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왜 왔니?
파스스!
작은 구체를 덮었던 보랏빛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순간 부루의 대부가 휘둘러졌다.
콰직!
무언가 나타나는 동시에 대부는 그것을 그대로 쪼개 버렸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작다지만 순간 나타났던 개체의 크기는 얼추 이 미터 남짓해 보였다. 워낙에 중앙에 형성된 것이 컸기에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무지막지하게 박살을 내버린 부루는 그대로 내달렸다.
그 와중에 작은 구체가 흩어지며 나타나는 것들을 연이어 박살 내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보랏빛 신체를 한 인간형의 마물의 잔해뿐이었다.
그렇게 내달린 부루가 그대로 대부를 집어 던졌다.
콰콰콰콰!
그대로 공간을 가르고 날아간 부루의 대부는 가장 중앙에 있던 커다란 구체를 향했다.
부루의 대부가 닿을 때 즈음 커다란 구체가 드디어 흩어지며 음울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인간들이여…….
와작!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아든 대부에 맞아 높이만 십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보랏빛 신체가 뒤로 나자빠졌다.
-커억!
콰당탕탕!
그 위로 부루가 그대로 달려들어가 일어서려는 보랏빛의 마물의 면상을 무릎으로 찍어 버렸다.
우지끈!
-푸헉!
마치 통나무가 부러져 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검붉은 핏물이 하늘로 뿌려지며 부루의 무릎에 얼굴을 강타당한 거대한 마물은 다시 비틀거리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때 속속들이 껍질을 깨고 나오듯 생성된 작은 마물들이 부루를 향해 몰려들었다.
마치 주인을 지키는 개마냥 말이다.
부루는 그러거나 말거나 한쪽에 뒹굴고 있던 대부를 다시 고쳐 잡고 거대한 마물을 향해 휘둘렀다.
-이런 건방진!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거대한 마물이 으르렁거리며 한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짙은 회색빛의 방패가 나타났다.
와장창!
-이, 무슨!
하지만 그것 역시 박살낸 부루의 대부는 방패 안쪽에 펼쳐져 있던 손가락을 잘라내 버렸다.
-크으윽!
동시에 거대한 마물이 뒤로 물러났다.
“튀는 거이간? 들어오라우!”
-예의도 없구나아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 성난 목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지랄 말라우. 무방비로 나타나는 거이 어디서 배워 처먹은 똥배짱이간? 전쟁이 장난이네?”
부루는 여전히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내뱉으며 몰아쳐갔다.
그 와중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형 마물들이 부루를 향해 내달려 가며 무구를 소환해 내기 시작했다.
빈손에는 창이 잡혀졌고, 보랏빛 피부 위에는 붉은 빛의 갑주들이 입혀졌다.
그렇게 무장을 갖춘 이들이 거대한 마물을 향해 짓쳐 가는 부루를 가로막았다.
“크와악!”
괴기스런 기성과 함께 창을 뻗어지는 창대.
몸통을 향해 날아드는 창날을 슬쩍 피하며 부르는 그걸 그대로 잡아당기며 몸을 띄웠다.
으적!
부루의 통나무 같은 다리가 휘둘러지며 마물의 머리통을 후렸다.
동시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가 옆으로 푹 꺾였다.
누가 봐도 부러진 것이다.
목이 부러지며 쓰러지는 마물의 손에서 끝내 창대를 강탈한 부루가 한손에는 대부를 쥔 채로 두 손을 휘둘렀다.
퍼퍼퍼퍽!
기다란 창대가 다리를 후리면 대부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것들의 몸통을 찍어 버렸다.
순식간에 다섯이 토막 쳐지며 나뒹굴자 다시금 거대한 마물이 부루의 눈앞에 나타났다.
부루가 휘둘렀던 창대를 그대로 집어던지자 거대한 마물이 그것을 잡아챘다.
