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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32화 (32/305)

제32화 그들이 부루에게 한 말은?

으아아아아아!

쿵!

서울액션스쿨 인근에 있는 암벽 등반코스에서 사람 하나가 비명을 내지르며 추락했다.

그걸 바라보던 광호가 이승배에게 물었다.

“보통 저 높이서 떨어지면 죽지 않나?”

“죽지. 병신 되거나.”

“소환자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거구나? 나한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있다면?”

승배가 왠지 여운이 느껴지는 광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친 듯이 스턴트 해 볼 건데. 캬!”

“……푸흐흐.”

승배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어재꼈다. 하지만 이해는 간다. 이 일을 돈 때문에 하는 이들은 없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언젠가는 액션스타가 되길 꿈꾸며. 그러니 저런 능력이 있다 해도 자신의 꿈에 대입하는 것이다.

그중 광호는 동네 양아치에서 월드 스타는 아니지만 헐리웃에서도 인정하는 배우가 되었다.

악역 한정이지만.

독하게 마음먹고 한 결과다. 그러면서도 아직 배가 고픈 거다.

그런 광호를 보며 승배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 차이가 지금의 현 상황을 만들었다.

액션배우 출신이던 승배는 엔터의 실장으로, 양아치였던 광호는 나름 인정받는 액션 배우로.

하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지금 자리 역시 누구나 부러워하는 일이고, 또 이게 의외로 자신의 성향과도 잘 맞았으니까.

으아아아아!

또다시 한 명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보던 광호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옛날 생각나네.”

“그렇지?”

저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면서 떠오른 건 바로 그들이었다.

임병화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나라우.”

“아…….”

을지부루의 말을 듣고서야 병화는 자신이 방금 추락해서 떨어졌던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화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한쪽을 바라보았다.

시체처럼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길드원들의 모습.

시체처럼, 이지 시체는 아니다.

하지만 정말 시체 같았다. 다른 건 숨은 쉬고 있다는 거.

저들은 지금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띠라우.”

“예? 예!”

병화는 얼결에 다시 달렸다. 지옥의 코스를 다시 한번 돌아야 한다.

질릴 만도 하건만 다시 달리기 시작하던 병화는 한쪽에서 암벽을 마치 바닥을 기는 것 마냥 쭉쭉 오르는 고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으하하하!”

얄밉게 웃음까지 터트리고 있었지만, 왠지 그가 부러웠다.

“으아아!”

함성과 함께 다시 내달렸다.

병화와 같은 덕후들은 알 것이다. 그저 열광하고 꿈을 꾸기만 했던 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

그게 생긴 덕후들은 그야말로 괴물이 될 수 있다.

대침식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어차피 덕후들의 세상이니까.

“으하하!”

고빈은 생각했다.

“나만 당하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빈은 고통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게 이런 거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지난 지금 빈은 나름의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는 것 마냥 바닥을 박박 기는 전신 길드원들을 보며 뭔가 우쭐함도 생겼다.

그런 빈에게 부루가 다가왔다.

“이번엔 통나무라도 쪼갤까요?”

빈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그러자 부루가 말했다.

“반만 죽이라우.”

“네?”

“알겠소이다.”

“응?”

빈이 고개를 돌렸다.

강림자가 보였다.

덩치도 좋고 무장도 좋았다. 당연했다. 전신 길드의 소속 강림자들은 아무나 받지 않는다.

실력 위주로 받는다.

“저기요?”

“무기를 드시오.”

“자, 잠깐만요!”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부루가 고개를 슬쩍 돌리며 말했다.

“이번 훈련은 말이디.”

“아저씨!”

“생존이야.”

“장군님! 부루 이 개나리 씹장생 놈아!”

순간 부루가 멈칫했다.

그리고 빈도 자신의 입을 막았다. 너무 나갔다는 걸 안거다.

걸음을 멈추었던 부루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몇 마디 더 던졌다.

“숨만 붙여 두라우.”

“대장군님!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아아악!”

악다구니를 치는 빈을 향해 환두대도의 탈을 쓴 쇠몽둥이가 날아들었다.

미친 듯이 비명을 내지르는 빈을 보며 구은태 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전에도 말한 것 같지만…….”

“예, 압니다. 설마 죽겠습니까?”

“그렇지?”

강문호 대위의 대답에 구 박사는 흔들리는 믿음을 다잡았다.

그때 그들의 곁으로 부루가 다가왔다.

“기래. 뭐 좀 나왔네?”

“그 말한 형상의 마물들은 이번을 빼고는 이전 대침식 말기 때 모습을 드러낸 것이 다일세. 그리고 고구려 말기 출신 강림자들은 이게 다일세.”

구 박사가 보여 주는 자료를 받아 든 부루는 천천히 그것들을 넘기며 살폈다.

혹시나 해서다.

그뿐 아니라 함께 했던 다른 이들 중에 강림자로 이곳에 떨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러나 마지막 사진까지 넘긴 부루는 고개를 내저었다.

“없는가?”

“없소.”

“신기하군.”

강림자의 법칙이 딱히 있는 건 아니었다.

무작위다.

그리고 소수다.

기왕 소수라면 강한 강림자들이라도 나와 주면 좋겠건만 그건 아니었다.

약한 이도 있고 강한 이도 있었다.

부루쯤 되는 강자라면 그 일행도 보장된 강자기에 그의 요구에 자료를 모아 준 구 박사였다.

그런데 결국 동료를 찾는 일에는 실패를 하고 마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때였다.

“궁금한 거이 많은 걸로 아는데.”

“그럼 부탁하네.”

“말하라우.”

“그 침식 균열에 관해서는 이제 말해 줄 수 있는 거지?”

