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지옥 훈련…… 아니 그냥 지옥
* * *
고빈은 죽을 지경이었다.
“웨에엑!”
이미 여러 번 게워냈음에도 뭐가 남았는지 자꾸만 쏟아진다.
물론 건더기보단 멀건 국물의 비율이 훨씬 높은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다 뱉었으면 띠라우.”
“자, 잠깐만요!”
“이만큼 비웠으면 몸도 가벼워졌을 거 아이간? 띠라우. 띨 필요 없는 다리면 말하고 말이디.”
“아흑!”
을지부루의 권유에 빈은 다시 달렸다.
치외법권이라는 게 있다.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지역을 말하는 건데, 부루야말로 움직이는 치외법권이었다.
강림자에 대한 법률이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는 소환자와 강림자간의 특성 때문이었다.
소환자의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강림자.
물론 고위 강림자의 경우 소환자의 명령을 포괄적으로 해석에 일일이 지정해 주지 않아도 능동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사고치지 않는 범위에서만의 이야기다. 그런데 부루는 다르다.
능동적으로 사고를 서슴없이 치는 것은 물론이고 뒤집어씌우기 까지 한다.
심지어 소환자를 핍박하기를 밥 먹듯이 하며 노예처럼 부린다.
문제는 이걸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다는 거다.
일부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안 믿는다.
그중 강문호 대위나 구은태 박사는 오히려 좋아하는 눈치다. 새로운 연구 대상이니까.
판도라 멤버와 그날 팬미팅 행사처럼 몰려들었던 인간들은 더 했다.
‘당연한 거 아냐?’
남의 여자가 되면서 빈의 2픽이 된 제이의 반응이었고,
‘그냥 적응하면 쉬워요.’
천진난만하다 못해 뇌가 백지 같은 레이니의 반응이었으며,
‘그런데요?’
내 1픽이었던 세인의 배신감 넘치는 답변이었다.
그 외에도 대답은 다 비슷했다. 안 그런게 이상하다는 둥, 그래도 정 붙이면 좋은 사람이라는 둥…….
“좋은 사람은 개뿔!”
빈은 울분을 터트리며 텅 빈 운동장을 비틀거리며 돌았다.
빈은 맨몸으로 관사 벽을 오르고 있었다. 물론 잡을 곳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간밤에 부루가 어디선가 가져온 말뚝을 관사 벽 여기저기에다 박아 넣었다.
물론 아침에 그걸 본 관리병이 울며 달려갔다.
다행히 구은태 박사의 입김이 닿아 넘어갈 수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어울렸다.
그걸 바라보던 강문호 대위가 슬쩍 질문을 던졌다.
“저건 좀 무리 아닙니까?”
“궁금한 거이네?”
강 대위의 질문에 부루가 슬쩍 바라보며 되물었다.
“아니 그것보단…….”
“해 보면 알디 않갔어?”
“여보세요? 아! 지금 내가 빨리 가 볼 테니까…….”
부루의 권유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강 대위가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그때였다.
“아아아아악!”
쿠웅!
부루가 고개를 돌려보니 이층을 거의 올랐던 빈이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추락한 것이다.
“비니!”
부루가 빈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갔다. 그러자 빈이 벌떡 일어서더니 다시 열심히 올라갔다.
부루의 손에 빈이 예쁘게 쪼개 놓았던 장작이 몽둥이로 용도가 변경되어 들려 있었던 것이다.
“아! 이제 적응이 됐구만!”
“아흐흐흑!”
빈이 울며 열심히 올랐다.
그런 빈에게 부루가 외쳤다.
“이제 쉰 번만 더 왕복하면 끄티야! 힘 내라우!”
관사가 이층밖에 안 되는 탓에 숫자가 좀 늘었을 뿐이다.
왕복 이백 번.
그 대단한 것을 빈은 열심히 소화해 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걸 바라보는 부루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이 맛이디.”
그 옛날 부월수들을 신나게 굴리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고 있었다.
“쪼개라우.”
을지부루의 서늘한 음성에 빈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이건 정말…….”
