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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5화 (25/305)

제25화 고빈은 선구자

이들을 F급이나 E급으로 부르는 건 어디까지나 원거리에서 현대 화기등을 이용해서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지, 붙어서 맞싸울 만하다는 건 아니었다.

“크라락!”

스켈레톤 소드맨이 다시 골검을 쳐들었다. 균형을 완전히 잃은 빈이 비명을 질렀다.

“오메!”

퍼걱! 그때 스켈레톤 소드맨의 머리통이 박살이 났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리는 거이간? 어깨에 힘이 들어갔잖네.”

“으쌰아!”

부루의 윽박지름에 빈은 대답대신 다음 타깃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 옆에서 부루가 적절하게 개체수를 줄여 주며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오! 대단하구먼!”

구 박사는 연신 탄성을 터트리며 환호했다.

기동대원들 역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소환자가 강림자를 불러내는 순간 그 방어력은 일반인과 달리 크게 올라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환자가 직접 싸운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실제 대침식 초기 일부 소환자들이 전투에 끼어들었다가 순식간에 살해당하는 일들이 부지기수였다.

소환자가 사라진 강림자 역시 다시 역소환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금기시 되었었다.

그런데 그 금기가 지금 눈앞에 펼쳐졌다.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소환자가 너무 무리하는 것 같은데…….”

기동대 분대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강 대위에게 말을 걸었다.

“그게, 말려서 될까…….”

“물론 아직 신체능력이 조금 올라서 기분이 붕 뜬 상태일 수는 있지만, 소환자는 소환자 아닙니까.”

강 대위는 쓴 웃음을 머금었다.

지금 말려야 할 대상을 착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설명을 해도 의미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소환자도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눈으로 보고 있었다.

분명 물리력에 대한 능력이 올라간다는 건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섣불리 단언할 수 없지만, 소환자도 강해질 수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소환자는 귀한 존재이기에 보호할 생각만 했지, 그 능력을 키워 볼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소환자들이 그럴 생각을 안 한 것도 사실이었다.

강림자가 알아서 대신 싸워 주는데 누가 피땀을 흘려가며 훈련을 하겠는가.

보통 소환자는 자신의 방어에 신경을 쓰며 벌어들인 돈을 그쪽에 투자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물론 여전히 위험한 것은 맞았다.

소환자는 중요한 존재이기에 보호를 해야 하는 것도 맞았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 강해질 수 있다면 하는 게 맞았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침식지만 가도 기동대는 무용지물이 된다.

그들도 사람이다.

의미 없는 시간 끌기용으로 그들을 투입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또 만약에 그러라 한다고 누가 따르겠는가.

물론 목숨을 걸어서 의미가 있다면 자원하는 병력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누구도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모습은 귀중한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

소환자도 사람이라,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적극적인 대처가 안 된다.

그러나 소환자 자신도 강림자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대응을 할 수 있고 싸울 수 있는 능력 혹은 시간을 끌 수 있기만 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소환자가 전부 겁쟁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침식 때 가족을 잃어 복수에 불타는 이들도 있을 수 있고, 공명심을 가진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능력만 주어진다면 더 적극적일 수 있는 소환자들이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저 정도까지…… 원래 저 친구 특수부대원이었다던지 뭐 그런 거였습니까?”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각이 없잖아. 딱 봐도 예비군 훈련 때 짱박히는 스타일 같은데.”

“그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빈은 민간인 중의 민간인이다.

그럼에도 또 위태롭긴 해도 하나하나 마물들을 물리쳐가고 있었다.

그때 처음 말려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 왔던 분대장이 강 대위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소환자 생존력 향상을 위한 연구가 있었던 겁니까?”

“일단 비슷하지.”

“정말…… 이게 가능하다면 침식지 공략에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기동대쯤 되면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이다.

척하면 착 하고 알아듣는다.

물론 지금 이 행위는 학대행위를 외면하며 그 대가로 연구를 하는 거긴 하다.

허나 굳이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물리력이나 화기가 통하지 않는 마물에도 통하면 정말 대박인데…….”

“보면 알겠지.”

그게 바로 이 침식지로 온 이유다.

이곳 공동묘지라 명명된 침식지에는 허약하긴 해도 물리력이 통하지 않아 D급으로 분류되는 마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웨에엑!”

“얼마나 했다고 토악질이네, 토악질이…….”

“수, 숨 좀 돌려야…….”

운동을 지나치게 하면 욕지기가 올라온다. 지금 고빈의 상태가 그랬다.

최근 을지부루의 훈련에 익숙해지면서 구토를 하는 일이 적어졌지만, 실전에서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까딱하면 목숨이 날아갈지 모른다는 긴장감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고 또 몸을 움직였던 것이다.

“슬슬 오는구만.”

“예? 혹시?”

“기래.”

“그, 그건 아저씨가 처리하실 거죠? 그거 물리력이 안 통하는 거니까.”

빈이 불안한 시선을 부루에게 보내며 물었다.

그러자 부루가 웃으며 대답했다.

“해 봤네? 해 보디 않고 포기 말라우.”

“…….”

그 옛날 분단국가 시절 소떼를 몰고 북으로 올라갔다던 재벌 총수의 유명한 명언이 지금 이 순간 빈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아마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다.

‘꼭 해 봐야 하나요?’

그걸 부루에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 아니 강림자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제, 제엔장!”

“준비하라.”

부루가 히죽 웃으며 빈에게 말했다.

