!”

케인 국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연구원이 얼굴을 붉혔다.

“새로운 발견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 희생이 이 세상의 파멸을 불러올 뻔했소. 아니지, 이미 아프리카 대륙은 반쯤은 파멸한 상황 아니오?”

케인 국장이 정곡을 찌르자 연구원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그 빌어먹을 게이트를 닫을 방법부터 찾으란 말이오!”

“게, 게이트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게이트가 다시금 커지면서 침식지들이 다시 확장을 시작한 것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시오?”

연구원이 눈을 감았다.

“그건 아직 증명된 바가…….”

연구원의 변명에 케인 국장이 아직 열려 있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생떼 부리지 말고 되돌아가서, 그걸 당장 증명을 해 보시던가.”

케인 국장의 축객령에 연구원은 마지못해 되돌아갔다.

“후우. 빌어먹을.”

케인 국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연구가 이런 일을 초래했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보부의 모든 역량을 쏟았다.

그 과정에 있어 많은 희생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저들은 뻔뻔하게 다가와 또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책상물림들!”

콰앙!

케인 국장이 그의 책상을 강하게 내려쳤다.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 * *

“……저기 차라리 장소를 옮기는 건.”

육의찬 감독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이미 주변 땅 매입이 끝났다더군.”

전창걸 대표가 방긋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 서울 액션스쿨이 있는 땅 주변에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국가에서 이쪽에다가 연구 시설을 짓는다고 열심히 파 재끼고 있는 것이었다.

육 감독이 전 대표의 멱살을 잡았다.

“이 인간아! 당신은 여기 주변 땅 팔았으니까 기분 좋겠지!”

“케에엑! 그, 그건 아니고!”

“내 체육관 벽 날아간 거 못 봤어?”

“그, 그건 나라에서 수습해 준다고…….”

육 감독은 울고 싶었다.

처음엔 반가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기억이 났다.

고진천이 처음오고 난 다음 이 체육관이 얼마나 많이 부서졌는지를 말이다.

그런데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 떨어지지 않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차라리 고진천은 훈련이라도 함께 하며 서울액션스쿨의 도약을 이끌어 주기라도 했다.

그런데 을지부루는 달랐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훈련뿐이었다.

“그, 그래도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일걸?”

전 대표의 말에 육 감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쪽에 자릴 핀 거요?”

“응? 아 저번에 우리 건물이 좀 부서져서. 왜 그래. 우리사이에.”

“끄응.”

최근 들어 균열이 잦아졌다.

퍼스트 엔터의 사옥 근처에서도 한번 발생되어 건물 일부가 파손이 되었다.

그래서 이쪽으로 이전을 해 온 것이다. 이쪽 시설도 나쁘지 않았다. 퍼스트 엔터가 잘 되고 나서 이쪽에 공동투자 형식으로 시설물들을 확충했으니까.

좁긴 해도 일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후우.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전 대표의 말에 육 감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말이다. 이제 좀 살 만하다 싶더니.”

세상이 미지의 위험과 공존하기 시작한 지 칠 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것이 증명되었다. 오히려 일부 경기가 다시 좋아지며 세계의 경제는 다시 불이 붙었다.

마물 덕분에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으니까.

거기에 한국은 가장 빠르게 그 사태를 벗어난 덕에 그 특혜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가 되었고 말이다.

그 와중에 사람들을 달래 주는 엔터산업은 사람들에게 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

전 대표가 육 감독을 슬쩍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냐?”

전 대표의 말에 육 감독이 그를 한번 슬쩍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야 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부루의 존재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디.”

“염병 못 피하면 죽는 거지.”

전 대표의 말에 육 감독이 툴툴거렸다. 하지만 둘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좋다면 좋은 거다.

* * *

“너무한 거 아냐?”

“응? 뭐가?”

최후배 경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경미 경위를 바라보았다.

“내가 알아봐 달라 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쿵짝이 맞아?”

“말은 바로 해라. 쿵짝이 맞은 게 아니라…….”

을지부루 이야기인 것이다.

“후우. 말을 말자.”

“알잖아. 십년 전 우리가 엮였던 거.”

“알긴 하지.”

이 경위는 최 경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하간 그 약속은 지켜.”

“약속? 그냥 말해나 본다고 한 거지!”

그의 말에 이 경위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게 그거지! 지금 긴급균열 대항팀 난리 난 거 몰라? 어제도 균열이 발생했다고! 이번 주 들어서 네 번째라고!”

“기동대에서 해결했다며!”

“후우. 그래서 그나마 다행인 거지. 어찌 되었든 우리 쪽 인원도 끼워줘. 위에는 자신들이 연구해서 준다던데, 우리도 뭐라도 준비해야 하잖아.”

이 경위의 말에 최 경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데 내일 저녁 시간 없나?”

“응?”

“아니면 말고.”

히죽 웃는 최 경위를 보며 이 경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먹을래?”

최 경위의 얼굴이 해맑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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