그리고는 한손으로 꺾고는, 붉은 빛이 감도는 안광을 뿌리며 으르렁거렸다.
-감히 필멸자의 파편 주제에…….
“닥치고 불라우. 여기 와 기어 온 거이간?”
-마계의 군주이신 기오르그의 제3군단장인 나 카르베이온.
이 차원계를 그 영역으로 만들기 위함이니라.
경배하라.
필멸자들은 위대한 마계 군주의 백성으로 되살아날…….
말을 해 나가던 거대한 마물이 부루를 보더니 순간 멈칫했다.
-파편이 아니야?
“쳐들어와? 뭐 주어 처묵을 거 있다고 기어 온 거이간?”
3군단장인 카르베이온이 얼굴을 굳혔다.
그의 시선은 부루를 향하고 있었다.
-그대 소속이 어디인가. 어찌 대항하는가.
그의 말에 부루는 미간을 찌푸렸다.
“소속은 물어 뭐하는 거이간? 길코 대항은 뭔 개똥같은 소리디?”
부루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채 다시 대부를 들어 올렸다.
그걸 본 카르베이온이 으르렁거리며 허공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처음 나타났을때처럼 보랏빛 뇌전이 그 손 주변으로 생성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손에 커다란 대검의 손잡이가 잡혔다. 그리고 천천히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루는 그게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댕정!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도끼질.
카르베이온의 손모가지가 잘려 나갔다.
-크아아! 비겁하도다!
잘려진 손목을 쥐고 비명을 내지르는 카르베이온의 모습에 부루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기본도 안 된 놈 아이간? 기럼, 무기 잡을 때까지 기다리란 말이네? 전쟁 그따우로 해 왔네?”
부루의 대꾸에 카르베이온이 그대로 몸을 뒤로 빼내었다.
서너 걸음뿐이었지만, 족히 백여 미터는 뒤로 빠져나간 것이다.
그 사이를 그의 군단병들이 막아섰다.
“……와.”
고빈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행들도 다들 입을 떡 벌린 채 을지부루를 보고 있었다.
“이, 이런 경우도 있습니까?”
기동분대장의 질문에 강문호 대위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처음 보는데…….”
소환이 완성되는 순간 적들은 그대로 사방을 쓸어버리듯 몰려 나온다.
마치 기병대의 돌파와 같이 말이다.
그것을 알기에 이들이 무장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희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대로 내달려 간 부루가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마물을 도끼로 후려치고 패니 모습을 드러낸 작은 마물들이 마치 자신들의 주인을 지키듯 부루에게 몰려간 것이다.
지금도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것들은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지휘관을 지키기 위해 그 앞을 가로막을 뿐이었다.
“그런데 저거 정말 위험한 거예요?”
“……원래는.”
강 대위의 말에 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애니에 나오는 악당마냥 나타나자마자 쳐맞는 게 꼭 병맛인 데다가…….”
빈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강 대위는 딱히 저 거대한 마물에 대한 변명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자신이 봐도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때였다.
뒤쪽에서 진동음이 울려 왔다.
“응?”
강 대위가 뒤를 돌아보자 스무 기의 기병들이 이쪽을 향해 내달려 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빈도 그 모습을 보더니 놀란 눈을 하고 외쳤다.
“저, 전신 길드다!”
전신 길드. 소환자들이 모를 수 없는 길드 이름이다.
빈 역시 부루가 고구려 무장인 것을 알고 가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물론 그럴 정신은 없었지만 말이다.
“우와, 검모잠이다!”
빈이 선망의 눈빛을 뿌리며 선두의 강림자를 바라보았다.
그 뒤를 따라 기동대와 소환자들의 바이크가 내달려왔다.
그때 바이크 하나가 옆으로 빠지며 명령을 전달했다.
“연구팀을 구하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달려온 검모잠과 나머지 강림자들
이 그대로 강 대위를 비롯한 연구팀원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뒤이어 기동대와 전신 길드의 소환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슴까!”
