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전투의 끝보다 그 수습이 더 큰일인 경우가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런 경우다.
치원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건 뭐 검은 돈 세탁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지, 차라리 그건 낫지. 이걸 어쩌라고…….”
“니보라. 꼬우면 말면 되디 뭘 자꾸 툴툴거리는 거이간?”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요.”
“맞아! 팀장이 잘못했네!”
“장군님께 말대꾸하는 거야? 이야, 팀장 그렇게 안 봤는데.”
“야이……씨발라 먹을 수박 같은 놈들.”
치원이 발끈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길드원들 중 다수가 지금 부루의 곁에서 각자 받은 사인지를 들고 치원을 공격하고 있었다.
심지어…….
“실망했다.”
“길장……너마저.”
병화도 있었다.
사실 부루의 부탁은 아니었다. 바로 강 대위의 부탁이었다.
그건 바로 이번 침식균열을 처리한 것을 전신 길드가 주축이 된 것으로 하고, 이쪽은 그저 도움을 준 정도로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의 절반 정도만 빈에게 나중에 길드에서 빼 주는 걸로 합의하자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다행히 침식균열이 벌어지면서 그 시간 동안은 캠코더 등이 작동하지 않았기에 이런 눈속임이 가능했다.
부산물의 대가를 돌리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길드 차원에서도 어차피 빠져나갈 지출이지만, 총 매출이 올라가기 때문에 외형으로는 나쁠 게 없었다.
걸리지만 않으면.
문제는 이 침식균열을 처리한 것이 바로 전신 길드가 된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성과다.
그런 걸 이들이 해냈다는 건 엄청난 주목을 끌게 되는 일이다.
물론 길드차원에서 인기도가 올라가는 건 당연히 좋다.
정부를 상대로도 나쁘지 않고 말이다.
문제는 이 침식균열이 이번에 일어났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침식균열은 대침식 말기에 지금의 침식지를 확정지은 사건이었다.
그 이후 침식 균열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바로 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여러 전조가 있어왔다는 것이다.
전이라면 균열이 벌어져 봐야, 한 달에 한두 번 꼴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경우 한 달에 서너 번 정도로 갑자기 늘어나다가 바로 직전에는 전국에 동시다발 적으로 터지기까지 했다.
그러던 와중에 침식균열이 일어났으니 제2의 대침식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런 가운데에 떡하니 침식균열을 이 소수의 인원으로 처리했다고 보고가 올라가면 아마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끌려 다닐 거다.
강제적 오분대기조처럼 될 공산이 크다.
물론 그로인한 반사이익이 적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이게 진짜 이들만의 힘으로 해낸 것이 아니라는 거다.
“아시겠지만, 아직 우린 확인할 게 많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군인이지만…….”
“네네, 못 믿는 건 압니다. 우리도 그걸 아니까 지금 고민하는 거고요.”
강 대위의 말에 치원 역시 현실적인 부분을 언급했다. 하지만 적은 내부에 있었다.
“우리라고 하지 말지.”
“팀장. 그러는 거 아니야.”
“저거 전신 카페 회원 맞아?”
“지금 이게 전신 카페 현모하는 건 줄 알아!”
치원이 길드원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어서 뭐라고 좀 하라는 의미로 병화를 바라보았다.
“실망이다.”
“…….”
생각해 보면 이 자리에서 가장 빠돌이는 병화였다.
“하아…….”
“땅 꺼지겠다야.”
“끄응.”
“배 아프면 싸라우.”
“…….”
“꼬나보는 거이간? 꼬우면 언제든 덤비라.”
치원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확실히 강 대위가 걱정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유별난 걸 넘었다.
하는 걸 보면 그냥 사람이다. 염장까지 제대로 지르는 걸 보면 진짜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팔목에 차고 있는 액정 속에는 여전히 그가 강림자가 맞다는 듯 그의 인지도가 나와 있었다.
0.00001.
그때 병화가 나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빈.”
“예?”
“전신 길드와 소속 계약을 맺어야겠다.”
“오오!”
순간 빈의 눈이 반짝거렸다.
조금전만 해도 왜 절반만 주냐고 구시렁거리던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던 것이다.
병화의 말에 치원의 얼굴이 좀 밝아졌다.
이러면 남 일이 아닌 거다.
병화는 다시 강 대위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정도는 양보하셔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 길드의 특성과도 어울리고…….”
잠시 말을 흐린 병화가 신중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이 침식균열이 언제 다시 또 나타날지 모릅니다. 아시잖습니까.”
“후우. 불안하긴 하지만…….”
다시 나타났다는 건 언제라도 또 나타날 수 있다는 거다.
거기에 침식지 이외의 상황도 이상 현상이 벌어지는 지금의 상황이다. 당연히 멀지 않은 시기에 또다시 침식 균열이 벌어질 것이 뻔했다.
강 대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반드시 출동해야 합니다. 아시지요?”
“그렇겠지.”
해결할 능력을 보여 줬다는 건 당분간은 그들이 유일한 대비책이라는 의미다.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그들에게 요청이 들어올 것이고 그걸 반대를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그게 여론이고, 나라는 그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물론 길드의 힘도 만만치 않다.
전신 길드는 국내 삼대 길드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외형적인 규모가 다른 두 개의 대표길드보다 적다는 것이 약점이라면 약점일 뿐이다.
물론 단일국가의 병종으로 모인 길드가 이들뿐만 있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 같은 경우는 로마병만으로 이루어진 길드가 있었으니까.
심지어 거긴 머릿수도 많아, 옛 영화에서 나오는 방진까지 만들어 보였다.
덕 중 덕은 양덕이란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다.