부루는 한동안 그 일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부루는 분명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이상한 것이었다.

다른 강림자들은 알아듣지 못하는데 부루 홀로 알아듣고 있었으니까.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멀리서 바라보았지만 부루의 행동을 봤을 때 무언가 말을 주고받고 있다는 의심을 할 만했다.

이후 구 박사나 강 대위의 질문에 부루는 입을 다물었다.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지금 부루는 단순한 강림자가 아니었다.

그가 유별나서도 아니었다.

이전의 침식에서 한 마물 낚시도 그렇고 빈의 훈련도 확실히 뭔가 달랐다.

아는 게 있다.

이들과 달리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지옥에서 왔다는 소릴 언뜻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없었기에 기다렸다.

그를 오래 겪지는 않았지만, 캐묻는다고 대답해 주는 이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원하는 자료 등을 봤을 때 그 역시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았기에 기다렸던 것이다.

“카르베이온이라 했디.”

“헛!”

부루의 입술이 열리자 구 박사는 허둥지둥 캠코더를 켰다.

“기어오른인지 기오르근지 뭔지의 3군단장이라 말하더구만.”

“으음.”

순간 강 대위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마계라는 곳에서 왔다는 말도 했는데 말이디…….”

“마계?”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름에 구 박사의 안색이 허예졌다.

이건 소설이 아닌 현실이었고, 부루가 굳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으니까.

“길코 마계란 말은 나도 처음 들었어야.”

“비슷한 것들을 보았다지 않았습니까?”

“기랬디.”

강 대위의 질문에 부루가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게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어나서 자라고, 같은 모습을 한 형제와 함께 말을 달렸다.

그러다가 마음 맞는 이들을 만나 무리를 지었다.

자신보다 어리지만 강하고 말없이 백성을 위하는 주군도 만났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말을 달렸다.

고향을 떠나온 아쉬움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고 없었다.

주군과 동료와 수하들과 함께 나라를 세우는 역사를 펼쳐나갔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그들이 천덕꾸러기들이 아니었다.

세상을 욕할 필요도 없었다.

어설픈 혈연의 굴레도 사라진 이곳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 새로운 꿈의 대륙이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전쟁이 나고, 승리를 했다.

하지만, 아쉬운 순간, 지켰지만 그게 끝이 되었다.

주군과 동료의 얼굴들이 다시 스쳐 지나가고 사라와 자식들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떠올랐을 때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앞의 기억이 바로 주마등인가 싶었다.

그리고 어둠은 영원한 안식인가 생각했다.

그렇게 어둠속에서 둥둥 떠다니듯 하다가 무언가 쑥 빨려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눈앞에 밝은 빛의 길이 있음에도 그의 몸은 더없이 어두운 곳으로 빨려나갔다.

본능적으로 끌리기는 했으나 버둥거리지도 않았다.

미련이 없었다.

명에 따르고, 대의를 따랐으며, 내 울타리를 지키기 위함이지만 헤아릴 수 없는 피를 본 건 사실이니까.

그냥 진짜 저게 천국일까?

그리고 지금 가는 이곳에 지옥이란 게 있는 건가?

이런 감정이 들었을 뿐이다.

그때 한없이 끌어당기던 어둠이 끝이 나고 그의 눈이 떠졌을 때 보라색으로 물든 세상이 펼쳐졌다.

물론 완전히 별세계는 아니었다.

보랏빛이 많다뿐이지, 물도 있고 풀도 있고, 나무도 있었다.

다만 하늘의 태양이 눈이 아프게 빛을 내쬐지는 않았다.

그저 보랏빛 안개에 덮인 듯 은은하게 그 빛깔을 내비칠 뿐이었다.

그렇게 생소한 대지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를 맞이한 건…….

꿀꺽.

구 박사는 부루의 말을 들으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강 대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사후세계에 관한 증언이니 뭐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건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것과 이건 달랐다.

진짜 죽어 본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그, 그래서 어찌 되었소?”

구 박사가 설명을 재촉하자 부루가 다시 설명을 이었다.

“그때 눈앞에 그 카르베이온이라 불렀던 아새끼와 비스무리한 놈들이 있었디.”

“아!”

“물론 일부는 사람과 더 비슷했다. 오히려 그 사람 비슷한 이들이 더 고위층으로 보였고 말이디.”

부루의 말은 귀한 정보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몰랐던 침략자들에 대한 정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아가 그들의 목적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었다.

그때 강 대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이 말을 걸어왔습니까?”

“그랬디.”

구 박사와 강 대위는 침이 바짝 말라갔다.

“어떻게 됐습니까?”

강 대위의 질문에 부루가 한쪽 입술을 끌어올리며 답했다.

“죠졌디.”

“…….”

“…….”

매우 짧고 명쾌한 답변.

순간 구 박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그게 무슨…….”

뭔가 중간은 없고 결과만 들은 느낌이었다.

“꿇으라 했거든.”

“미친!”

강 대위가 욕설을 내뱉었다.

물론 부루에게 한 건 아니었다. 그 알 수 없는…… 부루에게 작살난 존재들에게 던져진 욕설이다.

구 박사는 당황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아니 그 말만으로 다 적대시했단 말입니까?”

“아니디. 기묘한 힘으로 나를 간섭하려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디. 내래 바본 줄 아네?”

“그, 그럼 왜 그러는지는 아셨던 것이오?”

구 박사의 질문에 부루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싹 다 조지면 되는데 기거이 와 물어보는 거이간?”

“…….”

“어차피 지옥이잖네.”

구 박사는 입을 벌린 채 부루를 바라보았다.

딱 한 가지 생각이 감돌긴 했다.

바보 맞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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