“나라고 생각하고 내리치…….”
와작!
“아!”
부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빈은 자기도 모르게 도끼를 내리쳤다.
그 결과 부루가 잡아 놓았던 러닝독 한 마리가 양단이 되어 비명도 못 지르고 혀를 빼물고 죽었다.
“이, 이건?”
가장 놀란 건 강문호 대위였다.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그는 이 훈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러닝독 정도면 어느 정도 화기가 통하는 개체기 때문에 저렇게 잡아 놓고 찍으면 잘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깔끔하게는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걸 빈이 해낸 것이다.
물론 그간의 지옥훈련을 빙자한 지옥생활 속에서 일취월장하기는 했다.
저번에는 맨몸으로 판도라 사옥 빌딩을 오르다가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통나무는 예전에 수련을 끝내고 지금은 암석으로 대상이 바뀌었다.
그 덕에 암석이 아름다운 명승지 하나가 작살이 나면서 지방자치의 추적을 받기도 했다.
“당연한 건가…….”
강 대위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훈련들을 떠올려 보니 왠지 지금 결과가 놀라운 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은혜를 원수로 생각한 거간!”
“이게 은헵니까! 빌딩에서 떨어져 봤어요! 아무리 거죽이 두꺼워도 창자가 땅바닥에 붙었다가 되돌아가는 느낌이 얼마나 찰진지는 아세요!”
“닥치라우!”
부루는 쫓고 빈은 도주한다.
자기라고 생각하고 쪼개랄 때는 언제고 똑 부러지게 해내니까 화풀이를 하고 있는 거다.
“문제는 C급 이상인데.”
전부는 아니지만 보통은 C급이라 불리는 것들부터는 일반적인 화기가 잘 안 통한다.
물론 알라의 요술봉 정도는 꽤 피해를 준다.
그러나 일부는 아예 물리에너지 정도의 타격만 받고 일어서거나 거대한 종류는 아예 물리에너지도 안 통하는 경우가 있었다.
“뭐,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야.”
강 대위는 피식하고 웃었다.
보통 균열은 하급이 주로 튀어나온다.
빈이 뒷덜미를 잡힌 채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이제는 실전이디.”
“허억!”
빈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 *
고빈의 실전을 위해 침식지로 향하는 길이다.
이번에는 강문호 대위를 비롯해서 구은태 박사와 기동대 한 팀이 붙었다.
물론 기동대는 저번에 부루와 안면을 튼 이들이었다.
기왕이면 아는 얼굴이 좋았고 또 관리하기도 나았다.
일단 목적은 침식지 생태연구다.
구은태 박사가 동행을 하려면 그 정도 타이틀은 붙여 줘야 했다. 그리고 구 박사가 진입하기에 기동대가 붙은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했지만, 구 박사는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에서도 이쪽 관련해선 없어서는 안 될 연구가이기도 했으니까.
실제 구 박사의 생떼가 두려워서 고위층이 피할 뿐이지 그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동대가 붙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기동대원들의 눈빛들이다.
다들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 대위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들은 지금 을지부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십 년 전 그 일과 관련된 강림자라니…….’
십년 전 서울 테러사건.
그때 강 대위는 한국에 없었다. 그랬기에 잘 몰랐지만, 꽤 논란이 컸던 사건이었다.
외계인 설부터 별별 이야기가 다 돌 정도였다.
그런데 기동대 대원 중 하나가 당시 그와 관련된 카페 회원 중 하나였던 것이다.
심지어 그 카페는 최근 다시 활동을 다시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전신.
흔하다면 흔한 이름의 카페.
“인지도 0.00001이라며?”
“역시 인지도는 개 뺑인거지.”
“그 정돈 아니다.”
“그럼 그때 봐라. 정상적이면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겠냐?”
기동대원들이 도란도란 말을 주고 받았다.
“어느 아새끼가 전투 나가서 이빨을 까는 거이간?”
“죄송합니다!”
“아가리 쳐 다물라우.”
거친 음성이었지만, 다들 잘 따랐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마치 추종자 같은 모습에 강 대위는 피식하니 웃음을 흘렸다. 최소한 입막음 정도는 잘 될 거 같았다.
