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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6화 (26/305)

제26화 낯선 세상의 익숙한 풍경

빈이 멍한 얼굴로 달려 나가는 부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늦게 뒤에서 울려오는 함성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빈이 여전히 멍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니 기동대원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내달려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강 대위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묘하게 상기된 모습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 역시 눈치챌 수 있었다.

“어우, 뭐야…….”

뜨거운 남자들의 시선에 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문득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리저리 부서지고 잘려나간 마물의 잔해들.

“헐?”

꽤나 많았다.

물론 이중 부루가 손쓴 것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빈이 처리한 게 더 많게 느껴졌다.

뒤섞여 있지만 잔해의 상태를 보면 바로 티가 났다.

어설프게 박살 난 건 빈이 한 거고, 완전 작살 난 건 부루가 한 거다.

시체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빈은 뒤늦게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끼고 있었다.

“와 대박…….”

정신없이 싸웠다 싶었는데, 이제야 눈에 그 결과물이 들어온 것이다.

왠지 뿌듯했다.

사실 소환자의 생존력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실 그게 아니라면 누가 이 위험한 침식지대에 들어서겠는가.

소환자가 강림자를 불러낸 순간부터 신체적 방어력이 올라간다는 건 상식이다.

특히 마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방어력이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을 반쯤 믿고 또 부루가 최악의 경우에는 보호해 줄 것을 믿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마지막 젤리베어의 경우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무쌍을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히려 젤리베어가 더 손쉽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이거 묘하게 들뜨네.”

빈이 고개를 돌려 부루를 바라보았다.

성격 나쁜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다.

또 자신은 왜 이렇게 뽑기 운이 나쁜가도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마물들을 직접처리 하고 나니 기분이 묘하게 들떴다.

그때 유령마를 타고 내달려오는 마물들을 들이치는 부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는 마물을 그대로 대부로 올려쳤다.

유령마의 몸통이 그대로 갈라지며 그 위에 타고 있던 스켈레톤 나이트의 허리가 동강이 나 떨어져 내린다.

이어 부루가 몸을 띄웠다. 그 육중한 몸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날렵함.

무너져 내리는 스켈레톤 나이트의 잔해를 밟고 쏘아진 부루가 그대로 무릎으로 뒤이어 달려오는 나이트의 면상을 부수며 나아갔다.

이어 다시 하강곡선을 그리며 휘두른 대부에 뒤따라 달려오던 스켈레톤 솔저 서넛을 그대로 부수었다.

맨주먹을 휘두르면 하얀 해골바가지가 석고상 부서지듯 하얀 분을 날리며 박살이 나고.

대부를 휘두르면 그 궤적에 걸리는 건 뭐든 두 쪽이 났다.

몸통으로 밀어붙이니 서넛은 그대로 트럭에 치인 것 마냥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박살이 나 버린다.

“하아…….”

빈은 그 모습을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벌벌 떨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미치겠네.”

분명 부루의 말대로 피로가 몰려오는 듯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흥분감.

저 모습을 보니 그 흥분감이라는 게 묘하게 몸을 휘감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투투투퉁~!

뒤에서 연달아 울려오는 중저음의 토출음.

어린아이 주먹만 한 둥근 것들이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전투를 벌이고 있는 부루의 주변에 있던 스켈레톤 솔져들의 몸통이 바스라졌다.

기동대원들이 어느덧 달리던 발길을 바꾸고 충격탄을 쏘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물론 그러면서 만들어 낸 화망은 착실하게 적을 부수었다.

“끄응.”

갑자기 좀이 쑤셨다.

빈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떨리던 팔다리도 약간이지만 잠잠해졌다.

“후으으읍! 파아아!”

심호흡을 한 빈이 다시 도끼를 거머쥐고 내달렸다.

“간드아아아!”

빈이 다시 적진을 향해 내달렸다.

사방에는 잔해뿐이다.

박살이 난 뼈다구와 희한한 유체 형태의 잔해들.

격전의 결과물들이었다.

그리고 유독 뭔가가 많이 박살이 난 곳에 빈이 있었다.

웅크리고 말이다.

“내래 기냥 있으라 했디?”

“끄응…….”

빈이 신음을 흘리더니 웅크리고 있던 자세를 겨우 풀며 옆으로 털퍼덕 자빠졌다.

“저…… 살아는 있죠?”

빈이 죽을상을 하고 부루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 빈을 바라보며 부루가 말했다.

“살아 있는 것 같네?”

“아픈 거 보니 그런 것 같은데요?”

“기거이 착각이야.”

“네?”

부루가 천천히 대부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데질 거이니까네.”

“저, 저기요? 아저씨? 장군님? 대장군님!”

부루의 매질이 시작되었다.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마치 목욕이라도 한 것마냥 땀을 뚝뚝 흘리며 걱정스러운 질문을 해오는 기동대원에게 강 대위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훈련 같은 거라 생각하면 돼.”

“맷집 훈련 비슷한 겁니까?”

이어진 기동대 분대장의 질문에 강 대위가 살짝 멈칫했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그냥 말 안 들어서 쳐맞는 거 같다고 대답하는 것보다는 그게 모양새가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기동대원 중 하나가 탄성을 흘렸다.

“어쩐지 아까 갑자기 달려가더니 포위당해서 미친 듯이 맞던 것도 훈련이었나 보네?”

“오! 외가기공! 금강불괴라도 만드는 건가?”

아까까지만 해도 판타지를 넘나들던 기동대원의 비유는 이젠 무협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강 대위는 자신의 표정을 들킬까 몸을 돌리며 구타당하는 빈을 바라보았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혼자 신이 나서 달려갔다가 포위되어서 미친 듯이 밟히던 것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구은태 박사가 멍한 얼굴로 다가왔다.