유럽이긴 하지만…….
“할래요! 할래요!”
빈이 손을 번쩍 들고 가담 의지를 밝혔다.
그 모습을 보며 치원이 눈을 빛냈다.
‘역시 길드장…….’
그러나 그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부루를 바라보며 볼따구가 살짝 붉어진 병화의 사심 가득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젠장…….”
치원은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가 좋으니 할 말은 없다. 다만 앞으로 걱정될 뿐.
“그 대신.”
그때 병화가 말을 이었다.
“연구 역시 돕겠습니다. 참여의사 역시 있습니다.”
순간 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자, 잠깐요. 연구라뇨? 그건 이제 그만 하는 거 아니에요?”
병화를 비롯한 길드원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 찰갑 맞춰야지!”
“말 타는 것도 연습해야 하나?”
“너 아직 말도 못 타냐?”
“미쳤어요들?”
그런 길드원들의 반응을 보며 빈이 악을 썼다.
그리고 치원이 동조했다.
“내 말이.”
물론 솔깃하긴 하다. 다만 저건 너무 갔다고 생각할 뿐.
그때 부루가 빈의 귓가에 뭔가를 중얼거렸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치원은 귀를 쫑긋해가며 엿들었다.
“너만 당하고 살 거이간?”
순간 빈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화했다.
들떠있는 길드원들을 보며 빈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니네요.”
“길티.”
“…….”
그걸 엿듣고 난 뒤 치원은 불안한 표정으로 병화에게 입을 열었다.
“그, 길장. 아니 병화야, 우리 이거 다시 생각…….”
그때 온몸을 난도질하는 듯한 살기가 느껴졌다.
뻣뻣하게 굳은 치원이 천천히 살기가 쏘아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부루가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다.
치원은 그 입술 모양을 따라 속으로 읽어 내려갔다.
‘아, 가, 리, 닥, 치, 라, 우. 째, 지, 는, 수, 가…….’
더 이상 읽기를 포기했다. 대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었다.
“와, 와아아. 저, 정말 조, 좋겠다아아아.”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 * *
사방이 철통같이 차단된 상황에서 소환자들은 다섯 시간에 걸친 상황보고를 한 뒤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사이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기웃거렸지만, 일단 정식 발표 전에 숨 돌릴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숨 돌리는 걸 여기서…….”
전창걸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퍼스트 엔터의 오디션용 대강당에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전신 길드원.
그리고 강림자들. 그중 군계일학의 면모를 보이는 을지부루.
“오래간만입니다.”
“아, 오랜만이네. 길드장.”
지금은 길드장.
하지만 이전에는 전신 카페 운영자중 하나인 임병화였다.
당연히 고진천의 소속사였던 전창걸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쥐똥만한 엔터회사 입장에선 자생적 팬 카페를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엎드려 절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리고 대침식 이후 삼대 길드의 수장인 그를 쉽게 대할 수 없었다. 국가적 보루이기 때문이었다.
대기업들이 스폰서를 서기 위해 줄을 설 정도의 유명한 길드 아닌가.
“오! 병화 왔어!”
“누님 안녕하십니까!”
그때 요란한 목소리와 함께 들어서는 제이와 판도라 일행들이었다.
세인이 부루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내래 괜찮습네다.”
부루는 세인에게 약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도 들은 말이 있었다.
이곳에 있을 때 고진천과 정을 통했다고 들었다.
그녀와 송가은 작가.
물론 진실은 짝사랑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설레발을 조금 거치면 불타는 사랑이 된다.
그렇게 해석을 하면 부루 입장에서는 진천의 후궁처럼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홀대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조심하셔야지요.”
“걱정 마시라요. 이미 한번 뒈진 몸…….”
부루의 말에 세인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그렁거린다.
“아니, 기거이…….”
“오라비! 왜 또 애를 울려!”
그때 제이가 다가와 버럭 성질을 내자 부루가 떠듬거리며 변명을 했다.
“내, 내래 아무 말도 안 했어야! 기거이 이미 한번 뒈졌다고밖에…… 니엔장.”
제이도 그 말을 듣고 눈물을 그렁거린다.
그리고 뒤에 또 하나.
“흐어엉!”
레이니까지.
본의 아니게 여인들을 울려 버린 부루는 억울했다.
그가 천장을 보며 한탄했다.
“뒈진 건 난데 이거이 뭔 꼴이간…….”
그리고 그 꼴을 보며 울상인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얘, 얘들아 메이크업 지워진다아아! 바로 촬영하러 가야 한다고오!”
정말 울고 싶은 건 전창걸이었다.
* * *
“오, 오신다!”
육의찬 감독은 바짝 군기가 선 모습으로 들어오는 차량들을 지켜보았다.
차가 멈추고 을지부루가 발을 내딛는다.
“아, 안녕하십니까!”
육 감독을 비롯한 서울 액션스쿨의 배우들이 일제히 허리를 꺾는다.
“기래. 여기가 바로 거긴가 보구만.”
진천이 잠시나마 기거했던 곳 중 하나다.
부루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누군가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광호?”
“예? 예!”
그는 바로 광호였다. 육의찬 감독 밑에서 다시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한 그는, 악역이지만 헐리웃 영화까지 진출하며 제법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그가 부루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번에는 해외에 있었기에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 우루 형님 아니십니까?”
“조금 다르게 생겼디. 자세히 보면 내가 좀 더 잘생겼디 않네?”
순간 광호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됴아!”
왠지 생긴 것뿐 아니라 다른 성향도 비슷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뒤로 전신 길드원들이 차에서 차례로 내려서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뒤에서 바라보던 고빈이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제군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