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아저씨는 왜 퓨판이에요?
“없죠?”
“없군!”
“젠장 어쩐지 차는 순간 볼링공을 차는 느낌이더라니까요!”
빈의 억울한 외침에 구은태 박사가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볼링공도 차 봤나?”
“느낌이 그렇다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상체가 걸레짝이 된 채로 나자빠져 있는 마물의 사타구니 앞에 쭈그리고 앉은 두 사람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병화의 얼굴은 아직까지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강 대위로부터 오늘 이곳에 이들이 무엇을 연구하기 위해 온 것인지 들었던 것이다.
바로 소환자의 전투능력 실험.
“이게 정말 말이 된다는 말입니까?”
“일단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방금 전의 전투를 제외하고도 물리적으로 공략 방법이 없다던 젤리베어를 해치우는 것을 확인했으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요.”
“하아.”
이것은 큰 차이가 있다.
소환자의 생존능력의 향상.
지금이야 침식지에 들어설 때 항상 기동분대의 보호를 받는다지만, 사실 이건 크게 의미 있는 건 아니었다.
F급이나 E급의 출몰이 잦은 침식지라면 모를까 그 이상에서는 시간벌기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아니 시간벌기도 D급 일부까지만이다.
나머지는 제대로 된 시간 벌기도 어렵다.
만약 강림자가 역소환당하고 소환자가 도주에 실패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지옥이다.
높아진 신체의 내구도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언제 죽었는지 모를 충격을 입고도 피를 게워내며 살아서 버틴다는 건 오히려 형벌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소한의 전투능력이 있다면 생존 가능성이 더 커진다.
특히 팀 단위로 움직이는 소환자들의 경우는 더더욱 말이다.
병화는 빈이 다시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대단하군. 어떻게 직접 마물을 상대할 생각을 했지?”
병화가 말을 걸어오자 빈이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 말이요! 어떻게 저를 마물이랑 붙일 생각을 했는지…….”
억울하다는 빈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반사적으로 그 시선을 따라간 병화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다.
저 멀리서 난투를 벌이고 있는 강림자들이, 그중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한 존재가.
“빈!”
“아차!”
강 대위가 부르자 빈이 자신의 입을 막았다. 부루에 관한 건 비밀이었다.
그걸 뒤늦게 인지한 빈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병화의 의심은 시작되었다.
숭덩!
-크아아아! 대체 왜 이 손만!
3군단장 카르베이온이 비명을 내질렀다.
방금 솟아난 신선한 팔모가지가 다시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벌써 다섯 번째다.
“바보 아이간? 오른손잡이니깐 베는 거이디.”
-…….
순간 카르베이온은 할 말을 잃었다. 순간 ‘그렇군.’하고 대답할 뻔했기 때문이었다.
대답대신 카르베이온은 잘려진 팔뚝이 아닌 왼손으로 무기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잘렸다.
-끄으으으아!
“뭐 이래 멍청한 거이 나타난 거이간? 전에 봤던 아새끼들보다도 더 멍청하구만 기래.”
순간 뒤로 물러서던 카르베이온이 부루의 말에 순간 동공이 흔들렸다.
왠지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느낌의 말투.
서둘러 그의 시선이 부루의 전신을 훑었다. 가끔 마계의 영지에 떨어지는 영혼이 있었다.
그중에는 생전에 과도한 피를 뒤집어 쓴 덕에 피를 부르는 대지인 마계로 이끌려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마계에서 소멸을 거듭하다가 일반 마물이 되기도 하고, 또 뛰어난 일부는 마족의 위에 오르기도 한다.
드물지만 말이다.
그런데 최근 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외진 곳이지만, 마계의 영지 하나가 초토화되었다는 이야기.
마계대공의 영지는 아니지만, 세력다툼에서 밀려난 마계의 실력자의 영역이었다.
거기서 온 소문이 하나 있었다.
포식자.
마족들을 잡아먹었다는…….
커다란 도끼를 쓴다는 소문도 들은 것 같았다.
-포, 포식자?
