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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33화 (33/305)

제33화 눈물의 기자회견

* * *

카메라 셔터 소리가 마치 기관총 연사소리처럼 짜르르륵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전신 길드원들이 감개무량한 얼굴로 글썽이는 눈동자를 하고 서 있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모습과는 좀 다른데?”

“이러다 삼대길드가 아니라 전신이 원탑 찍는 거 아냐?”

“그러게. 덕후 모임 운운하던 사람들 목소리가 쏙 들어갔어.”

“사실 감격스러울 만하지. 세계 최초니까.”

기자들의 한담 속에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전신 길드원은 한마음이었다.

‘미쳤다고 우리가 왜 그 짓을 자처했을까!’

그 일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연구진이 모두 투입되고 또 수습이 완전히 끝난 뒤였다.

다른 상황이라면 일단 잔치를 벌이듯 떠들어 대며 우리나라의 개가라는 둥 떠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침식균열은 국가를 떠나 전 세계적인 명운을 건 것이다.

당연히 그 무엇보다 선수를 쳐서 연구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도 사건 이후 삼 일이 채 지나기 전에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연구진이 몰려와 공동연구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지금에야 그들은 기자회견장에 설 수 있었다.

물론 그들도 원한 것이긴 했다.

을지부루와 관련된 것을 맞출 필요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주룩.

누군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게 신호라도 되듯 다들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훈련을 안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윤치원이 물기 어린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자, 임병화가 눈을 훔치며 답했다.

“날 좀 말리지 그랬냐.”

“씨바, 솔직히 나도 솔깃했으니까…….”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루에게 끌려가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도 싫었다.

“어허엉!”

그 순간 끝에 있던 누군가가 엎어지며 오열했다.

그를 찍으며 기자들이 아는 체를 했다.

“아, 이번에 침식균열 때 전신 길드가 구해진 그 소환자 맞지?”

“맞아. 그리고 그때 함께 싸운 인연으로 전신 길드에 특채로 뽑혔으니까. 꽤 가슴이 북받치나 봐?”

“그럴걸? 듣기로 강림자의 인지도가 꽤 낮다고 했으니까.”

기자들은 제대로 삽질하고 있었다.

지금 그 누구보다 더 오열하고 있는 건 바로 그가 고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빈을 다들 도닥여 주며 위로했다.

그 모습조차 기자들에게는 아름다운 장면처럼 보여지는 듯 카메라가 미친 듯이 셔터음을 토해 내었다.

-타깃은?

셔터를 연신 눌러 가던 외신 기자의 입술이 살짝 들썩였다.

“아직.”

-계속 주시.

이어진 명령에 그는 대답대신 귓가를 슬쩍 건드리는 정도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바로 미 정보부 소속의 현장 요원이었다.

그는 다른 기자들과 달리 고빈을 주시하고 있었다.

원래 그의 목적은 코드명 호크 아이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던 와중에 뭔가 상황이 바뀐 것이다.

타깃이 호크아이가 아니라는 정보를 습득한 것이다.

그 정보는 곧바로 상부로 전달이 되었다.

그것을 토대로 다각도로 내용을 확인한 결과 호크아이와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동일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직 한국에 현장요원들이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운신 또한 여유롭지 못했다.

‘Shit!’

어디선가 눈길이 느껴졌다.

노골적이었다.

딱히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로 한국의 정보원일 것이다.

정보원치고는 꽤 노골적인 시선인 이유는 단순했다.

‘이미 우린 널 파악했다.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마라.’

이런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미 정보부가 세계에 눈이 없는 곳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의 정보부는 바보가 아니었다.

지금은 통일이 되었다지만, 분단 국가였던 만큼 그 역량이 모자라지는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이곳은 그들의 안방이었다.

다만 상대가 미국이다 보니 이 정도의 티를 내는 경고 정도로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운신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이례적인 위기의 시대다.

표면적으로는 공존하며 살아가는 형태를 보이기는 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적을 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전과 같이 힘으로 압박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 한국의 위상이 빠르게 올라간 것도 이유였다.

대침식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안정을 되찾은 것도 한국이었고, 거기에 통일까지 이루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이었다.

통일로 인한 혼란이 있을 법도 했지만, 대침식이 오히려 그 상황을 도왔던 것이다.

남북 합쳐 백만이 넘어가는 현역병력들은 아무리 마물이 총기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무시 못할 전력이었던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총기가 자유롭고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한다고 해도, 이 작은 땅덩이에 항상 전쟁을 준비하던 백만의 육군 병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번 대침식 때 통일된 한국의 비상체제에 주변 국가들이 경악을 할 정도였다.

수치상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 일이 벌어지고 난 뒤 벌어진 모습은 놀라웠다.

대 침식이 벌어지고 나서 하루도 안 되어, 이 작은 땅의 남성 절반 이상이 전투 병력으로 변한 모습에 중국마저 긴장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주변의 공장이나 개개인이 만든 살상 무기만 해도 사건 발발 후 일주일 후에 파악한 것이 일억 이천 점이 넘어갔다.

종류도 다양했다.

사제석궁부터 쇠구슬을 쏘도록 만든 개조 총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아포칼립스에 대한 교본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심지어 민방위도 다 끝나 전력 외로 분류된 이들까지도 현역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 주어 반 세기 이상의 전투준비를 해 왔던 민족이 이런 것이라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이게 묘한 자부심이 되어 대침식 이후의 시간동안 다른 나라들은 아직도 복구에 몰두하고 있는 곳이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가장 빨리 복구를 마쳤다.

심지어 복구 이후 빠르게 성장을 해 나가고 있었다.