전신길드와 함께 온 기동분대장이 분통이 터진다는 듯 외쳤다.
누가 봐도 전투를 준비한 모습이었다.
“강 중사님?”
그때 전신길드장인 임병화가 강 대위를 알아보았다.
대침식 때 같이 작전을 펼치기도 했기에 보자마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대윕니다.”
“일단 해후는 나중에 하시고 우리가 뒤를 막을 테니 후퇴를…….”
-그어어억!
순간 병화를 비롯한 전신 길드의 소환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시선을 돌린 쪽에 마치 사방으로 포탄이 쏘아지듯 날아가는 마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강림자로 보이는 누군가가 뭔가를 이용해 카르베이온의 머리통을 후려친 것도 말이다.
“저거 지금?”
전신길드와 함께 온 기동분대장이 입을 떡 벌렸다.
그때 전신 길드장인 병화가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대체 뭡니까?”
“제 강림잡니다!”
그때 빈이 끼어들었다.
“평소 팬이었어요! 나가면 인증샷 좀…….”
그때 병화가 뭔가에 홀린 듯 걸어 나가더니 카르베이온과 싸우고 있는 강림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우루?”
“부룬데요. 우루라고 착각들을 하시는데…… 응? 길드장님도 아세요?”
순간 전신 길드원들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윤치원이 넋이 나간 채 바라보며 다가오더니 중얼거렸다.
“그게, 우리 길드명이 전신인 이유가 처음 전신 팬 카페 회원들이 주축이었어서…… 그런데 정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크어어어!
다시금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부루가 카르베이온의 머리통 위로 올라서서 연신 도끼질을 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검붉은 피가 튀고 있었다.
그런 부루를 향해 사방에 몰려온 마계군단원들이 연신 창질을 해 대고 있었다.
“검모잠!”
그때 병화가 자신의 강림자를 불렀다.
“말하시게.”
“싹 다 죽여 버려!”
“그거 기분 좋은 명령이군.”
검모잠이라 불린 거구의 강림자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몰아나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 그와 비슷한 복장의 고구려 무장들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니런 썅!”
균형을 잃은 부루가 한쪽으로 삐끗하며 떨어져 내리자 카르베이온이 그대로 그를 걷어차 버렸다.
부루는 그대로 수십여 미터는 날아가 바닥을 뒹굴다가 겨우 멈추었다.
“꼬라지가 더럽구만기래.”
그때 뒤쪽에서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울려왔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육중하게 울려 오는 발굽소리가 익숙했다.
“허?”
가우리의 기병들이었다.
“이거이 반갑다고 해야 하는 거간?”
약간 당황스럽다는 듯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지고 있었다.
왠지 가슴 한 구석이 든든해졌다.
“나 검모잠! 그대를 구하러 왔다!”
선두에서 달려온 검모잠의 외침에 부루가 인상을 팍 썼다.
“닥치고 공격하라우!”
부루의 윽박지름에 순간 기병들이 움찔했다.
“뭐하네? 놀고 있는 거이간!”
이어진 부루의 외침에 기마들이 일제히 속도를 높여 갔다. 그 모습을 보며 부루가 입맛을 다셨다.
“말은 또 어서 난 거이야.”
말을 타고 질주하는 저들을 보며 부루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콰콰콰콰!
그대로 내달려간 기병들이 일제히 적들을 몰아쳤다.
말의 몸뚱이에 치인 군단병들이 이리저리 나동그라졌다.
틈이 생겨난 그들에게 강림자들의 무기가 떨어져 내렸다.
콰작! 콰작!
“됴아.”
그제야 기분이 좋은 표정을 지은 부루가 다시 대부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다시 달려 나가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검모잠이라 스스로를 밝힌 무장을 바라보았다.
“어서 많이 본 아새끼 같은데.”
왠지 익숙한 얼굴이었다.
뭔가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하지만 이내 부루가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