“내래 먹어 봐야 얼마나 먹는다고 그딴 소리를 자꾸 하는 거이야!”
순간 카르베이온의 동공이 흔들렸다.
순간 그가 뒤로 몸을 빼며 외쳤다.
-저, 저자를 막아라!
카르베이온의 외침.
하지만 진즉에 군단병들은 그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부루의 주변에서 기마들이 맴돌면서 군단병들의 접근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대로 내달려오는 부루를 향해 카르베이온은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그는 사실 무력으로 군단장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장점은 침식지의 빠른 성장이었다.
일종의 길을 닦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나름 귀한 재주이기에 그 덕에 무력과 상관없이 이 자리에 오른 거였다.
그렇다 해도 다른 군단장에 비해 무력이 낮다는 거지 이런 곳에서 당할 정도로 약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상대가 나빴다.
‘포식자가 확실하다면…….’
포식자의 별명이 크게 알려진 이유는 하나다.
마계의 변경백이 거대한 소의 형태를 하고 처참하게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심지어 몸의 일부가 도려져 있었고, 주변에는 그 부분을 구워먹은 흔적까지 발견되었다.
그 변경백의 능력은 짐승으로 변하는 것. 짐승들의 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마계의 귀족이었다.
그때 처음 포식자의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
그리고 그 변경백의 수하 마족으로부터 그가 왜 그런 꼴로 죽었는지 퍼져나가면서 포식자라는 소문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뒤돌아 뛰던 카르베이온의 고개가 슬쩍 돌아갔다.
뒤를 따라 달려오는 부루가 입술을 축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 포식자의 잔인한 습성중 하나가 있었으니, 재생 능력이 있는 마계의 마물을 비상식량으로 삼아 끌고 다닌다는 거다.
재생능력이 있다는 건 상위의 개체라는 의미다.
자신처럼.
그런 존재를 비상식량으로 끌고 다닌다는 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르베이온의 발이 더욱 빨라졌다.
그때였다.
부와아악!
뭔가가 다리를 향해 날아오는 느낌이었다.
반사적으로 카르베이온이 펄쩍 뛰었다.
그리고 이때다 싶어 등줄기에서 날개를 뽑아내어 펼쳤다.
하지만 다리 아래로 지나간 건 대부가 아니었다.
마계군단병의 창이 팽그르르 지나갔다.
콰직!
-크억!
뒤이은 어깻죽지의 충격.
둔탁한 충격과 함께 어깻죽지가 찢어지며 바닥으로 추락해 갔다.
발을 내딛는 순간 뭔가가 하체를 밟아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빌어먹을!
위기감을 느낀 카르베이온이 몸을 뒤트는 순간 그의 잘려진 날개와 어깨를 단단히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리고 찢어지는 고통.
이어서 찢어지는 날개.
찍어지듯 벌어진 카르베이온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끼에에에에에!
끼에에에에에!
등줄기가 축축해질 정도의 공포가 느껴지는 비명이었다.
모두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부루가 거대 마물의 등판에 올라서서 양손으로 날개를 쭈욱 잡아 뜯어내고 있었다.
이어서 바닥을 구르는 거대한 마물의 등짝에서 뽑아낸 대부로 통나무 같은 마물의 다리를 통으로 잘라내는 모습이 보였다.
뒤이어 달려드는 작은 마물들에게 그 다리를 휘둘러 쳐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그렇게 쳐낸 걸로 기어가려던 거대 마물의 대갈통을 후려 갈겼다.
분명 두렵고 잔인한데…….
“풉!”
빈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웃겼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거대 마물이 축 늘어졌다.
그걸 본 부루가 성큼 다가가더니 멱살을 잡아 올린 뒤 뺨을 후려갈긴다.
확인사살 같지는 않았다.
몇 번 양 옆을 번갈아 후리더니 머리를 벅벅 긁는 모습이었다. 당황한 표정도 있었다.
그걸 보던 치원이 중얼거렸다.
“설마 저렇게 패 놓고 사로잡을 생각이었던 거야?”
쓰러진 마물의 가슴팍에 귀를 대보는 부루의 모습.