그때 부루가 입을 열었다.
“준비들 하라우.”
부루의 말에 다들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보통 D급이 주로 출몰하는 침식지였다.
분위기도 그에 걸맞았다.
침식지명 공동묘지.
이름 보면 딱 그림이 나오는 장소다.
그러럭!
“온다.”
좀비라 불리는 움직이는 시체들이 한쪽에서 빌빌거리며 몰려오고 있었다.
물론 물리면 좀비가 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기서 죽으면 좀비가 되는 경우가 있다. 죽었는데 좀비가 안 되는 경우는 다른 게 된다.
달그락. 달그락.
좀비들 사이에 뼈다구들이 뼈다구로 만든 무기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흔한 클리셰다.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이름 스켈레톤 소드맨.
움직임 자체가 어색하고 굼뜬 듯한 좀비와 달리 그 행동이 기민한 개체다.
저들 자체는 F급에 해당되지만, 항상 무리를 지어 나타나기에 D 급이라 부른다.
물론 스켈레톤 소드맨은 E급이다.
그런데 이 무리가 E급이 아니라 D급인 이유는 저들이 단순 무리를 짓는 게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왔다.”
기동대원 하나가 침을 삼켰다.
저 언덕 쪽에 깃발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움직이는 것들.
역시 그리고 눈앞의 수십 개체가 아닌 이삼백은 되어 보이는 개체들이 넓게 펴지고 있었다.
“사격대형으로!”
완편 기동대 이개 분대. 스물 두 명이 산개하면서 넓게 퍼졌다. 일부는 자리를 펴고 엎어졌다.
그리고 여덟 명은 앞쪽으로 나와 강화플라스틱 방패를 바닥에 찍고마치 성벽처럼 버텼다.
“흘리는 놈들만 처리하라우.”
“예!”
기동대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부대 단위라지만, 부루라면 저 정도는 충분히 다 처리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긴장감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강 대위는 쓴 웃음을 머금었다.
저들은 여기에 온 이유를 모르니 저렇게 태연한 것이다.
그때 부루의 입이 열렸다.
“돌격!”
그 소리와 함께 고빈이 움찔거렸다.
“지, 지금요?”
“기럼? 올 때까지 구경할 거이간? 전쟁은 기세야! 기세!”
부루의 호통에 빈이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기동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구 박사는 서둘러 캠코더를 켰다.
“걱뎡말라우. 내래 구경만 하갔네?”
“그, 다리가 안 떨어지는데.”
“말만 하라우. 필요 없으면 내래 잘라…….”
“에이씨! 맨날 협박만!”
빈이 울상을 지으며 달려 나갔다.
“우와아아악!”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기동대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친구가 소환자가 아니라 강림자였어?”
“어쩐지! 타임슬립으로 온 게 맞았어! 부루님이 그렇게 오면서 소환자로 각성한 거야!”
기동대원 하나는 여전히 소설을 써 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달려간 빈이 도끼를 휘둘렀다.
퍼적!
좀비의 머리통이 일격에 박살이 나며 나자빠졌다.
그렇게 최초의 일격을 성공시킨 빈이 휘둘러지는 도끼를 따라 한 바퀴 돌았다.
그 와중에 먼저 돈 것은 빈의 시선.
미리 봐 둔 사냥감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냥감에 눈이 못박히는 순간 뒤따라온 도끼가 사선으로 다시 휘둘러졌다.
콰직!
도끼가 좀비의 가슴팍에 틀어박혔다. 그와 동시에 빈이 발로 좀비의 상체를 걷어찼다.
도끼가 빠져나오며 가슴팍이 박살난 좀비가 뒤로 나자빠졌다.
카락카락카락!
그러자 스켈레돈 소드맨이 골검을 휘둘러 왔다.
“히익!”
빈이 살짝 균형을 잃으며 골검을 막았다.
카앙!
균형을 잃은 탓에 빈은 스켈레톤 소드맨의 힘에 눌려 비틀거렸다.