그 순간 그들의 앞에 젤리같이 반투명한 곰 모양의 마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젤리베어…….”

유명한 젤리회사의 곰 모양 젤리가 연상되는 이름이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귀엽지는 않았다.

하나같이 성인 남성의 크기는 훌쩍 넘는 키를 가지고 있었고, 마치 곰의 형태를 하고 피부가 흘러내리는 듯한 외모는 혐오스럽기 딱 좋았다.

화기가 안 통하는 대표적인 마물들이다.

그냥 통과한다.

총알도, 알라의 요술봉이라 불리는 휴대용 대전차탄도.

그냥 통과한다.

그러니 상대할 방법도 없다.

딱 하나 있다면 트럭 같은 걸로 밀어 버리는 거다.

최소한 몸통이 죄 흩어져 버리면 스르륵 모이는 괴기스러운 재생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게 잘 안 통하는 건 그렇게 둔한 개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 곰젤리 좋아하는데…….”

울상을 지은 빈이 뒷말을 흐렸다.

아마도 앞으로는 다시 쳐다도 안 보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걱덩하디 말라. 내래 못하는 걸 시키는 거 봤네?”

“……못하는 걸 할 때까지 시키는 건 봤어요.”

“기래? 기럼 이번에도 할 때까지 해 보라우.”

태생적 깐족이인 빈의 어법에 이젠 꽤 익숙해졌는지, 부루의 대꾸 역시 점점 얄미워져 갔다.

“으흐흐흐!”

웃는 게 아니었다.

흐느끼는 거다.

빈은 그대로 달려 나가며 도끼를 휘둘렀다.

퍼어억!

“어억!”

도끼가 젤리베어를 관통하는 순간 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어 빈의 몸뚱이가 볼품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고개를 들어 올린 빈이 당황스런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이거?”

도끼에 맞은 젤리베어가 상체와 하체로 나뉘어 그대로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삼분지 일 이상만 토막 내라우. 기럼 끝이야. 용쓸 필요도 없디.”

“어…….”

분명 도끼가 닿는 순간 약간의 반발력은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오히려 그 반발력만 통과하면 마치 두부를 가르는 것 마냥 후루룩 지나간다.

빈이 나뒹군 이유는 단순했다.

잔뜩 힘을 주어 휘둘렀기 때문에 자기 힘에 못 이겨 자빠졌던 것이다.

“이, 이거?”

빈이 떨리는 눈으로 부루를 바라보았다. 부루가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말했다? 내래 못하는 걸 시키디는 않는다고.”

벌떡 일어선 빈이 외쳤다.

“오늘 무쌍 한번 찍는다! 드루와! 드루와!”

빈이 도끼를 고쳐 쥐고 젤리베어들 사이로 달려 들어갔다.

퍼퍽! 퍽!

아까와 달랐다.

도끼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이리저리 종횡무진 한다.

사방에는 터져 나가는 젤리베어들이 기괴한 비명과 함께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일부 덜 잘린 것들이 빈에게 달려들려 하지만 그것들은 뒤를 따르는 부루에 의해 다시 박살이 났다.

그렇게 빈은 처음으로 강자의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 젤리베어가?”

기동대원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칫 젤리베어의 몸에 갇혀 호흡이 차단되어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던 것과 달리, 빈은 훌륭하게 잘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SF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처럼 종횡무진 하고 있었다.

“이, 이거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기동대 분대장의 질문에 강문호 대위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저 정도일 줄은 몰랐지.”

“정말, 저 빈이라는 친구는 선구자가 될 겁니다!”

“그, 그렇지.”

“저 친구는 영웅이 될 자격이 있다고요!”

“그, 그 정도는…….”

강 대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분대장과 대원들은 열띤 얼굴로 외쳤다.

“무슨 소립니까! 강 대위님은 우리보다 더 전문가잖습니까! 저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시잖아요!”

“그렇지. 그렇긴 한데…….”

“분명 두려웠을 건데. 정말 대단한 친굽니다.”

“맞아. 항상 두려워했지.”

강 대위는 이것만큼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저 위에 깃발이 있던 곳이 분주 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먼지구름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본대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본 기동대 분대장이 사기가 오른 목소리로 외쳤다.

“호위조만 빼고 모두 준비해!”

그 말에 다섯 명으로 구성된 호위조만 구 박사의 주변에 남아 벽을 쌓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방패를 다시 뽑고 등에 찬 후 각자 화기를 양손으로 쥐었다.

그리고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 상체를 기울였다.

“분대 약진 앞으로! 접전 백 미터 전까지!”

“와아아아!”

그 소리와 함께 스무 명도 안 되는 인원들이 사기충천한 함성을 내지르며 내달렸다.

그 무리에는 강 대위도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왠지 가슴 한구석이 두근거리는 기분도 들었다.

그 때문인지 강 대위도 어느새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으아아아!”

“후욱!”

빈이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는 마물들의 본대를 바라보았다.

“좀 쉬라우. 이제 조금 몸 쓸 줄 아는구만 기래.”

“예? 하하, 이제 몸이 풀리는데요?”

“쉬라우. 다리가 춤을 추고 있잖네.”

부루의 말에 빈이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부들거리고 있었다.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긴장을 해도 문제디만, 흥분을 해도 문제인 거이디. 내가 힘이 얼마나 빠졌는지도 모르는 거이니까네.”

그 말을 남기고 부루가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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