병화가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가 본데.”
“…….”
이곳의 소환자들은 모두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최초로 침식 균열을 제압했다는 쾌거에 환호하는 것은 모두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뒤였다.
지금 이 상황이 뭔가 싶은 생각뿐이었다.
“안 때릴 거이니까네, 인나 보라우.”
부루가 다시 한 번 흔들어 보았지만, 혀가 길게 빠지며 축 늘어진다.
“……정말 뒈진 거이간?”
역시 대답은 없다.
부루는 슬며시 멱살을 놓고 중얼거렸다.
“뭐 이래 허약하늬?”
멋쩍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환되었던 군단병들이 저절로 역으로 소환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부루가 실수로 죽여 버린 이것 때문에 되돌아가지는 모양이었다.
남은 건 죽어나자빠진 군단병들의 시신들뿐이었다.
전투가 끝이 나고 검모잠이 다가왔다.
그런 검모잠을 보며 부루가 입을 열었다.
“고맙구만기래. 검모잠이라 했네?”
“그렇소.”
“반갑구나야. 내래 을지부루라 하디. 그런데 언제 죽은 거이간?”
부루의 질문에 검모잠은 고개를 내저었다.
“안승공에게 죽었다 하더이다.”
“안승? 안순을 말하는 거이간?”
“아는가?”
검모잠의 질문에 부루는 복잡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
“본 적이야 있디. 그리고 그래 익디는 않디만 내래 님자 낯도 익구만 기래.”
부루의 말에 검모잠은 신기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옛일을 기억하는 것이오?”
“그걸 어케 있네. 내 삶인데.”
부루의 답변에 검모잠의 얼굴이 씰룩였다. 뭔가 하고픈 말이 있는데 떠오르지 않는 표정 같았다.
그때 부루의 시선이 그의 뒤를 향했다. 목석같은 시선으로 부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부루가 한숨을 내쉬더니 중얼거렸다.
“이거이 뭔 껍데기만 있는 느낌이구만.”
부루의 중얼거림에 검모잠의 표정위로 쓴웃음이 머금어졌다.
“껍데기 같은가?”
“기분 나빠 말라우. 아쉬워서 그러는 거이니까네.”
그때 멀리서 요란스러운 바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소환자 일행들이 전투가 끝이 나자 달려오는 것이다.
“아저씨!”
제일 앞서서 내린 빈이 내달려왔다. 그런 빈을 부루가 맞이했다.
빠악!
“커억!”
“거기서 와 사타구닐 차올리는 거이간?”
“봐, 봤어요? 몰랐죠! 그게 없는 줄은!”
부루의 윽박지름에 빈이 찔끔하며 항변했다. 그러자 부루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고자인 거이간?”
“아저씨 아는 거 아니에요? 대충 보니 뭔가 아시는 거 같은데.”
빈의 질문에 부루가 인상을 팍 쓰며 외쳤다.
“미친 거간? 와 뒈져 나자빠진 아새끼 허리춤을 까 보갔네!”
부루의 말에 잠시 하체의 생리학에 대해 연구를 해 본 빈과 구 박사가 동시에 움찔거렸다.
다행히 그건 부루가 안 본 모양이었다.
빈과 부루의 해후를 병화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바라보다가 강 대위에게 질문을 했다.
“강림자라구요?”
“일단은…….”
이걸 보고 숨긴다는 게 무리라는 걸 안 강 대위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빛과 함께 다시 그분들이 나타났다고 해 주시지요.”
그때 부루가 소환한 퓨켈이 다가와 콧김을 뿜었다.
큐힝!
“…….”
빈이 퓨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말과 닮았지만 말이 아닌 건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마물의 시체를 한 입 한 건지 보랏빛 고깃덩이를 질겅이며 씹는 그것의 이빨은 톱니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걸 본 빈이 물었다.
“다른 아저씨들은 다 대체역산데 왜 아저씨는 퓨전판타지에요?”
부루가 인상을 팍 쓰며 대답했다.
“이건 또 뭔 개소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