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침식균열을 경험한 자들
검은 먹구름을 바라보던 박민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거 뭐지?”
“전원 집합!”
“예, 길장님!”
민구는 집합 소리에 황급히 달려갔다.
다행히 지금은 전투가 마무리 되고, 부산물들을 채집하던 중이었다.
길드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기동대 분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길장님 저건 뭐에요?”
민구의 질문에 길드장 대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1팀장 윤치원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교육시간에 졸았어? 저거 침식 균열이잖아.”
“아아.”
침식균열이라는 말에 민구가 알았다는 듯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길드장 대신 대답해 주었던 1팀장 치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존 거 맞네.”
그의 말에 민구는 멋쩍은 웃음을 머금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다들 약간 불안한 정도의 표정을 짓고 있기는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치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치원은 길드원들을 뒤로하고 길드장 임병화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원입니까?”
큰 키에 약간 까무잡잡한 서구적 외모를 가진 덕에 외국용병이라는 별명을 가진 병화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한 일이겠지.”
“오늘 침식지 들어온 강림자가 몇이나 됩니까?”
“길드 단위는 우리뿐이고 파티 단위가 다섯. 그리고 연구 목적 하나. 그런데 파티단위는 장벽 농성을 하겠단다.”
“에이씨.”
그 말에 치원은 반사적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강림자 스물.
적지 않은 수다. 거기에 전력도 손꼽힌다.
당연했다.
기본 가입조건 자체가 높고 또 강림자들간의 케미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길드 소속 강림자의 시대가 모두 같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고구려.
대한민국 사람의 기억 속 고대 왕국 중 고구려만큼 위대하게 각인 된 나라는 없다.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 하나의 조건 덕에 모여들었지만, 모이고 나니 다른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한 시대와 동일국가 소속 강림자가 일정 이상 모이게 되면 위력이 상승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길드장인 병화의 강림자가 영웅급 강림자라는 것이다.
고구려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검모잠이 바로 그의 강림자였다.
“길장, 피해야 하는 거 아냐?”
치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병화가 한숨을 내쉬며 옆을 돌아보았다.
초기부터 활동한 소환자들의 표정은 치원과 같이 심각함이 깃들어 있었다.
반면 삼분지 이 가량의 대침식 이후 합류한 소환자들은 약간 위험한 거 아니냐는 표정이 전부였다.
겪어 보지 못하고 정보로만 접한 이들의 특징이다.
그나마 두셋은 교육시간 때 흘려들었는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동원령이 떨어졌습니다.”
기동분대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왔다.
지금의 상황은 강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발생한 균열의 경우 인근의 강림자를 소유한 소환자에게 의무적으로 토벌명령을 전달한다.
그러나 침식 균열의 경우는 달랐다.
침식균열은 아직 토벌된 역사가 없는 사태다. 시간을 끄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편제를 외부에서 만들어서 진입하는 것이 최선이다.
혹은 장벽을 의지하고 버티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이 필요한 것은 바로 침식균열을 통해 나타난 엘리트 마물의 방향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다.
평소라면 드론을 띄우겠지만, 침식균열이 일어나면 전자장비는 먹통이 된다.
평소 잘 터지던 무전도 안 터진다. 그렇기에 육안으로 확인만 하고 이탈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동분대장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침식지 안에서의 의무동원은 불가이기 때문이다.
요청이 전부다.
물론 장벽에 도착하는 순간 다시 자동 소집으로 변하지만 말이다.
“일단 최악의 경우 소환자들만 이탈하는 걸로.”
병화의 말에 치원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안 되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막지 못하면 침식지대가 확장된다는 건 알잖아?”
“그야 그렇지.”
문제는 이거다.
장벽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진행을 멈추지 못하면 침식지대는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실제 아프리카의 일부는 침식지가 계속 늘어나 아예 국가가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침식지는 단순히 마물이 나타나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죽음의 땅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농사가 불가능한 땅이 된다. 물론 이곳의 식물 중에 약용으로 쓰이는 것도 있다.
섭취가 가능한 것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생존에 가능한 만큼은 아닌 것이다.
거기에 대침식 때 이곳을 정리하겠다고 지어놓은 전진기지는 빠르게 부식되었다.
백 년 이상을 간다는 콘크리트는 십 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부식되었다.
결국 침식지의 확대는 인간의 영역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였다.
“가는 걸로 하고 치원이 너는 외부에 연락해서 길드 총 소집령을 내려.”
“알았어.”
치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병화의 명령을 따랐다.
다행히 아직은 통신이 터지는 터라 외부의 길드에 연락을 넣을 수 있었다.
그때 이 소식을 전하던 기동분 대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뭐! 연구팀이 현장에 있다고! 씨팔 거기 우리 애들 2개 분대 차출된 곳 아니야? 연락은? 처음 발생 때 이후로 끊어져? 야이씨!”
분통이 터지지만 차마 욕설을 내뱉지 못한 기동분대장에게로 병화가 다가가 물었다.
“연구팀이 현장 근처에 있습니까?”
“예. 길드장님. 후우.”
“바로 이탈을 하지 않았을까요?”
병화의 질문에 기동분대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거기에 고작 강림자 하나만 있는 상황이라.”
“아니 강림자가 달랑 하나인데 연구팀이 들어와요?”
연락을 마치고 온 치원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어왔다.