“이게 가능하다니…….”

“솔직히 이런 건 생각도 못 해 봤지요.”

“그러게 말이네.”

“혹시 저 강림자분이 뭔가 훈련 비슷한 특성이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친절해 보이던가?”

“아니겠군요.”

강 대위의 재빠른 방향전환에 구 박사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허헛!”

“이제 뒷수습을…….”

갑자기 맞는 소리가 멈췄다.

말을 하던 강대위의 목소리도 흩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전투가 끝난 뒤 여유를 부리며 농담을 주고받던 기동대원들 역시 입을 다물었다.

쿠구구구구.

공기가 떨고 있었다.

“이거…….”

갑자기 검은 구름이 하늘 한 곳에 뭉치기 시작했다. 그걸 본 구 박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침식균열?”

엄밀히 말하면 균열현상과는 다르지만 그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동시에 기동대원이 빠르게 무전을 치기 시작했다.

“장벽! 장벽! 여기 E3지역 침식 균열발생! 보이냐?”

-관측병 확인했다. 지금 인근 소환자와 강림자에게 협조 구해 놨으니 즉각 안전한 장소로 이탈을 권유한다. 이탈하라! 이탈하라!

장벽에서도 관측이 되었는지 무전기에서는 이탈하라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침식지에서 침식균열이 다시 발생하다니…….”

구 박사가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침식균열이라 불리는 일이 벌어지면 반드시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 나타난다.

이상에서 균열이 벌어지는 것 역시 일반인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균열현상이라 명하며 항상 피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침식지에서 벌어지는 이 일 역시 그런 의미로 침식 균열이라 불린다.

처음 침식지가 생기고 난 뒤 안정화 작업을 위해 침식지대를 정리하기 위해 진입했을 때 생겨났던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침식지 위의 개체를 한계이상으로 정리할 때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마물들이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에 유사한 형상의 마물들이 나타나기도 했고, 일부는…….

“악마형일까?”

구 박사가 캠코더를 보며 고민에 빠진 얼굴을 했다.

악마의 형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 박사가 고민에 빠진 것이다.

이 일의 원인을 아는 적의 등장이라고 판단하기에…….

“그런데 개체수가 그렇게 줄어든 것은 아닌데 어떻게…….”

기동대 분대장의 중얼거림에 구 박사가 대신 설명을 해 주었다.

“개체수가 현저하게 낮아질 때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지만, 과포화 상태에서도 벌어진다네.”

“예? 하지만 강림자 투입숫자는 항상 장벽에서 체크합니다!”

과포화 현상.

강림자 전력이 과도하게 몰릴 경우 마치 침식지들은 마지막제 항이라도 하듯 침식균열을 일으킨다.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한 번도 막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양측 다 상처뿐인 결과만 가져왔을 뿐이다.

구 박사가 긴장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침식지 과포화 현상의 원인은 강림자 머리 숫자가 아니네.”

그의 말을 받듯이 강 대위가 말을 이었다.

“힘이지.”

전체 전력이 얼마나 강한가가 바로 저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강 대위의 시선이 침식균열을 응시하고 있는 부루의 뒷모습을 향하고 있었다.

“…….”

검은 구름이 모이고 그 사이로 보랏빛 번개가 거미줄처럼 내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말없이 응시하던 부루가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우.”

“피, 피해야 해요! 침식균열이에요!”

“아까도 말했디만, 쉴 땐 쉬어야디.”

이어진 말에 빈이 악을 썼다.

“알았으니까 튀자고요!”

“호들갑 말라우. 내래 궁금하던 거이 많아서 말이디. 좀 물어봐야갔어.”

“아저씨!”

“떠들디 말고.”

부루가 걸음을 내딛으면서 고개를 슬쩍 돌렸다.

질린 얼굴의 빈을 보며 부루가 다시 말을 이었다.

“믿으라.”

그리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나갔다. 그때 그의 곁으로 달려온 강 대위가 빈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가시는 거냐?”

“미치겠네!”

“빈!”

“몰라요! 쉬래요!”

빈의 말에 강 대위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쉬다니?”

“뭐 물어보러 가신다고 쉬래요. 미치겠네.”

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부루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강 대위는 픽하니 웃음을 흘렸다.

짧은 기간 이들을 지켜봤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들은 기존 소환자와 강림자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믿자.”

강 대위가 말했다. 그러자 빈이 피식하니 웃으며 대답했다.

“부루 아저씨가 그러대요?”

“응?”

“믿으라고.”

빈의 말에 강 대위가 풋 하니 웃음을 흘렸다.

왠지 빈의 말이 와닿았다.

믿으라는 말.

그게 참 이렇게 편한 말인가 싶었다.

콰르르릉!

부루가 다가오는 것을 밀어내기라도 하듯 사방에서 거센 바람이 몰아쳐 오기 시작했다.

방향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부루는 편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제 좀 물어볼 만한 것들이 나타나는 거간?”

처음 보는 세상에 나타난 익숙한 환경.

궁금한 게 많았다.

천국에서 왔노라 말했지만, 부루가 생각하기에 그곳은 지옥이었다.

끝없는 전투의 굴레.

그런데 그 흔적이 이 세상에 있었다.

후손의 세상에.

“궁금하군 기래.”

부루가 어깨에 걸터 매고 있던 대부를 천천히 늘어트렸다.

부루가 보랏빛 뇌전이 뭉치고 있는 곳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왜 사람 사는 세상에 지옥이 생겨났는지 말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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