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내레 대화가 그리웠디
* * *
“…….”
실의에 빠져 있는 구은태 박사를 두고 강문호 대위가 대신 질문을 던졌다.
“분명 이지를 가진 존재가 있는 것 맞군요.”
“뭐라 뭐라 떠들며 뒈지는 것들이 많았으니까네 기건 맞는 말이디.”
을지부루의 설명을 토대로 분석하자면 이지를 가진 존재이면서도, 부대단위의 편성을 꾸몄다는 것은 분명 침략의 의지가 있다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그곳의 생활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 대위의 질문에 부루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기거야 뭐, 어려울 것 없디.”
강 대위는 이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에서 정보 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는 부루에게서 그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리하는 것이 정보의 질과 양에서 나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루가 그곳에서의 삶에 대해서 늘어놓기 시작하자, 구은태 박사가 정신을 차리고 눈동자를 빛내며 다가왔다.
그것은 사명감이었다.
“해서 말이디, 내래 그걸 구워 봤디. 캬! 그런데 이거이 또 맛이 꿀맛인 거이야!”
“…….”
“물론 대가리가 사람 대가리라 좀 찜찜하긴 했디만, 이거 저거 따질 거 있간?”
“…….”
설명을 듣던 강 대위가 옆을 바라보았다.
양 어깨를 축 늘어트린 모습.
동공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리고 반쯤 열린 입에서는 침이 맺혀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하아…….”
그리고 깊은 한숨.
구 박사의 상태를 살핀 강 대위가 한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비춰져 있었다.
퀭했다.
장장 네 시간째다.
그동안 들은 건 싸우고 죽이고 배고파서 잡아먹고, 또 자려는데 누가 덤벼서 싸우고 죽이고, 잡은 걸 구워먹고 삶아먹고 생으로 먹어보고…….
“기랬는데, 허름한 성이 나오는 거이야?”
성이라는 말에 구 박사가 희망의 불씨를 피우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구 박사를 보며 강 대위는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이런 말이 있었다.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
그리고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
“……해서 내가 변경백이니라! 하는 거 아니갔네? 그래서 내가 뭐랬는디 알간?”
“기거이 유언이간?”
강 대위가 맞췄다.
“기렇디! 기래도 아새끼가 좀 싸울 줄 알더만. 기래도 내래 뉘기야!”
부루의 말에 강 중사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내래 대 가우리의 무장 을지부루야…….”
“내래 대 가우리의 무장 을지부루……기래! 기거디!”
“예…….”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부루는 생각 이상으로 대화가 고팠던 것이라는 걸 말이다.
결국 변경백이라는 이도 부루에게 죽어 나자빠졌다는 말이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잠 못 자고 싸워 왔던 이유가 바로 이 변경백이라는 존재가 병력을 보내 왔기 때문이었고 말이다.
“이후로는 좀 한가해졌디.”
그 말에 눈이 강 대위의 눈동자로 이채가 스쳤다.
“한가해졌단 말씀이십니까?”
“기래. 이제는 매일 기어들어오는 놈들도 없었디. 대신 이따금씩 다른 곳에서 왔는지 모를 아새끼들이 돌아다니다가 덤벼 온 거이 다야.”
“혹시 그 병력이 온 이유는…….”
“모르디.”
이후는 예상했던 대로다.
그냥 다 죽였다는 말.
하지만 귀한 내용 하나는 건졌다.
저들도 영역이 있고,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다시 쉼 없이 이어지는 반복에 강 대위는 이만 멈추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사하시죠?”
“기래?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디!”
“아…….”
결국 강 대위는 말릴 수 없었다.
* * *
“하아.”
전신 길드원들이 차에 내린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한숨을 뿜는 것이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서울액션스쿨이 있었다. 다시 이곳에서 훈련을 할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진 것이다.
그때 그들을 누군가가 마중 나왔다. 임병화가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 입을 열었다.
“강…… 대위님?”
강 대위가 맞았다.
그를 본 고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훈련받으셨어요?”
“그냥…… 누군가의 일생을 듣다 보면 이렇게 사람이 피폐해질 수도 있겠다 싶군.”
“…….”
강 대위의 처연한 음성을 들은 빈은 왠지 불안한 마음으로 전신 길드원과 함께 들어섰다.
그리고 한쪽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
“박사님? 박사님! 정신 차리세요! 박사님!”
오전에 그들이 이곳을 나설 때와 달리 머리가 하얗게 센 구은 태 박사가 기둥에 기대어 늘어져 있었다.
고 모습을 보며 병화는 어렸을 때 보았던 일본 복싱만화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새하얗게 불태웠나…… 대체 무엇으로…….”
동시에 전신 길드원의 시선이 어두컴컴한 실내의 모습이 그 어떤 때보다도 두렵게 느껴졌다.
* * *
구은태 박사가 회의실로 들어서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생 많으셨나 봅니다.”
“연구도 좋지만 몸 생각하십시오.”
“어쩌다 이렇게…….”
뒤이어 들어선 강문호 대위 역시 얼굴이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둘의 모습을 보며 실내의 사람들은 그들이 이번 연구에 사활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국방부와 정보부 그리고 정부 핵심관계자와 정부소속 대 마물 연구팀까지 모인 자리였다.
그들에게까지 을지부루에 관한 것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그의 외모 때문이라도 불가능했다.
아무리 십 년 전에 대침식 이후 묻혔던 일이라 해도 그 사건이 어디 작은 사건이었던가.