“예. 듣기로는 그 강림자가 바로 연구대상이라고 해서…….”
강림자가 연구대상이라는 말에 치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웅급이라도 되는 겁니까?”
“그게…….”
아침에 웃은 기억이 나는 기동 분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0.00001이라고…….”
치원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병화는 속단은 이르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원시부족장의 경우는 인지도로 파악할 수 없어. 그렇다면 미국은 벌써 망했지.”
미국의 경우가 그랬다.
미국은 인종의 백화점이라 부르는 만큼 다양한 국적의 강림자들이 소환되었다.
그러나 그중에 의외로 다수를 차지하는 건 바로 인디언이라 불리던 이들 혹은 그 조상들이었다.
인지도는 바닥을 기었지만, 실제로 그 능력은 인지도와 비례하지 않았다.
0.1의 강림자가 인지도 1 이상의 강림자보다도 강한 경우가 있었다.
또 소수점 두세 자리의 경우도 그런 상황이 있기는 했다.
물론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소수에 불과한 경우고, 그나마도 미국이라는 곳에 조금 더 이례적인 결과를 보이는 강림자의 숫자가 조금 더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0.00001이라는 것.
“확실히 연구대상일 수는 있겠군. 그래도 이곳에서 연구를 한다는 건 좀 능력이 있다는 것일 수 있으니 가능하면 생존 확인까지 하면 될 듯합니다.”
병화의 말에 기동분대장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채집조는 파밍을 멈추고 이탈한다!”
한쪽에서 울려 퍼지는 치원의 외침에 몇몇 소환자들이 당황했다.
“아직 남았는데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야! 니들이 침식균열을 당해 봤어!”
치원이 버럭 소릴 지르자 다들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소수지만 경험해 봤던 이들은 굳은 얼굴로 그들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전파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병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길드원들의 실력을 점검하기 위해 만만한 침식지대를 골라 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에 맞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소환자 호위인원으로 따라 붙은 기동대도, 둘로 나뉘어 예비 소환자들인 채집자들을 이끌고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비를 마친 소환자들도 강림자들과 함께 이동을 시작했다.
그러자 선두에 길잡이를 하는 기동분대장이 무전을 쳤다.
“마지막 무전이다. 전신 길드. 길드장 외 십구, 강림자 스물. 기동대 오인 지금 현장으로 위력 정찰 이동한다.”
그 말을 끝으로 다들 빠르게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 * *
파지지직!
하나의 큰 보랏빛 덩어리 주변으로 작은 덩어리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기동대원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했다. 강문호 대위 역시 얼굴을 굳혔다.
“부대단위군.”
“부대단위요?”
강 대위의 말에 고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우리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이야. 철수를 선택했어야 했나.”
처음에 하나만 발생하기에 단독 개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주변으로 형성되는 것을 보니 부대단위의 마물이 틀림이 없었다.
강 대위가 중얼거리는 순간 기동대원들은 각자 자신의 바이크에서 무장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부대단위는 다행이지만 유탄 정도는 먹힌다. 물론 완전 제압은 어렵다.
여러 발을 날려야 겨우 제압되는 수준이니까.
“빨리 끌고 와!”
기동대원 중 하나가 커다란 덩치의 바이크를 끌고 왔다.
그리고는 뒤 안장을 열었다.
“저거?”
“K4 고속유탄 발사기.”
“와!”
묵직한 형태의 고속유탄 발사기까지 가지고 다닐 줄은 몰랐던 빈이었다.
사실 거의 쓸 일이 없기는 했다.
그 타격량이나 충격탄환이나 가성비는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곳 침식지 공동묘지에서는 가끔 유용하게 쓰이기에 가져온 것이다.
다만 말 그대로 고속유탄발사기라는 말에 어울리게 잡아먹는 탄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일회용에 가까운 활용도를 가지고 있었다.
기동대원들의 이동수단은 바이크니까.
“젠장, 이탈할 때 시동 제대로 걸려야 하는데.”
“시끄러! 빨리 탄 모아!”
각자 기동대원들의 소지하고 있던 40미리 유탄들을 모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모아주고 그들 역시 충격탄의 총몸에 다른 것을 붙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개인용 유탄발사기다. 이곳에선 소총탄은 의미 없는 무기다.
그리고 RPG-7 두 대.
그게 이들의 화력 전부다.
물론 일개 분대의 화기로 따지면 어마어마하지만, 실제로 이 정도가 최소한이다.
그나마 균열을 통해 나타나는 개체들이 젤리베어 같은 종류라면 그땐 이것마저 다 버리고 뛰어야 했다.
그것까지 생각했는지 무거운 장비들을 모두 내려놓고 있었다.
탈출을 염두에 둔 것이다.
“왜 홀려가지고는 아까 안 튀다…….”
“끙.”
기동대원들은 다들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강 대위 역시 쓴웃음을 머금었다. 침식균열을 경험 안 해본 것도 아닌데 홀리듯 남아 버렸다.
대침식 세대로서는 낙제점이다.
“후우.”
그래도 왠지.
기대감이 있었다.
부루라면 뭔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 말이다.
마치 이곳이 익숙해 보이던 그라면, 뭔가 이 세상을 구원해 줄 해결의 실마리라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말이다.
“준비!”
“긴장해! 곧 시작이다!”
다들 한껏 긴장한 채로 점점 형태를 만들어 가는 작은 구체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