오히려 대침식 이전보다 경제가 활성화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이전처럼 쉽게 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쯧, 오늘도 공쳤군.”

기자로 위장을 한 현장요원은 느껴지는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철수하는 것 같습니다. 외부팀 백업 부탁합니다.”

-아직 퇴근하지 말고. 우린 우리 일을 이어 나간다.

“예, 예.”

조용히 답변을 한 국정원 요원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전신 길드원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지금 이 기자회견장에서 안전 요원으로 침투해 있는 것이다.

아니 침투고 자시고 할 것 없었다.

지금 이곳의 안전요원이 전부 국정원 요원들이었으며, 기자들 중 일부 역시 요원들이었다.

심지어 회견장 주변의 청소부등 잡역부들 역시 전부 요원들이었다.

그때 한 요원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저 양반들은 왜…….”

순간 요원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마치 얼굴을 피하듯.

“쫙 깔렸네. 쫙 깔렸어.”

서준모 경장이 혀를 차며 단상 아래의 요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최후배 경위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거 우리 너무 대놓고 움직이는 거 아닙니까?”

“뭐, 어때서? 지인 찾아온 건데.”

“그건 그런데 위에서 지랄하면 어쩌려고요?”

최 경위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묻자 서 경장이 뻔뻔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건 반장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그의 대답에 최 경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반장님이 전데요.”

“그러니 니 일이라고.”

“아이씨! 어떤 새끼가 계급이 깡패라는 개소릴 한 거야.”

서 경장이 얼굴을 확 일그러트리며 최 경위를 노려보았다.

“야이 반장새꺄. 나 들으라고 한 말이냐?”

“들으면요? 계급 대우 해 줍니까?”

최 경위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서 경장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니 못 들은 걸로 하고 계속 후배 취급 할란다.”

“아우!”

최 경위가 분통이 터진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그러는 와중에 서 경장의 시선은 여전히 단상 주변을 훑었다. 그때였다.

“하아.”

누군가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서 경장이 고개를 돌려

한숨을 뱉은 이의 얼굴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반겼다.

“응? 이게 누구야? 전직 경찰 현직 요…… 읍!”

서 경장의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김창진이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최 경위를 타박했다.

“제발 좀! 야, 니가 반장이면 밑 사람 좀 바짓가랑이라도 잡으면서 말리면 안 되냐?”

“하실 수 있음 해 보십쇼. 요원 나리.”

“에이씨!”

최 경위까지 요원 운운하는 모습에 창진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풀어 주었다.

아니 풀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바닥은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이씨 더럽게.”

“어우짜.”

손바닥을 서 경장이 핥아 대었던 것이다.

“너까지 나선 거냐? 하긴 뭐…….”

창진은 손바닥을 물수건으로 닦으며 서 경장을 흘겨보았다.

“너무한 거 아닙니까? 퍼스트에 갈 때 저도 불러 주지. 저도 그 양반 보고 싶었다고요.”

“웃기고 자빠졌네. 그때도 우리한테 꿍꿍이 잔뜩 숨겼던 주제에.”

“아이씨! 결국 다 말했잖아요! 같이 움직여 놓고 왜 그래요!”

“왜 그러긴. 나이 먹으니까 느는 건 흰머리랑 주름, 그리고 뒤끝이더라.”

“어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창진에게 서 경장이 질문을 툭 던졌다.

“뭔데. 어차피 알 거 아냐. 그 양반이 아닌 거.”

“아니어도 사건 당사자의 형제면 당연히 관찰 대상이지요.”

“지랄한다. 윗대가리들은 강림자가 뭔지 모른다니?”

서 경장의 거친 말투에 창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겠어요. 사실 대침식이 있었기에 묻혔지, 그게 그렇게 묻힐 일이었습니까?”

“아니지.”

솔직히 그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서 경장의 대답에 창진은 그를 슬쩍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선배님은 여기 왜 계시는데요.”

“나? 은인의 일행이었던 분이니까. 새꺄, 당연한 거 아냐?”

서 경장의 말에 창진은 할 말을 잃었다.

옛날 그의 부인과 딸이 위기에 빠졌을 때 구한 건 을지우루와 계웅삼이었다.

서 경장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저도 좀 뵈면 좋은데.”

“보면 되지.”

“그럴까요?”

창진이 슬쩍 운을 떼자 서 경장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럼. 임의 동행합시다 하고 가서 만나면 되지 않냐? 좋겠네? 단둘이서 대화도 할 수 있고.”

“아이씨!”

“물론 그랬다가 쳐맞으면 할 수 없는 거고.”

“아는 양반이, 그걸 말이라고…….”

대꾸하려던 창진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리고는 흔들리는 눈으로 서 경장에게 물었다.

“강림자라면서요?”

“응?”

순간 서 경장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그 뭐냐. 같이 있는 사람이 군 쪽에 있는 사람인 건 알지? 대위 기는 해도 그 스승이란 양반이 구 박사야. 정치인들도 슬슬 피하는 양반이잖아.”

지금 국정원이 대놓고 접근 못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수틀리면 이민 갈 거다!’

구은태 박사의 유명한 발언이다.

권력도 안 통하고 압박도 안 통하는 게 바로 그였다.

실제로 구 박사가 한국을 뜨길 바라는 열강들이 한둘이 아닐 정도였다.

“아니 말을 왜 돌리실까?”

창진이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확인해 보니, 을지부루는 분명 강림자면서도 강림자의 성향과 괘를 달리했던 것이다.

그걸 뒷받침할 말을 지금 서 경장에게 들은 것이다.

하지만, 또 이게 고약했다.

옛날 그들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면 반 죽을지도 모르겠네.’

같은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가 경험한 고진천 일행은 하나같이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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