그런 것치고는 다들 구 박사가 선행연구 하는 것을 잘 기다려 준 것이다.
그건 구 박사의 영향력과도 연관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
“강 대위. 시작하시게.”
구 박사의 말에 강 대위가 일어서서 불 꺼진 공간에서 프레젠테 이션을 시작했다.
그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탄성이 이어졌다.
때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화면에 이번에 수습된 침식 균열의 거대 마물의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 개체는 다른 개체와 달리 목적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이전에 보았던 결과와 같이 일종의 테라포밍을…….”
지루하다면 지루한 이야기가 끝이 나자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우두머리가 있는 경우 그를 먼저 치는 것이 다른 마물의 확산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군.”
“아까 듣지 못했소? 이런 마물들은 종류가 있어서 투사형의 경우 우두머리가 공격을 당한다 해도 다른 마물들이 몰려들지 않는다는 걸.”
“하아. 이걸 어찌 구분하나.”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
그나마 부루의 이야기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구분해서 내어 놓은 것이다.
이런 개체도 종류가 있고 또 성향이 다르다는 것.
이번에 나타난 개체는 보호의 대상이기에 부루가 과감히 달려들었던 것이다.
어차피 우두머리를 두들기면 다들 알아서 부루에게 몰려갈 것임을 알고 말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구분이 가능한 게 있습니다. 물론 백프로는 아닙니다.”
다음 화면이 나왔다.
방금 나온 거대 마물의 시신.
“이 부분을 보시면 이마의 뿔이 작고 날개가 큰 개체의 경우 보호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자체 전투력은 떨어지지만 다른 능력이 있는 경우라 합니다.”
“오오!”
다음 화면이 나왔다.
“…….”
그림이었다.
마치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그렸을 법한 퀄리티였다.
“여기 보면 날개는 작고 몸에 뿔이 상대적으로 큽니다. 이 경우는 전투적인 성향이 강한 개체입니다.”
“큼. 음.”
그림의 퀄리티가 중요한 아님을 알기에 바로 집중했다.
“이런 경우는 수하들이 우두머리를 위해 달려들지는 않습니다. 일종의 영웅과 같은 존재입니다. 힘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그런 의미로 보면 될 듯합니다.”
그렇게 몇 가지 설명이 더 이어지다가 마지막 그림이 나왔다.
뿔도 크고 날개도 크다.
“이건?”
몇몇 연구원들이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모습이었다.
“대침식 마지막 때 나온 개체와 같지요.”
이후 사진들이 여럿 나왔다.
이전 대침식 때 나왔던 개체들을 묘사한 그림들, 혹은 전자기가 교란되지 않는 원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우리나라와 미국 그리고 프랑스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만 나타났던 개체입니다. 이걸 우린 군주 타입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군주…….”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저걸 막지 못한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프리카 대륙이었다.
그곳은 이미 절반이나 침식이 되어 버렸고, 나머지도 제대로 나라가 돌아가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강림자의 수가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부족 혹은 군부 세력이 나뉘어져 있는 곳들의 아귀다툼 때문에 서로 상잔을 하다가 일시에 무너져 버렸던 것이다.
“이 경우는 때에 따라 다릅니다. 불리해지면 보호하러 달려든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외에는 전략적으로 움직인다 보면 될 듯합니다.”
추가 보충이 끝났다.
한숨들이 흘러나왔다.
기존에 결과를 토대로 이럴 것이다 예측한 부분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들도 많았지만, 이번의 정보는 그야말로 귀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강림자.”
“예.”
“대체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고 있었소?”
강 대위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레귤러라 보시면 될 듯합니다.”
“이레귤러?”
“아마도 죽음 이후에 갈린 듯합니다. 그 때문에 생전의 기억을 그대로 하는 것은 물론…….”
강 대위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의 환경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되어 우리가 몰랐던 마물의 약점 등을 별도의 인원들이 정리를 하고 있으니 그 부분은 이후에 보고토록 하겠습니다.”
강 대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도 지원을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그 말에 구 박사가 화색을 보이며 말했다.
“그게 좋겠군! 각 연구팀 별로 인원을 따로 책정해서 차출하는 게 좋겠어!”
구 박사의 대승적인 판단에 연구원들은 다들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강 대위는 그들을 불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은 누가 연구 보조를 하고 있습니까?”
정보국의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는 강대위가 대신 답했다.
“전신 길드입니다.”
* * *
“…이거이 말이디, 끄트머리는 버려야 하디. 뱃살만 먹으면 되는 거이야.”
“예, 예.”
“기런데 말이디.”
부루의 말을 듣고 있던 전신 길드원들은 울상을 하고 있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구은태 박사와 강문호 대위가 이들에게 휴식을 취할 겸 이야기를 정리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지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타격을 입은 건 이들뿐이 아니었다.
-싹다 잡아 죽였디.
“갓뎀!”
푸른눈의 사나이가 욕설을 내뱉으며 결국 귀에 쓰고 있던 헤드셋을 집어 던졌다.
그의 옆에는 이미 초췌해진 모습의 외국인들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건 우리가 엿듣는 걸 이미 파악한 역공작이야! 이걸 왜 계속 들어야 하냐고!”
울분을 토하는 사내에게 한쪽에 늘어져 있던 이가 입을 열었다.
“명령이니까.”
“왓 더 헬!”
“맞아. 이건 지옥이야.”
미 정보부 요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함께 옅듣던 김창진과 한국의 요원들도 상태는 비슷했다.
“차라리 쳐맞고 말지.”
창진의 한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